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구매에 대하여
귀엽게 웃긴 이 소설은 일정 정도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우리가 인생에서 짐작할 수 있는 정도의 일들이다. 즉, 결국 우리는 항상 계획한 대로 실행하지 않으며, 예상하지 못한 선택을 하며, 선택은 가끔 우리의 손에 있지 않다는 공리를 새삼 깨닫는다.
글ㆍ사진 박현주
2018.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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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인생에서 중요한 쇼핑은 파트너를 고르는 일에 버금간다. 이 말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하지만 대상의 유일성과 관련 없이 선택의 과정은 늘 비슷한 단계를 거친다.

 

2016년 5월 28일 <뉴욕타임스>에 실린 알랭 드 보통의 칼럼 제목은 「우리는 왜 잘못된 사람과 결혼하는가」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일지도 모르는 파트너 고르기, 대부분 신중하게 파트너를 고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뭔가 어긋나 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그래, 많은 사람이 궁금해할 만하다. 왜일까?


 

이 칼럼에 따르면, 우리는 서로를 모르고, 시간이 지나서야 발견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리는 자기 자신의 성격조차도 잘 모른다. 기분 좋고 느긋할 때와 일에 몰리거나 위험할 때. 사람의 다면적인 모습을 다 알기란 불가능하고,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우리는 행복을 찾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익숙한 것을 행복한 것이라고 착각하고, 외로워서 실수를 저지르며, 좋은 느낌을 영구히 고착하려 하지만 결혼 자체가 인생의 변화로 밀고 나간다. 이 글의 논리대로라면, 잘못된 사람과 결혼할 가능성이 ‘제대로 된(right)’ 사람과 결혼할 가능성보다도 더 높은 것이다.


일회용이 아닌 것과 함께한다는 건 이런 위험성을 늘 내포한다. 좋은 선택을 할 가능성만큼이나 나쁜 선택을 할 가능성이 있다. 대표적으로 집. 우리는 집을 살 때, 그 집이 시간에 따라서 어떤 모습을 드러낼지 알지 못하며 익숙한 형태의 집을 고르기도 하고 급한 나머지 자세히 살펴보지 못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처음 새집의 느낌이 영원히 계속되리라 상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집에 살다 보면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천장과 창문 사이의 접합 부분에서 물이 새며, 방음이 잘되지 않아 시끄럽고, 어떤 연유인가 먼지가 많이 들고, 냄새가 잘 빠지지 않는다는 사실 등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지만 집처럼 돈이 많이 드는 인생 최대의 쇼핑은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오랫동안 져야만 한다. 집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차도 마찬가지이다.

 

운전면허를 딴 후에도 나는 한동안 운전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차를 사지 않았으니까. 운전을 시작하기로 다시 맘을 먹었다면 그다음 순서는 차를 사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차를 살 것인가? 내 인생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쇼핑이었지만 고민은 가장 깊었던 쇼핑이었다. 첫 번째로 중요한 쇼핑이었던 집은 제한이 너무 많았기에 오히려 쉬웠다. 예산이 무척 적고, 원래 사는 집에서 가까운 주택. 그 조건에 맞는 집은 동네에 딱 한 곳. 그나마도 빈집이 없었기에 내 선택이라고 볼 수도 없다.


하지만 차는 달랐다. 이것은 오롯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물건이다. 역시 예산은 한정적이지만, 초보운전자의 첫 번째 차여서 어차피 크고 좋은 차를 운전할 능력도 없던 터였다. 나는 여러 선배님들의 충고를 받고,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가며 탐색을 시작했다. 차를 살 때는 여러 요소를 고려해야 했다. 차의 크기, 가격, 형태, 색깔, 생산 연도, 브랜드, 옵션…….


이렇게 적자니 한도 끝도 없었다. 탐색을 오래 할수록 체크리스트는 길어졌다. 내가 주로 정보를 얻었던 포털 사이트에서는 어떤 차를 검색해도 칭찬보다는 비판이 많았다. 안전도가 떨어지는 국내 차를 사도 멍청이, 가격이 비싸고 겉만 번드르르한 외제 차를 사도 멍청이, 어떤 차를 사도 멍청이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어떤 선택을 하든 옳은 선택보다는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선택이 그렇다. 고심할수록, 신중할수록 체크리스트는 길어지고 그에 맞는 물건을 고를 가능성은 떨어진다. 그리고 결국은 하나를 골랐더라도 잘못된 선택에 이르게 된다. 무엇을 골랐다고 해도 멍청이.

 

그레임 심시언의 『로지 프로젝트』 는 아내를 찾아 나선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39세 돈은 오스트레일리아의 멜버른에 있는 대학의 유전학과 조교수로,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천재이다. 시간을 정확히 계산하여 움직이고, 식단도 주 단위로 계획해서 철저히 지키며, 사회적 능력은 없다. 친구인 심리학과 교수인 진과 그의 아내 클로디아를 제외하면, 가까운 사람은 자살한 누나와 윗집 할머니 대프니뿐이다. 어느 날 돈은 대프니의 충고에 따라 결혼을 결심한다.

 

타인에게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한 돈은 아내를 찾는 일도 프로젝트로 만든다. 그는 이상적 아내의 요소를 넣은 설문지를 작성하고 데이트를 하는 여자들에게 이 설문지를 돌린다. 학위, 금연 여부, 식성, 화장과 장신구 착용 여부 등등. 하지만 그런 방법으로 쉽게 아내가 찾아질 리는 없고, 이 조건에 전혀 맞지 않는 여성 로지가 나타나면서 돈의 프로젝트는 점점 그의 계획과는 다르게 흘러간다.

 

로지는 화장과 의상도 그의 취향이 아니고, 육식도 하지 않고. 직업도 맘에 들지 않는 여자이다. 하지만 돈은 굳게 지켰던 자신의 원칙을 깨고 로지와 함께 새로운 프로젝트에 뛰어든다.

 

귀엽게 웃긴 이 소설은 일정 정도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우리가 인생에서 짐작할 수 있는 정도의 일들이다. 즉, 결국 우리는 항상 계획한 대로 실행하지 않으며, 예상하지 못한 선택을 하며, 선택은 가끔 우리의 손에 있지 않다는 공리를 새삼 깨닫는다.

 

언젠가 친구가 내게 “차를 왜 사려고 하는가” 물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그냥 갖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운전이라는 행위와는 약간 별개의 문제로, 차라는 물건의 문제가 될 때는 나는 그저 갖고 싶었다. 어떤 사람들이 수입 범위를 넘는 가방을 갈망하듯이. 어떤 사람들이 좋은 랩톱을 사고 싶어서 안달하는 것처럼. 가끔은 얻고자 하는 모든 것들이 그저 갖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결정되기도 한다. 혹은 무언가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 비록 비논리적이라고 할지라도 그만이 이유가 된다.

 

『로지 프로젝트』 에는 선택과 취향의 비논리성에 대한 재미있는 비유가 있다. 돈은 데이트에서 만난 엘리자베스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간다. 엘리자베스가 자신이 좋아하는 살구 맛이 없다면서 먹지 않겠다고 말하자, 돈은 찬 걸 먹으면 맛봉오리가 냉각되기 때문에 모든 아이스크림은 맛이 똑같고, 우리는 본질적으로 망고든 살구든 구분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떠나버린다. 결국 엄격하게 모든 아이스크림이 똑같다고 주장하던 돈은 흔들린다. 로지는 망고와 살구 맛 아이스크림을 다섯 번 연속, 즉 1/32 확률로 골라낸 것이다. 과학적 우연을 넘어서는 수치였다.

 

우리의 취향에 입각한 선택이란 전체적으로 차이가 없는 것들 사이에서 내가 좋아하는 살구 맛 아이스크림을 골라내는 것과 같은 일인지도 모른다. 예산이 무한대가 아닌 이상 내가 고를 수 있는 차는 몇 종으로 좁혀졌다. 나는 그래도 쉽게 고르지 못했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1년, 결국 어떤 차를 사기로 한다. 남에게 설명할 수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을 것이었다. 이 차는 안전 등급이 높기에, 작지만 잘 달리기에, 토크가 좋기에(사실은 그게 어떤 개념인지 명확히 모른다), 회사 로고가 마음에 들어서, 플래시 레드라는 색깔에 꽂혔기에. 그저 별 의미 없는 차이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나의 살구 맛 아이스크림이었다.

 

그리하여 딜러와의 지지부진한 협상과 내가 직접 운전하지도 않은 시승까지 거친 후 2013년 8월 나는 그 차를 샀다. 몇 년 후에 후회를 불러오는 거대한 세계적 사건이 발생할지는 꿈에도 모르고. 하지만 다시 알랭 드 보통의 칼럼으로 돌아가면, 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여서 하는 선택인 파트너의 경우에도 실망은 찾아오며, 그것은 ‘보통의 일’이다. 대다수 사람이 결국은 실망하게 된다는 것, 그것이 그렇게 드문 경험이 아니라는 말이다. 선택에는 실망이 보통임을 이해한다면, 차에 대한 불만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것들이다. 설사 헤어져야 한다고 해도, 차는 인간의 파트너와 달리 얼굴 붉히지 않는다는 무던한 점도 있다.

 


 

 

로지 프로젝트그레임 심시언 저/송경아 역 | 까멜레옹
사회성 발달에 어려움을 겪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으면서 세상의 비웃음을 피해 일부러 괴짜 행세를 했던 돈 틸먼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은 읽는 이의 가슴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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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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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e

2018.10.02

인생에서 중요한 쇼핑은 파트너를 고르는 일에 버금간다. 이 문구가 와닿네요. 저도 차를 구매할 때 6개월은 고민했어요. ㅎㅎㅎ 공감 가는 챕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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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즐

2018.10.02

로지 프로젝트 정말 귀여운 소설이네요. 앞으로 뭘 선택할 때는 '실망은 보통의 일'이라는 걸 기억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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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