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스플래쉬
내 자존감을 회복하는 걸림돌은 바로 ‘나’
“자동문도 내게는 열리지 않아요.”
나를 찾아온 10대가 한 말이다. 학교에서 존재감 제로라 다니고 싶지 않다고 주장을 해서 만나게 된 아이였다. 인상적인 것이 존재감이 너무 없어서 자동문 센서도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자동문이 고장이 났거나, 적당한 위치에 서지 않은 이유였지만, 자존감이 워낙 낮다보니 자동문조차 열려주지 않는, 즉 기계도 무시하는 존재라고 본인은 인식한 것이다. 면담을 해보니 의외인 점이 있었다. 저 정도면 친구는 한 명도 없나보다 싶어서 물어보니 같이 급식을 먹고, 학원을 다니는 친구가 두 세 명은 있었다. 내가 다행인 것 같다고 하자, 아이는 “그게 뭐 대단하다고요. 학급 회장도 아니고,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라고 대답했다.
머릿속에서 그리는 존재의 기대치는 매우 매우 높았던 것이다. 그러니, 더욱 지금의 내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 자존심은 높은데 자존감은 낮은 케이스.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고, 아무짝에도 쓸모 없고, 뭘 해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여기는데, 인기는 있고 싶고, 뭘 해도 술술 잘 풀리기를 바라지만 정작 실천은 하는 게 없는 이 아이, 어디서부터 도와주면 좋을까?
박진영의 ‘나는 나를 돌봅니다’에서는 첫 단추를 이렇게 풀어보라고 조언한다. 친구가 밉고 싫으면 헤어지면 되고, 새 친구를 사귀면 된다. 부모와도 언젠가는 헤어진다 그렇지만 절대 헤어질 수 없는 한 명이 있다. 그건? 바로 나다.
“나는 나를 차단할 수도, 나와 헤어질 수도 없습니다. 나 자신과는 결코 떨어질 수 없고 평생 살아가야하기 때문에 내가 나를 잘 대하는 것 매우 중요합니다.”
“이제부터 내가 나의 좋은 친구가 되면 어떨까요?”
내가 나 자신의 행복의 가장 큰 적이었던 것이다. 내가 내 자존감을 회복하는 걸림돌이있다. 그러니, 가장 먼저 나와 화해하고, 못나 보이는 나를 다시 돌봐 괜찮게 느끼는 일부터 시작해야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박진영은 사회심리학자로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 등의 책을 낸 바 있고, 이 책 『나는 나를 돌봅니다』 는 10대를 뒤한 자기자비 연습이라는 부제목이 말해주듯 10대의 자기 돌보기를 목표로 한 책이다. 150쪽 남짓의 짧은 분량에 구어체로 서술되어 있어 책 읽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쉽게 책장을 펴들 수 있을 내용이지만, 그 안은 무척 단단하다. 검증된 연구결과들을 바탕으로 내가 먼저 나와 친구가 되어야한다는 것, 나에 대한 이해를 하는 법, 고민을 잘 하는 법, 뭐든지 다 잘 할 수 없다는 것, 나를 돌보는 방법에 대해서 편안하고 자상하게 들려준다.
더 중요한 것은 ‘나에게 관대해지는 것’
저자는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을 그렇다고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은 노래를 열심히 듣는 것으로 오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런 태도는 도리어 불가피한 좌절을 만나는 현실에 적응이 어렵고, 내가 적절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고 여기며 다른 사람을 미워하게 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나에게 관대해지는 것’이다. 그래야 시험에 좋은 점수를 못 받아도 “시험은 잘 못보아 아쉽지만 다음에 더 열심히 하면 돼”라고 나를 가혹하게 대하지 않게 되고 너그러워지면서 쓸데없는 좌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존심만 세우고, 상처받지 않으려 애를 쓰는 것보다 내게 너그러워지고, 연민을 갖고 볼 수 있으려는 노력이 더 필요한 것이다.
10대의 가장 큰 변화는 뇌의 발달과 2차 성징으로 인해 감정이 풍부하고 색감이 뚜렷해지는 것이다. 이런 내면의 감정 변화는 불편하고 어색하다. 그래서 감정 반응도 충동적이고, 적절하지 않을 때가 많다. 원치 않은 상황에 화를 내거나, 눈물을 흘리는 등 감정조절에 실패하고 나면 당황스럽다. 또, 대인관계에 섬세해지고 감정을 읽는 능력도 발달한다. 그러다보니 주변에 신경이 쓰이는 것이 늘어난다. 이런 변화가 불편해지면 대인관계를 피하거나, 감정을 억누르는 대응을 하기 쉽다. 저자는 감정은 내게 어떤 일이 벌어졌다는 걸 알리는 신호로 이해하고, 평가하지 말고 판단하지 말라고 조언하다. 슬픔, 두려움뿐 아니라 행복조차도 그렇다. 항상 행복해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즐거움을 덜 느끼고, 삶의 만족도도 낮은 연구가 있으니 말이다.
어떤 감정은 좋은 것이고 옳은 것이고, 어떤 감정은 나쁜 것이라고 정해버리면 내게 발생하는 다양한 감정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기 쉽다. 이런 평가를 하면 괜히 기분만 상해지고, 나쁜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한 원인제공자가 미워지기만 한다. 그러니 그냥 이해하고, 인식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대인관계에서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자존감을 낮추는 주요한 원인이다. 저자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불가피하게 존재할 수 밖에 없고, 나도 남들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과 동등하다고 말한다. 아무 이유 없이 좋은 친구가 있듯이 싫은 친구도 있기 마련이니, 거절이란 어쩔 수 없을 때가 있고 상대가 거절 한 것은 ‘내가 싫은 게’ 아니라, ‘상황이 안맞는 것’일 때가 더 많다는 걸 이해하자고 말한다. 즉 거절에 익숙해져야한다. 모든 게 다 나 때문이라고 여기면서 실망할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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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관대해지기를 주문한다
노력을 하다 보면 실패나 좌절을 경험할 때가 많다. 이때 하다가 안되면 과감히 포기하는 것도 용기다. 저자는 재미있는 실험 하나를 소개한다. 참가자들에게 어려운 추론 문제를 주고 풀게 했는데, 자꾸 실패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문제 유형으로 바꿀지, 아니면 계속 이 문제를 풀지 물어보았다. 이때 자존감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지속적으로 매달렸고, 건강한 사람은 여러 번 망한 과제는 바로 포기하고 다른 걸 하겠다고 선택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자존감이 강한 사람들이 실패에 내성이 강해서 지속해서 성공할 때까지 노력을 할 것 같았는데, 결과는 반대였다. 자신을 존중할 줄 아는 건강한 사람은 ‘해보니 이건 아닌 것 같네. 그만하자’라고 결정하고 이걸 통해 자존감의 핵심의 상처를 받지 않았으니 회복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자아가 건강한 사람일수록 포기할 걸 포기하고, 다른 재미있고 잘 할 수 있는 걸 추구하는 시도를 할 자신감이 있었던 것이다.
반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실패하지 않는 것, 못한다는 평가를 받기 싫다는 것이 과제의 초점이 되었다. 그러니, 잘 할 때의 기쁨보다 못한 걸 막지 못한 아픔을 피하는 것이 주목적이 된다. 그러니 하던 것을 더 반복해서 결국 그 아픔을 피하기를 바란다. 그러다보니 시간만 더 쓰고, 실력은 사실은 늘지 않는, 애매한 상태가 되어버리기 일쑤고 들인 노력과 시간에 비해 정작 만족감이 낮을 수 밖에 없다. 그러니, 과감한 포기가 어떨 때는 필요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무엇보다 나에게 관대해지기를 주문한다. 나를 용서하고 따뜻하게 바라보면서 끝까지 함께 가줄 사람은 오직 ‘나’뿐이니 말이다. 내가 가야할 길을 가면서 일이 술술 풀리지는 않을 거라는 걸 알고, 그게 당연하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이 끈기를 만들어주며, 틀릴 수 있고 그 기회가 더 소중한 것이라는 것, 그래야 내가 성장할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라고 조언한다. 이를 저자는 ‘지적겸손도’라고 말한다. 세상에 모르는 게 많다는 것, 들킨다고 부끄러울 것도 없고, 또 어찌 보면 배울게 많다는 것 그거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 아닐까?
이 책에서는 10대에게 용기를 주고 마음을 다스릴 팁을 전달한다. 내게 자비로워지기 위해서는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은 없고, 모두가 실수를 한다는 것, 나도 예외는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또 힘들고 괴로운 상황이 올 때가 있지만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하다는 것, 이럴 때 누구보다도 내가 나에게 따뜻한 시선을 가졌으면 한다는 것, 친구에게 조언을 하듯 내 마음의 감정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해해주려는 노력 등이 자기 자비를 위한 마음가짐이라는 것이다. 내가 한심하다고 느껴지는 날이 많은 사람이라면 꼭 10대 청소년이 아니라도 도움을 받을 부분이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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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돌봅니다박진영 저 | 우리학교
쓰디쓰게 성장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십 대들에게, 지금 이 순간에도 자그맣게 숨 쉬며 고독하게 자라고 있는 우리 주위의 청소년들에게 다정하고 따뜻한 위로가 되어 줄 것이다.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