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스플래쉬
설리가 세상을 떠났을 때 구하라는 일본에 있었다.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켠 구하라는, 하염없이 울면서 자신이 지금 일본에 있어서 가보지 못하는 게 미안하다고, 네 몫까지 열심히 살겠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이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해주었지만, 그만큼이나 많은 이들이 “일본이면 멀지도 않은데 오면 되겠네“라던가 “애도할 거면 혼자 하지 왜 인스타 라이브로 하냐”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그게 40일 전이었다. 40일이 지난 뒤, 구하라는 세상을 떠났다.
대중문화계의 크고 작은 이슈에 관한 글을 쓴 지 12년이 지났지만, 12년을 썼어도 아직 잘 모르겠다. 설리는 왜 세상을 떠나야 했고 구하라는 왜 세상을 떠나야 했는지. 그들을 비웃고, 조롱하고, 사소한 것들을 트집잡아 비난하는 기사를 쓰고, 악플을 달고, 때리고, 협박한 사람들은 모두 별일 없이 삶을 영위하는데, 왜 부당한 피해를 입은 사람들만 아프다가 그들만 세상을 떠나야 하는지. 피해를 입은 건 그들인데 왜 그들만이 조신하고 고분고분하게 있기를 강요 당했는지, 가해자들이 익명으로 남아있거나 혹은 쉽게 용서받고 세상으로부터 잊혀지는 동안, 왜 피해자들은 끊임없이 가십의 소재로 호명되어야 했는지. 왜 죽음까지도 조롱과 비아냥의 대상이 되어야 했는지.
사람들은 말한다.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걱정이 연예인 걱정이라고.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했던 한 유튜버는 말했다. 연예인들은 돈과 인기를 얻었으니 악플 달린다고 징징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연예인들의 시시콜콜한 사생활을 추적해 기사화하고 돈을 버는 온라인매체는 말했다. 국민의 알 권리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연예인들은 어느 정도의 사생활 침해는 감수해야 한다고. 다 틀렸다. 브래지어는 선택의 문제라 믿었던 개인의 신념은 연예부 기자들의 가십성 기사거리가 되어 연일 ‘논란‘ 같은 키워드를 달고 기사화 되었고, 연예인들을 씹고 뜯는 것에 재미를 들인 이들의 악플 속에서 조롱 당했다. 사랑하는 연인으로부터 데이트 폭력을 당하고 사생활을 촬영한 동영상을 공개하겠다는 협박을 받았다며 피해를 호소한 이의 말은, 양쪽 말을 다 들어봐야 하지 않겠냐며 ‘[단독]’을 달고 가해자의 말을 받아 적어준 연예부 기자에 의해 부정당했다. 싸움 구경에 눈이 먼 사람들은 “이제 입증의 책임은 구하라에게로 넘어갔다“ 운운하는 글을 기사라고 쓰고, 그 밑에는 여지없이 또 악플이 달렸다. 젊은 여자 연예인들이, 서서히 질식해갔다.
고인이 세상을 떠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난 알지 못한다. 감히 안다고 말하는 건 살아있는 자의 오만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은 이야기 해야겠다. 지금 우리가 진짜 기억해야 할 얼굴들은, 여자들을 고립시키고 침묵을 강요하고 조회수를 보장하는 가십거리로 소비하고 제 스트레스를 퍼부을 심심풀이 땅콩 취급을 한 우리 사회의 얼굴이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분노하는 마음으로 쓴다. 이제 제발 그만 죽여라.
덧붙임: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 지인이 있을 경우 다음의 번호로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