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없는 그림책 『숨』 노인경 작가 인터뷰
『숨』은 처음부터 글 없는 그림책으로 만들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다 만들고 보니 책이 조금 불친절한 게 아닐까 걱정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모든 장면에 글을 넣어 봤어요. 그랬더니 그림책 속의 세상이 갑자기 작아지고, 집중이 안 됐어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18.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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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하여 인물의 내면을 감각적으로 표현해 온 노인경의 그림책  『숨』 이 출간됐다. 노인경은  책청소부 소소』  로 2012년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된 데 이어 『코끼리 아저씨와 100개의 물방울』 로 2013년 브라티슬라바국제원화전시회(BIB) 황금사과상을 수상했고,  『고슴도치 엑스』 가 2015 화이트 레이븐에, 관계의 어려움을 전하는 그림책 『곰씨의 의자』 가 2018 서울시 한 도서관 한 책 읽기에 선정되었다. 첫 그림책 『기차와 물고기』 를 출간한 2006년 이지금까지 차곡차곡 자신의 세계를 다져 오며 그 외연을 넓힌 드문 그림책 작가이다.

 

이번에 노인경이 주목한 것은 모든 존재의 기원, '숨'이다. 지금까지의 작업이 저자 자신의 내면을 파고들어 그곳의 풍경을 펼친 것이었다면,  숨』 은 개인의 테두리를 넘어 숨 쉬는 모든 생명이 경험했을 경이로운 시간을 넉넉히 품어 보인다. 수만 개의 숨방울로 이루어진 매 장면은 압도적인 아름다움으로 감동을 자아낸다. 노인경의 작품 세계가 또 한 번 확장되는 순간이다.

 

많이 바쁘다고 들었어요. 『곰씨의 의자』 가 서울시 ‘한 도서관 한 책 읽기’ 도서로 선정되면서 독자들을 직접 만날 기회가 많다고요.

 

책을 통해 다양한 연령대의 독자들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늘 감사해요. 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렇게 많은 분들이 강연장에 오신다는 게 놀라웠어요. 학부모로 강연에 온 고등학교 때 친구를 만나기도 했고, 스무 권이 넘는 그림책을 만들어 온 초등학교 1학년 허윤이도 있었고, 북한산을 사랑하시는 너무나 고우신 할머니도 있었지요. 소중한 인연을 만나게 된 시간이었어요.

 

강연은 독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해요. 특히 어린이 독자들의 솔직함은 저를 당황시키기도 하고, 많은 영감을 주기도 합니다. 초등학교에서 자신만의 ‘곰씨의 의자’ 만들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좀비 곰씨가 나오기도 하고 너무 재밌었어요. ‘마음고백카드’를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엔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릴 뻔한 적도 있습니다.

 

저는 혼자 작업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어요. 나만을 위한 작업을 하는 건 아닌가 하는 고민도 있었고요. 독자들을 만나면서 위로를 받았고 다음 그림책을 만들 힘도 얻었습니다. 아이들을 깔깔 웃게 만드는 책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어요.

 

바쁜 와중에 신간이 나왔습니다. 아이가 즐겁게 노는 공간을 엄마 배 속으로 상상한 것이 재미있었어요. 『숨』 이라는 그림책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나요?

 

저한테는 세 돌이 조금 넘은 아이가 있어요. 제 아이에게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어땠는지 자주 물어봅니다. 그때 듣던 음악, 재미나게 읽은 책, 한여름 밤의 공원 산책이 배 속 아이에겐 어땠는지 궁금했어요. 이 질문이 『숨』 의 시작입니다. 그러다 배꼽을 통해 아이가 엄마 배 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그곳에서 엄마 아빠와 재미나게 노는 이야기가 만들어졌죠. 배꼽은 우리가 연결되어 함께 숨 쉬었다는 흔적이에요. 닫힌 공간에서 혼자 고립된 모습이 아니라, 끊임없이 넓어져 가는 공간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아이를 그리고 싶었어요.

 

‘숨을 불어넣는다’는 말을 저는 좋아해요. 마치 생명이 탄생하는 마법의 순간 같아요. 부모는 10개월 동안 아이에게 숨을 불어넣고, 그 숨을 받으며 준비를 마친 아이는 마침내 세상에 나와 스스로 숨 쉬게 돼요.  작은 점만 했던 태아가 큰 아이로 자라나듯, 아이가 내쉬는 작은 숨방울은 물고기가 되고, 고래가 되고, 우주를 만들지요. 숨방울은 모이고, 섞이고, 커졌다 다시 흩어지며 생명을 만들어 가요. 숨방울 하나하나가 생명의 씨앗이에요. 이런 과정을 쉬우면서도 아름답게 그려 보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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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년에 한 권씩, 창작그림책을 꾸준히 출간해 오고 있습니다. 앞서 나온 다른 책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아이와의 만남으로 제 세계가 넓어졌다고 생각해요. 아이 덕분에 생명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경험했고, 지금도 아이가 만들어 내는 우주에 함께하고 있지요. 매 순간, 감사함을 느낍니다. 아이가 자신의 세계를 더 즐겁게, 더 자유롭게 펼쳐 나가길 바라고 있어요.


이전에는 그림책을 만들 때 내 안의 이야기에 집중했었습니다. 『책청소부 소소』 는 저의 지저분하게 책을 읽는 습관에서 나온 이야기이고, 『코끼리 아저씨와 100개의 물방울』 은 아버지와 화해하기 위해 만든 책이었어요.  『곰씨의 의자』 는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는 저의 모습에서 출발했고요.

 

『숨』 은 내 아이가 풀어내는 이야기를 그저 지켜보고 담아낸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어요. 그림책을 한 권 만들 때마다 갖은 시행착오를 다 겪어 보아야만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저로서는 이런 과정이 무척 신기하기도 했고 설레기도 했습니다.


책을 낼 때마다 매번 다른 채색 방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트레이싱페이퍼를 이용했다고 들었어요. 어떤 효과를 기대한 건가요? 이번 책의 채색 과정도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는 곳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고민했어요. 쉬지 않고 변화하는 생명처럼 부드러운 색들이 멈추지 않고 서로 섞이며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 냈으면 했어요.

 

고운 질감의 색연필로 많은 색을 채워 배경을 만들고, 물속이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 반투명한 트레이싱페이퍼로 덮었죠. 반투명한 트레이싱페이퍼는 생명의 탄생이 지닌 미스터리한 느낌을 줬어요. 그리고 그 위에 인물들을 그렸는데, 트레이싱페이퍼 특유의 질감이 유영하는 인물들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데도 적합했어요. 숨방울들은 트레이싱페이퍼를 한 장 더 올린 다음, 그 위에 그렸어요. 빨강, 파랑, 노랑, 초록 등 활력이 넘치는 색으로 선택했지요.

 

처음엔 배경, 인물, 숨방울을 따로 그린 뒤 컴퓨터로 합성할까도 생각했지만, 트레이싱페이퍼가 쌓이며 층층이 달라지는 색의 농도를 결정하며 종이에 그리기로 했어요. 다양한 느낌과 풍부한 질감을 살리고, 그리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 우연의 효과가 주는 아름다움과 만나길 바라며 작업해 나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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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을 내는 과정에서 가장 고민했던 것은 무엇인가요?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요?

 

매 순간 고민의 과정이 있었어요. 캐릭터, 채색 방법, 표지 등 모든 요소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달라졌어요. 그려 가면서 결정하고, 수정하고, 완성해 갔죠. 살아 있는 책 만들기를 한 것 같아 생생하고 즐거웠습니다. 처음엔 엄마, 아빠, 아이 셋이서 함께 숨방울을 만들어 내는 설정이었는데, 아이 혼자 숨방울을 만드는 것으로 바뀌며 책의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주도적이고 씩씩한 아이가 이끄는 이야기로요. 그게 가장 큰 변화인 것 같네요.

 

『숨』 은 처음부터 글 없는 그림책으로 만들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다 만들고 보니 책이 조금 불친절한 게 아닐까 걱정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모든 장면에 글을 넣어 봤어요. 그랬더니 그림책 속의 세상이 갑자기 작아지고, 집중이 안 됐어요. 결국 썼던 글을 다 빼고 맺음말에 녹여 넣었죠. 면지는 원래 색지를 쓰려 했었는데, 셋이 해변에 누워서 함께 올려다보는 하늘이 면지로 그려지면 좋겠다 싶어 수채화로 슥슥 그렸어요. 아이와 엄마의 대화를 파란 하늘에 구름처럼 둥둥 띄웠고요. 이런 면지 구성이, 본문의 세계를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책을 좀 더 친근하게 만들어 준 것 같아요.

 

만드는 과정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생명이 피어나는 과정을 즐겁게, 편안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담아내고 싶었던 첫 마음을 잊지 않으려 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일상에 큰 변화가 생겼을 것 같은데, 그림책 작가로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있어요. 주말엔 남편이 아이와 있고요.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뭐 하고 놀까?’ 하고 생각해요. 아이가 없었을 땐 ‘오늘은 무슨 일을 할까’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죠. 집 안에만 있으면 하루가 너무 길어서 미술관, 도서관, 박물관, 공원 등 매일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요. 집으로 돌아올 때는 늘 저만 지친 상태예요. 아이는 팔팔하고요.

 

그림책 작가로서 달라진 점을 꼽자면 아이들의 식사, 목욕, 잠자기나 놀이 등 아이들의 생활에 관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졌다는 거예요.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적어 놓고 아이에게 들려주면서 재미있는지 없는지 점검받고 있어요.

 

일을 하는 시간대도 많이 달라졌어요. 해가 떠 있는 낮 시간에 일하면 좋겠지만,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어려울 것 같아요. 대신 아이를 9시 전에는 재우려 해요. 아이가 잠들고 나면 그때부터 집중해서 새벽 2시 정도까지 작업을 하죠. 잠을 줄이고 작업을 하면 몸은 힘들어도 마음이 가벼워져요. 그림책 작업을 하면서 육아 스트레스를, 육아를 하면서 책 작업의 스트레스를 풀고 있는 것 같아요.

 

『숨』  다음에 나올 작품도 벌써 궁금합니다. 어떤 책을 만나 보게 될까요?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가슴이 뛰네요. 우선 아이를 키우며 만든 그림 에세이를 정리해 보고 싶어요. 아이가 열광하는 괴물 이야기도 만들어 보고 싶고요. 하루 종일 아이와 지내면서 아이들의 세계를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아요. 앞으로는 아이들이 더욱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노인경 그림 | 문학동네
그 세상은 또한 끊임없이 확장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아이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길, 더 많은 존재와 웃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수만 개의 점 하나하나에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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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노인경 작가 #그림책 #아이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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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