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는 비슷한 문제가 계속 반복된다고, 김혜남 정신분석 전문의는 말한다. 10년 전, 두 권의 책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와 『심리학이 서른살에게 답하다』 로 고민하는 서른들에게 응답했던 저자가 지금도 멈추지 않고 마음의 문제를 말하는 이유다. 이번에는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고 토로하는 이들에게 안부를 묻는다.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우울’을 들여다보고 “우울증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라고 말한다. 책을 함께 쓴 박종석 정신과 전문의는 많은 직장인들의 심리 상담을 진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우울의 또 다른 모습을 이야기한다.
지난 6월 6일, 인터뷰를 위해 김혜남 저자를 찾았다. 마주앉고 나서야 2주 전에 작은 부상이 있었음을 알았다. 그는 20년 가까이 파킨슨병을 잘 다스려 오고 있지만, 그날은 목소리를 크게 내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우리는 ‘우울’에 대해 이야기했고 바깥은 비가 내렸다. 하지만 우울하지 않은 분위기가 그곳에 있었다. “우울의 반대말은 행복이 아니라 생동감”이라는 사실을, 김혜남 저자는 직접 보여줬다. 말 한 마디 전하기도 힘든 상황이었지만 유머를 잃지 않았고 “다음에는 더 잘 쓸게요”라는 말로 독자들에게 안부를 전했다.
사람, 참 이해할 수 없는 존재구나
정신분석 전문의로 많은 환자들을 만나셨잖아요. 증상과 병명은 다 달라도, 기저에는 항상 우울이 있었을 것 같아요.
모든 문제와 병의 밑바닥에는 항상 우울이 깔려있죠. 그 우울을 어떻게 방어하고 처리하느냐에 따라서 병이 나뉠 수도 있는 거고요. 사실 우울이라는 것은 우리 인생을 관통하는, 항상 깔려있으면서도 힘든 감정이거든요. 저는 우울할 수밖에 없을 때 우울하지 못하는 것도 질환이라고 봐요. 누구라도 우울할 수밖에 없을 때 우울을 느끼지 못하는 것, 요즘에는 그게 더 문제죠. ‘나는 울어서는 안 된다, 우울하면 못 쓴다’라는 생각이 요즘 젊은 사람들한테 더 많은 것 같아요. 우울하면 우울하다고 이야기하고 손을 뻗으면 누구라도 잡아줄 텐데, 혼자서만 끙끙 앓는 거죠. 밖에 나가서는 웃다가 집에서는 이불 속에서 울고... 그런 것들이 더 문제가 될 수 있죠.
이번 책에는 우울증뿐만 아니라 상실, 번아웃 증후군, 현실부정, 화병 등 다양한 증상들이 나와요.
우울증의 변형으로 그렇게 표현이 되는 거예요. 옛말에 ‘마음이 울지 못하면 몸이 운다’고 하듯이, 마음이 울지 못하게 억압해 놓으니까 나중에 화병 같은 걸로 발전이 되는 거죠.
우울에 대해서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도 있지 않나요? ‘안 우울한 사람이 어디 있어? 그 정도로 병원을 가?’라고 생각하면서 치료 시기나 기회를 놓치는 거죠.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은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을 해요. 그런데 가족이나 친구들이 ‘그게 무슨 병원에 갈 일이야, 네가 마음만 강하게 먹으면 되지’ 이렇게 말하면서 거절하거든요. 제가 만났던 환자 중에 한 분은, 우울증이 심해져서 자기를 병원에 좀 데려다 달라고 남편한테 부탁을 했는데 안 데려다줬어요. 그런데 아이 세 명과 같이 자살을 시도했어요. 아이들은 다 죽고 자기는 살아났어요. 그나마 그 남편이 이건 자기 때문에 그런 거고 병 때문에 그런 거라고, 부인을 버리지 않더라고요. ‘사람이라는 게 참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다’ 싶더라고요.
40년 가까이 신경정신과 전문의로 사셨는데, 아직도 인간에 대해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세요?
인간에 대해서 제가 아는 게 뭐가 있겠어요. 저 자신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데. 안다고 생각하는 게 착각이겠죠.
진료실에서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의사도 같이 우울해질 것 같아요.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벗어나셨어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들이 정말 많아요. 어떤 때는 진료 끝나고 방 안을 뱅뱅 돌아요. ‘세상에 이럴 수가, 세상에 이럴 수가’ 하면서요... 그런데 다음 환자가 들어오면 또 일을 해야 되니까... 그냥 삭히는 거죠. 그리고 정신과 의사가 모든 걸 알지는 못해요. 그걸 해결해주려고 달려들면 그때부터 문제가 생기죠. 환자들이 갖고 있는 어떤 것들에 공감해주는 것에서 끝나야지, 그걸 고쳐주려고 하면 그때부터는 문제가 생각해지거든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한계를 분명히 봐야 돼요.
모든 사람을 치료할 수 있다고 믿는 것도 위험한 일이겠네요.
그걸 ‘구원 환상(Rescue Fantasy)’이라고 해요. 나는 모든 사람을 구원해줄 수 있다는 생각, 그게 위험해요. 제가 슈퍼비전을 할 때 레지던트들이 와서 ‘선생님, 환자 상태가 좋아졌어요’라고 말할 때가 있었어요. 처음에는 좋아져요. 환자가 의사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좋아지거든요. 그러면 제가 ‘올라간 비행기는 떨어지는 법’이라고 말해줘요. 정말 다음에는 환자의 상태가 나빠진 상태로 와요. 그러면 왜 좋아졌고 왜 나빠졌는지 원인을 같이 분석하죠.
사람의 문제는 죽을 때까지 똑같아요
‘물길’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물이 흐르던 길로 계속 흐르려는 속성이 있듯이, 우리 생각도 마찬가지라는 건데요. 우울한 사람은 스스로에 대해서 계속 부정적으로 평가하잖아요. 이 생각의 물길을 틀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인지치료라는 게 있어요. 자기가 표를 만들어서 ‘어떤 생각을 할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체크를 하는 거예요. 생각을 바꿔봤을 때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체크해 보고요. 그 연습을 계속 하는 건데요. 예를 들어서 ‘나는 실패자야,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야’라는 식으로 자기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을 때 ‘아, 내가 또 이런 생각을 하네’ 알아차리고 표에 적는 거예요. ‘아니야, 이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실수야, 이렇게 했다고 세상이 어떻게 되지는 않아’라고 적는 거죠. 그랬을 때 기분이 어떻게 변했는지, 예를 들면 30점에서 60점으로 바뀌었다든지, 그런 걸 적어보는 거예요. 삽을 들고 물길을 파는 거죠. 처음에는 잘 안 되도 계속 물길을 만들면 생각이 그쪽으로 흐를 테니까요.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 『심리학이 서른살에게 답하다』 가 출간된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당시의 독자들이 이제 40대가 되었을 텐데, 전하고 싶은 이야기 없으세요?
사실 그 책을 쓰고 유혹을 많이 받았거든요. 나이에 관한 문제들에 대해서 써달라고요. 그런데 저는 다시는 나이에 대해서는 안 쓴다고 했어요. 왜냐하면 사람의 문제는 나이하고 상관없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똑같거든요. 단지 어떤 발달 단계에 어떤 문제가 두드러지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지, 사람의 문제는 결국 비슷한 게 계속 반복돼요. 지금의 40대에게도 30대와 마찬가지의 이야기를 해주겠죠?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라는 제목의 의미처럼, 어른이 돼도 계속 문제에 부딪히며 사는 건 똑같은 것 같아요.
50대가 되면 뭐가 달라지나요? 제가 60대가 되었는데, 우리 남편이 부부 싸움할 때면 ‘당신이 쓴 책을 읽어 봐, 책에는 그렇게 좋은 말들을 많이 쓰고 현실에서는 왜 못 그래?’라고 해요. 그러면 제가 뭐라고 하는 줄 아세요? ‘내가 현실에서 그럴 수 있으면 책을 왜 써?’라고 해요(웃음). 현실에서 그러지 못하니까, 어떻게든 해결해보려고 책도 쓰고 읽고 공부도 하고 그러는 거죠.
이 책의 제목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 분들에게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시겠어요?
제가 항상 이야기하는 건 ‘모든 건 과정이고, 견디면 모든 건 지나가게 돼 있고, 그것이 나에게 플러스가 될지 마이너스가 될지는 나중에 알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조건 견디고 이겨내라’라는 말을 하는데요. 제일 중요한 건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게 제가 해주고 싶은 말이에요.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처음 발병 사실을 아셨을 때는, 앞으로의 삶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펼쳐질 거라는 걸 모르셨을 거잖아요.
몰랐죠. 준비가 된 사람은 기회가 올 때 잡을 수 있는데, 준비가 안 된 사람은 기회가 오는 것조차 모르거든요. 그래서 항상 자신을 여러 가지 면에서 준비시켜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게 취미나 관심이 될 수도 있는데, 저는 인생에 대한 관심과 사람에 대한 관심은 항상 놓지 말라고 이야기해요. 그러면 뭔가가 보여요. 책에다 썰을 풀어놓을 수도 있고요(웃음).
힘든 상황에서도 계속 글을 쓰시는 이유는 뭔가요?
우선은, 재밌어요. 책을 쓰면 1년 정도는 준비를 해요. 공부도 하고 논문도 찾으면서요. 제가 평상시에는 기운 없이 다니다가, 책을 쓸 시기만 되면 눈이 반짝거리고 사람이 달라진다고 이야기 하더라고요. 제가 한 작업을 한두 사람만 읽더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처음에 병 때문에 정신분석을 포기할 때는 제가 책을 쓰리라고는 생각을 못 했어요. 그런데 ‘한 사람에 대한 정신분석을 포기하고 대중한테 말을 걸기 시작하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책을 쓰게 됐죠.
정말 열정적인 분이신 것 같아요.
제가 한 열정 하죠(웃음). 지금 이 병이 좋아지기를 바라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다시 춤을 추기 위해서예요. ‘내가 다시 춤을 추고 만다’ 생각하고 있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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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김혜남, 박종석 공저 | 포르체
이제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의 다양한 감정들, 상대방 때문에 때로는 자기 자신 때문에 마주하게 되는 일상 속 모든 고통과 아픔에 대해 내놓는 처방전이다.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