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 제 옆에 캘리님과, 삼천포책방의 그냥님 나와계십니다! ‘삼천포책방 ‘그냥’님이 등장했다!’ 편이 있었잖아요. 그땐 전화통화였는데 이번에는 정말 나타나셨습니다.
그냥 :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캘리님이 항상 강조하는 게 우정과 연대 아니겠습니까. 제가 오늘 나온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프랑소와엄님의 감기 걸린 목소리를 듣고 안 나올 수가 없었어요.
불현듯 : 오늘 주제는 ‘연말에 선물하면 좋을 책’입니다.
불현듯이 추천하는 책
『우리 너무 절박해지지 말아요』
이훤 저 | 시인동네
저는 이 시집이 너무 좋고, 어떻게든 알리고 싶어서 일단 10권을 샀어요. 만나는 사람마다 한 권씩 주고 있습니다. 2018년은 제게도 그렇고, 많은 이들에게 절박한 한 해였을 것 같아요. 제 경우 친한 사람들이 많이 아프고, 떠나가고 그랬거든요. 늘 애가 타는 마음이었던 것 같은데요. 그래선지 내년은 조금 절박하지 않은 상태로, 편안한 상태로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 시집 제목이 너무 좋더라고요. 우선은 이 제목 때문에 이 책을 선물 받는 사람이든 선물 하는 사람이든 모두 절박함이 좀 덜어지면, 하는 마음에서 골라왔습니다.
시인은 미국에서 살고 있어요. 그런데 얼마나 외롭겠어요. 우리가 허수경 시인 이야기를 하면서 타국에서 오랜 시간 지낸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얼마나 그리움이 복받치는 일인지 얘기했었잖아요. 이훤 시인도 마찬가지인 거예요. 이 시집이 두 번째 시집이거든요. 첫 시집은 ‘연시(戀詩)’가 많았는데요. 이번 시집에는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많이 담았어요. ‘여기’에서의 삶, 그리고 ‘거기’에서의 삶이 크게 다르진 않지만 외부에 있기 때문에 늘 과거에 지냈던 곳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잖아요. 그런 처지에 관한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게다가 사진도 잘 찍어서요. 「구름을 짓는 사람」이라는 시처럼 사진이 시인 것도 있어요. 시인이 이런 실험을 하는구나, 볼 수 있어서 더 좋았어요.
연말 선물로 웬 시집이냐고 하실 수 있을 텐데요. 저는 연말 선물로 두꺼운 책 선물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웃음) 두꺼운 책을 연말에 받으면 왠지 한 해가 가기 전에 다 읽어야 할 것고, 숙제 같을 것 같아요. 그래서 얇은 책 중에 골랐고요. 또 한 해의 마지막이나 처음에 시집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요. 시집으로 시작하는 한 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이 추천하는 책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
이진순 저 | 문학동네
제목을 무심하게 읽으실지도 모르겠는데요. 프롤로그를 읽어보면 정말 반합니다. 프롤로그 제목이 ‘누구에게나 반짝이는 순간이 있다’고요. 이런 구절이 있어요. “누구의 인생도 완벽하게 아름답지만은 않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한 방은 있다. 삶의 어느 길목에선가 자신의 가장 선량하고 아름다운 열망을 끄집어내 한순간 반짝 빛을 더하는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망하지 않고 굴러간다. 세상을 밝히는 건, 위대한 영웅들이 높이 치켜든 불멸의 횃불이 아니라 크리스마스트리의 점멸등처럼 잠깐씩 켜지고 꺼지기를 반복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짧고 단속적인 반짝임이라고 난 믿는다. 좌절과 상처와 굴욕이 상존하는 일상 속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만의 광채를 발화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순간을 담고 싶었다.” 이 글을 읽고 다시 제목을 보면, 책을 안 읽을 수 없겠죠.
이 책은 <한겨레> 토요판에 ‘이진순의 열림’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된 인터뷰 중 12편을 골라 묶은 책인데요. 정말 인터뷰 하나 하나가 다 좋아서 읽다가 책을 덮고 울기도 많이 했어요. 앞서 말한 평범한 사람들의 반짝이는 순간 관련해 이 이야기를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이국종 의사 인터뷰에서 왜 의사가 되기로 했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아버지가 국가 유공자라서 노란색 의료카드가 있었어요. 그걸 갖고 병원에 가면 왜 여기까지 왔느냐고 노골적으로 눈치를 줬죠. 그때 동네에 ‘김학산 외과’라고 있었는데 그 원장님은 절 냉대하지 않으셨어요. (중략)어린 마음에 의사가 되면 돈도 벌고 좋은 일도 할 수 있겠구나 싶었죠.”라고 답하셨어요. 김학산 선생님의 반짝이는 순간이 세상을 조금 더 밝힌 거예요. 바로 이런 순간이 평범한 사람들의 반짝이는 순간들 같아요.
제게 왜 이 책을 선물해야 하느냐고 물어보신다면 이 한 마디를 들려드리고 싶어요. ‘뽀미’라는 이름으로 성소수자 부모 모임에서 활동하시는 분의 말인데요. 여전히 고민하는 성소수자들에게 엄마로서 조언을 부탁했더니 한참 생각하신 끝에 “행복해야 해. 인내심 있게.”라고 답하셨어요. 이게 올 연말을 마무리 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모든 분들께 제가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캘리가 추천하는 책
『아름다움의 선』
앨런 홀링허스트 저/전승희 역 | 창비
두툼하죠? 600쪽이 넘는 분량의 장편소설입니다. 실제로 선물을 받은 책이에요. 그런데 선물 받고 무척 기뻤어요. 한 편의 소설, 그것도 처음 만나는 작가의 소설은 언제나 설레잖아요. 앨런 홀링허스트라는 작가를 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됐는데요. 우선 작가 소개부터 할게요. 우리에게는 조금 낯선 이름이지만 영미권에서는 이언 매큐언, 줄리언 반스, 가즈오 이시구로 등 대가들과 함께 거론되는 작가이고요. 2004년에는 『아름다움의 선』 으로 맨부커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맨부커, 이제는 우리에게 익숙해진 이름이죠.(웃음)
그런데 수상 당시 풍경이 흥미롭습니다. 앨런 홀링허스트는 커밍아웃을 한 게이예요. 그가 발표한 소설들은 모두 게이가 주인공이고요. 물론 이 작품도 그렇습니다. 여기에는 남성 동성애자들의 사랑, 섹스가 자유롭게 펼쳐지는데요. 이에 대해 작가는 맨부커상 수상 당시에 한 인터뷰에서 "소설이 당연한 듯 이성애자의 관점에서 쓰이는 것처럼 이런저런 변명을 덧붙이지 않고 게이의 관점에서 게이의 삶을 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해요. 당연한 말이고요. 달리 덧붙일 말 없는 말이죠. 하지만 게이소설이 맨부커상 수상을 했다는 사실에 언론은 크게 들썩였습니다. 상이 제정된 지 36년 만에 처음 선정된 게이소설이라는 점을 들어 어떤 언론은 '게이 섹스가 부커상을 타다'라는 제목을 내기도 했으니까요. 참 많은 생각이 들게 하죠.
예스24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작가가 선정한 내 맘대로 올해의 책’ 페이지를 봤어요. 거기 김현 시인이 김봉곤 작가의 『여름, 스피드』 를 꼽으면서 이렇게 적었더라고요. "이 책을 올해의 소설로 꼽는 데 주저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이유는, 이 책이 한국문학사에서 거의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오로지 성애를 갈망하는 게이(들)의 서사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다른 게 더 필요한가? 한국문학이 오래 기다려왔지만, 어쩌면 가장 빨리 잊고 말 이 소설집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물론 『아름다움의 선』 은 경지를 뛰어넘은, 평단의 인정도 받은 작품이지만 저는 김현 시인의 이 말을 들으면서 이 소설이 떠올랐고, 굉장히 반가웠어요. 3부로 이루어져 있고요. 1장부터 18장까지 나뉘어 있는데요. 각 장이 훌륭한 한 편의 단편소설로 읽히고요. 국내에는 이 작가의 작품이 많이 소개되어 있지 않은데요. 저는 앞으로 계속 따라 읽게 될 것 같아요.
*오디오클립 바로듣기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391/clips/112
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