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쉐프샤우엔
원래 이름은 장영은. 하지만 별명인 꼬맹이여행자로 불리기도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부터 금융감독원에서 최초의 고졸 정규직원 5명 중 하나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5년 동안 근무하면서 어린 나이에 성공했다고 부러워하는 주위의 시선과는 달리 행복하지가 않았고, 결국 퇴사를 결심한다. 이왕 백수가 될 거라면 더 넓은 세상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자 세계일주를 떠나 428일간 6대륙 44개국을 여행하고 돌아온다.
그녀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그 특별함은 단지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금융공기업을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떠났다는, 요즘 유행하는 남들과 다른 이력에 있는 것이 아니다. 주변에 어떤 사람이 있는가가 그 사람의 내면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듯, 여행지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대화를 했는가가 그 여행자의 내면을 가장 잘 표현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꼬맹이 여행자가 만난 타자들, 바라나시에서 만난 선재, 읊을 줄 아는 시가 뭐냐고 묻는 아이들, 그리고 카르마를 믿게 해준 먼 곳 사람들의 이야기는 지쳐있던 우리 일상에 활력과 빛을 가져다 준다. 풍경의 내면을 따뜻하게 물들일 줄 아는 꼬맹이여행자의 당돌하며 깊이 있는 여정과 이야기를, 태원준 작가와 이병일 시인의 추천과 더불어 따라가 보자.
아프리카 잔지바르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이 아닌 취업을 선택했어요. 그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중학교 때 특성화고등학교 진학을 선택했어요. 특별 전형을 활용하면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을거라 판단했거든요. 인생에는 수능, 대학, 취업, 결혼처럼 매 순간 넘어서야 할 단계가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죠. 착실하게 수능 공부를 해오던 중, 제가 고3이 되던 해에 고졸취업 문이 열리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대학 진학 외에 다른 길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어차피 대학에 가더라도 취업을 해야 한다면 취업부터 하는 것이 더 빠른 성공을 이루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전국에서 딱 5명만 뽑는다는 금융공기업 채용 공고가 나왔을 때 지원하게 되었고, 운이 좋게도 합격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직장생활이 순탄하지 않았던 걸로 보여요.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요?
사실 직장생활은 누구나 힘든 거잖아요.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언행을 항상 조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저는 고졸로 시작해서 그런지 꼬리표가 계속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녔어요. 학벌주의가 만연한 사회이기도 하고, 직장 동료들의 학벌은 다 화려했으니까요. 다른 사람과 똑같은 실수를 해도 ‘역시 고졸이라서 그래’ 이런 차가운 시선을 받았어요. 그리고 또래 친구들은 자유롭게 그들만의 청춘을 즐기는데, 저는 상사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소주 한 잔이라도 더 마시려고 애를 쓰는 게 처량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오죽하면 매니큐어를 바르고 회사에 갔다고 혼이 났을 정도니까요. 그 날 매니큐어를 지우면서 한참을 울었어요. 제 20대 청춘을 지우는 기분이었거든요.
에콰도르에서만난할아버지
그래도 퇴사라는 결심을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온다는 게. 부모님 반응은 어땠나요?
맞아요, 어린 나이였지만 퇴사가 쉽지는 않았어요. 왜냐하면 저는 돈이 필요한 사람이었거든요. 어머니랑만 살면서 집안 사정도 넉넉하지 않았고, 스무살 이후로는 경제적으로 독립한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단지 고졸이니까, 좋은 회사라는 이유만으로 그 곳에 있다가는 평생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무모하지만 인생을 바꾸어보고자 퇴사를 결심했던 거예요. 어머니 반응요? 딸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응원해주는 이야기는 드라마나 소설 속에서만 나오는 것이었어요. 당연히 집안이 발칵 뒤집혔죠. 하지만 지금까지는 말 잘 듣는 효녀로 살아왔으니, 당분간은 불행한 효녀보다 행복한 불효녀로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언젠가 제 결정이 참 잘한 것이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그 날까지는요.
꼬맹이여행자라는 필명이 독특해요. 왜 그런 필명을 가지게 되셨나요?
꼬맹이여행자라는 필명을 들으시면 키가 작아서 일거라고 많이들 생각하세요. 그런데 제 키는 166이라 꽤 큰 키에요. ‘꼬맹이여행자’라는 필명은 스무 살 때 떠난 필리핀 배낭여행 이후로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그 곳에서 현지인 친구들을 만났는데 저보고 한국에서 온 꼬맹이여행자라고 하더라고요(그 때는 어렸으니까) 그게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한국에서 생활할 때 회사 안에서는 고졸이라 따가운 눈총을 받았고, 회사 밖에서는 좋은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라며 동경의 눈길을 받았거든요. 겉으로 보이는 것에 의해 제 가치가 판단되었죠.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봐주는 길 위에서 만난 친구들이 정말 고맙더라고요. 그 때부터 시간이 더 흐르고 진짜 어른이 되어도 내 모습 그대로 살아가고 싶었던 스무살 꼬맹이를 잊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블로그 필명을 꼬맹이여행자로 사용하기 시작했던 거예요.
칠레 피츠로이
428일간 6대륙 44개국 여행을 했어요. 긴 여행을 통해 느낀 점이 있다면요?
어린 나이에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내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닐까 하고 한 없이 작아지고 자존감도 많이 낮아졌어요. 그런데 여행을 하면서 저도 있는 그대로 사랑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배웠어요. 그렇게 조금씩 상처를 치유하며 마음이 단단해져 갔죠. 428일간의 인생 수업을 어떻게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겠냐 만은 나 자신을 믿으면 못 해낼 일이 없고, 내가 그렇게 찾고 싶던 행복이 어디 있는지 알게 되고, 삶 자체가 참 소중하다는 것들을 배웠던 것 같아요.
지금은 다시 대학생이 되었잖아요. 미래가 불안하다거나 퇴사한 게 후회가 되지는 않으세요?
나이가 많은 늦깎이 대학생이기도 하고, 취업난이 심각하다는 뉴스를 보면 걱정이 되지 않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퇴사한 것을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고, 미칠 듯이 불안하지도 않아요. 아직 무언가 되지 않았다는 말은, 한편으로는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는 말이잖아요. 어릴 때부터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똑같은 하루를 살아왔기 때문에 스스로 노력하는 만큼 미래를 바꾸어나갈 수 있는 지금이 더 행복해요. 안정적인 직장인도,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도 다가올 미래를 모르는 건 마찬가지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더더욱 내일의 행복을 위해 희생하는 삶이 아니라, 오늘 지금 당장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호주 브리즈번.내몸만한 배낭을가지고 다님
사실 퇴사 후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들은 많아요. 이 『삶의 쉼표가 필요할 때』 는 어떤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으세요?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많이 지치고 여유가 없는 분들께는 따스한 위로가 되고, 새롭게 무언가 시작하고 싶으신 분들께는 용기를 주는 그런 책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책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퇴사하고 여행을 떠나라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꼭 여행일 필요도 없어요. 단지 너무 힘이 들 때는, 지금이 삶의 쉼표가 필요한 순간이라는 확신이 들 때는 잠깐 쉬고 와도 크게 변하는 것은 없다는 거예요. 오히려 다시 무언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한 마음가짐을 가지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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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쉼표가 필요할 때꼬맹이여행자 저 | 행복우물
주변에 어떤 사람이 있는가가 그 사람의 내면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듯, 여행지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대화를 했는가가 그 여행자의 내면을 가장 잘 표현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