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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물거리는) 산책

감자튀김, 꿀떡 혹은 유부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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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걸 먹으며 산책하곤 한다. 그게 뭐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가장 먹고 싶은 것을 고른다. (2018. 0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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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의 일이다. 이른 아침, 잠에서 깼고 갑자기 감자튀김이 먹고 싶었다. 침대에서 꿈틀거리다가 참을 수가 없어 밖으로 나왔다. 집에서 가까운 패스트푸드점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들어가 감자튀김 라지 사이즈를 주문했다. “더 주문할 것은 없으세요?” 주문받는 점원이 물었고 나는 “네. 감자튀김만요.” 하며 괜히 빨대함을 만지작거렸다. 빨간 박스에 담겨 나온 감자튀김을 받아 가게에서 나왔다. 바로 집으로 가려다가 아침 공기가 좋길래 감자튀김을 하나씩 꺼내 먹으며 동네 어귀를 빙빙 돌았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눈을 뜨자마자 감자튀김이 먹고 싶었다. 아침마다 패스트푸드점에 갔고 그때마다 산책을 했다. 어느 날은 감자튀김을 주문하며 커피도 주문했다가 뒤늦게 손이 두 개 뿐이란 걸 알아차렸다.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또 다른 손에 감자튀김을 들었더니 감자튀김은 입으로 꺼내 먹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매장으로 돌아가 의자에 앉아 먹었는데, 이상하게 그 아침에 매장에서 먹는 감자튀김은 맛이 없었다. 그다음부터 커피는 감자튀김을 다 먹은 뒤에 샀다.

 

그렇게 아침에 무엇인가를 먹으며 산책하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감자튀김이 질리면 메뉴를 바꿨고, 그 음식이 지겨우면 다른 걸 골랐다. 이번 봄에는 주로 꿀떡을 먹었다. 지난봄이나 지지난 봄에도 자주 등장했던 메뉴다. 배가 고픈 상태로 종로를 걷다가 떡집을 하나 발견한 적이 있다. 떡집은 시장이나 아파트 상가에 있는 거로 생각했는데, 빌딩이 많은 번화가에 낡은 모습 그대로 있었다. 여러 번 지나다녔던 길인데 떡집을 본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동안 왜 안 보였지.’ 하며 좌판의 여러 떡 중에 꿀떡을 골랐다. 다시 거리로 나왔고 그 자리에서 비닐을 뜯어 떡을 먹으며 걸었다. 봄이어서 그런지 유독 달았고 색도 선명했다. 그때부터 종종 아침 산책 메뉴로 꿀떡이 등장한다. 지금 사는 집은 인기 있는 식당이나 카페가 즐비한 동네에 있는데, 그 틈에도 의젓하게 자리를 지키는 떡집이 하나 있다. 이번 봄에는 거기에서 자주 꿀떡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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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역 근처에 살았던 적이 있다. 상수동은 조금만 걸으면 한강이 나오기에 아침 산책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동네다. 거기다가 맛있는 유부 김밥을 파는 식당이 있다. 그 동네에 살 때는 자주 김밥과 그 앞 카페의 커피를 사서 상수나들목 쪽으로 갔다. 굴다리를 지나 한강이 보이면 김밥을 꺼내 포일을 벗겼다. 커피는 겨드랑이와 옆구리 사이에 잠시 껴 두고(감자튀김을 먹던 시절에는 이 기술이 없었다.) 김밥을 하나씩 집어 먹었다. 목이 마르면 겨드랑이에서 커피를 꺼내 마셨다. 그렇게 걷다 보면 어김없이 산책을 끝낼 시간이 왔다. 기름 묻은 손끝을 어쩔 줄 몰라 어정쩡하게 펼쳐 두고, 한 조각 남은 감자튀김이나 마지막 꽁다리 김밥을 보며 잠시 아쉬워할 즈음이다. 집 쪽으로 돌아간다.

 

뭔가를 먹으며 아침 산책을 하는 일을 왜 자꾸 하게 되는 걸까. 이유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런 식으로 오물오물거리며 걷다 보면 잊어야 할 것들을 잊게 될 때가 있다. 운이 좋으면, 기억해야 할 것을 발견하기도 하고.

 

“하지만 자살하고 싶진 않았다. 그녀는 세상과 사람들을 너무 좋아했으므로. 오후 늦게 천천히 산책을 하면서 주변 광경을 관찰하길 좋아했다. 초록빛 바다, 노을, 해변에 널려 있는 조약돌을 좋아했다. 가을에 나오는 빨간 배의 단맛, 겨울밤 구름 사이에서 빛나는 둥근 보름달을 좋아했다. 침대의 포근함, 한번 잡으면 멈출 수 없이 읽게 되는 훌륭한 책을 좋아했다. 이런 것을 즐기기 위해서 영원히 살고 싶었다.” 

- 줌파 라히리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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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박선아(아트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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