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로빈이라는 토끼와 함께 살고 있다. 토끼와 같이 살기 시작한 지는 1년 반이 조금 넘었다. 로빈은 호기심이 많고 겁도 많은, 기분파에 자유분방한 성격이다. 공과 푹신푹신한 이불 사이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고, 과일 중에는 바나나를, 채소 중에서는 코마츠나(小松菜) 이파리를 가장 즐겨 먹는 사랑스러운 토끼다. 로빈은 정말 작고, 부드럽고, 따뜻하며, 털이 많이 빠진다. (환경에 따라 다르지만, 토끼들은 약 2개월 주기로 털갈이를 한다.) 방 안을 산책할 때는 벽에 아낌없이 영역표시를 하고, 동글동글한 배변을 여기저기 흘리고 다닌다. 그뿐만 아니라 타고난 건치로 온갖 것을 갉아, 잘 감추어둔 전선과 이어폰을 용케 찾아 동강내기도 한다. 나는 의도치 않게 전보다 부지런해져야 했다. 사흘 이상 청소기를 돌리지 않으면 옷 여기저기에 털과 건초 부스러기가 엉키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사실 생활 습관뿐만 아니라, 내 관심사와 가치관 역시 달라졌다. 이를테면, 이런 점이었다. 토끼가 먹을 수 있는 과일과 채소 위주로 장을 보게 된 것. 서점에 들를 때면 토끼 관련 서적을 찾아 기웃거리게 된 것. 또, 이전에는 즐겨 찾았던 동물 카페를 멀리하게 된 것과 공장식 축산을 다시 인식하고 간헐적이나마 채식을 시작한 것도 변화의 예로 들 수 있겠다.
변화의 직접적 계기는 SNS 계정 개설이었다. 첫 의도는 단순히 토끼에 대해 공부한 내용과 로빈이 하루하루 커가는 모습을 갈무리해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한국에서 하루가 멀게 온갖 동물 학대와 유기, 안락사, 살해, 폐사와 같은 사건사고가 터지니, 자연히 동물 권리와 관련된 다양한 의견을 접하게 되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정말로 로빈을 위한 행위인가?’라는 의문을 처음 가진 것도 이때였다. 왜 같은 동물인데 어떤 동물은 버려지고, 어떤 동물은 먹히고, 어떤 동물은 전시되어야 할까? 왜 동물들은 인간의 기준으로 분류되어 삶의 방식이 정해져야 할까? SNS에 올릴 ‘힐링 사진’을 찍기 위해 굳이 불편한 소품으로 동물을 치장할 필요가 있을까? 아니, 애초에 인간의 ‘힐링’ 목적으로 동물을 대상화하는 건 정당한가……. 내가 불편함을 느낀 지점이 무엇이었는지, 인간이 일방적으로 동물을 착취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부분을 경계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느낀 점을 기록으로 남겼다. 동물 계정이 부적절한 게시물(고양이를 깜짝 놀라게 하고 그 반응을 보며 폭소하는 것 등)을 올리면 ‘인간이 즐거워지자는 이유로 동물을 이용하지 말자’고 목소리를 냈다. 그 과정에서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선비질이 지나치다’고 욕을 먹었다. 언쟁 자체는 피곤했지만 나는 도저히 이전 가치관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아니, 돌아가기는 싫었다. 모든 동물에 로빈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문득, 적극적으로 동물을 위하는 동시에 동물을 위하는 사람들을 위하고 싶어졌다. 조금 더 현실적인 변화가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나는 내가 접근할 수 있는 범위에서 하나하나 실천하기로 했다. 가끔은 로빈의 간식을 이웃 토끼에게 나누었으며, 가끔은 동물보호법 개정 청원 운동에 서명했다. 간헐적으로나마 채식을 했고, 시간을 쪼개 유기동물 보호소에 봉사 활동을 갔다. 동물을 대하는 인간의 인식이 나 한 사람 만큼이라도 바뀐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로빈을 위하는 일이 될 것 같이 느껴졌다.
‘인간과 동물의 행복한 공존방법을 고민합니다.’ SNS 프로필에 적어놓은 문장은 내 선언이자 다짐이다.
로빈과 지내는 일상 속에서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기준을 배웠다. 이것이 내게 찾아온 가장 큰 변화이지 않을까.
강소람
토끼에게 매료된 일본 거주 직장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