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서점이 다시 늘어나는 현상을 지켜보면서, 이현주 저자는 걱정스러운 마음을 떨치기 힘들었다. 20년 동안 출판 업계에 종사했던 사람으로서 지금 같은 시대에-독서 인구는 점차 줄고 그마저도 대부분 인터넷서점을 이용하는 시대에-작은 서점을 운영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전작 『읽는 삶, 만드는 삶』 을 함께 출간했던 유유 출판사가 ‘세계 도시의 서점들’과 관련된 책을 기획하고 있었다. 그녀는 ‘시애틀의 동네 서점’ 탐방에 나섰다.
“2년 남짓 살아 본 경험으로 다른 곳보다 덜 낯설어서” 선택한 곳이기도 했고, 이제는 삶의 터전이 된 공간이었다. ‘동네서점의 천국’이라 불리는 동시에 ‘아마존의 도시’라 일컬어지는 묘한 지역. 그곳의 작은 책방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저자는 ‘책으로 먹고사는 이야기’를 찾아 시애틀의 골목골목을 누볐다. ‘시애틀미스터리 북숍’, 그래픽ㆍ건축 전문 서점 ‘피터밀러 북스’, 아마존 편집부에서 일하던 직원이 차린 ‘피니 북스’, 공학 전문 서점 ‘에이다스테크니컬 북스’ 등. 시애틀의 동네서점이 처한 현실과 생존기를 취재했다. 그 결과 탄생한 책의 이름은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서점』 . 부제는 ‘‘아마존’의 도시에서 동네 서점이 사는 법‘이다.
이현주 저자는 서평지 『출판저널』, 인터넷 서점 ‘리브로’, 책 요약 서비스업체 ‘북코스모스’, EBS라디오 <책으로 만나는 세상>의 패널 등으로 활동하며 책과 관련된 콘텐츠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일을 해왔다. 1인 출판사 ‘뜰’을 설립하고 3권의 책을 출간한 바 있고, 도서출판 푸른숲에서 여러 책을 기획하고 편집했다. 『읽는 삶, 만드는 삶』 을 썼고, 현재 시애틀에 거주하고 있다.
이 일이 나를 먹여 살릴 수 있을까
이 책은 “출판사의 제안에 따른 취재기”라고 쓰셨어요.
유유 출판사 대표님과는 『읽는 삶, 만드는 삶』 으로 인연을 맺게 됐어요. 그 후에 대표님이 세계 도시의 서점들과 관련된 책을 기획하고 계셨고, 저한테 관심 갖고 있는 도시가 있는지 물어보셨었어요. 그런데 제가 시애틀에서 2년 정도 살았었거든요. 그 경험으로 시애틀에 재밌는 동네서점이 많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시애틀이라면 제가 한 번 해보겠다고 말씀을 드렸던 거예요. 오래 전 일이기는 하지만 제가 살아봤던 곳이고, 또 제 동생이 오랫동안 시애틀에 살았거든요. 저한테는 되게 친숙한 지역인 거예요. 이 책의 첫 장에 『아메리칸 버티고』 를 인용해서 실었는데, 그 글에도 보면 “매우 전문화된 서점들”이라는 표현이 나와요. 시애틀은 서점에 특화된 지역이에요. 그들은 ‘독립 서점의 천국’이라고 표현해요.
취재를 시작하실 즈음에, 한국에서도 동네 책방 열풍이 불었죠?
맞아요. 그런데 저는 약간 회의적으로 보이더라고요. 출판업계에 오래 있었던 사람이다 보니까 ‘그게 지속 가능하지 않을 텐데’ 싶었어요. ‘젊은 세대가 어떤 환상을 가지고 책방을 시작하는 건 아닐까’, ‘책을 파는 일이 겉으로 근사해 보이면서도 다른 물건을 파는 것보다는 덜 힘들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과연 먹고 살 수 있는 일인가’라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거예요. 또 한국의 출판업계에 있는 사람들이 ‘외국은 상황이 좋다더라’ 하는 식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정말 그런지도 궁금했어요. 시애틀이라는 동네에는 유난히 독립서점이 많다고 하고 재밌는 서점도 많은데, 그런 사람들은 다 먹고 살만 한지 궁금한 거예요. 먹고 살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그것들이 효과가 있는지, 그런 이야기들을 할 수 있다면 한국에서 서점을 운영하려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도움은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20년 동안 몸담았던 출판계를 떠나셨는데요. 출판계의 불황과 관련이 있나요?
있죠, 당연히. 100%(웃음). 이민을 결정하던 시기에 제일 고민했던 것 중에 하나가 ‘나의 노후’였어요. ‘과연 나는 이 일을 계속해서 나 자신을 먹여 살릴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점에서 출판업이 사양 산업이 된 현실이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죠. 그리고 글을 쓰는 건 어디에 거처하든 가능한 일이잖아요. 『읽는 삶, 만드는 삶』 을 통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내 직업은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지 않나’(웃음). 이 일과 닿아있는 상태로 살아가는 것에 장소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그것도 이민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출판계의 현실을 잘 알기 때문에, 동네 책방이 늘어나는 현상을 보고 걱정하셨던 거겠죠.
맞아요. 그런데 취재를 다 마친 지금은, 사실 비관도 낙관도 안 하게 되더라고요. 그냥 ‘서점은 존재 가치가 있다, 그것이 어떤 형태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새로운 서점은 계속 생길 것이고 어떤 서점들은 문을 닫을 것이다, 그렇지만 계속 존재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상태가 됐어요. 제가 며칠 전에 ‘사적인서점’의 정지혜 대표님과 북토크를 했는데요. 서점을 하고 싶어서 찾아오신 분들도 계셨어요. 그때도 제가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저는 서점을 하기 보다는 그냥 서점 손님이 되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누군가 서점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하셔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다’고요. 좋은 결과를 맺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서점은 문을 닫고 또 어떤 서점은 문을 열고, 그렇게 ‘오고가는’ 과정에서 더 풍성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시애틀미스터리 북숍’은 이 책이 나오기 전에 결국 문을 닫았어요. 폐점 전에 주인이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그대로 실으셨는데요. 처음 보셨을 때 어떤 느낌이 드셨어요?
사실 저는 동종 업계에 있던 사람으로서 서점의 어려움에 막연하게 공감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 글도 덤덤하게 읽었는데요. ‘사적인서점’ 정지혜 대표는 그 글을 읽고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시애틀미스터리 북숍’이 폐점할 때의 주인장이 ‘제이 비’라는 사람인데, 직접 만나고 나서 굉장히 실용적인 자영업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독서 모임은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는 초과 근무를 할 수 없어’라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거든요. 독서 모임이나 북클럽 같은 경우는 서점을 운영하는 데 밑바탕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포기하기 힘든 부분이잖아요. 그래서 다른 서점들도 꼭 구비하고 있는 조직 중에 하나예요. 그런데 전문 서점이, 더구나 독자 충성도가 높은 장르 문학 전문 서점이, 북클럽 하나도 없는 거죠. 저는 그게 너무 신기했어요.
그만큼 실리를 추구하는 사람이었다는 말씀이시죠?
그렇죠. 저는 그 사람이 얼마나 실용적인 사람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하기까지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서점에서 실질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방향에 대해서 계속 고민했을 거예요. 그리고 2014년 즈음에 인터뷰한 기사에서는 매년 매출이 늘고 있다고 이야기했었거든요. 시장이 굉장히 짧은 기간 내에 급격하게 변한 거죠. 제가 찾아갔던 시기에 이미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어요. 인터넷 펀드를 통해서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죠. 그런데 폐점 결정을 내린 것도, 실용주의자이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돼요. 또 한 번 펀드를 모아볼까 생각했지만, 그게 지속 가능한 대안이 아니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던 거예요. 그 사람다운 태도였고 결정이었어요. 그게 얼마나 절박한 결정이었는지 잘 알겠어서, 남다른 마음이 들었죠.
그곳에는 ‘사람’과 ‘장소’가 있다
취재 과정은 어땠나요? 일일이 다 찾아가고, 메일을 보내고, 인터뷰를 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2016년 겨울에 시애틀에 갔는데, 그 전에 리스트를 만들었어요. 저희 조카가 시애틀에 있어서 근처의 괜찮은 독립 서점들 리스트를 보내달라고 했었고, 제가 인터넷에서 구한 자료들을 같이 모았어요. 그 중에서 가보고 싶은 곳들을 체크해 놓고 미국에 가자마자 다 둘러봤죠. 그 다음에 제 나름의 기준으로 고른 건데요. 너무 규모가 큰 곳은 제외했어요.
‘엘리엇베이 북컴퍼니’, ‘시크릿가든’, ‘서드플레이스 북스’ 같은 독립 서점이 빠진 이유군요.
네. 너무 규모가 큰 데는 주인의 개성이 별로 안 드러나잖아요. 그리고 헌책방도 재밌는 곳들이 많았는데 제외했어요. 비슷한 특성을 가진 서점들 중에서는 그 특성이 더 강한 서점을 골랐고요. 그런 식으로 선별한 다음에 일제히 메일을 보낸 거죠. 답장이 오는 대로 취재를 진행했어요. 인터뷰 질문을 준비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어요. 공통 질문이 있었거든요. ‘먹고 살기 위해서 서점에서 특별히 하고 있는 건 무엇인지’, ‘재정적인 문제는 없는지’ 그런 질문들이 중심이 됐고요. 서점을 열게 된 사연, 서점의 이름에 얽힌 이야기 같은 것도 공통 질문이었어요.
시애틀에는 ‘아마존’의 본사가 있죠. ‘아마존’은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온라인 서점인데요. 그곳의 본사가 위치해 있다고 해서 지역의 오프라인 서점이 영향을 받나요?
‘피터밀러 북스’의 주인장인 ‘피터밀러’가 굉장히 분노하는 지점이 있어요. 아마존이 가지고 있는 태도에는 존중이 없다는 거예요. 책에 대한 존중, 그리고 책을 파는 일을 하는 그들에 대한 존중이 없다는 거죠. 그리고 그런 태도를 고객들이 배웠다고 이야기해요. 예를 들면, 소규모의 서점들을 큐레이션을 하잖아요. 아마존에서는 세상의 모든 책을 다 검색할 수 있지만, 작은 책방에서는 주인이 골라놓은 책만 만날 수 있어요. ‘피터밀러’ 같은 사람은 확고부동한 자기 취향으로 책을 골라놓고요. 그런데 그 목록을 베껴가는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더 싼 곳에 주문을 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분노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목록의 책들을 고르기까지 심혈을 기울이고, 직접 읽고, 좋은지 나쁜지 스스로 판단해서 골라놓은 거니까요.
그것도 서점 주인의 노동인데 말이죠.
그렇죠. 그러니까 지역 서점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이곳에서 본 책을 온라인에서 주문하니까요. ‘사적인서점’의 정지혜 대표도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어떤 사람이 책방에 와서 책을 봤는데 다른 곳에서 책을 산다면, 그 서점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일을 한 거냐고요.
작은 서점을 지키기 위한 움직임도 있나요?
미국이 연방정부이기 때문에 가지는 특징이 있는데요. 주마다 세금을 따로 걷는데, 온라인 업체는 전국 규모이기 때문에 지역소비세를 안 내요. 그러다 보니까 지역 독립 서점을 지원하는 비영리 조직 ‘인디바운드’라는 곳에서는 ‘숍 로컬(shop local)’ 운동을 해요. 지역에서 소비를 하면 그 지역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거든요. 예를 들어서 100달러를 소비한다고 하면 지역소비세로도 남고, 이웃들의 급료로도 나가고, 운송 거리도 줄고, 그렇게 50달러가 남는 거예요. 온라인이나 중앙집권화 된 업체에서 구매를 하면 그런 이득이 남지 않죠. 많아야 20~30% 정도 남거나 품목에 따라서 0이기도 해요.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사람들이 ‘숍 로컬’ 운동에 동참해요. ‘퀸앤 북컴퍼니’처럼 지역색이 강한 서점에서도 적극적으로 운동에 동참하고요.
온라인 서점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동네 책방에만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겠죠. 그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두 가지죠. 사람이 있다는 것과 장소가 있다는 것. 방문한 서점들마다 공통적으로 했던 이야기가 ‘발견’이었어요. ‘피니 북스’의 대표인 톰은 아마존에서 일했던 사람인데, 자신이 아마존에서 배운 건 ‘아마존을 따라하지 말라’는 거였다고 말해요. 아마존이 할 수 없는 건 ‘발견’이라고 하고요. 알고리즘이 찾아낼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거죠. 인간이란 예측이 불가능한 존재잖아요. 어떤 날 어떤 기분에 어떤 책을 보고 싶은지, 그 생각이 시시각각 바뀌죠. 알고리즘이라는 건 ‘당신이 산 책과 비슷한 책을 산 다른 사람들은 이런 책을 샀다’라고 제안을 해주는 거잖아요. 분명히 설득력 있는 제안일 거예요. 그렇지만 ‘어떤 사람이 특정한 날에 특정한 기분에서 만나고 싶은 책을 과연 찾아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그걸 해줄 수 있는 건 사람이라는 거예요. ‘피니 북스’의 대표도 그렇게 말하고 ‘퀸앤 북컴퍼니’에서 일하는 사람도 똑같은 이야기를 해요.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발견’이라고요.
서점에서 만나는 사람과 ‘관계’가 생기기도 하고요.
그렇죠. 시애틀 동네서점의 굉장히 큰 특징이 ‘staff’s pick‘이라고 하는 스태프 추천이 어딜 가나 있다는 거예요. 그건 스태프와 특별한 관계를 맺는 일인 것 같아요. 어떤 스태프가 추천한 책을 읽었는데 나한테 딱 맞았다면, 다음부터는 그 스태프가 추천한 책을 유심히 보게 되잖아요. 그런 식의 관계들이 만들어지는 거죠.
앞서 ‘장소’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요. 어떤 의미인가요?
장소성이 수익과 연결되는 경우도 있어요. ‘퀸앤 북컴퍼니’의 운영자는 이렇게 이야기해요. ‘우리 서점에서는 온라인 주문을 받고 있고 책을 택배로 보내주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꼭 서점에 와서 책을 찾아가기를 바란다’고요. 장소가 주는 어떤 시너지에 대해서 확신하고 있는 거예요. 직접 서점을 찾아왔을 때 누구를 만나는지, 그 사람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그 날의 날씨는 어떤지, 장소의 분위기는 어땠는지에 따라서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에이다스테크니컬 북스’는 장소를 대여하는 형태로 직접적으로 이익을 창출하고 있어요. 거기는 공학 전문 서점이라는 정체성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들거든요. 그들이 서로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고요. 인터넷에서는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을 모으는 게 쉽지만, 동네에서 그렇게 하려면 장소가 제공되어야 해요. ‘에이다스테크니컬 북스’를 보니까, 우리나라의 작은 서점들도 장소 대여를 통해서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더라고요.
책과 서점, 존재의 의미
‘책방 주인들의 추천 도서’를 직접 구매하셨어요. 가장 인상적인 책은 무엇이었나요?
‘에이다스테크니컬 북스’에 갔을 때 『라군 Lagoon』이라는 책을 추천받았는데요. 제가 읽을 자신이 없어서 못 사왔어요(웃음). 일상적인 장편소설도 읽으려면 한참 걸리는데 배경 지식이 필요한 SF는 도저히 읽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 책이 빨리 번역되기를 바라는 마음인데, 분명히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장르가 SF거든요. 우리나라는 장르 문학이 잘 판매가 안 되잖아요. 추리소설이나 미스터리는 조금 형편이 낫지만 SF는 잘 안 되거든요. 『라군 Lagoon』은 SF이고 나이지리아계 작가가 쓴 작품이에요. ‘에이다스테크니컬 북스’는 민족적으로나 성정체성으로 소수인 작가들한테 관심을 가지려는 의식적인 노력을 하고 있어요. 그런 사람들의 작품들 같이 읽으려고 노력하죠. 『라군 Lagoon』은 ‘에이다스테크니컬 북스’에서 강력히 권했던 책이라 빨리 번역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또 다른 책이 있다면요?
아무래도 외국어로 된 작품은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다 보니까, 저한테는 이미지가 있는 책들이 훨씬 도움이 되는데요. ‘애런델 북스’에서 추천받은 『다 끝나 간다 This thing is about to end』는 분위기로 압도하는 책이었어요. 전체적인 분위기가 굉장히 우울하고 약간 비애가 느껴져요.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감옥에 간 엄마와 아빠의 이야기인데요. 미국 독립 출판의 또 다른 특징이 지역 작가와의 유대가 강하다는 거예요. ‘애런델 북스’에서 운영하는 출판사 ‘채트윈 북스’도 시애틀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작가들을 전격적으로 지원하고 그들의 책을 출간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분위기가 있거든요. 『다 끝나 간다 This thing is about to end』도 시애틀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가 쓴 책이라서 잘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진이랑 같이 있기 때문에, 모국어가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도 조금 적지 않을까 싶어요.
맺음말에서 들려주신 이야기가 오래 기억에 남았어요. 출판계를 떠나 시애틀로 가신 후에 ‘서점, 존재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되셨다고요.
저는 20년 넘게 출판업으로 먹고 살았던 사람이라, 책을 읽고 그것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쓰는 것이 자아정체성의 일부를 이루고 있었어요. 이제 그런 일을 하지 못하고, 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좌절도 있었고요. 한편으로는 ‘나는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니까 고고하게 정신적인 노동을 할 거야’라는 식의 태도가 어느 정도 마음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더 책을 읽지 못하겠더라고요. ‘책을 읽고 있는 동안에는 난 딴 사람이고 이게 진짜 나야, 이런 하찮은 일을 하고 있는 나는 내가 아니야’라는 식으로 생각할까 봐 두려웠어요.
그렇지만 다시 책을 읽게 되셨죠?
원고 마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책을 읽어야 했어요(웃음). 손보미 작가의 『디어 랄프 로렌』 이었는데요. 손보미 작가는 약간 현실하고 괴리된 것 같은 이미지를 품고 있잖아요. 『디어 랄프 로렌』 자체도 약간 그런 느낌이고요. 다른 지역의 전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데, 그 책을 읽고 있는 동안 ‘왜 나에게 책이 중요한 것이었던가’ 하는 걸 깨닫게 됐어요. 그 전에는 현실에 압도돼서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을 볼 때도 기능적인 부분만 보게 됐거든요. 그 사람과 내가 맺는 관계에서, 그 사람이 기능적인 역할을 제대로 못하면 화가 나는 거예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그리고 내 문제가 너무 커서 다른 사람들의 문제가 너무 사소하고 하찮아 보이는 거예요. ‘나는 더한 것도 해’ 이런 마음이 드는 거죠.
『디어 랄프 로렌』 이 변화를 가져왔나요?
책을 읽는 동안에는 나의 삶도 조금 떨어져서 보게 되고, 다른 사람의 다면적인 모습을 보게 됐어요. 나와 맺는 기능적인 관계가 아니고요. 『디어 랄프 로렌』 은 누군가의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이지만, 진실을 찾아갈수록 진실이 와해되는 구조잖아요. 그런 것도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생각돼요. 그 책을 보는 동안에 제 삶도 조금 떨어져서 보게 되고 다른 사람의 삶도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는 효과가 생겼어요. 그러면서 사람이 조금 착해지고 좋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실제로 경험하신 바를 예로 든다면요?
저희 주방에서 일하는 친구가 몽골에서 왔어요. 예전에 그 친구를 볼 때는 너무 느리고, 게으르고, 일을 깔끔하게 못하는 게 화가 났어요. ‘저 친구를 자르고 내가 할까’ 하는 생각이 들고요(웃음). 그런데 어느 날 그 친구가 부엌 뒷문에 기대서 바깥을 하염없이 보고 있는 거예요. 원래 그러고 있으면 안 되고 설거지를 해야 되는데(웃음). 그래서 제가 뭘 보고 있냐고 물어보니까 ‘하늘’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문득, 그 사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저 사람이 살았던 데는 몽골 어디쯤일까, 저 사람이 보았던 것은 몽골의 하늘일까, 몽골의 초원일까, 저 사람도 거기에서 꾸었던 꿈이 있겠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그게 굉장히 피상적이고 상대를 객체로 놓고 생각하는 거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주방에서 일하는 직원으로서 제대로 기능을 하고 있는가 아닌가를 떠나서, 그 사람을 이해하게 만드는 주변적인 생각들이 떠오른 거잖아요.
책을 읽지 않았다면 달랐을까요?
내가 속하지 않은 세상 혹은 볼 수 없는 세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을 읽지 않고는, 그렇게 되기가 되게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군가 ‘이렇게 바쁘고, 이렇게 현실이 압도적이고, 심지어 책보다 더 재밌는 게 이렇게 많은데, 왜 책을 읽어야 합니까?’라고 묻는다면, 그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바쁜 일상에서 책읽기를 위해 짬을 낸 사람들에게 “온라인 서점이 아닌 오프라인 서점이 더 좋은 이유를 설득할 수 있을까” 고민하셨다고요. 이제는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으세요(웃음)?
음... ‘책을 읽으면 좋아요’라는 이야기를 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오프라인 서점에서 사서 보시라고 제안할 수는 있을 것 같지만 ‘여건이 안 된다면 굳이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라고 이야기할 것 같아요. 반드시 오프라인 서점이 아니어도 되는데요. 오프라인 서점에 가면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서점에서 만나는 직원,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혹은 ‘당신이 무언가를 물어보면 난 대답해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마음으로 나를 환대해주는 사람들과 만나는 경험이 있는 거죠. 그게 책을 읽는 것과 똑같은 효과를 낼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이 책이 과연 어떤 독자에게 어떤 의미가 될까?”라고 자문하셨는데요. 답은 찾으셨어요?
내가 책을 통해서 혹은 어떤 것을 읽는 행위를 통해서 얻었던 모든 즐거움과 모든 의미를 당신도 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서점이 할 수 있고, 하고 있다는 거고요. 그렇게 이야기하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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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서점이현주 저 | 유유
요즘 같은 세상에 오프라인 서점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살아남은 요령은 무엇일까,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서점 사람들의 고민이 따뜻하고도 호기심 어린 시선과 함께 녹아 있다.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