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하윤 “엄마들에게 그림을 소개하고 싶었어요”
미술과 친하게 지내고 싶지만 막상 다가가기 어려운 분들께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18.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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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박사 논문이 거의 마무리되는 와중에 임신했음을 알게 된 『엄마의 시간을 시작하는 당신에게』 의 저자 정하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이 밀려왔다고 한다. 새로운 생명과의 만남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그런데 원래 ‘나’의 계획은 임신이 아니라, 서둘러 학위를 마치고 일자리를 얻어 커리어를 쌓는 것이었다. 또한 출산과 육아로 사회적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의 모습도 주변에서 많이 봐왔다. 앞으로 진행될 미래를 단 하나도 예측할 수 없어 두려웠노라고 저자는 고백한다.

 

남편과 둘일 때는 계획적인 삶을 사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는데, 엄마가 되고나니 자신이 아닌 아이의 하루 일과에 맞춰나가야 한다는 것 역시, 심정적으로 쉽지 않았노라고 고백한다. 삶의 전반에 대한 결정권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고 말한다. 그때 그에게 말을 건넨 것은 그림들이었다. 엄마의 시간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그림을 보여주고 싶어서 이 책을 집필했다는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책 이야기에 앞서 우선 작가님에 대해서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대학교 때까지는 그림을 직접 그리다가 전공을 살짝 틀어서 지금은 남이 그린 그림에 대해 공부하고, 말하고, 쓰는 일을 하고 있어요. 다섯 살 딸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이고요. (웃음)
 
신간 『엄마의 시간을 시작하는 당신에게』 가 초판을 다른 책보다 많이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보름 만에 중쇄를 찍었습니다. 제목이 좋다는 독자들의 이야기도 많았는데 어떻게 지은 제목인지 궁금합니다.

 

"엄마들에게 보내는 그림"이라는 큰 틀로부터 제목 정하는 것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제 책이 출산부터 두 돌 정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보니 처음 엄마가 된 시간을 다뤘다는 것을 부각시켜서 "엄마의 시간을 시작하는 당신에게"라는 제목으로 지어졌고요. 사실 처음부터 누군가를 위로하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글에 대해 말하자면, 제가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일기처럼 써내려 간 것인데, 그런 이야기에 공감을 하고 또 위로도 받으시는 것 같아요. 누군가 다른 사람도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을 알면 어쩐지 위안이 되잖아요. "나도 똑같이 힘들었는데." 이런 마음이요. 글과 함께 삽입한 그림들은 워낙에 좋은 작품들이라 그 자체만으로도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진짜로 제가 지쳤을 때 다독여주고, 힘도 나게 해줬던 작품들이기도 하고요. 좋은 그림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잖아요. 그래서 독자분들이 작품을 보며 따뜻한 느낌을 받으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한국 여성주의 미술 1세대 작가 윤석남 선생님께서 이 책에 감동적인 추천사를 헌사하셨습니다. 작가님께서 직접 만나시기도 했는데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궁금합니다.


윤석남 선생님과 나눈 이야기 중 많은 부분이 여성에 대한 것이었어요. 당신이 결혼을 한 후 아내이자 며느리로 살면서 느꼈던 감정들, 작품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 윤석남 작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을 한국의 여성 예술가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작가님의 책장도 구경시켜주셨는데 여성에 대한 공부를 참 많이 하시더라고요. 진행 중이던 작업도 하나씩 설명해주셨고, 수장고에도 함께 가서 그간 하신 작업들을 살펴보게 해주셨어요. 윤석남 작가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의 여성 미술가들에 대해 더 많이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더 많이 연구되어야 할 작가들이 정말 많거든요. 그리고 참 멋진 노년의 모델을 볼 수 있어서도 감사했어요. 윤석남 작가님이 1939년생인데, 여전히 열정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시는 모습이 정말 멋있더라고요. 독보적인 위치에 오르면 자기 세계에 빠져 독선적이거나 고집스럽기 쉬울 것 같은데, 윤석남 선생님은 전혀 그렇지 않으셨어요. 많이 웃어주시고,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맞장구도 쳐주시고, 진솔하게 말씀해주시는 모습에서 진정한 대가의 포용력이나 여유도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표지에 쓰인 스키예르벡의 초상화가 강렬합니다. 표지에 이 그림을 쓰게 된 이유가 있는지요?


스키예르프벡은 제게 신선하게 다가온 작가였어요. 내가 '배운' 작가가 아니고, 정말 우연히 '발견'해서 '탐구'하고 싶었던 작가에요. 그녀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또렷한 그림이라 잊혀지지도 않더라고요. 단순하면서도 힘있고, 얼핏 보면 화보 같으면서도 엄연한 회화인 작품이라 묘한 매력도 풍겨요. 그래서 독자들에게도 이 작가를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이건 여담인데, 저희 딸도 스키예르벡의 작품을 알아보더라고요. 제 책 표지에 실린 자화상을 보고 난 며칠 뒤에 다른 스키예르벡의 작품을 봤는데, "엄마 책에 있는 그림이다!" 그래서 좀 놀랐어요. 스키예르벡의 스타일은 다섯 살이 볼 때도 이렇게 뚜렷한 건가 싶어서요. 모쪼록 책을 읽으시는 분들도 이 작가를 발견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주류'라고 말하는 서유럽과 미국의 백인 남성의 작품이 아닌, 그간 소외되어 왔던 작가와 작품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것은 기쁨이기도 하지만 의무라는 생각도 많이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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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특별히 애정이 가는 그림이나 글이 있는지요?


제가 쓴 글 하나하나가 다 소중하지만, 딱 하나만 고르라면, 쉬빙의 「천서」요. 이 글을 쓰면서 제가 느끼던 것을 가장 잘 압축하고 있어요. 제가 이렇게 미술 에세이를 쓴 것이 아이를 낳고 나서 논문을 쓰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거든요. 학계에 남으려면 계속해서 논문을 써야 하거든요. 그리고 논문을 쓰려면 자료 조사를 하러 이 나라 저 나라 도서관을 뒤져야 해요. 저 같은 경우는 특히 중국에 많이 갔어야 했고요. 그런데 아기가 있으니 예전처럼 못하겠는 거에요. 그 때 쉬빙의 「천서」를 다시 봤어요. 셀 수 없이 많은 현존하는 한자를 모으고, 거기서 획을 바꾸고 빼고 뒤집어서 전혀 새로운 가짜 한자를 만들고, 그 것을 하나하나 목각으로 파고, 종이에 찍는 이 지난한 과정을 그는 어떻게 버틴 걸까 궁금했어요.

 

게다가 쉬빙도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 작품을 만들었거든요. 저도 대학원을 막 마친 상황이었고요.  나는 이렇게 조급한 데 쉬빙은 어쩜 저렇게 느긋했을까 생각했어요. 그리고 일말의 초조함도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골방에 틀어 박혀 천천히 작업했다는 걸 보고 그 태도를 닮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쉬빙의 「천서」는 그래서 엄청 조급했던 제게 "괜찮아. 천천히, 할 수 있는 만큼, 지금 나의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야." 이렇게 말해준 작품이에요.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조금 편해지더라고요. 논문, 다른 말로는 실적에 대한 압박도 내려 놓게 되었고요. 그런데 사실 요즘에도 자주 봐야 하는 작품이에요. 여전히 하고 싶은 것은 매우 많아 마음이 달그락 거릴 때가 많거든요. 그래서 「천서」를 보며 "열심히 살되, 내 속도대로 가자."라고 마음을 다잡곤 해요.

 

그림을 어려워하는 이들에게도 친근하게 다가오는 에세이를 쓰셨는데요. 미술을 전공하신 분으로서 미술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 같습니다. 미술을 어려워하는 분들께 도움이 되는 말씀 부탁드립니다.

 

미술과 친하게 지내고 싶지만 막상 다가가기 어려운 분들께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저는 미술 작품과 관계를 갖게 되는 것이 사람을 사귀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해요. 누군가를 사귈 때도 그 사람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고, 또 그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미술 작품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작품에 대해 알려고 노력도 해야 하고, 또 작품 앞에서 시간도 보내야 해요. 그렇다고 작품과 친해지기 위해서 지식을 꼭 가져야 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마음으로 좋은 작품은 자연스레 알고 싶어 지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이 풍기는 느낌이 좋으면 그를 더 알고 싶어지는 것처럼요. 자연스럽게, 마음이 가는 대로. 그것이 먼저일 것 같아요.

 

우리가 미술사적으로 좋은 작품을 다 좋아해야 할 필요도 없다는 말씀도 드리고 싶어요. 저는 미술사를 전공하면서 이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데 시간이 좀 걸렸어요. 중요한 작품인데, 나는 좋아 보이지 않을 때, 나는 미술적 소양이 부족한 건가? 하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이젠 다르게 생각해요. 어떤 사람은 나와 코드가 잘 맞는데 어떤 사람은 잘 맞지 않을 때 있잖아요. 미술 작품도 마찬가지에요. 어떤 작품은 내게 와 닿고, 어떤 작품은 그렇지 않고요. 그건 내가 소양이 부족하다기 보다는, 나의 개인적인 취향인 거죠. 물론 지식이 쌓이면 예전에 안 좋던 작품이 좋아질 수 있어요. 반대의 경우도 있고요. 그러니 변화와 확장 가능성에 대해 마음을 열어 놓되, 지금 당장 모든 작품을 다 알고 좋아해야 하는 압박은 느끼지 않으시면 좋겠어요. 내 마음에 드는 작품을 먼저 찬찬히 사귀고, 점차 그 범위를 넓혀 가는 것을 권해 드리고 싶어요.
 
책을 쓰고 나서 작가님께 가장 달라진 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출간의 기쁨을 처음 맛본 것이 제일 큰 변화인 듯해요. 제가 책에도 인용한 책인 '빨래하는 페미니즘'의 저자 스테파니 스털이 아이의 학예회를 보는 것과 자신의 이름이 박힌 책이 출간되는 것은 전혀 다른 기쁨이라고 말했는데, 읽을 때는 그냥 그렇겠다 싶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 문장이 이런 뜻이구나 라고 깊이 공감해요. 그리고 글을 쓰는 데 있어 책임감도 더 생긴 것 같요. 내 글을 같은 전공을 하는 소수의 인원이 아닌, 다수의 사람들이 읽는다고 생각하니 글을 쓰는 데 무게감이 더해진 것 같아요. 그리고 연구자들 분 중에 대중적인 글쓰기를 하시는 분이 많은 편이 아니라 정말 공부 많이 하고 제대로 잘 말해야겠다고도 생각했고요.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지 않으면 거짓말이 되는 거고, 너무 어렵게 쓰면 미술에 대해 벽을 한 번 더 치는 격이 될 테니까요. 모쪼록 미술과 대중의 다리 역할을 잘 하고 싶어요.

 


 

 

엄마의 시간을 시작하는 당신에게정하윤 저 | 이봄
작품이 품고 있는 정적인 분위기에도 위로를 받지만, ‘육아에 지친 나처럼’ 그 어떤 이유에서든 휴식이 절실하게 필요한 여인의 모습에 더욱 위로를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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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시간을 시작하는 당신에게 #정하윤 작가 #그림 #엄마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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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sia82

2018.04.03

이 책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위로도 되고 유익했어요. 강추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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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