영화 <프란치스코 교황 : 맨 오브 히스 워드> 포스터
올해는 얼마나 이기적인 한 해였나. 남을 위해 울었던 적이 있을까. 누군가를 웃게 만든 기억도 가물가물 흐릿하다. 더불어 울고 웃을 수 있는 성숙한 나의 한 해는 언제 올 것인가.
매일매일 아침 기도가 끝난 뒤 프란치스코 교황이 낭송한다는 성 토마스 모어의 <유머를 위한 기도>를 따라 읽어본다. “제가 먹은 음식을 잘 소화하도록 해주시고 / 또 소화하기 좋은 음식도 내려주소서 (...)제가 이 세상에 나만 잘 되기 위해 / 너무 많이 고민하는 것을 허락하지 마소서 // 남을 즐겁게 해줄 유머 감각을 선사하시고/ 제 삶 속에 스민 많은 행복을 느끼며 /그 행복을 이웃과 함께 나눌 은총을 내려주소서.”
영화 <프란치스코 교황:맨 오브 히스 워드>에서 이 기도문을 소개하는 84세 프란치스코 교황의 얼굴엔 천진한 미소가 번졌다. ‘미소와 유머 감각’, 이 두 가지 능력이 일상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고 강조하는 온화한 교황은 지금 이 지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말을 품고 그 말을 실천하며 이념, 사상, 종교, 인종을 초월하여 감동을 안긴다.
이 영화는 종교 영화가 아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전기도 아니다. 우리의 삶과 지구를 위한 마음이다.
영화 <프란치스코 교황:맨 오브 히스 워드>의 한 장면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 워드>은 교황청이 빔 벤더스 감독에게 다큐를 의뢰하면서 제작되었다. 전례 없는 일이었다. 거장의 손길로 완성된 꾸밈없고 생생하며 정교하게 편집된 한 편의 영화가 주는 축복은 어마어마했다.
2013년 3월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은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매우 파격적인 아르헨티나 태생, 예수회 출신으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처음 사용했다. 이름을 통해 이미 지향을 드러낸 교황은 인류의 독보적인 혁명가였던 12세기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평생 가난한 이웃과 함께 청빈한 삶을 살겠다는 약속을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교황은 어린아이의 질문에까지 깊이 있는 유머로 대답하며 삶의 방향과 해법을 제시한다. 개인의 삶 속에 드리워진 온갖 그늘을 거둘 수 있는 답부터 지구 공동체와 환경 오염, 전쟁과 기아, 테러, 전 세계적인 인류 문제까지 해법을 찾으려는 행보를 멈추지 않는다. 교황이 찾아가는 곳은 전쟁 지역, 난민 캠프, 교도소, 유엔, 미국 의회, 타종교 행사장 등 인류를 위해 필요하다면 어디든 가리지 않는다. 그곳에서 기도하는 교황의 말들은 삶에 대한 사랑을 타오르게 하고 눈물짓게 한다.
바티칸궁이 아닌 그 옆의 작은 방에서 살고 소형 차량으로 이동하며 환호하는 사람들에게 미소를 나누는 모습. 바로 타인을 웃게 만드는 그 미소다.
교황이 강조한 인간의 기본권은 3T인 노동(토라바호) 땅(테라) 지붕(테초)다. 노동은 신성하고 삶의 땅이 되어주는 일자리가 중요하며 지붕 밑 가정의 안식이 있어야 한다. 누구에게나 필요한 이 세 가지 권리 중 하나만 빠져도 미래는 어둡고 개인의 자존감은 낮아진다. 실업 문제와 평화 문제는 지구상 어느 누구 예외없이 고개 숙여 숙의할 문제인 것이다.
영화 <프란치스코 교황:맨 오브 히스 워드>의 한 장면
2014년 한국에 오신 교황의 방명록 글자 크기는 당시 큰 화제였다. 너무도 작게 쓰인 이름은, 그저 글씨뿐이었는데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졌다. 이 영화 개봉 행사 하나로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 등 우리나라 7대 종교 지도자들이 함께 관람했다는 이야기도 교황의 메시지와 맥이 닿아 있을 거라 생각한다.
부디 매일이 아니어도 <유머를 위한 기도>를 자주 읽게 되기를. 프란치스코 교황의 미소를 더 자주 떠올릴 수 있기를. 이웃을 위해 울거나 웃을 수 있기를. 이기적인 내게는 꽤 어려운 주문을 걸게 만든 영화였다.
교황의 미소를 바라보며 누군가를 조종하거나 유혹하려는 의도 없이 거리낌 없이 그냥 웃는다는 ‘신선한 웃음’의 파장을 생각한다. 웃자. 웃는 연습도 자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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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숙(마음산책 대표)
<마음산책> 대표. 출판 편집자로 살 수밖에 없다고, 그런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일주일에 두세 번 영화관에서 마음을 세탁한다. 사소한 일에 감탄사 연발하여 ‘감동천하’란 별명을 얻었다. 몇 차례 예외를 빼고는 홀로 극장을 찾는다. 책 만들고 읽고 어루만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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