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여성들은 남성 못지않은 능력과 열정을 가지고 일하지만, 결과적으로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조직을 이끌어가는 자리는 여전히 많은 경우 남성의 몫이다. 일하는 여성들의 모습과 그들의 목소리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남성 CEO들의 성공담은 무수히 넘치는데, 그에 반해 성공적으로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덜 보이고, 덜 들린다. 이런 문제의식은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자신만의 일터를 만들어 ‘나의 문제, 여성의 문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해나가고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모은 인터뷰집 기획으로 이어졌다. 여성들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기록되고 기억되어야 하므로. 여성 선배와 동료들이 들려주는 구체적인 일의 서사는 또 다른 여성이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앞으로를 더욱 구체적으로 상상하도록 자극해줄 터이기에. 그리하여 여성들이 더 이상 외롭지 않게 일할 수 있을 것이기에. 그것이 홍진아 작가가 여성의 일 이야기를 듣고 싶은 이유이자, 새로운 판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기록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이다.
『나는 오늘도 내가 만든 일터로 출근합니다』 가 첫 책이에요. 책의 추천사를 써주신 제현주 작가님께서 ‘대한민국 공식 1호 N잡러’라는, 작가님의 흥미로운 이력을 짚어주시기도 하셨는데요.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선샤인콜렉티브의 홍진아입니다. 선샤인콜렉티브는 여성들이 더 대담하게 일하고 자기만의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독려하는 커뮤니티랩이에요. 교육이나 소셜클럽 같이 다양한 방식으로 커뮤니티 실험을 해볼 예정이랍니다. 창업을 하기 전에는 13개월 동안 N개의 소속을 가지고 일하는 ‘N잡 실험’을 했어요. 저는 원래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직장을 다니면서 다양한 사이드프로젝트들을 퇴근 후에 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일자리의 변화가 있을 거라는데, 하고 싶은 일이 이렇게 많은데 꼭 하나의 직장에만 소속을 두고 일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어요. 그러다 좋은 기회가 생겨 회사와 함께 제 일의 모양을 디자인하고, 그것을 해보는 ‘N잡 실험’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투잡족이나 프리랜서와는 조금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일을 하는 사람인 저를 설명할 적절한 단어를 당시에 찾지 못했고, 그래서 스스로에게 ‘N잡러’라는 이름을 붙이고 일했어요. 이 실험 덕분에 변화하는 일 환경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고, 건강하게 일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오늘도 내가 만든 일터로 출근합니다』 를 쓰시게 된 구체적인 동기가 있으신가요?
신입사원 때, 좀 의아한 것이 있었어요. 저와 같이 일하는 실무자들은 여성의 비율이 훨씬 높은데, 관리자나 대표는 남성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거예요. ‘일하던 여성들은 다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일하다가 문득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시간을 보냈어요. 8년 정도 일을 하고, 초년생들에게는 선배인 연차가 되고 보니 어떻게 사라져가는지 알겠더라고요. 사라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독하게 버티면서 외롭게 유리천장을 깨는 일인데, 이제 그렇게 버티지 않아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만큼 하면서 살아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기존의 질서를 벗어나서 자기 일터를 만든 여성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어요. 창업을 했다는 사실보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고 있는 여성들이라는 것에 마음이 끌렸고, 이들의 이야기를 모아보고 싶었습니다. 우리에게 샘플이 하나 생긴다는 것은 버티거나 사라지거나, 둘 밖에 없는 선택지를 더 늘리는 일이 되니까요. ‘이분들을 지표로 삼고 똑같이 해보세요’가 아니라 이런 이야기도 있고, 저런 이야기도 있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만의 ‘일-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여성들에게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어떤 분들을 어떻게 인터뷰이로 섭외하셨는지, 특별히 기억에 오래 남은 인터뷰이는 어떤 분이셨는지 궁금합니다.
여성이 경험하고 있는 문제들을 비즈니스로 해결해나가고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았어요. 이은의 변호사님 같은 경우는 변호사로서 여성의 성폭력 문제, 안전할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계신 분이고요, 최하란 대표님의 경우는 ‘셀프 디펜스’라는 개념으로 우리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과 전략에 관해 알려주고 계신 분이에요. 안지혜 대표님은 여성들의 선택지를 넓혀서 월경이 우리의 일상과 괴리되지 않도록 하는 월경용품 셀렉트숍 ‘이지앤모어’를 운영하고 계세요. 워킹맘으로서 돌봄노동의 문제와 마주하셨던 김희정 대표님은 아이돌봄선생님 매칭플랫폼 ‘째깍악어’를 만드신 분이고요. 연현주 대표님은 ‘청소연구소’를 통해 가사노동의 가치를 드러내고 계세요. 가사노동이라는 것이 가치를 가지고 있는 영역인데 가치가 계산되지 않고 있는 영역이잖아요.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모인 동료들이 출판을 통해 무브먼트를 이어가고 있는 출판사 ‘봄알람’의 이민경 공동대표님도 만났어요. 밀레니얼에게 필요한 질문을 던지며 우리 사회에 필요한 상식을 다시 만들어가고 있는 ‘닷페이스’의 조소담 대표님과도 인터뷰를 했고요. 여성이 이끄는 스타트업은 투자를 받기 어려운 상황에 있는데, 투자유치 누적금액 100억 원을 달성하신, 모든 아이들을 위한 교육애플리케이션 스타트업 ‘에누마’의 이수인 대표님도 인터뷰했어요. 이전에 이미 알던 분도 있고, 이번 인터뷰를 통해 처음 만난 분도 계신데 인터뷰집의 취지를 말씀드리니 모든 분들이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셨어요.
인터뷰를 하던 기간이 제가 창업을 준비하는 기간과 겹쳐서 여덟 분의 이야기가 모두 제게 많은 도움과 인사이트를 주었어요. 요즘에 자주 떠올리는 이야기는 이민경 대표님이 말씀하신 ‘작은 성공을 제대로 축하해야 앞으로 갈 수 있다’는 말이에요. 병아리 창업가로서 겁도 나고 고민도 많아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생각에 빠질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 제가 이룬 작은 성공들, 오늘 이룬 하루치의 목표들을 체크하고 스스로 칭찬하면서 발을 떼요. 그럼 좀 수월해지더라고요.
이 책이 여성의 리더십 혹은 여성 사업가를 다룬 기존의 다른 책들과 차별되는 지점이 있다면 어떤 점일까요?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창업을 권하는 책이 아니라는 점이 차별되는 지점일 거예요. 또 다른 점은 ‘회사를 어떻게 만들고 운영해나가는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묻고 답을 들었다는 점이라고 봐요. 역경을 이겨낸 감동적인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내 방식대로 일의 맥락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힌트가 되는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들었어요. 면접을 볼 때 어떤 질문을 하는지, 같이 일할 동료를 어떻게 구하는지, 시작의 순간은 어느 지점이었는지 같은 내용들이요. 조직 안에 있든 밖에 있든 일의 주도성을 내게로 가져오려는 여성들이 그 시작점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자기 일 이야기를 해나가는 주인공들처럼 우리도 우리만의 일 이야기를 써내려갈 수 있다는 것도 전달하고 싶었고요.
여덟 분의 인터뷰이들은 활동하시는 영역과 인생 이력이 저마다 다채로운데요. 이분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성, 일하는 여성으로서 공통의 DNA가 있었다면 어떤 것이었나요?
일단 해보는 사람들이라는 점이 공통적으로 드러나고요, 스스로에게 필요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라는 인상도 받았습니다. 이은의 변호사님이 회사를 그만두고 로스쿨을 가셨는데요, 삼년이나 공부를 해야 하는데 그 시간이 막막하진 않았냐고 질문했거든요. 그랬더니 ‘내가 4년을 회사와 싸웠는데 3년 공부를 못하겠냐?’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드셨다고 했어요. 안지혜 대표님 같은 경우에는 제품을 수입하고 사업모델을 다시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절망하는 대신에 ‘우리가 가진 질문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으셨대요. 이게 인상적이었어요. 어떤 상황이 닥치면 ‘그렇다’, ‘아니다’ 하고 이렇게 결론을 주로 내잖아요. 그런 순간에 스스로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거죠.
또 하나, 포기하며 이뤄내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기 위해 이뤄내는 사람들이기도 했어요. 그동안의 성공 이야기들은 ‘이런 것들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른 것을 모두 포기해야 합니다!’ 가 주요한 내용이잖아요. 그렇게 해야만 이뤄낼 수 있다고 생각해서 우리가 포기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그런데 제가 만난 인터뷰이들은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존재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똑똑하고 제대로 된 방식으로 뭔가를 이뤄가고 있는 사람들이었어요. 이수인 대표님이 에누마의 직원들은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일하고,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최고로 해낸다’고 하셨거든요. 포기하지 않기 위해 이뤄내야 할 것들이 있는 거죠. 그래서 더 제대로 해야 하는 것들이 있고요. 그런 동력이 작용하는 인터뷰이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에서도 짧게 소개해주셨지만 작가님께서는 2030 여성 기획자들을 위한 진로탐색학교 ‘외롭지 않은 기획자학교’, ‘와일드 블랭크 프로젝트’ 등 ‘여성’과 ‘일’을 주제로 한 흥미로운 프로젝트들을 많이 진행해오셨어요. 물론 이 책도 그 연장선상 위에 있고요. 현재는 일하는 여성들을 위한 커뮤니티랩 ‘선샤인콜렉티브’를 창업하시고 운영 중이시고요. ‘여성’과 ‘일’, 혹은 ‘여성의 일’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되신 계기, 지속적으로 관심을 이어가시는 까닭이 궁금합니다.
일단 제게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저는 호기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사람인데, 어느 순간 ‘내가 계속 일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거든요. 제대로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샘플이 많지 않다보니 제 가능성을 계속 축소해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을 때까지 하려면 제 친구들 역시 그게 가능해야하고요. 혼자서 외롭게 유리천장을 깨도 기울어진 운동장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같이 기울기를 낮출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봤어요. 낮추기 전에 할 일은 일단 모여서 우리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여성들이 모이는 것, 모여서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커뮤니티에 관심이 많아요. 그리고 저뿐만 아니라 이런 필요를 가진 여성들이 앞으로 더 많아질 거란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들을 어떻게 잘 모아서 같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가 요즘 하고 있는 고민 중 하나입니다.
마지막으로 일하는 선배 여성으로서 뒤에 올 후배 여성들에게 꼭 건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어떤 말씀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저를 잘 부탁드린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요? (웃음) 세상은 빨리 변할 테고, 저를 따라온다고 생각하는 후배 여성들이 그 변화를 주도하는 날이 곧 올 거라고 봐요. 그리고 그때는 제가 그들을 잘 따라가는 것만이 변화에 역행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때가 되었을 때 저와 함께 일해 달라는 당부를 드리고 싶어요. 잘 할게요. (웃음) 당부를 하기보다 제 할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그건 지금, 여기서 제가 제 친구들, 동료들과 할 일을 제대로 해내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제가 만든 일터로 열심히 출근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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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내가 만든 일터로 출근합니다홍진아 저 | 북하우스
여성 동료들을 만나 일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고민하고 더 대담한 시도를 할 수는 없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세상의 편견과 자기 안의 두려움을 뚫고 나만의 일터를 스스로 만든 여성들의 이야기를 한데 모은 인터뷰집의 기획으로 연결됐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