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혜 <씨네 21> 기자는 이십여 년 동안 글을 썼다. 소속된 매체 바깥에서도 『책읽기 좋은 날』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 『아무튼, 스릴러』 등의 책을 내고, 책을 낸 것보다 더 많은 글을 각종 매체에 실었다.
각종 북토크와 라디오, 팟캐스트에 출연하는 걸 볼 때마다 언제 글을 쓰고 언제 책을 읽는지 궁금했었다. 늘 명쾌한 글쓰기를 보여준 이다혜 기자에게도 글을 쓰지 못해 울었던 때가, 남들이 좋다고 말한 방법을 다 써봤지만 여전히 글이 써지지 않을 때가 있었다.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는 ‘못 쓰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이 된 사람의 경험담이자, 빠르게 변하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 말하는 고백록이다.
누구나 자기 먹을 걸 가지고 태어났듯이, 이제는 누구나 자기 미디어를 가지고 글쓰기를 시작한다. 타인에게 읽히고 싶은 욕망도 어느 때보다 많다. 그러나 글이 늘어난 만큼 독자에게 가닿기 위해서는 글에 담긴 내용을 고민해 봐야 한다. 글쓰기 책은 많지만, 이다혜 기자의 책이 그중에서 빛나는 이유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어요
찾아보니 생각보다 거의 인터뷰하신 적이 없더라고요.
웬만하면 인터뷰를 잘 하지 않아요. 할 이야기는 다 글에 쓰기도 했고, 사진 찍히는 걸 편하게 생각하지도 않아서요. 하지만 예스24는 거절할 수 없다고 생각했죠. (웃음) 요즘은 책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자가 홍보를 열심히 하고 마케팅을 하는 것도 중요하잖아요. 할 게 많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는 제목 그대로 자기를 표현하는 글을 처음 쓰려는 사람을 위한 작법서예요.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면서 만난 분들을 거칠게 나누면 두 가지인 것 같아요. 아예 남이 보는 글을 처음 쓰는 분들이 아무래도 많고, 이미 글을 쓰고 있지만 조금 더 전문적으로 글을 써보고 싶은 분이 있어요. 아무래도 후자는 글을 쓰던 사람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기초가 있다고 할 때, 전자는 학교 다닐 때 리포트 쓴 거 말고는 글을 써본 적이 없는 분이죠.
그런 분들을 위한 글쓰기는, 이제까지 글을 쭉 써 왔던 사람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처음 쓰는 분들은 남이 쓴 걸 보면 자기도 비슷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뭔가 쓰려고 하면 똑같은 표현 안에서 맴돌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글을 업으로 쓰는 분들도 남이 시켜서 정해진 규격에 맞춘 글이 아닌 자신이 쓰고 싶은 걸 쓰겠다고 하면 만만치 않은 거예요. 그런 부분에서 ‘처음 쓰는 사람’에는 포괄적인 의미가 담긴 것 같아요.
10년 전 자신에게 하는 말을 적으면서 ‘그만 울라’고 하셨어요. 10년 전 얼마나 글 빚이 많으셨길래 이런 표현이 나왔을까요?
그 부분은 사죄문 같은 것일 텐데요. (웃음) 일을 시작하고 한참 이것저것 글을 썼어요. 라이선스 잡지가 엄청 많이 나올 때여서 잡지 번역도 거의 다 한 번씩은 한 것 같아요. 일이 어느 순간 확 쌓이게 된 거죠. 사실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일을 쌓으면 안 되거든요. 그때는 요령이 없기도 했고 원래 처음 냈던 책 『책 읽기 좋은 날』 전에도 냈어야 할 책이 몇 권 있었는데, 욕심도 많아서 일을 쌓아놓은 다음 전혀 수습을 못 하는 상황이었죠. 제가 힘든 것보다는 다른 사람이 힘든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계약 파기할 건 파기하고 계약금 돌려주면서 한 번 크게 정리한 적이 있어요.
여러 가지로 글쓰기 방법을 설명해 주셨어요. 글쓰기 루틴을 만드는 법으로 시간과 장소 정하기를 말씀해 주셨는데, 그리고는 ‘나도 못 하고 있지만’ 하고 사족을 붙이시더라고요. (웃음) ‘내가 해봤더니 좋은 방법이다’가 아니라 ‘나도 안 되긴 하는 데 이런 게 좋다더라’ 하는 청유형 책이 아닌가 했어요.
안 될 때는 아무것도 안 되더라고요. 10년 전 글쓰기가 망한 이유도 단행본 작업 자체가 긴 호흡으로 써야 하는 일이고, 긴 호흡의 일은 그만큼 스케줄을 짜야 하는데, 그때는 회사 일을 하면서 일정하게 시간을 내고 글을 쓰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어요. ‘이 음악을 틀었더니 영감이 떠오른다’ 하는 루틴이 된다면 제일 좋겠죠. 하지만 그건 만들기 쉽지 않고, 최소한 이런 때는 내가 글쓰기가 편한 것 같다고 나를 설득하는 과정 쪽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글 쓰는 방법, 마감을 지키는 방법보다는 어떻게 내가 생각한 걸 잘 전달할까에 초점을 맞춘 글쓰기 책이 아닐까 싶었어요.
공감을 사는 글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나고 자라서 성장하고 경험한 게 아무리 특별한 일이라고 해도 막상 이야기해보면 비슷한 결이 있거든요. 그걸 어떻게 표현하고 어디까지 용기를 내서 솔직하게 이야기할 것인가에 문제가 있는 거죠.
최근 자기 생각을 전하려고 독립 출판을 내는 사람도 많아졌죠.
한 권에는 한 가지 생각이 들어가 있어요. 만약 쓰고 싶은 생각이 있더라도 한 권 분량이 안 되면 책으로는 낼 수 없어요. 이번 책도 글쓰기 책 많은데 뭐하러 한 권을 보태나 싶은 생각도 들었는데,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에 쓴 것이기도 했거든요. 내가 읽고 싶은 어떤 게 아직 없다면, 나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문장보다 생각
‘자기계발서는 원래 자기계발서 쓴 사람만 성공하는 장르’라는 이야기가 재미있었어요. 사실 글쓰기 책을 쓴 사람만이 책을 완성했고, 그 책을 읽은 사람은 나도 한 번 써볼까 충동을 느끼고는 쓰지 않죠. 아이러니인 것 같아요.
그렇죠. 그런데 제가 10년 전에는 못하던 걸 지금은 하고 있잖아요. 그동안 뭐가 달라졌나 생각해봤는데, 제일 중요한 건 쓰고 싶은 게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인스타그램의 감성 글을 쓰는 걸 보면서 저런 글은 나도 쓰겠다는 생각은 쉽게 하는데, 막상 쓰려고 하면 못 해요. 그런 글을 쓸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런 글을 쓰고 싶다는 건 다른 문제니까요. 사람들은 자신이 쓰고 싶은 걸 먼저 생각하지 않고 보통은 남이 만들어놓은 일종의 시안을 보는 것 같아요. 특히나 글쓰기에서는 이른바 명문을 쓰는 유명한 사람이 있잖아요. 그 글은 그 사람이 가진 지식과 경험, 성격, 가치관으로 쓰인 글인데 문장을 잘 익히면 그 사람처럼 잘 쓸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죠.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문장을 잘 쓰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하죠.
20년 전 글쓰기 책은 문장을 고치는 책이 많았어요. 그런 부분도 중요해요. 하지만 요즘 독자들은 문장의 완결성에 엄격하지 않아요. 오히려 개성 있는 글을 훨씬 좋아하죠. 제일 난감한 건, 완전히 다른 누구처럼 쓰는 거예요. 주제에 대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표현은 엄청나게 장중하고 언뜻 보면 그럴듯하죠. 사실상 자기가 가진 지식을 자랑하려고 문장을 오남용할 때가 너무 많아요. 다른 한 편으로는 자기 전에 생각난 걸 쓴 문장이라고 해도 그냥 그 느낌을 잘 전달하면 성공일 때가 있어요. 그게 요즘 달라진 가치관인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내가 뭘 쓰고 싶은지 집중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슬픈 일이죠. 완성도 있는 글보다는 공감하는 글을 훨씬 더 좋아하게 된 거거든요.
공감하는 글쓰기가 유행하면서 글의 질이 하락한다는 우려도 하시나요?
그런 우려도 있어요. 진짜 너무 좋은 책인데 왜 안 읽는지 보면 어렵다고 하는 말이 많아요. 그 어렵다는 수위가 점점 낮아져요. 분량이 긴 것도, 문장이 긴 것도, 내용이 복잡한 것도 다 어렵다고 해요. 그런데 당연히 그런 글을 읽는 습관이 들지 않으면 그런 글을 쓰기도 어렵거든요. 어떤 때는 도저히 안 읽히지만 내가 관심 있거나 궁금한 걸 읽어서 끝을 내는 경험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정말 글을 못 써서 어렵고 이해가 잘 안 되는 책도 있지만, 많은 경우 생각을 많이 하고 노력을 많이 한 글이기 때문에 읽는 쪽에서도 후룩 읽을 수 없거든요. 책 쓰는 사람 입장에서 몇 달, 몇 년씩 걸려서 쓰는 책은 받아들일 때도 그만큼의 소요 시간이 필요해요. 한 번에 읽혀서 바로 영감을 주지 못하는 책은 별로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져서 아쉽고 안타깝죠.
최근에 읽은 어려운 책은 뭐가 있나요?
어제는 도리스 레싱 단편집을 읽는데 내용은 짧지만 초반 설정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계속 앞의 몇 페이지를 다시 봤어요. 저도 이해를 못해서 읽고 또 읽는 책이 있어요.
글쓰기 수업에서 남의 글을 보는 것도 중요할 것 같아요. 처음 글 쓰는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 도움이 많이 되겠죠.
다른 사람의 눈으로 글을 보는 게 되게 중요해요. 과제 내라고 설득할 때면 남이 자기 글을 그렇게 꼼꼼하게 보는 경험 자체가 드무니 그런 경험 한다고 생각하고 글을 내라고 하죠. 누구나 잘 쓰는 방법과 특별한 부분이 있어요. 제일 좋은 건 이 사람이 잘 쓰는 부분을 키우는 거라고 생각하는 쪽이에요. 어떤 분들은 자기가 경험한 걸 잘 쓰는 분이 있고, 어떤 분들은 자기 이야기를 엄청 솔직하게 쓰시거든요. 유머가 뛰어난 분도 있고 묘사를 잘하는 분이 있어요. 잘하는 부분을 중심으로 쓰면 돼요.
글쓰기 수업의 좋은 점이 있다면 뭘까요?
주변에서 항상 글쓰기를 어떻게 가르치고 배우냐고 하는데, 글쓰기 수업에서는 보통 합평을 위해서 과제를 내라고 해요. 그게 마감이거든요. 마감이 없이 글을 써 온 사람들에게 마감 안에서 일 정 정도 형식에 맞는 글을 쓰게 만드는 일이 글쓰기 수업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엄청난 노하우를 배운다기보다, 억지로라도 글을 써야 나오는 게 있으니까요.
글을 쓰는 방법 중 제일은 마감이라고 이야기해주셨는데, 마감은 언제까지나 업으로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생기잖아요. 자기만족과 자아표현을 위한 글쓰기는 마감이 안 통할 텐데요.
요새 SNS나 유튜브를 운영하는 1인 크리에이터분들이 많은데, 그런 분은 다 자발적으로 마감을 만들더라고요. 이를테면 하루 몇 번 올리겠다고 정하고 그걸 지키는 거죠. 누구는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크리에이터로 성공한다고 하고, 누군가는 얼굴이 잘생기고 예쁘면 된다고 하지만 제가 봤을 때 꾸준하게 일정한 속도로 일정한 결과물을 쌓는 게 제일 중요해요. 기분 내킬 때 만드는 걸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시대가 변했어요
트위터에서 ‘‘글‘은’ 잘 쓰는 사람들을 위해 썼’’다고 하셨어요. 글’은’ 잘 쓰는 분들은, 누구실까요?
이건 정말 최근의 상황인 것 같아요. 제가 일을 시작하고 글 쓰는 걸 배우는 긴 시간 동안 어떤 표현이 여성 혐오적인가에 대해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어요. 최근 몇 년 동안 페미니즘 이야기가 오가면서 새삼 생각하게 된 거죠. 예전에는 문장이 좋으면 됐거든요. 예전에는 밤을 꼬박 새우는 마감 중에도 선배들이 들어온 원고를 보고 너무 좋다고 감탄할 때가 있었어요. 실제로 너무나 훌륭한 분들이 쓴 원고였는데, 그런 좋은 원고의 기준이 얼마나 섬세하게 표현하느냐 같은 부분인 거죠. 최근 들어서는 그게 다가 아니게 되었어요. 아무리 표현이 좋아도 여성혐오적인 표현이 들어가면 좋지 않다고 느끼는 거죠.
같은 글이라도 독자가 받아들이는 게 달라졌다는 뜻일까요?
나이가 많거나, 유명하거나, 자기 글에 책임을 지는 좋은 선생님들의 글은 예전에 심각한 오탈자가 아니고서는 쉼표 하나도 안 건드리는 문화가 분명히 있었거든요. 설령 이상한 이야기를 해도 글을 잘 쓰면 그 사람만의 논리와 세계관을 존중했다면, 요새는 그런 분위기는 아닌 거죠. 글이 좋으면 된다는 시간이 지나간 건 확실한 것 같아요. 저도 원고 쓸 때 가장 조심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어떤 부분이 차별적이라거나 혐오적이라는 지적을 받았을 때 저도 기분이 나쁠 수 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면 지적이 틀린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우디 앨런의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그의 소아성애 경향을 이야기할 것인가? 로만 폴란스키가 아동 성추행으로 문제가 되었는데 그의 영화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작품 안에서 완결성이 있으면 설령 이상한 이야기를 해도 존중해야 한다는 시간이 있었다면 지금은 그게 바뀌고 있고, 바뀌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요.
일하는 현장에서도 시대가 변한 걸 느끼시나요?
언젠가부터 저도 들어오는 원고에 대해 그런 지적을 할 때가 있어요. 예를 들면 인터뷰 원고에서 ‘여배우라 까다로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털털해요’, 이게 칭찬으로 쓰인 표현이었어요. 그 부분을 문제 삼은 건 문장이나 전개가 이상한 게 아니라 생각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거든요. 그건 통찰력 있는 문장이 아니라, 자기가 어떤 편견을 가졌는지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은 표현인 거죠. 그러나 그런 표현을 지적하면 자신은 딸을 키우는 아빠인데 성차별주의자일 리 없다는 식으로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가장 갈등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저도 조심하게 되는 부분이 있죠.
미문보다는 글의 구조를 신경 쓰고 무엇을 전달할지 초점을 맞추는 건 기자의 글쓰기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한 이력이 글쓰기에 대한 생각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 같아요.
그것도 그렇죠. 저는 편집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쪽인데, 글쓰기 수업에서도 원고 앞부분을 어느 정도 빼라고 항상 강조해요. 보통은 앞부분이 너무 장황해요. 어떤 영화에 대해 리뷰를 쓴다면, 많은 분이 갑자기 글의 시작을 ‘비 오는 금요일 오후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 검색을 해보니 요즘 유행하는 영화…’로 시작을 해요. 극장까지 간 이야기를 쓰는 게 한 단락이에요. 그게 한두 번이 아닌 거죠. 그래서 일단 극장까지 간 이야기는 쓰지 말라고 해요. 편집이 별 게 아니고 제삼자의 눈으로 자기 글을 보는 건데, 기자로 오래 일하면 익숙해지지만 처음에는 그런 판단이 힘드니까 일단 앞을 날리라고 하죠. 그럼 본론으로 바로 들어갈 때가 많으니까요.
첫 번째를 빼는 게 좋다면, 마지막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최후의 한 문장 같은 걸 써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요. 누구나 한 마디로 모든 걸 아우르면서 그럴듯하게 끝내고 싶죠. 하지만 이것도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마지막에 힘을 주면 고등학교 과제처럼 ‘가치관이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글쓰기에 대한 좋은 지침서를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라고 끝나 버리는 거예요. 그러실 필요 없어요.
첫 번째와 마지막을 여쭤봤으니, 글의 중간은 어떻게 쓰면 좋을까요?
맨 앞에는 줄거리, 두 번째 좋은 점, 세 번째 나쁜 점, 마지막 총평. 이것도 과제 글쓰기의 전형적인 방법이잖아요. 내용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순서를 바꿔보라는 거죠. 나쁜 점 먼저 쓰고 좋은 점 먼저 나올 수도 있고요. 글을 쓰고 한 글자 한 글자 고치기보다 덩어리를 옮기는 작업만 잘해도 훨씬 더 글이 살아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자기 글을 좋아해야 해요
글쓰기의 동력을 얻기 위해 자기 글쓰기를 좋아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어렸을 때부터 책과 친하고 글과 친한 게 체득된 사람은 글쓰기가 좋을 수 있는데, 체득이 안 된 사람은 자기 글을 좋아하는 게 먼 이야기처럼 느껴질 것 같아요.
저야 책 읽는 걸 좋아하지만, 읽는 걸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읽힐 수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에요. 설득할 수 있다면 무슨 문제겠어요. 이렇게만 하면 모든 아이들이 책 앞에 앉아있다, 그런 방법이 있으면 좋을 텐데요. 요즘에는 특히나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자기 글을 좋아해야 하는 이유도 그거예요. 자기 글을 좋아한다는 건, 자신이 느끼기에는 잘하고 있다는 뜻이거든요. 보통은 잘하는 걸 노력하는 게 훨씬 쉬워요. 사실 요즘에는 사람들이 남의 글을 열심히 안 읽기 때문에 최소한 자신이 자신의 글을 좋아하고 읽을 수 있어야 계속 쓰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쓰는 사람보다 독자가 많아지면 좋겠다는 말도 있었어요. 예술 분야에서는 늘 비슷한 말이 나오는 것 같아요. 음악을 하기보다 음반을 사라, 배우를 지망하지 말고 연극을 보라, 라고요.
사람들이 창작하는 사람들은 좋아서 하는 거니까 어느 정도의 굶주림과 절망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먹고 살자고 하는 거예요. 먹고 살아야 하고요. 영화가 되었든 음악이 되었든 무언가 만들었을 때 좋은 평가를 받고 싶고 나아가 그걸로 돈을 벌고 싶다는 마음은 항상 같이 있어요. 요새 회사로 신간을 많이 보내주시는데, 보내주시는 책 외에도 책을 많이 사요. 어쨌든 이 업계에서 일하고 돈을 버니까 최소한의 기여는 해야 한다는 거죠. 내 책을 파는 사람이면 남의 책도 사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누군가는 책을 사야 하고 누군가 사야 이 시장이 돌아간다고 생각하는데, 뭘 써보고 싶은 분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남이 쓴 글을 읽기도 하고 사기도 하면서 소비를 하지 않으면 이 산업은 돌아갈 수 없어요.
직업 외에도 부업이 많아요. 글쓰기 수업은 언제 하시며, 팟캐스트는 언제 녹음하시고, 북 토크는 언제 하세요? 바깥에서 보면 마치 『해리포터』의 시간을 돌리는 헤르미온느 같아요.
그렇게 보일 수도 있는데요. 아마 제가 결혼을 안 한 게 제일 큰 이유일 거예요. 영향 없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만 실제로 그 영향이 커요. 제가 엄청 부지런한 편도 아니고, 엄청 게을러요. 물론 일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일정표 짜놓고 하는 스타일도 아니거든요. 적당히 좋아하는 일을 오랫동안 했기 때문에 계속해왔고, 그렇게 하려면 절대 시간이 필요해요. 저는 혼자 살고 있고, 집에 들어오는 순간 모든 시간을 제 마음대로 쓸 수 있어요. 저만큼 일하는 남성분들은 많아요. 하지만 남성분들은 그저 저 사람이 일을 많이 하나보다 싶은데, 제 또래의 여자가 이렇게 일을 하면 색다르게 보죠. 선배든 동기든 후배든 여성 분들은 결혼하면 남편 따라 이동하거나 일을 그만둘 때가 많거든요. 둘째 낳고 나면 자기가 버는 돈보다 아이를 맡기는 돈이 더 들고, 중요한 시기에 자기가 집에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퇴직하면 가족 모두가 그 결정을 환영하는 거죠. 결혼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에요. 그저 이런 상황이 불합리하다는 것 정도는 공유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요즘은 기자와 에세이스트 중 어느 쪽에 속해 있나요?
지금은 에세이스트 쪽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회사에서는 편집 일이 주 업무가 되었고, 글 쓰는 일은 에세이스트로 쓰는 일이 많아졌어요.
앞으로 이다혜 이름으로 나올 책이 더 있을까요?
여행 책이 두 권 나올 거예요. 영국을 여행하면서 아서 코난 도일을 소개하는 책이 나올 거고요. 도쿄 여행기도 내년까지 나올 거예요. 그다음 계속 지금 패턴으로 할지는 모르겠어요. 일단 추가로 일을 벌이지는 않으려고요. 계속하면 제일 좋겠죠. 하지만 제 의지만 가지고 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계속 고민은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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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이다혜 저 | 위즈덤하우스
글을 쓰며 내가 되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글 쓰는 즐거움을 잃지 않고 지속적으로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다혜 작가만의 생각들을 담고 있다.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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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항상 첫부분을 장황하게 쓰다보니까 뒤로 갈수록 힘이 빠지고 얘기가 산으로 갔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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