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언제였을까요? 검은 털로 뒤덮인 통통한 몸, 발그레 달아오른 두 볼, 짧은 팔다리를 버둥대며 항상 놀란 얼굴을 하고 있는 ‘구마몬’과 처음 만났을 때 말입니다. 아마도 격무(?)에 시달린 몸과 마음을 푹 쉬게 하고자, 가장 저렴한 특가 항공권의 행운을 움켜쥐고, 실은 별다른 기대 없이 규슈로 떠났던 때의 일 같습니다. 아, 온천이다! 솔직히 뜨거운 물에 들어가 있는 걸 달리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그 온천 여관의 분위기에 매료되어 한달음에 달려, 아니 날아갔더랬죠.
당시 규슈에 가 보니, 온통 ‘검은 곰’투성이였습니다. 퉁퉁한 몸매, 어딘가 친근해 보이는 곰 한 마리가 공항부터 길거리 곳곳, 쇼핑몰, 심지어 편의점 매대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니, 당신은 대체…… 누구?
좀 더 주의 깊게 이곳저곳 살펴보니, 곧장 그 곰의 이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바로 구마몬! 우리에겐 ‘쿠마몬’이라는 이름이 더 친숙합니다만,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자면……. 이 얘기는 이만 줄이겠습니다. 여하튼 거의 세뇌당하다시피 온통 구마몬에 둘러싸여 며칠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이 들더군요. 여관방에서 텔레비전을 켜도, 구마몬이 등장할 정도였으니! 결국 귀국하고 정신을 차려 보니, 제 손에는 이미 구마몬 굿즈가 서너 개 들려 있더군요. 아이폰이라 핸드폰 고리조차 달 수 없는데, 이것을 왜 구입한 거지? 정말 구마몬에 흠뻑 빠지고 말았답니다.
그러다 또 몇 년 후 상하이에 가 보니, 그 (묘하게 중독적인) ‘검은 곰’이 또 위세 좋게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다. 양질의 생필품을 공급하는 모 업체와 협업하여 저렴한 가격으로 인형과 실내화와 그 밖에 이루 다 열거할 수 없는 온갖 종류의 굿즈를 만들어 팔고 있더군요. 예, 저는 또 무언가를 잔뜩 사 왔습니다. 상하이에 가서 구마몬을 품고 오다니!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이번에는 서울 한복판에서 다시 이 ‘검은 곰’과 조우하게 되었지요. 당신, 어느새 서울까지? 일본 규슈의 구마모토현 마스코트가 아니었나요? 이제는 단순한 호감을 넘어 일종의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구마몬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아니, 일개 지방 도시 마스코트가 이렇게 세계 전역을 활보한 역사가 있었던가? 그것도 이토록 오래오래? 현대인답게 저는 바로 ‘구글링’을 시작하였고(이제야?), 구마몬의 놀라운 성과에 대해 금세 알아차리게 되었답니다. 헬로키티, 도라에몽도 아닌 당신이…… 한 해 동안 1조 4000억 원이나 벌어들였다고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구마몬은 ‘태생적으로’ 굉장히 특이한 캐릭터입니다. 애니메이션 주인공도 아니고, 상업적 목적을 가지고 기업에서 밀어준 아이돌도 아니었지요. 그야말로 구마모토 지방 공무원(도쿄도, 오사카도 아닙니다!), 그리고 지역 주민들이 일치단결하여 만들어 낸 캐릭터였지요. 그런데 어찌하여 구마모토 홍보의 범주를 넘어서 이렇듯 눈부신 성공을 구가할 수 있었던 걸까요? 성공 자체는 손쉬워 보이지만, 거기에 이르는 과정만큼은 결코 녹록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편집자로서(?) 이런저런 책을 뒤지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구마몬의 비밀』 을 우리나라 독자께 소개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구마몬의 비밀』 의 재미는, 분명 ‘성공담’이지만 천편일률적인 레퍼토리를 따르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구마몬이 지닌 특이한 출생의 비밀(?)이 한몫한 덕분이겠죠? 처음에는 구마몬의 천문학적 매출에 이끌려 책을 들여다보았지만, 다시금 곱씹어 보니 구마모토 공무원들의 진심과 구마몬의 가슴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지역 마케팅 예산은 한정적이고, 구마모토 현청에는 한평생 공무원으로 봉직해 온 사람들뿐이라 이런 방면에선 전부 문외한이고…… 결국 승부수는 무엇이었을까요?) 『구마몬의 비밀』 에서 ‘비밀’이란 바로 이것이 아닐까요?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 싶습니다만, 역시 독자분들을 위해 스포일러는 자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읽어 주실 거구마? 구마구마…… 헉, 저도 모르게 구마몬어가 튀어나오고 말았네요. 이제 여러분이 구마몬에 중독되실 차례입니다!
-
구마몬의 비밀구마모토현 팀 구마몬 저/정문주 역 | 민음사
질비록 ‘곰(熊)’이 사는 고장은 아니지만 ‘구마모토(熊本)’라는 이름에 착안하여, 언제 어디서나 얼굴을 내밀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지역 마스코트를 구체화해 낸 것이다.
유상훈 (편집자)
책을 읽고, 책을 만들고, 좋은 책을 찾아다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