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로서 느낀 것은 아무리 좋은 책도 독자가 찾지 않으면 허탈하다. 편집자로서 시대적 사명을 다했다고? 그러나 이 자본의 시대에 자부심만 먹으며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진정으로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그 책이 가능한 한 많은 독자들의 손에 닿을 수 있도록 무슨 노력이라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불멸의 서 77』 은 영국의 그 유명한 DK사의 『Books that Changed History』 를 번역한 책이다. DK가 출간한 책들의 비주얼은 출판계에서 일하는 사람, 나아가 책 좀 읽는 독자라면 다 알 것이다. 그 명성에 준하는 판매가 이루어질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서 우리도 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 당연히 이 책이 속한 시리즈의 국내 출간, 판매 현황을 확인하였다. 역시 멋진 책이기에 많은 책이 국내에서 번역, 출간되었지만 판매는 부진한 듯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내부에서 회의를 거듭한 결과, 아무리 봐도 포기할 수 없을 만큼 탁월한 책이었다. 책에 관한 책! 게다가 일반인, 아니 출판사 편집자조차 한 번도 못 본 놀라운 책들의 비주얼이라니! 책과 담쌓고 사는 특이한 분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책을 보고는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나 역시 ‘높은 제작비’와 ‘한글과 어울리지 않는 본문 편집 디자인’, ‘전작들의 판매 부진’이 발목을 계속 잡았다.
그래도 출간 결정! 출판인으로서 그 놀라운 책들을 국내에 소개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덧붙여, 독자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하자고) 결론을 내렸다.
이제 작업은 힘차게 나아간다. 번역-제작비 절감을 위한 DK 본사의 설득-그리고 탁월한 볼품을 제공하는 원서의 체제를 살리는 디자인. 다행히 모든 일이 원활하게 진행되는 듯 했으나, 마지막 디자인 작업에서 제동이 걸렸다.
원서의 본문 서체는 가는 ‘고딕 계통’의 서체였으니 우리나라 책의 본문에는 절대 쓰지 못할 형태였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 시리즈의 전작 번역물들 역시 본문에 명조 계열 서체를 사용했다. 그러나 명조 계열 서체를 사용해 디자인 시안을 확인해 본 결과 텍스트와 사진 자료들이 일체화 되지 않는 모습이 선명했다. 가독성도 중요하다지만, 이렇게 그림과 글씨가 따로 놀아서야 독자에게 수용될 수 있을까?
결국 디자이너와의 오랜 토론을 거쳐 원서처럼 그림과 글씨가 일체화된 본문 디자인을 추구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본문 서체를 기존의 시각에서 과감히 탈피할 필요가 있으리라.
찾자, 찾아! 그런 서체를 찾기 시작해, 드디어 ‘산돌네오고딕 1번’이라는, 그 어떤 책에서도 본문에 사용한 적 없을 것 같은 서체를 찾았다. 그 서체로 본문 디자인을 해 보니, 마치 새하얀 케이크에 박힌 빨간 딸기처럼 참으로 잘 어울렸다.
시대가 변하면 디자인 개념도 변해야 한다. 시대가 변하면 책의 물성(物性)도 변해야 한다. 책을 본 독자들 모두 일단 비주얼에 눈이 휘둥그레지고, 살까말까 고민하려 할 때 28,000원이라는 가격에 또 한 번 놀라는 『불멸의 서 77』 은 그렇게 탄생했다. 오직 독자 곁에 머물고 싶다는 의지를 원동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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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서 77마이클 콜린스, 알렉산드라 블랙, 토머스 커산즈, 존 판던, 필립 파커 공저 외 2명 | 도서출판그림씨
화려한 이미지와 ‘세부내용’은 책의 특징을 재미있게 보여주며, 이에 따른 자세한 내용은 그 책과 책을 제작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해 준다.
김연희(도서출판 그림씨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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