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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사랑 그리고) 산책

고양이와 복도를 산책하며 궁금해진 단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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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함께 산 지 4년째, 우리는 가끔 복도를 산책한다. 부지런히 복도를 탐색하는 고양이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상상하거나 회상하는 일들이 생긴다. (2018. 0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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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소파에 앉아 어려운 이야기를 꺼냈다. 침묵이 흘렀다. 곁에 있던 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침묵을 깼다. “가볼게. 잘 지내고.” 현관 쪽으로 걸어가는 그를 따라갔다. 외투를 입고, 가방을 메고,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나설 때까지도 어떤 말을 더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현관문이 닫히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신발장 앞에 앉았다. 울었다. 소리를 내며 울었다. 얼마큼이었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다리가 저릴 때까지 그렇게 있었다. 일어나려는 찰나, 우리 집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가까이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멀리서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나타나진 않았다. 이상한 기분이 들어 뒤를 돌았다. 문을 열었더니 고양이가 문밖에서 울고 있었다.


당시 집은 약 30세대가 ㅁ자 형태의 복도를 두고 사는 오피스텔이었다. 그 집에서 고양이와 처음 살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갈 때, 고양이는 매번 복도로 튀어나왔다. 처음에는 가방으로 문 아래 통로를 막고 들어가고, 현관 울타리를 찾아보기도 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복도를 같이 걷는 쪽을 선택하게 되었다. 울타리 대신 내 번호가 적힌 목걸이를 주문해서 걸어준 뒤, 우리는 복도를 산책했다. 조심스럽고 즐거운 걸음이었다. 뒤를 따라 걷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고양이를 안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고양이는 한 번도 자신의 의지로 집 쪽으로 간 적이 없다. 계속 새로운 곳으로 영역을 넓히며 걸었다. '내가 잡아 데리고 들어가지 않으면 쟤는 멀리 가버리겠지.' 이 집 저 집을 킁킁거리며 걷는 고양이의 뒷모습을 보며 자주 하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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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열리면 밖으로 나가는 습관이 있는 고양이라 그날도 평소대로 산책을 하는 줄 알고 나갔을 거다. 내가 신발장 앞에 앉아 우는 동안 고양이는 이전에 겪어본 적 없는 상황을 겪었다. 자신의 산책을 끝내버리는 인간이 없는 산책. 어디론가 가버릴 수 있었을 시간에 얘는 왜 집으로 돌아와 앉아 있었을까. 미안함과 동시에 이상한 안도감이 생겨 고양이를 끌어안고 조금 더 울었다. 녀석은 화를 내는 대신 내 팔을 핥아주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다. 네 번의 이사를 했고, 고양이에게는 네 가지 산책 루트가 생겼다. 복도식 아파트에 살 때는 바깥 공기를 마실 수 있었고, 또 한 번은 ㄱ자 복도라 코너로 꺾어 사라졌을 때 숨바꼭질 같은 걸 할 수 있었다. 현관문을 두드리며 “나 이제 집에 들어간다!” 하면 급하게 뛰어왔다. 복도에 혼자 있어 본 악몽이 떠오르는지, 긴박한 표정으로 달려오는 모습이 귀여워서 짓궂은 장난을 쳤다. 평수가 넓은 아파트에 살 때는 집에 비해 복도가 작았기에 잠깐 나갔다가 시시한 표정으로 집에 돌아오곤 했다. 지금 사는 집은 우리가 지낸 집 중 가장 좁다. 복도도 집도 이렇게까지 좁았던 곳이 없었다. 좁은 복도에 네 개의 원룸 현관문이 있어 고양이보다 내가 더 긴장한다. 누가 문을 열어서 서로 놀라면 어떡하나. 조바심을 내며 산책하는 고양이의 뒤를 따른다. 고양이는 아래층과 위층까지만 간다. 두 층만 더 올라가면 옥상으로 향하는 문이 있다. 옥상에 데리고 나가볼까, 싶은데 번번이 생각만 하고 실행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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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세 마리와 사는 여자를 만났던 적이 있다. 세 마리는 다 길에서 온 녀석들이었다. 아픈 길고양이들을 집으로 들여 치료해주곤 했는데 그중에 눌러앉은 고양이가 세 마리다. 그녀는 늘 창문을 열어 둔다고 했다. 고양이들은 열린 창을 통해 밖과 안을 오간다. 보통은 산책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돌아오는 횟수를 줄이다가 영영 돌아오지 않은 고양이도 있었다. 다른 곳에 갈 곳을 정해 그곳으로 이사를 했을 거라고 했다. 서운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원래 길이 고향인 애들인걸요. 치료가 끝났으면 떠나는 게 맞죠. 원하면 더 머무를 수 있지만, 떠난다고 잡아둘 순 없을 것 같아요. 그보다는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하며 웃는 얼굴이 슬펐다. 그때는 고양이를 무서워하던 시절이라 ‘그렇구나.’ 하고 말았는데 고양이와 살고 나니 그 이야기가 자주 생각난다. 나와 사는 고양이도 길에서 구조되었다. 아파서 어미가 버리고 간 걸 누군가 구조하고 몇 사람을 거쳐 내게 왔다. 길에서 죽어가던 고양이가 인간의 집에서 살게 된 일이 그에게는 비극일까 희극일까. 창문을 열어주거나 옥상에 같이 서 있는 상상을 해보지만 매번 상상에 그친다. 아직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고개를 젓는다. 주변 고양이들과 다투거나 차 사고가 나는 등의 걱정을 하기도 하지만 사실, 가장 큰 두려움은 고양이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믿음은 어떤 순간에 생기는 걸까. 견고한 믿음은 어떻게 깨지는 거지. 사랑은 창을 열어주는 것일까. 돌아온다고 믿는 일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돌아오지 않는 이의 안녕을 바라는 것은 사랑일까. 어떤 것에도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다. 다만 이 고양이가 처음 우리 집에 왔던 날부터 지금까지. 그러니까 우리가 어색하게 서로를 쳐다보고, 복도를 산책할 수 있게 문을 열어주고, 시간을 들여 뒷모습을 바라봐주고, 문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기도 하고, 여전히 무엇이 서로를 행복하게 하는 일인지를 고민하는 시간 사이에 답 비슷한 게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우리가 더 긴 산책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때는 답을 달지 않아도 알고 있는 일들이 조금 더 생길 수 있을까.

 

저는 그 부분을 읽고, 인간이란 둘이 산책하고 싶어서 결혼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산책이라는 것은 생활의 짬이라고 생각합니다. 애인이나 연인과 하는 산책은, 장소를 정하고 약속을 하고 만나서 나서는 것이기에, 데이트나 여행은 되지만 산책은 되지 않습니다. 거기엔 생활이 없으니까요.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일상생활에서의 짬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이, 곧 그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는 것이 아닐까요. 빈사상태의 연로한 작가가 "어디 한 군데 아픈 곳이 없고, 둘이 동네를 걸을 수만 있다면, 그것 마고 더 바랄 것이 없다"라고 한 것은, 모든 것을 다 털어낸 최후의 산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쿠스미 마사유키  『우연한 산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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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박선아(아트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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