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스플래쉬
6개월 전에 <오줌을 참으면 방광이 커질까?(http://ch.yes24.com/Article/View/34318)>라는 글을 썼습니다. 결론은 방광이 오히려 작아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방광은 대부분 ‘배뇨근’이라는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억지로 오줌을 참으면 배뇨근은 오줌을 밀어내기 위해 더 강하게 수축하지요. 아령을 열심히 하면 이두박근이 발달하듯, 근육은 수축을 반복하면 커지고 힘이 세집니다. 배뇨근이 커지면 방광 내부 공간은 줄어들고, 힘이 너무 세지면 강한 수축을 일으키기 때문에 오줌을 참기가 점점 힘들어집니다. 심하면 요실금이 생깁니다. 요즘은 너도나도 커피를 즐기는 시대지요? 커피는 이뇨작용이 있는데다 방광 수축을 일으킵니다. 화장실에 자주 갈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화장실에 자주 가기가 불편해서, 또는 방광을 ‘길들이기 위해’ 소변을 참으면 오히려 점점 화장실에 자주 가게 되고, 소변을 참기가 힘들어지며, 심하면 소변을 지리게 됩니다. 그런데도 일반인을 물론 드물지만 의사들까지도 소변을 참으면 방광이 커진다고 믿는 분들이 아직도 있으니 딱한 노릇입니다. 소변이 마려우면 바로 화장실에 가고, 되도록 규칙적으로 소변을 보는 것이 좋습니다.
비슷한 문제를 생각해봅시다. 대변을 참으면 직장이 늘어날까요? 지난 글에서 설명했듯이 소화관은 입-식도-위-소장-대장의 순서로 이어집니다. 정상적으로는 섭취한 음식이 대변으로 나오는 데 약 24-48시간이 걸리지만, 변비가 심한 어린이는 100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합니다. 대변의 형태와 크기는 대장 안에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대장의 주기능은 물을 흡수하는 것이므로 대장에서 오래 머무를수록 대변은 점점 마르고 딱딱해집니다. 대장의 끝부분을 직장(곧은창자)라고 하는데, 직장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대변이 직장에 도달하여 밖으로 배출될 준비가 되었다고 알리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직장은 저장기관이 아니라 감각기관에 가깝습니다.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 눈이나, 멋진 음악을 듣는 귀나, 꽃의 향기를 맡는 코처럼 ‘응가가 여기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직장도 나름 예민한 감각기관입니다. 눈을 빛을, 귀는 소리를, 코는 특정한 분자들을 감지하듯, 직장은 ‘늘어남’을 감지합니다. 대변이 안에 들어와 어느 정도 이상 늘어나면 직장은 “때가 되었다”는 신호를 뇌와 척수로 보냅니다. 뇌와 척수에서 지금 성문을, 아니 항문을 열어도 좋다는 결제가 나면 항문 괄약근과 골반 아래쪽의 다양한 근육들이 이완되어 항문을 활짝 열고 대변을 몸 밖으로 밀어냅니다. (아, 시원해!)
동물들은 직장에 대변이 도달하자마자 거침 없이 쏟아냅니다. 하늘을 나는 조류는 몸무게를 줄이는 것이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에 날면서도 대변을 보지요. 소나 말, 염소도 비슷합니다. 개나 고양이 등 사회화된 동물들은 어느 정도 조절하지만 역시 오래 참지는 못하고 대개 매일 식후에 대변을 봅니다. 인간은 어떤가요? 우리는 까다롭지요. 신호를 지긋이 억누르면서 편안하고 쾌적한 곳에서, 남의 방해를 받지 않고, 충분한 시간 동안 느긋하게 일을 볼 수 있을 때까지 기회를 기다립니다. 때로는 스마트폰이나 잡지도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이런 일이 자꾸 반복되면 직장이 조금씩 늘어난다는 겁니다. 직장은 ‘늘어남’을 감지하는 감각기관인데, 어지간히 늘어난 상태가 되어도 느끼지 못하거나 무시해 버립니다. 물론 직장도 대변을 밀어내야 하기 때문에 근육이 있지만 방광처럼 괄약근에 저항하여 힘을 키우고 큰일(?)을 도모하기에는 애초에 세력이 너무 빈약합니다. 만성적으로 늘어난 상태에 저항할 힘이 없으니 순응해 버립니다. 장벽에 긴장도가 떨어지면서 힘이 없어지지요. 이렇게 되면 직장 안에 가득 찬 대변을 한번에 밀어내지 못하고 찔끔찔끔 보게 됩니다. 변비가 심한데 화장실을 자주 가니 스스로 변비가 아니라고 생각하지요.
이런 문제가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는 것은 어린이들입니다. 왜 그런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모유나 분유를 먹던 아이들이 생우유와 고형식을 하게 되면 변이 굳어집니다. 게다가 이유기에는 자칫하면 야채나 과일을 적게 먹이게 되지요. 평생(?) 별로 힘을 쓰지 않고 부드러운 대변을 보던 녀석이 너무 굵고 딱딱한 변을 보느라 진땀을 흘리고, 용을 쓰고, 고통에 못 이겨 울음을 터뜨리고 나면 어떻게 될까요? 고비를 잘 넘기는 아이들도 있지만 일부 아이들은 대변을 참는 습관이 듭니다. 단순한 고통-회피 반응이지요. 하지만 이게 버릇이 되면 변은 더욱 딱딱해지고 굵어집니다. 아이는 놀이에 집중하여 직장의 절박한 SOS 신호를 무시하거나, 식탁 밑, 소파 뒤 등에 숨어 얼굴이 빨개진 채 다리를 꼬고 항문을 조이며 변을 참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직장이 점점 늘어나면 아랫배가 거북하고, 소화도 잘 안 되고, 입맛이 떨어집니다. 만성적인 복통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크게 늘어난 직장이 바로 앞에 있는 방광을 누르면 수시로 오줌이 마렵고, 소변을 봐도 개운치 않으며(임신했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야뇨증이나 요로감염이 생기는 수도 있습니다. 어른들은 어린이만큼 심한 경우는 많지 않지만 아랫배가 거북하고, 입맛이 없는 등의 증상은 낯설지 않지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만성적으로 직장이 늘어난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오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니 그때까지는 1) 몇 차례 관장을 해서 직장에 가득 찬 변을 빼주고, 2) 완하제를 저용량으로 먹여 변을 보기 쉽게 해주며, 3) 규칙적으로 변을 보는 습관을 길러주어야 합니다. 어린이는 변을 참는지 어쩐지 알기 어려우므로 보통 아침 저녁 식후에 5분 정도 변기에 앉히는 방법을 씁니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지난 번 글에 썼듯 물을 충분히 마시고, 과일과 야채를 많이 먹고, 활발히 몸을 움직이는 생활습관을 들여야지요. 간혹 완하제를 쓰면 습관성이 생길까 봐, 또는 ‘자연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감을 느끼는 부모도 있습니다. 그러나 의사의 지시에 따라 사용하는 완화제는 습관성이 생기지 않으며, 안전합니다. 어린 시절 내내 대장에 변이 가득 찬 상태로 지내는 것 또한 ‘자연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지요. 오히려 자연적 운운하며 판매하는 유산균, 보조제, 생약 등이 훨씬 해로울 수 있습니다.
어른은 어떻게 하지요? 마찬가지입니다. 무엇보다 생활습관을 바꿔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변이 마려우면 오래 참지 말고 바로 보도록 해야 합니다. 화장실이 조금 쾌적하지 않아도, 상황이 조금 여의치 않아도 배변을 미루지 마세요. 스마트폰이나 신문은 잊어버리고요. 변기에 앉아 뭘 보면 오래 앉아있게 되어 치질이 생기기도 쉽습니다. 변비가 심하면 의사를 찾으세요. 생각보다 삶의 질이 크게 좋아집니다. 서양에서는 학생들이 변을 참지 않도록 쾌적한 학교 화장실을 만들자는 운동을 펼치는 곳이 많습니다. 얼마 전 서울시에서도 비슷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주 바람직한 일입니다. 기억하세요. 직장은 저장기관이 아니라 감각기관입니다. 감각기관은 예민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니 쾌변을 부르는 단 한 가지 습관이 있다면 그것은 변을 참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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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야뇨증과 변비 거뜬히 이겨내기스티브 호지스, 수잔 슐로스버그 공저 / 서울아동병원 의학연구소 역 | 꿈꿀자유
많은 환자들을 성공적으로 치료한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변비가 야뇨증은 물론 다양한 소변관련 증상을 일으키는 근본원이라는 사실을 설명해 문제를 해결할 쉽고 빠른 방법을 제시한다.
강병철(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대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소아과 전문의가 되었다. 2005년 영국 왕립소아과학회의 ‘베이직 스페셜리스트Basic Specialist’ 자격을 취득했다.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며 번역가이자 출판인으로 살고 있다. 도서출판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의 대표이기도 하다. 옮긴 책으로 《원전, 죽음의 유혹》《살인단백질 이야기》《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존스 홉킨스도 위험한 병원이었다》《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 등이 있다.
난쥘
2018.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