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방법은 한 가지뿐
지난 6월 17일 저녁,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예스24 중고서점 홍대점에서 김정선 저자와 독자들이 만났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예스 리커버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20년 이상 단행본 교정 교열 작업을 해 온 김정선 저자는 『동사의 맛』 ,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소설의 첫 문장』 ,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등 다수의 책을 집필했다. 특히 『동사의 맛』 과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는 ‘교정의 숙수’가 들려주는 우리말 이야기를 담아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이번 강연회 역시 뜨거운 관심 속에 진행됐다. 많은 신청자 가운데 강연장의 최대 수용 인원인 50여 명이 초대됐다. 김정선 저자는 “이 자리에서 『동사의 맛』 과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에 있는 내용을 주워섬기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것 같다. 독자 분들이 그걸 기대하고 오셨을 리도 없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으시기 전에 글쓰기 일반에 대한 이야기, 한글과 한국어 맞춤법의 특성에 대해서 큰 그림을 그려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오늘은 그런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한다”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는 출판계에서 일하시는 분들이나 번역하시는 분, 정기적으로 글을 쓰셔야 하는 분들이 참고하시라고 쓴 책인데, 일반인들이 더 많이 봐주셨어요. 강연을 하면서도 놀란 것이, 출판 계통에 계신 분들보다 일반 직장에 계신 분들이 더 많이 오시더라고요. 오히려 일반인들이 글쓰기에 대한 스트레스와 압박을 더 많이 받는다는 걸 알게 됐죠. 일각에서는 인문학 부흥기를 맞아 글쓰기에 대한 욕구와 열망이 커졌다고 분석하지만, 제가 강연에서 만난 분들은 ‘당장 내일 써야 할 보고서와 답 메일에 적용할 수 있는 팁이 없을까’ 고민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만큼 많은 이들이 ‘글을 잘 썼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우리는 왜 글쓰기를 고민할까. 김정선 저자는 “어쨌든 글을 잘 쓰면 사회생활을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고, 딱히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SNS 활동을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추론했다. 덧붙여 “우리가 글을 쓰면서 고민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오히려 그 반대가 자연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글쓰기도 연습과 훈련이 필요한데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글 쓰는 방법은 딱 하나예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시간의 순서와 의미의 순서에 따라서 한 문장 한 문장 써나가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영화, 회사, 조각 같은 조형예술과는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조형예술처럼 한 번에 상대에게 다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오히려 음악하고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죠. 시간이 없으면 내용을 구현하기가 어렵습니다. 글쓰기가 종이나 모니터 위의 공간을 채우는 작업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공간을 채우는 작업이기는 하지만 거기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습니다. 공간을 채우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걸 가지고 시간을 어떻게 운용하는지’까지 연결돼야만 완성되는 작업이라는 의미예요. 내가 쓴 글을 읽는 사람이 어떤 리듬감과 호흡으로 읽어나갈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써야 된다는 거죠.”
이야기는 ‘한글’, ‘한국어’에 대한 것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1990년대 중반 즈음에 비로소 한글이 유일하고 보편적인 표기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다”, “한국어와 한글은 소리 감수성이 굉장히 뛰어나서 우리가 소리 내는 바를 그대로 구현해낸다”고 설명했다.
“한국어의 규칙이 어떻게 운용되는지 큰 그림을 그리시고, 한국어와 한글의 특성을 이해하신다면, 맞춤법이 틀리는 걸 접할 때마다 일희일비하실 필요는 없을 거예요. 휴대전화에 표준국어대사전이든 네이버 국어사전이든 창을 하나 띄워놓으시면 됩니다. 검색해 보시면 돼요. 이 정도는 살펴보신 다음에 한글 문장을 쓰는 연습을 하셔야 도움이 될 거예요.”
모든 문장은 ‘이상한 문장’이에요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에서 김정선 저자는 “적ㆍ의를 보이는 것ㆍ들”에 대해 말한 바 있다. 교정 교열 일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공식처럼 기억하고 다녔던 문장이라고.
접미사 ‘적’的과 조사 ‘-의’ 그리고 의존 명사 ‘것’, 접미사 ‘들’이 문장 안에 습관적으로 쓰일 때가 많으니 주의해서 잡아내야 한다는 뜻으로 선배들이 알려 준 문구였다. 실제로 예전엔 문장에 ‘적, 의, 것, 들’이 더러는 잡초처럼 더러는 자갈처럼 많이도 끼어 있었다. 잡초를 뽑아내고 자갈을 골라내듯 하도 빼다 보니 교정 교열자에게 ‘적의를 보이게 된 것들’이라는 뜻이기도 했고, 이쪽에서 ‘적의를 보이는 것들’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18쪽)
‘적ㆍ의를 보이는 것ㆍ들’에 더해 ‘에 대한(대해)’, ‘ㄹ 수 있는’ 등도 우리가 습관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표현이다. 그 이유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개 체언 위주의 문장을 만들 때 자주 쓰게 되는 표현들이에요. ‘인생은 아름다워’, ‘인생은 아름답다’라고 쓰면 되는데 ‘인생이라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라고 쓰는 거죠. ‘~라는 것’이라고 하지 않으면 뭔가 의미 있는 주어나 주어절, 명사구를 쓰지 않는 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는 모양이에요. 내 문장이 정말 이상한 것 같고 사람들이 잘 이해가 안 된다고 한다면, 여러분이 쓰신 글을 한 번 보세요. 내용은 보지 마시고 ‘적’, ‘들’, ‘것’, ‘대한’ 같은 것만 찾아서 표시해보세요. 그것들을 다 없애라는 건 아니에요. 박멸해야 될 표현이 아니고, 한국어 문장을 쓰는 데 반드시 필요한 표현들이거든요. 다만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꾸 반복해서 쓰니까 문제인 거예요. 그것만이라도 정비를 하셔서 새로운 것으로 바꾸실 수 있다면, 내용을 손대지 않고도 조금 더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쓰실 수 있을 거예요.”
글쓰기에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며, 저자는 “글쓰기는 그 자체가 번역”이라고 말했다.
“글을 쓰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한 가지라고 생각해요. 나만의 느낌과 의견을 모두에게 통용되는 언어로 표현해야 되기 때문에 딜레마에 봉착하는 거죠. 글쓰기는 그 자체가 번역이에요. 그러니까 매번 글 쓸 때마다 어려운 거예요. 매번 타협을 해야 돼요. 가령 ‘모두에게 통용되는 언어로 쓰는 건데 나만의 표현이 뭐가 중요해?’라고 생각하신다면 신문 사설 같은 글을 쓰시겠죠. 그런데 그건 글이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잖아요. 필요할 때도 있죠. 반면 ‘나를 표현하고자 글을 쓰는데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든 말든 무슨 문제야?’라고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서너 번은 읽어야 이해되는 문장을 쓴다고 하더라도, 여러분한테는 의미 있는 글이 되겠죠.”
그러므로 “한 가지 잣대로 좋은 글과 안 좋은 글을 규정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1993년부터 교정 교열 작업을 시작해 20년 넘게 ‘남의 글’을 봐오면서 저자가 깨달은 사실이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이상하지 않은 문장’을 본 적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정상적인 삶을 사는 정상적인 사람이 정상적인 내용을 담은 정상적인 문장’을 떠올리실 수 있나요? 없으실 거예요. 그걸 떠올리시면 그 외의 다른 모든 문장은 이상한 문장이라고 배척하게 되실 거예요. 모든 문장은 다 이상한 문장이에요. 청소년기에 책을 읽다가 밑줄 그은 문장을 생각해 보시면, 소름끼칠 정도로 문법을 잘 지킨 문장이라서 밑줄을 치셨나요? 아니죠. 그 전에는 본 적이 없는 문장이거나 ‘이런 표현이 가능하네’ 혹은 ‘어떻게 내가 느꼈던 걸 이렇게 정확하게 표현했지’ 싶은 생각이 드는 문장들이었을 거예요. 기존의 문법을 극한까지 밀어붙이거나 넘어가서 표현된 문장이었던 거죠. 그러니까 정상적인 문장이라는 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다 이상한 삶을 살고 있는 이상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쓰는 문장은 다 이상한 문장일 수밖에 없어요.”
세상에 정상적인 문장은 없고 모두가 이상한 문장들이라면, 교정 교열자로서 김정선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는 스스로를 일컬어 “이왕이면 일관되고 규칙적으로 이상한 문장이 되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남이 쓴 이상한 문장을 정상적인 문장으로 바꾸는 해괴망측한 짓을 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독자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어진 저자의 말 “글을 쓰면서 자꾸 표준이 되는 문장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자신의 문장을 검열할 필요는 없다”는 한 마디에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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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김정선 저 | 유유
좋은 문장을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필요 없는 요소를 가능한 대로 덜어내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적’, ‘-의’, ‘것’, ‘들’과 같은 말만 빼도 문장이 훨씬 좋아진다고 지적한다. ‘있다’가 들어가서 어색해지는 문장 유형도 함께 정리한다.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