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스플래쉬
나는 책을 꽤 여러 권 낸 저자다. 잘된 책도 있고 잘 안된 책도 있다. 여기서 ‘잘된’이란 다양한 의미다. 미디어의 좋은 리뷰와 관심을 받은 책도 잘되었다고 할 수 있고, 많이 팔려서 베스트셀러 비슷한 것도 잘 된 것, 조금씩이지만 몇 년 동안 죽지 않고 꾸준히 판매가 이어지는 생명력을 갖는 것도 잘된 경우라 할 수 있다. 어찌 되었건 세상에 책을 낸 다음 독자의 반응이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인터넷서점의 판매 지수를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리뷰가 올라오면 별점과 내용을 읽어본다. 이런 리뷰는 상대적으로 호의를 가진 독자들이 써주는 것이 더 많아서 우호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 솔직한 내용을 보고 싶으면 블로그를 검색해본다. 행여 지뢰와 같은 악평을 만날 위험이 있지만 그 유혹을 뿌리치기는 힘들다. 역시 대개는 좋은 평이고, 주관적이고 솔직한 이야기들을 볼 수 있어 저자로서 보람을 느낀다. 그러나 열 개에 한 개의 빈도로
“시간이 아까웠다”
“이런 글은 나도 쓴다”
“읽기는 쉽지만 깊이가 없다”
는 취지의 평을 만나고 만다. 그 전까지 기분 좋게 읽었던 9개에 대한 기억은 깡그리 사라져버린다. 마음속에서 어떤 분노가 차오르는 걸 느낀다.
‘네가 글을 써 봤어?’
‘글을 쉽게 읽히게 쓰는게 얼마나 더 어려운 일인지 알아?’
‘시간이 아까웠다고? 책을 안 봤으면 그 시간에 게임이나 했겠지. 사진을 보니 도서관에서 대여한 책이구만. 돈은 안 아까웠겠네. 구매자가 악평을 하면 내가 미안해라고 할 텐데, 빌린 책이군!’
나 자신이 유치찬란해진다. 저자의 알량한 자존심이 상하고, 모욕감을 느낀 것이다. 누가 나를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는 감정은 수치심을 함께 유발한다. 모욕과 수치심은 강한 분노를 잉태하는 요인이다. 이런 나의 감정적 기억을 더욱 천착해서 깊이 들어가서 인간의 내면 심리를 낱낱이 들추는 소설을 한 권 만났다.
이기호의 소설집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에 수록된 첫 단편소설 ‘최미진은 어디로’다. 소설은 소설가의 1인칭 시점이다. 글이 써지지 않으면 모든 저자는 인터넷을 하염없이 돌아다닌다. 이 소설가도 중고나라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전에 출간한 장편소설을 염가에 판매하는 걸 발견했다. ‘제임스 셔터내려’라는 회원이 여러 권의 책을 올렸는데 그의 소설책은 가장 싼 그룹3에 속해 있었고, 하물며 ‘다섯 권 구매 시 무료 증정’ 대상이었다. 책에 대한 짧은 소개글은 “병맛 소설, 갈수록 더 한심해지는, 꼴에 저자 사인본”이었다. 이 글을 읽은 소설가는 왼손에 힘이 들어가고, 손등엔 퍼런 힘줄이 드러나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잠이 오지 않아 잠든 아내를 깨워 모욕죄에 해당하지 않냐는 하소연을 하다가 “인터넷은 그만하고 소설이나 쓰라고! 소설을 안 쓰고 있으니 그런 것만 보이지!”라는 핀잔을 듣고 만다. 다음날에도 분이 풀리지 않은 소설가는 결국 그에게 문자를 보내 5권을 구매하겠다고 연락하면서, 덤으로 자기 소설을 무료 증정 받겠다고 하고, 더욱이 택배가 아닌 직거래를 원했다. 아마도 광주 쯤에 살고 있던 소설가는 판매자를 만나기 위해 KTX를 타고 서울로 와서 버스를 타고 일산까지 가게 된 것이다. 결국 소설가는 그 판매자를 만나고야 말았지만 처음의 의도와 달리 그의 모욕감은 후련한 복수로 이어지면서 해소되지 못했고, 의외의 반전이 있는 판매자의 사연을 듣고 소설가는 더욱 복잡한 심리에 빠지게 된다.
김지운 감독의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보스 강사장은 자신의 내연녀 희수와 연애를 한 오른팔과 같은 부하 선우를 죽이려 한다. 이때 선우가 “말해봐요 저한테 왜 그랬어요?”라고 묻자 강사장은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라고 답한다. 이 대사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된다. 그만큼 한 사람에게 깊은 빡침을 동반한 쉽사리 해소되지 않는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바로 모욕감이다.
모욕은 내가 수치스럽다고 느끼는 것과 동반한다. 남들이 이런 나의 상황을 어떻게 볼지, 내 평판이 어떻게 될지가 수치심에서는 중요하다. 죄의식은 내 안의 판단기준에 의해 작동해서 ‘내가 이러면 안 되지’라는 마음을 불러일으킨다면, 수치심은 ‘아 쪽팔려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구나’라는 심리를 만든다. 그런데 이런 수치심을 내 행동이나 의도와 상관없이 느끼도록 타인이 내게 어떤 행동을 한다면 그때 인간은 ‘모욕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자기애는 심한 훼손을 입게 되고, 그로 인한 반발적 감정이 동반한 분노와 공격성은 이성으로 제어하기 어렵다. 이 소설에서도 소설가는 자기 소설이 병맛이고, 거기다 뭐 잘났다고 사인까지 하냐고, 거기다 덤으로 얹어주는 책 취급을 받자 이를 큰 모욕을 받은 것으로 여긴다. 그리고 몸으로 반응하고, 잠을 잘 수 없고, 배보다 배꼽이 큰 비이성적 판단을 하여 KTX를 타고 일산까지 직접 가서 판매자의 얼굴을 직접 보고야 만다. 인간은 모욕을 당했다고 여길 때 이렇게 비이성적이고, 감정적 반응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언스플래쉬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에는 7편의 단편소설이 실려있다. 용산 참사에서 경찰 진압용 크레인을 운행하려다가 하지 않고 돌아간 나정만 씨, 사채빚을 잘못 두 번 갚은 것을 돌려달라면서 하염없이 일인시위를 하는 권순찬 씨와 같이 다양한 우리 사회의 모순적인 상황에 처한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측은지심에 남을 돕는 것과 나를 지키려는 이기심, 사회적 정의를 지키려는 용기와 개인의 안위를 우선하기 위한 순응적 태도, 정체성 속의 윤리적 선을 지키는 것과 법률적 죄책감과 합리화 사이의 갈등을 이 소설은 다루고 있다. 그 누구라도 이런 갈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언제든지 그 안에서 흔들리고 고민하게 된다는 것을 낱낱이 보여준다. 지금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을 염치와 수치심, 거기서 비롯되는 모욕감, 삶을 지탱하는 윤리의식의 얄팍함을 주제로 그려내고 있다. 어떤 상황에 처하면 누구라도 그러지 않겠냐는 말을 소설가 이기호는 하고 있는 것 같다.
책의 말미에 저자의 말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자네 윤리를 책으로 소설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나?
책으로 소설로 함께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내가 보기에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네.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것이 우리가 소설이나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유일한 진실이라네.
이 말을 하려고 여기까지 왔다네.
진실이 눈앞에 도착했을 때, 자네는 얼마나 뻔하지 않게 행동할 수 있는가?
나는 아직 멀었다네”
윤리, 부끄러움, 진실에 대한 생각들,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덮으면서 어떤 마음을 갖게 될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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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이기호 저 | 문학동네
‘평범한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줄곧 써온 그가 왜 새삼 그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고, 그들 사이로 몸을 부대끼며 들어갈 수밖에 없었는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이 정연
2018.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