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백수로 산다는 것은…
누군가 그러더라고요. “너무 오래 살 것에 대비하라”라고. 정말 이제는 어떤 즐거움으로 생의 허무함을 해소할 것인가를 화두로 삼아야 할 것 같아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18.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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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는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연암의 청년 시기와 요즘의 청년들을 서로 오버랩하며, 연암의 발자취로부터 배울 수 있는 ‘행복한 백수의 삶’을 일깨운다. ‘일, 관계, 여행, 공부’의 주제어로 청년의 삶을 구분한 뒤, 연암이 이들을 다룬 방식을 따라가며 그의 당돌한 자신감을 배우라 말한다.

 

이번에 새로 쓰신 책 제목이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입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백수’의 의미와 사뭇 다른 것 같습니다. 책에서 말하고 있는 ‘백수’는 어떤 의미인가요.

 

(책에도 나와 있듯) ‘백수’는 보통 ‘건달’과 함께 쓰이는 단어죠. ‘놀다, 무용하다, 잉여적이다’ 하는 이미지를 씌워 대체로 부정적으로 해석되어왔어요. 시대가 변하면 단어의 의미도 바뀌어야 한다고 봐요. 청년 백수만 150만 명이라는 마당에 그런 개념을 되풀이해서야 곤란하지 않을까요. 지금 청년 백수들이 겪는 가장 큰 상처가 그런 이미지 때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백수’는 직업이 없는 게 아니라 스스로 경제활동을 운용하는 사람입니다. 정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백수는 드물어요. 소일거리라도 합니다. 다만 정규직에 매이거나 어떤 고정된 직장에 출퇴근을 하지 않을 뿐이죠. 일주일이라는 리듬에 갇혀서 주 5일이냐 6일이냐를 고심하는 것이 아니라, 계절이나 1년 단위, 혹은 3년, 5년, 10년 단위로 리듬을 조율하는 거예요. 1년 열두 달 365일 내내 일주일이라는 분절에 맞춰 일하는 잔혹하고 지루한 리듬은 근대 이후 자본주의와 함께 정착된 것일 뿐, 결코 인류의 자연스런 본성이 아니란 생각이예요.

 

스스로 백수를 자처하며 ‘대한민국 고전평론가 1호’라는 직업을 ‘창직’하셨다고요. 그 사연이 궁금합니다.

 

20대에는 요즘 청년들처럼 그냥 백수 기간으로 살았고, 30대 중반엔 박사학위를 받고도 대학교수가 되는데 실패했죠. 그래서 결국 중년 백수가 되었고 해서 고전평론가라는 직업을 아예 만들어 버렸죠. 그런데 혼자서만 고전을 공부하자니 너무 심심하고 외로워서 공동체를 꾸릴 생각을 했어요. 예전에 ‘수유 너머’라는 인문학 공부 공동체를 만들었었죠. 그러면서 집필활동도 시작했고요. 그 뒤 우여곡절을 거쳐 현재는 ‘감이당(&남산강학원)’이 본거지가 됐어요. 2080세대가 함께 꾸려가는 ‘대중지성 네트워크’라 생각하면 됩니다. 강의도 듣고, 밥도 같이 먹고, 당연히 책도 같이 읽고. 이게 세대 간에 소통하는 방법이죠.

 

그런데 막상 공동체를 꾸리고 나니까, 나 같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더라고요. 청년 백수, 중년 백수, 노년 백수 등등. 그래서 이럴 바에야 아예 백수들에 의한, 백수를 위한, 백수의 공동체를 만들면 어떨까도 생각했습니다. 역시 백수들의 주요 활동은 ‘읽고 쓰고 말하기’죠. 오래 하다 보니 그것으로 밥벌이도 하고 수많은 벗들을 만나고 계속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번 책에도 역시 ‘연암 박지원’이네요. 박지원을 ‘백수의 롤모델’로 만드셨는데?

 

그렇죠. ‘연암’은 나의 멘토이자 길벗이죠. 공자, 노자, 부처, 소크라테스… 등등 많은 사상가들 역시 직업적으로 말하면 결국 ‘백수’예요. 정규직 진입에 실패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노동 자체를 거부했기 때문이죠. 조선의 사상가 중에선 연암이 바로 그랬어요. 사람들은 잘 모르는 사실이죠.

 

연암은 입신양명의 길을 뿌리치고 자유인의 길을 선택했어요. 노동과 부귀에서 벗어난 자유인, 이게 바로 백수죠. 스스로 선택했기 때문에 결핍이나 콤플렉스가 없었어요. 오히려 누구도 가지 못한 길을 창조했죠. 백탑청연이라는 우정과 지성의 네트워크를 만들었고, 소품문, 북학 같은 새로운 사상적 조류와 문체를 창안해냈습니다. 저도 막상 중년 백수가 되니까 연암과 비슷하게 살 수밖에 없더라고요. 작년(2017)말 즈음 출판사의 제안이 있었어요. 편집자가 30대 초반의 청년이었는데, 자신도 20대에 백수시절을 보냈다면서 ‘연암의 청년 시기’를 바탕으로 청년 백수들이 영감을 얻게 하는 그런 책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어요. 기획서를 받고 프레젠테이션을 듣는데 ‘왜 이 생각을 내가 못 했지’ 싶더라고요. 제가 그랬듯이 우리 시대 청년들도 연암 박지원과 좋은 벗이자 멘토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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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면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일단 ‘정규직, 안정, 꿈’이라는 절대적 기준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해요. 4차산업혁명의 시대입니다. 어떤 변화가 어떻게 올지 아무도 몰라요. 지금 청년들은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세대고, 민주화 세대의 후배들이어서 그런지 그들의 가치를 고스란히 주입 당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감이당에 중장년 백수도 많아요. 정규직에 온몸을 불사르고 자식양육에, 부모부양에 모든 인생을 헌신했지만 깊은 상처를 입고 삶에 대한 공부를 하기 위해 찾아 온 거죠. 그런데 청년들이 다시 그 코스를 밟을 걸 생각하면 참 안쓰러워요. 이전 세대와는 다르게 살기 위해선 무엇보다 노동과 화폐가 지배하는 삶의 사이클에서 과감히 탈주하는 시각이 필요해요.

 

자신의 신체리듬에 맞는 노동을 구사하는 ‘프리랜서’로 거듭나야 하죠. 노동의 휴지기에 자신이 원하는 활동을 하는 거예요. 책도 읽고, 사람을 만나 관계를 확대하고 새로운 장소로 길을 떠나는. 요즘 청년들은 그래도 여행을 많이 다니더라고요. 하지만 맛집 찍고, 명소 찍고…. 그런데 거기서 그치면 안 돼요. 새로운 삶을 관찰하고, 대화하고, 경험하고 돌아와야 해요. 이걸 정확히 알고 싶으면 바로 ‘열하일기’를 참조하시라 그겁니다. 어쨌든 여행을 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운 문물을 눈여겨보고 하는 경험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야 해요. 


그러다 보면 관계도 늘어나요. 같은 주제로 고민하는 친구들, 같은 사상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무리를 이룰 수 있어요. ‘관계의 기예’를 닦아야 하는 이유죠. 혼자서만 있으면 ‘유머’를 잃어버려요. 자기만의 방에서 나와 광장을 만나고 대화를 쏟아내야 해요. 그래야 우울감도 덜어내고 자존감이 높아질 수 있어요. 연암이 그랬고요.

 

관계의 기예, 여행의 기술도 결국 공부에서 나와요. 요즘 TV에서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을 봐도 웃음과 지성을 결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죠. 우리나라의 입시 일변도 경쟁 체제에서 ‘공부’라는 단어도 이미지가 많이 왜곡된 게 사실이에요. 공부는 인생과 세계에 대한 탐구이고 절대 따분하고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단지 책을 읽는 것만이 아니고 삶의 모든 영역이 다 공부라 할 수 있어요. 그러면 공부처럼 재밌고 즐거운 활동이 없습니다. 백수라면 그 맛을 꼭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노동’에 관한 장에서는 노동과 일과에서 과감히 탈주하라고 말합니다. ‘노동’을 무작정 부정하고 있는 것 같진 않은데요. 기존의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백수는 미래다!”라는 구호를 풀이하면, “이제 누구나 백수 기간을 지날 것이다”란 뜻이에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거죠. 직장인도 결국 백수 기간을 준비해야 해요. 책의 1장에서도 언급하고 있다시피 4차산업혁명은 노동의 종말을 예언하고 있어요. 인류가 노동으로부터 해방되는 걸 이야기하고 있죠.

 

예컨대, 감이당에 찾아오는 정규직 청년들은 끝없이 퇴사를 꿈꿔요. 누군가 새해 청년들의 바람 1순위가 ‘취업’인데, 2순위가 ‘퇴사’라고 하더군요. 그냥 우스갯소리라 하더라도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어요. 막상 정규직이어도 절대로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죠. 누구나 자유인을 꿈꾸거든요. 당장 자리를 박차고 나오라는 뜻은 아녜요. 하지만 정말 자신이 행복한지는 스스로 물어볼 필요가 있죠.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은 관계가 메마른 청년들이 많아요. 어떤 점에선 백수보다 더 불안해 보이기도 합니다. 고민이 많은데 어디 가서 속 편히 이야기할 곳이 없는 거예요. 퇴근하면 저녁이고…. 그래서 술을 먹거나, 게임을 하거나 하는 일과로 하루를 마무리 짓죠. 무언가 ‘중독될 거리’를 찾는 것 같아요. 우정을 나누고 지성을 연마할 관계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노동에서 벗어나라고 그냥 빈손으로 살라는 뜻은 아녜요. 스스로 노동의 리듬을 조정하라는 이야기죠. 연암도 말년에는 직업을 가져요. 모든 노동을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자신의 리듬에 맞는 노동으로 주체적인 설계를 하라는 거죠. ‘정규직’에 목매지 말라는 뜻이고요.

 

책에서는 ‘혼밥’, ‘혼술’이 위험하다고 하셨는데 요즘 청년들에겐 아주 익숙한 문화거든요.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혼자’가 위험한 이유는 바로 ‘소통능력’을 상실하기 때문이에요. 연암도 우울증을 앓았는데 자신이 해결책을 찾아요. 바로 사람을 만나는 거죠. 무작정 길을 떠나고 그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자유롭게 관계를 맺어요. 그러면서 이야기가 생겨나고, 또 대화 중에 치유를 얻고 하거든요. 그걸로 또 글을 쓰고…. 이 과정이 아주 중요하다는 거예요. 일상의 소소한 사건들로 이뤄진 서사가 생겨야 활력도 생겨나요.

 

더 중요한 건 그 속에서 ‘유머’가 생겨난다는 사실이에요.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요. 우리 어릴 때 생각해보면 돼요. 골목에서 뛰어 놀다 보면 장난이 심한 친구도 있고, 별 괴짜짓을 하는 친구도 있어요. 그렇게 뒤엉켜 놀다 보면 분명히 나중에 어른이 돼서도 떠올릴 만한 에피소드가 생기죠. 쉽게 말하면, 사람들과 어울려야 스토리가 탄생한다는 겁니다. 

 

요즘 청년들의 문화 중에 ‘소확행’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아주 중요한 관점의 변화인 것 같아요. 일상의 사소한 장면을 즐겁게 만드는 데서 행복이 시작되는 거거든요. 식사는 누구에게나 고정된 일과고 그렇기에 아주 소소한 장면이죠. 그 장면을 즐겁게 만드세요. 그러면서 수많은 대화를 쏟아내야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도 늘어나죠. 혼밥, 혼술을 하다보면 목소리도 잠기고, 대화 자체가 불가능한 신체가 될 수 있어요. 인생은 누군가를 만나 웃고 떠드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에필로그에서 ‘일하지 않아도 100세까지 산다는 것은 인류사의 축복’이라 밝혔어요. 청년들에게 백세 백수 시대에 맞는 생애 전략을 세운다면 한마디로 조언할 수 있을까요?

 

누군가 그러더라고요. “너무 오래 살 것에 대비하라”라고. 정말 이제는 어떤 즐거움으로 생의 허무함을 해소할 것인가를 화두로 삼아야 할 것 같아요. 항간의 인문학 열풍이 바로 이런 점을 증명하는 거예요. 옛날부터 사람들은 시간이 남으면 광장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해요. 정치, 경제, 그리고 삶에 대해 사유하고 그것을 나누는 것. 결국 요즘 말로 표현하면 ‘콘텐츠’라는 거예요. 유튜브, SNS 스타들이 탄생하는 것도 마찬가지죠. 자신만의 중심 생각을 가지고 그 위에 ‘웃음’을 더하려 하죠. TV에서 나오는 예능프로들도 마찬가지예요. 예전처럼 그냥 웃기는 것보다 지식을 나누고 조금 더 깊이를 더하는 ‘앎’을 함께 내놓기 시작하죠.

 

지혜를 쌓는 즐거움을 조금 알았으면 해요. 무작정 화폐와 소비를 따라가는 삶은 결국 더 큰 허무와 마주치게 될 뿐이에요. 안타까운 일을 당한 연예인들이나, 갑질 등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기업인들을 보면 정말 ‘돈이 다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이제는 돈이 많은 것보다 함께 모여서 즐겁게 분위기를 이끌 수 있는 사람이 진정 능력자로 인정받는 시대가 될 거예요. 사람과 사람, 마음과 마음, 사람과 사물 등을 연결할 수 있는, 다시 말해 네트워크를 꾸릴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한 시대죠. 바로 연암이 그랬듯이.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고미숙 저 | 프런티어
우리가 맞이해야 할 잉여 시대는 벌써 코앞에 왔지만 그것을 활용하며, 어디서든 당당하며 적절한 무게감과 끝없는 위트를 지녔던 ‘조선 백수’ 연암에게 헬조선에 생존하는 지혜로운 방법을 배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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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