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버전 수면의 과학
가끔 걸치는 가방이나 며칠 안에 소진하는 여행경비로는 기꺼이 100만 원 가량 투자하면서 매일 사용하는 매트리스에겐 한없이 인색하게 군다. 그 절반 가격에도 난색을 표한다.
글ㆍ사진 김교석(칼럼니스트)
2018.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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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룸이든 어디든 홀로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해 독립했다. 당신이 요즘 사람이라면 식물도 한 가지 들이고, 수도권에 산다면 이케아에 가서 미트볼도 먹어보고 무슨무슨 ‘고리닷컴’들에 수시로 들락거리며 이런저런 물건들을 마련할 거다. 셀프인테리어 열풍 이후 꽤 많이 달라진 풍경이다. 그런데, 이런 흐름 속에서도 유독 침대 매트리스에 대한 인식은 보수적인 듯하다. 생활의 질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세간임에도 너무나 박하게 예산을 책정하고, 선택은 꽤나 조심스럽지 않게 내린다. 가끔 걸치는 가방이나 며칠 안에 소진하는 여행경비로는 기꺼이 100만 원 가량 투자하면서 매일 사용하는 매트리스에겐 한없이 인색하게 군다. 그 절반 가격에도 난색을 표한다.

 

가격만의 문제는 아니다. 거대한 몸집 때문인지 괜한 심적 부담감에 구매나 교체 등의 선택에 주저한다. 지극히 일상적인 물건이다 보니 소중함을 종종 잊기도 한다. 심지어는 도대체 언제 하게 될지도 모를 결혼을 빌미 삼아 제대로 된 침대 마련을 미루는 사람도 많다. 이렇게 혼자 살 때는 매트리스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결혼할 때는 잘 모르니까 백화점 입점 브랜드 위주로 찾는다. 한번 사면 버리기도 마땅찮으니 수명이 다 되어도 잘 바꾸지 않는다. 그렇게 우린 수십 년을 살아왔다. 그 사이 이득을 본 건 과점이 더욱 공고화된 우리 침대 시장과 불순한 저가 업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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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떤 침대를 골라야 할까. 우선 침대 구성에서 핵심은 매트리스다. 프레임은 저렴하고 가벼운 걸로 고르자. 너무 없어 보이지만 않으면 된다. 가구점에서 원목으로 된 좋은 침대를 사고 남는 예산으로 매트리스를 고르는 게 최악이다. 그리고 직사각 스프링 매트리스는 앞으로 머릿속에서 지워버리자. 우리나라야 스프링 매트리스 회사가 휘어잡고 있어서 그렇지 세계적으로는 폼 매트리스로 패러다임이 이미 넘어갔다. 유럽의 경우 폼 매트리스 사용인구가 60퍼센트 이상이고, 미국도 전체 시장의 10퍼센트를 지난 3~4년 사이 창업한 폼 매트리스 업체들이 점유했다. 물론 동남아 관광지 등에서 사는 천연라텍스도 제외한다. 천연이란 단어가 왠지 순수하게 느껴지지만 천연과 라텍스가 만나면 대체로 맹독성이란 뜻이다.

 

폼 매트리스의 시대가 열린 건 무엇보다 진일보한 제품이기 때문이다. 스프링 매트리스는 아무리 촘촘하게 만들어도 어쩔 수 없이 빈 공간이 생기기 마련인데, 속이 꽉 찬 폼 매트리스는 신체의 모든 곡면을 완벽하게 받쳐준다. 탁월한 온도 유지 기능, 무게 분산을 통한 편안한 움직임, 진드기 방지 등에서도 탁월하다. 초기 단점으로 지적된 통기성이나 가라앉는 듯한 현상은 일정 수준 이상의 브랜드 제품이라면 많은 부분 해소됐다.

무엇보다 가격이 현실화됐다. 지난 2014년 뉴욕에서 캐스퍼(Casper)라는 작은 회사가 인터넷으로 매트리스를 팔기 시작했다. 침대나 매트리스는 대리점, 가구점에서 판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온라인을 통해 직접 판매하는 비즈니스모델을 통해 고가의 폼 매트리스 가격을 대폭 낮췄다. 이 스타트업 기업은 단순히 좋은 물건을 싸게 파는 게 아니라 매트리스를 택배로 받는 새로운 경험까지 제공했다. 매트리스의 부피를 기능 손상 없이 최소화하는 데 성공한 캐스퍼는 매트리스를 둘둘 말아서 1미터 크기의 종이박스에 담아 배송한다(맨해튼 내에서는 자전거로 배송해준다). 포장지를 뜯고 펼치면 얼마 뒤 매트리스가 원래 모양으로 부풀어 오른다. 나름 신기한 경험이다. 게다가 흰색 바탕에 파란 글씨가 써진 박스부터 일단 예쁘다. 그래서 배송된 박스에 걸터앉아 찍은 사진을 인스타에 올리는 자기들만의 유희를 만들어냈다. 출시 당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기존 대형 업체들은 스타트업 기업의 재밌는 아이디어 정도로 치부했다. 그러나 지금, 미국 내 대부분의 매트리스 업체가 박스 배송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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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퍼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매트리스를 박스에 넣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고객 친화적인 마케팅과 서비스를 기반으로 침대를 잠을 자기 위한 물건에서 더 나은 삶, 더 완벽한 라이프스타일로 나아가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을 바꾸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인스타에 올라와 있는 캐스퍼 관련 사진들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기업의 성공스토리가 아니라 마치 떠 있는 듯한 기분까지 드는 질 좋은 매트리스를 기존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편하게 사고 받아볼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는 거다.

 

현재 미국에만 관련 유사업체가 200개 이상이 되고, 우리나라도 <효리네 민박>에 나온 일룸의 슬로우나 삼분의일과 같은 폼 메트리스 업체가 기지개를 펴고 있다. 특히 삼분의일은 한국판 캐스퍼라 할 수 있을 만큼 고객친화적인 서비스 제공, 온라인 판매라는 단순화한 유통구조에서 나오는 가격 경쟁력, 소셜미디어 중심의 소통과 감성이라는 새로운 가치와 경험을 제공하는 데 주력한다. 이외에도 비슷한 업체가 여럿 된다. 다시 말해 미제 직구가 아니더라도 선택지가 벌써 꽤 다양하게 있다는 뜻이다.

 

이제 매트리스 사거나 이사할 때 부피를 걱정하거나 부담스럽게 생각하면 옛날 사람이 되는 시대다. 이를테면 폴더 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는 바로 그 시기랄까. 원룸에 월세 살면서 무슨 수십 만원을 호가하는 매트리스를 어떻게 사냐고도 반문하지 말자. 더 나은 삶을 위한 가치 투자다. 수면 건강과 이후의 생산성까지 생각한다면 수면은 지금보다 훨씬 더 민감하고 까다롭게 받들고 다뤄야 하는 일상이다. 그러니 세간을 마련하는 중이라면 그 어떤 가전보다 제대로 된 ‘요즘’ 매트리스에 전력 투자하길 고언한다. 결제할 때 살이 떨린다면 카탈로그나 홈페이지나 관련 SNS계정을 계속 반복해 읽어보자. 요즘은 소비자가 마음껏 쇼핑할 수 있도록 소비를 정당화하는 논리와 가치를 판매자가 마련해 제공하는 걸 비즈니스라고 한다. 마음을 열면 지갑도 열린다. 오히려 뿌듯해진다.

 

혹시나 해서 덧붙이자면, 일부 사람들은 침대에서 잠만 자지 않는다는 걸 나도 안다. 관련 엑티비티 수행과 관계된 리뷰를 정리해본 바, 활동에 제약이 없고 오히려 소음과 쓸림에서 자유롭다는 점이 더욱 높게 평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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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의 과학 #침대 #공간 #캐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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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석(칼럼니스트)

푸른숲 출판사의 벤치워머. 어쩌다가 『아무튼, 계속』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