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공연계에서 다양한 무대가 마련되고 있습니다.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도 3월 5일부터 17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다섯 번째 시즌을 이어가는데요. 서울예술단이 지난 2012년 첫선을 보인 <윤동주, 달을 쏘다.> 는 암울한 시대를 온몸으로 겪어야 했던 청년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내 공연 때마다 뜨거운 환호를 받았습니다. 특히 이번 무대에는 각각 윤동주, 송몽규, 강처중 역으로 사랑받았던 원년 멤버 박영수, 김도빈, 조풍래와 신상언, 강상준, 김용한 등 서울예술단의 신예 배우들이 어우러져 새로운 감동을 예고하고 있는데요. 푸르른 청년들 가운데 김도빈 씨가 유독 궁금해 직접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레드>에 이어 <윤동주, 달을 쏘다.> 까지 오랜만에 매일처럼 예술의전당을 찾고 있으니 서울예술단 소속이던 시절이 생각날 것 같거든요(웃음).
맞아요. 많이 그리웠는데, 이렇게 오니까 좋더라고요. 예술단 나온 걸 유일하게 휴회하는 일이 사람들이거든요. 객원배우로는 이번에 처음 참여하는데 무척 환영해주셔서 감사해요.
연극 <레드>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윤동주, 달을 쏘다.> 는 초연 때부터 했던 작품에 박영수, 조풍래 씨와 다시 함께 하니까 부담은 없을 것 같습니다.
초연부터 한 번도 빠짐없이 5번째 참여하는 작품이니까요. 저희 셋은 워낙 많이 했지만 새로운 친구들과도 섞어야 하니까 후배들과 연습을 더 많이 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많이 만들어놨지만, 기존 것을 버리고 더 나은 것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요.
‘박영수-김도빈-조풍래’, ‘신상언-강상준-김용한’ 사진이 따로 있기에 고정 페어인가 했는데, 그렇지는 않더라고요. 사진에서 확실히 연륜이 느껴지던데요(웃음).
그렇죠, 후배들이 저희보다 8~9살 정도 어려요. 키는 7~8센티 크고요(웃음). 몽규가 동주를 감싸는 역할인데 상대 배우가 크니까. 동생이라도 키가 크면 좀 그렇거든요. 이 친구들 키가 190센티에 가까워서 별명이 ‘서울예술단 2메다즈’래요(웃음). 다들 매력 있어요. 풋풋하고 젊은 패기가 좋더라고요. 그동안 송몽규는 원 캐스트라서 항상 무대에 있었는데, 이번에는 객석에서도 보게 됐어요.
초연 때부터 혼자서 갈고 닦아온 인물을 다른 배우가 연기하니까 더 유심히 보겠네요. 같은 인물로 캐스팅된 강상준 씨도 부담스러울 테고요.
저는 이 작품 초연부터 송몽규로 오디션을 봤어요. 그런데 무대에서 동주가 ‘별 헤는 밤’을 읊는 장면이 멋있어서 후회도 많이 했거든요. 물론 몽규를 만들어가면서 저와 잘 맞다는 생각을 했는데, 다른 배우가 하는 모습을 보니까 몽규라는 인물의 매력이 확실히 보이더라고요. 상준이가 안양예고 후배예요. 이 친구가 배우로서 역량도 뛰어나고, 선배들한테도 잘하고, 예술단 활동도 잘해서 제가 예뻐해요(웃음). 저에게 없는 풋풋함과 ‘우월한 기럭지’도 있고. 그런데 성격도 비슷하더라고요. 분위기를 즐겁게 만들고, 도전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극 중 송몽규와도 비슷한 면이겠죠?
저도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가식 없이 진실된 삶을 꿈꾸거든요. 몽규도 열심히 공부했던 문학을 접어두고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는 건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 같아요. 물론 그 당시라면 나는 어땠을까... 잘 상상이 안 되지만요.
거짓 없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은 김도빈 씨가
<윤동주, 별을 쏘다.>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어떤 걸까요?
몽규 역을 더 사랑하게 된 배경도 영상을 통해 확인해 보시죠(웃음)!
작품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실 텐데, 이번 시즌에 달라진 부분이 있나요?
연출님이 윤동주와 송몽규가 마지막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체실험 당하는 장면을 좀 더 처절하고 참혹하게 그리고 계세요. 세트도 좀 바뀌고, 다 같이 부르는 노래에도 변화가 있고요. 그리고 1막 초반에는 젊은 청년의 순수함, 밝은 모습이 더 두드러지도록 연습하고 있어요. 관객들에게 숨 쉴 구멍을 많이 드리고 싶거든요.
윤동주, 송몽규가 29살에 목숨을 잃었잖아요. 시즌마다 나이를 더해가며 20대에 머물러 있는 그들을 만나는 느낌도 남다르겠죠?
며칠 전 윤동주 서거일에 부암동 시인의 언덕에 있는 윤동주 시비 앞에서 인사를 드렸어요. 술을 따라 드리고, 묵념하고, 시도 읊는데 울컥하더라고요. 저는 20대에 서울예술단 들어와서 30대를 뜨겁게 보내고 있는데, 그들은 그렇게 어린 나이에, 그렇게 일찍 가버렸다는 게 너무 안타깝고. 그래서 그들의 안타까운 젊음을 어떻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밝고 순수했던 청년의 모습을 좀 더 땀 흘려서 연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편으로는 윤동주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송몽규가 안타깝기도 할 것 같아요.
그렇죠. 영화 <동주>를 통해 송몽규도 많이 알려졌는데, ‘술가락’이라는 산문 외에는 작품도 남아 있는 게 별로 없다고 해요. 그도 문학인이었고, 윤동주보다 먼저 신춘문예에 당선된, 예술적 자질이 높았던 친구인데 말이죠. 동주가 시로서 시대에 맞섰다면 몽규는 좀 더 급진적으로 행동했던 것 같아요. 무관학교에 가서 독립운동도 준비하고. 결국 같은 형무소에서 동주와 끝까지 일생을 함께 한 인물이죠. 저희 작품 보는 분들은 몽규를 많이 좋아해주세요. 동주에게는 몽규가 없으면 안 된대요. 곁에서 동주를 보듬는 모습이 좋아 보이나 봐요.
동주에게 몽규가 있다면 김도빈 씨에게는 박영수, 조풍래 씨가 있잖아요. 전 서울예술단 삼총사, 이른바 ‘슈또풍’은 여전하죠? 예전에 조풍래 씨 인터뷰하는데 김도빈 씨한테 전화가 오던데요(웃음).
나이 들수록 더욱 소중해지는 것 같아요. 예술단 밖에서도 많은 배우들을 만났지만 이런 친구들은 없거든요. 8년을 함께 먹고 자면서 어릴 때 친구들보다 끈끈하니까요. 가고자 하는 방향이 같고, 같은 일을 하고 있고, 공연을 보면서 서로에 대해 가감 없이 얘기해주고요.
지금까지 같은 역할을 연기해본 적은 없죠? 캐릭터가 겹치지 않는 것도 재밌네요.
같은 역할을 맡은 적은 없어요. 최근 <마리 퀴리>에서 영수와 풍래가 만났고, 저는 영수랑 <지구를 지켜라>를 했고, 풍래는 <모범생들>에서 만났죠. 아예 셋이서 작품을 해도 좋을 것 같아요(웃음).
많은 배우들이 가슴 한 구석에서 갈망하는 ‘안정성’을 버리고 서울예술단을 나왔을 때는 다양한 작품에 대한 욕구가 컸을 텐데, 충분히 만끽하고 있죠? 연극도 원 없이 하시고(웃음).
작년에는 연극만 했어요. 사실 저는 처음부터 ‘안정’이라는 걸 생각하지 않았어요. 한 작품 한 작품 즐겁게 하다 보면 돈이 따라온다고 생각했고, 어떤 작품을 해나갈지가 중요했거든요. 그런데 예술단을 나와 보니 조금 불안하기는 하더군요(웃음). 다행히 좋은 작품들을 쉼 없이 했고, <레드>를 하면서도 많은 작품이 들어오더라고요. 진실하게 살자는 제 삶의 모토가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 장면이라도 관객들의 가슴에 꽂힐 수 있는 작품’을 계속 하고 싶어요.
서울예술단 작품도 좀 더 객관적으로 보게 될 텐데,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 주시죠.
서울예술단은 예술단만이 할 수 있는 작품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만들어준 작품이 <윤동주, 달을 쏘다.> 였고요. 밖에서 공연하며 느끼는 건 예술단의 놀라운 팀워크예요. 오랜 시간 함께 했기 때문에 딱 보면 뭐가 나올지 아는 거죠. 예술단의 뛰어난 안무도 빼놓을 수 없어요. 다들 무용계에서 한 가닥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앙상블의 춤이 아닌, 자기의 예술을 표현하는 거니까요. 새로운 후배들이 들어오면서 세대교체도 됐는데 잘 어우러져서 서울예술단이 더 단단해졌으면 좋겠어요.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