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에서는 이렇게 진료합니다
이런 사람의 마음, 먼저 이해부터 해야하지 않을까? 최근 의외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유명인이나 작가의 책이 아니라 편집자 출신의 저자가 처음 펀딩을 받아 출간을 했다가 정식 출판을 한 책이 큰 반응을 얻은 것이다.
글ㆍ사진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201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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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부전증이 있는 사람들은 나름 억울하다  

 

우울함은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난 뭘 해도 안될 거야.”, “내게 좋은 일은 생기지 않을 거 같아. 이번 생은 망이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 생각은 부정적이고 비관적이지만 에너지는 별 문제가 없어서 집중을 잘하고, 일을 하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는 경우다. 반대쪽은 생각이 몸을 따라가는 유형이다. 생각을 바르게 하려고 노력하지만, 몸이 따르지 않는다. 완전 방전돼 10%만 남은 배터리 같은 뇌다. 쳐져서 느릿느릿 움직이고, 집중을 하려고 해도 30분 이상 회의에 앉아있는 것도 힘들다. 1시간이면 끝낼 문서 작업을 하루종일 한다. 눈물이 한 번 나오면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아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뜬금없이 혼자 1시간을 운 적도 있다. 식욕이 하나도 없어서 겨우 두 끼를 억지로 먹고, 잠도 5시간 정도 자고 나면 감사히 여긴다.

 

전체적으로 보면 아마 전자의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다. 후자에 속한 사람을 나는 ‘임상적 우울증’, ‘생리적 우울증’이라고 부르곤 한다. 이 경우는 생리적 변화가 우선한 것이니 생물학적 치료를 동반해야만 좋아진다는 것이다. 주요 우울증이라고 하는 정신과 진단을 하게 되는 케이스다.


이 넓은 스텍트럼의 중간에서 조금 벗어난 사람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약간 쳐지기는 하는데, 일을 못할 정도는 아니다. 집중은 겨우겨우 하는데, 매일이 아슬아슬하다. 잠은 살짝 모자른 채 지내는데 주말에는 그래도 푹 자서 벌충이 된다. 12시 점심시간이 되었지만 몸과 마음의 내 시계는 오후 5시가 된 느낌이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심한 우울에 빠져 있거나 자살사고가 있는 건 아니다. 재미있는 일이 있으면 밝게 웃기도 하고, 가끔은 맛있는 걸 먹으러 가서 즐길 수 도 있다. 문제는 이 것이 오래 가지 않는다는 점. 벌써 2년 이상 이렇게 애매한 우울함이 지속되다보니 “건강한 원래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서 어느 것이 진짜 나인지 조차 헷갈린다. 이런 상태를 기분부전증(dysthymia)이라고 한다. 이를 인격장애의 한 측면으로 보는 학자는 ‘우울성 인격장애’라고 하기도 하는데, 크게 나누면 기분부전증은 생리적 우울증의 색채가 강하고 우울성 인격장애는 인지적 측면이 강조된 면이라고 분류하면 편하다.
 
진료실에서 상담하다보면, 기분부전증이 있는 사람들은 나름 억울할 때가 많다고 짐작한다. 본인의 전반적 기조는 분명히 사는게 힘드고, 아슬아슬하고, 다크한 느낌이 지배적인데 남들은 멀쩡히 출근해서 일을 하고, 회식할 때 빠지지 않고, 웃기도 하고, 어울리는 걸 아주 못하는 것도 아니니 우울하다고 말을 하면 “가식적이거나 과장한다”라고 오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게다가 증상이 오래 되다보니 “원래 내 성격은 이런가보다”라고 여기고 이렇게 살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치료를 받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게다가 정신과 진료에 대한 거부감과 편견까지 있으니 소심하고, 에너지 수준이 낮은 편인 기분부전증을 가진 사람은 더욱 빌딩앞에서 망설이고, 인터넷 예약을 했다가 취소하기를 반복하기 일쑤다.

 

 

복습이 중요하다

 

이런 사람의 마음, 먼저 이해부터 해야하지 않을까? 최근 의외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유명인이나 작가의 책이 아니라 편집자 출신의 저자가 펀딩을 받아 독립출판물로 출간했다가 정식 출판을 한 책이 큰 반응을 얻고 있다. 바로 백세희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다.


20대 후반인 저자는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출판사 편집자로 5년간 일했다. 10년간 기분부전증과 불안증으로 치료를 받았고 2017년부터 한 병원에서 꾸준히 상담과 약물치료를 받았다.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의 치료과정을 녹취해 풀고, 사이사이 우울증에 대한 정보를 추가해서 구성한 것이다.


백세희 저자는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것은 내가 자유로워지는 방법 중 하나”라고 말한다. 또 “오늘 하루가 완벽한 하루는 아니라해도 괜찮은 하루일 수 있다는 믿음, 하루종일 우울하다가도 아주 사소한 일로 한 번 웃을 수 있는 게 삶이라는 믿음”이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걸 치료를 통해 깨달았다고 말한다. 우울이라는 감정이 매우 상대적이고 주관적일 수 있기에, 내가 나에 대한 기대치가 완벽하고 높을수록 만족스러운 삶을 경험할 가능성은 줄어든다고 생각해보면, 간단해 보이지만 정작 실천은 어려운 일이다. 

 

저자는 이 개념적 인식을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저자의 자신의 현 감정 상태에 대해 묘사하는 내용이 매우 재미있고 생생하다. 
 
"나는 절절맨다. 절절맨다는 표현이 딱 맞다. 마음은 이미 절절매고 있는데, 머리는 절절매기 싫어서 사나운 동물처럼 쏘아붙인다. 서로 다른 감정이 한 몸에서 나오자 존재가 어그러진다. 그렇게 온 얼굴과 귀 끝까지 붉어진 상태로 상대를 마주하고 난 후의 버릇은 거울을 보는 일이다. 혼자만의 전쟁을 치른 직후 바라보는 얼굴은 남루하다. (중략) 바닥까지 추락하는 감정을 느끼고 애써 부여잡아온 정신의 균형이 다시 무너진다."
 
이런 세밀한 묘사는 한 눈에 지금 환자의 마음을 그려볼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 한 순간에 감정이 무너져 버리기도 하지만, 얼마 안있어서 또 반짝 나아지는 기분이 들거나, 기분을 업 시키려고 노력을 할 수 있는게 가벼운 우울증의 특징이다. 그런 면에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책의 제목은 많은 우울감의 세계에 빠져본 사람이 쉽게 공감을 할 핵심이었을 것이다. 마치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가 책 제목만으로 책의 핵심을 관통하는 소구력을 가진 것과 유사한 느낌이었다.


백세희 저자는 주치의를 만나 나눈 진료실 대화를 거의 그대로 책에 풀어 놓는다. 정신과의사인 내 입장에서는 솔직히 저자의 마음을 묘사한 내용보다 주치의가 어떻게 반응하고 해석을 했는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세프가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마음이랄까? 무엇보다 주치의가 섬세하게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어느 한쪽으로 직면과 해석을 하기보다, 최대한 중립을 지키면서 인지와 감정을 잘 아우르며 해석을 하고, 환자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나가는 태도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동안 여러 의사를 경험한 저자가 이 선생님을 주치의로 삼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상담 내용을 녹음해서 글로 풀어보는 복습의 시간까지 가지려 한 것이 아닐까.


저자의 주치의도 감정을 적어보라고 권했다.


“적어보는 것도 도움이 되죠. 현실에서 살 수 있는 건 그때그때 행동으로 해보는 거에요. 내가 오늘 문신을 한다면 그 전후의 느낌을 적는 거죠. 그러다보면 나중에 공통적인 부분을 찾을 수 도 있을 거예요. 내가 어떤 면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안도감을 느끼는구나”같은 거요.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하나의 도구가 될 수 있어요.”
 
만일 혼자 녹음해서 간직했다면 더욱 좋았겠다라는 개인적 마음이 들기는 한다. 이 책이 자비 출판했을 때, 이렇게까지 널리 알려지는 책이 되리라고는 저자나 주치의나 모두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주치의는 ‘치료 내용을 책으로 만든다는 계획과 원고를 받고 발가벗겨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완전한 사람이 만나 불완전한 치료자를 만난 나눈 대화의 기록’으로 정리하고 있지만 마음이 썩 편치는 않을 것 같다는 것이 내 개인적 인상이다. 
 
어찌 되었건 덕분에 참 보기 힘든 정신과 진료의 한 프로세스를 그대로 보여준 장면을 담을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우울증이 이렇구나’라는 것을 인식하고 공감하는 것과 함께 “아, 정신과 다니는 거 어려운 게 아니구나”, “저 정도 힘든 정도면 병원을 찾아가서 상담을 받고 약을 복용할 수 있는 거구나”라는 마음을 갖고 오해, 편견, 두려움의 삼중 문턱을 가진 정신과 진료에 대한 부담을 확 낮출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더욱이 올해 7월부터 건강보험에서 정신치료의 수가와 진료비 본인부담금의 변화가 적용되어서 진료를 받을 때 본인부담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대략 2-3만 원 이내의 본인부담이면 적당한 시간의 상담과 약물 처방을 받을 수 있다. 마음의 에너지가 간당간당한 채 일상을 아슬아슬한 상태로 하루 벌어 하루 먹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저자와 같이 용기를 내어 정신과 진료실의 문을 두드려보면 어떨까 한다.

 

한 가지 팁을 밝히면, 신체질환과 복합적 연계, 입원을 요하는 중증 상태가 아니라면 집이나 직장과 동선이 잘 맞는 동네 정신과를 찾아가는 것을 권하고 싶다. 정신과는 과 특성상 고가의 검사장비를 이용할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경험이 충분하고, 자주 찾아갈 수 있는 의원급 병원이 상담 시간도 충분히 가질 수 있고, 방문 빈도도 잘 지킬 수 있어서 치료결과는 훨씬 좋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백세희 저 | 흔
겉보기에는 멀쩡하지만 속은 곪아 있는, 지독히 우울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며,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불완전하고, 구질구질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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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