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제공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을 출간하며 내한한 강상중 재일 정치학자가 국내 독자들과 만났다. 강상중은 2009년 『고민하는 힘』을 시작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 『마음의 힘』, 『도쿄 산책자』,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 등을 펴내며 한국 독자들과 친밀하게 소통했다. 그가 최근 펴낸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은 일본 NHK TV 프로그램 <직업 특강>에서 ‘인생 철학으로서의 직업론’이란 제목으로 이야기했던 내용을 보완한 책이다. 강상중이 재일 한국인 2세로 겪었던 차별, 좌절의 시간부터 천직을 찾기까지의 과정을 쉽고 친절하게 담았다.
강상중은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에서 “일이란 사회로 들어가는 입장권이자 ‘나다움’의 표현”이라고 정의한다. 역경의 시대 속에서 일과 마주하는 자세로 세 가지를 꼽는다. “일의 의미를 생각하라, 다양한 관점을 가져라, 인문학에서 배우라.” 더불어 ‘시대를 읽는 독서 방법’을 제시하며 비지니스 퍼슨에게 추천하는 다섯 권의 책, 롤모델이 된 역사 속 리더 5인을 소개한다.
1950년 일본 규슈 구마모토 현에서 폐품수집상의 아들로 강상중은 재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다. 와세다대학 정치학과에 재학 중이던 1972년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고, “나는 해방되었다”고 할 만큼 자신의 존재를 새로이 인식하게 된다. 이후 일본 이름 ‘나가노 데츠오(永野鐵男)’를 버리고 본명을 쓰기 시작했고, 한국 사회의 문제와 재일 한국인이 겪는 차별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행동한다. 그는 도쿄대 정보학연구소 교수, 세이가쿠인대학 총장을 거쳐 현재 구마모토현립극장 관장 겸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이날 독자와의 만남은 사회초년생, 영화비평가, 직장맘 등이 참석했다. 독자들은 모두 자신의 일에 관한 진지한 고민을 털어놓았고, 앞으로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지’에 물음표를 던졌다.
마음속의 힘을 기르는 것이 가장 중요
주로 학문적인 책을 내셨는데, 『고민하는 힘』을 시작으로 청년들의 이정표가 되는 책을 쓰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일본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청년들에게 조언하는 책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글로벌화가 되면서 젊은 사람들을 위한 책 중 ‘how to’와 관련된 것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자신을 되돌아보는, 살아가는데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해보는 책을 써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요시노 겐자부로의 책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으면서 말이죠. 또 고등학교에서 사춘기를 맞으면서 제 뿌리를 고민하다가 밝았던 성격이 내성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때부터 많은 책을 접하게 됐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게 됐는데, 그게 커다란 배경이 된 것 같습니다. 『고민하는 힘』은 일본에서 100만 부 이상 팔려서 놀랐습니다. 왜 이만큼 팔렸을까? 그것은 시대적인 흐름이라고 봐야 합니다. ‘시대 자체가 고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40대 후반 워킹맘입니다. 곧 50대가 됩니다. 직장 생활을 오래 했는데 직업에 대해 특별한 자신감이나 욕심이 없었어요. 그래서 딸아이한테는 스스로 즐길 수 있는 걸 찾아주고 싶어요. 아이가 대학교 1학년인데요. 요즘 취직하기가 많이 힘들잖아요. 인문학이 절실하게 필요할 때인데도 시간이 참 부족하게만 느껴집니다. 젊은 아이들을 보면 서로 비판하기 바쁘고 연대를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조언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일본과 비교하면 대체로 한국은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고 일본은 괜찮은 편입니다. 특히 한국 같은 경우 세월호 사건이 터지면서 국민에게 커다란 충격을 줬죠. 또 빨리빨리 정신이 앞서다 보니 앞만 보고 달려와서, 그 사건이 터지고 난 후 모든 국민이 굉장한 상실감을 얻었을 겁니다. 일본도 6년 전 원전사고가 터졌을 때 한국과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성질은 다르지만 두 나라 모두 굉장한 충격을 받았었죠. 그때 원전사고 지역에 살던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지역은 지진이 일어나기 전부터 고용난이 있어서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되고 있었습니다. 이후 이곳 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여러 가지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전과 마찬가지로 앞만 바라보고 자기가 목표한 바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 두 번째는 ‘나는 열심히 했다, 이젠 한계’라고 생각하고 다른 방향으로 삶을 바꿔보고 싶어서 바꾸고자 노력하는 분들이 있겠죠. 그럴 때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점은 자신의 이상향이 있는데 그것을 현실에서 실현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고민하는 분들도 많이 생길 거예요.
저는 또 일본의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분들은 ‘이런 마을에 누가 오겠냐’, ‘이제 우리 마을은 끝났다., ‘사람이 없다’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분들의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수도권 중심사고에 젖어 있었다고 말하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 후 지역 활성화에 노력할 수 있는 회사에 입사했고, 전 직장보다 적은 월급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활기찬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기 인생이 풍요롭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저도 과거에는 수도권 중심의 사고방식을 탈피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사고방식이 변하면서 느끼지 못하고 보지 못했던 비즈니스 모델과 인간관계 모델을 추구하게 됐습니다.
한국은 여전히 학벌이 중요한 사회입니다. 저희가 어릴 때는 학벌로 인한 차별이 더욱 심했죠. 우리 아이는 이런 차별을 받지 않았으면 합니다. 극복이 가능할까요?
아시다시피 저는 재일동포로 자랐습니다. 지금은 좀 많이 달라졌지만 제가 어릴 때는 재일동포는 취직할 수 없는 사회였습니다. 대학을 나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기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때 생각했습니다. ‘왜 좋은 대학을 나오면 좋은 회사를 가야 하는가?’ 당시 저희 아버님은 초등학교 졸업 출신이었고, 어머니는 글자를 읽을 수 없는 분이셨습니다. 전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인데, 언젠가 왜 아버지와 어머니를 계승하면 안 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내 속의 어딘가에서 부모의 직업에 대한 가치를 마음대로 평가하지 않았나? 하고요.
대학을 졸업하고 유일하게 지원했던 소니에 불합격했는데, 수년 전 소니 본사에서 강의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간부 임원들이 1,500명 정도 모였습니다. 강연을 시작하면서 소니로부터 거절당했다고 말했습니다. 다들 웃었죠. 그때 어느 분이 “선생님 참 행운아십니다. 소니에 들어갔다면 지금 정말 고생하실 텐데”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제가 만약 소니에 입사했다면 퇴사할 때쯤 소니는 경영이 악화됐거나, 그만두기 전에 잘렸을지도 모릅니다.
2020년경 한국은 최고의 장수 사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제 겨우 20대가 뭔가를 결정했는데 그것이 자기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한다는 거 자체가 시야를 좁게 보는 거 아닐까요? 한국은 학벌 사회고 피라미드형이지만, 결코 지속되지 않으리라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자기 인생을 세대별로 나누고 취사선택을 할 수 있는, 어디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마음속의 힘을 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지금 당장 삼성에 입사한다 하더라도 10년간 다닐 수 있을지 아닐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미리 결정한 것을 포기하더라도 계속해서 삶의 방식을 구축해나가는 것이 올바르다고 봅니다. 자녀 분께선 앞으로 상당히 많은 우여곡절을 겪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자기 인생에 대해 스스로 잘 인지하고 있고 구애받지 않겠다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상황에 놓이던 늘 소생할 수 있는 ‘소생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20대 후반 청년입니다. 저는 고등학생 때 희귀난치성 질환에 걸려 손에 땀이 많이 납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쯤 제가 권투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의 반대로 결국 운동을 접었습니다. 지금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지만 권투를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도 큽니다.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맞는건지 의문이 들 때가 많고요.
제가 조언을 할 수 있는 입장에 있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선 경험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이 안 돼서 어쩔 수 없이 대학원을 갔습니다. 대학 안에 갇혀 있었어요. 졸업하고 자리를 잡긴 했지만, 천직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간 강사를 할 때 만났던 야간 학생이 준 편지로 인해 제 생각은 완전히 바뀌게 됐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제 인생이 크게 바뀌었습니다.’라는 문장을 보고 그때 처음으로 ‘이게 내 천직이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결론은, 본인이 해보지 않고는 모른다는 겁니다. 나한테 맞는 일인지 아닌지 모르니까 계속 열심히 하는 겁니다. 최소한 3년 정도는 죽기 살기로 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3년간 해보고 도저히 심취할 수 없다 싶으면 바꾸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사회초년생입니다. 대학에서는 일본학을 전공했고 후에 바이오산업을 다시 공부했습니다. 전공을바꿨죠. 대학원과 직장을 고민하다가 지금은 임상시험 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강상중 선생님의 책은 모두 읽었는데요. 첫 번째 질문은 “직장 내 타자와의 관계에서 정신적으로 충격이 왔을 때 사회초년생이 가져야 하는 소생력”에 대해서 조언해주셨으면 합니다. 두 번째는 『고민하는 힘』에서 말씀하신 ‘청춘’에 관하여 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아직도 청춘이신지요?
소생력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면역력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일본에서 살면 북한이 언제 침공할지 모른다는 이유로 미사일을 쏠 때마다 국방부가 스마트폰으로 경고를 합니다. 민감하게 대면하고 있는 것이죠. 한국도 일본과 비슷합니다. 지진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진도가 작아도 여기서 이야기를 끊고 바로 책상 밑으로 들어가겠죠. 그러니까 어떤 사회에서 특정한 사건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나쁜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면역력, 내성을 인간은 가지고 있습니다.
면역력 또는 내성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인간의 신체적인 경험, 축적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일본에서도 원전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지진이 일어나고 쓰나미가 발생하지 않았습니까? 그 후 그 지역의 초등학교 5학년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면서 피난훈련을 하는데 자기의 목숨은 자기가 지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봤습니다.
한국은 병역의무가 있지만 일본은 아니어서 전혀 감각이 없는데, 취재 때문에 논산에서 훈련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휴전선의 현실감을 느꼈습니다. 내일 당장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말하는 일본 사람들처럼 한국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내성이 생겼기 때문이겠죠. 소생력이라는 건 바꿔 말하면 소생을 키우다, 내성을 키운다는 뜻입니다. 일본 같은 경우 병역 의무가 없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학습 효과를 얻을 수 없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는다든가 인문학 공부를 한다든가, 상상력으로 배울 수밖에 없죠. 두 번째 질문은, 저는 지금도 완전히 청춘이고 그걸 증명하기 위해서 부인도 같이 왔고 부인 또한 청춘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강남8학군에서 중고등학교를 보냈습니다. 공부하는 걸 좋아한 편이죠.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취직했는데, 8천만 원만 모으면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늘 했습니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일을 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제 삶 자체가 아르바이트도 한 번 해본 적 없고 부모님께서 학비를 전부 내주셨어요. 그렇다 보니 대학에서 나보다 훨씬 힘든 학창시절을 보낸 친구에게 뭔가 충고를 한다는 것 자체가 위선적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도 강상중 선생님처럼 대중을 위한 글을 씁니다. 영화 비평을 하고 있어요. 비평을 하면 때때로 공격을 받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글에 관한 공격을 받을 때, 어떻게 회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저는 곧 엄마가 됩니다.
문학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중에 『그 후』라는 책이 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인 다이스케가 대표적인 ‘고등유민(高等遊民)’입니다. 뭘 하더라도 통렬한 아픔과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다이스케는 부자인 부모 아래서 컸고, 동경대를 졸업했습니다. 그 소설을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다이스케가 목욕탕에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을 바라보고 얘기하는 장면입니다. 빛 때문에 얼굴에 그늘이 지니까 보름 동안 이건 자기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지금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누구나 삶을 살다 보면 인생의 전환점을 실감할 날이 옵니다. 소설의주인공 다이스케는 일도 하지 않고 속박 받기 싫어하는 삶을 삽니다. 그러다 자기 부모로부터 돈 많은 집의 처자를 소개받게 되고 결혼을 강요 받습니다. 그는 끝까지 저항하죠. 그러던 중 자신의 친구와 결혼해서 잘살고 있는 옛사랑을 떠올리게 되고, 그 여자를 다시 붙잡게 됩니다. 그녀와 결혼해야겠다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죠. 그것을 통해 살고 있다는 걸 느끼고 싶었던 겁니다.
당시 일본은 메이지 사회였습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였는데, 지금은 없지만 그때는 간통죄가 성립돼서 소설 속 다이스케도 부모와 인연이 끊기고 사회로부터 아주 많은 지탄을 받게 됩니다. 모든 것을 잃게 된 다이스케가 직업소개소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소설은 끝납니다. 이 소설을 전반적으로 요약해보면, 구름 위에서 살던 사람이 만족하지 못하고 원하는 것을 더 얻으려다 땅에 떨어졌다는 겁니다. 현실에 직면하게 됐음을 뜻합니다. 자식을 낳고 육아를 한다는 것은 이 소설에서 말하는 땅에 떨어지는 것과 비슷한 감각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자기 의도로는 도저히 조정되지 않는 또 다른 생명을 낳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스스로 리얼리티라는 것을 몸소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쪽이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선생님께서는 숙제처럼 여겨지는 고민이 있으신가요?
숙제와 같은 고민은 ‘한국과 일본이 서로 존경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남북관계가 좀 더 친밀해지면 좋겠다.’입니다. 저는 1950년에 태어났습니다. 6ㆍ25가 발발했을 때. 그런데 또 6ㆍ25가 터지면 제 인생은 6ㆍ25로 시작해서 6ㆍ25로 끝나게 됩니다. 너무나 가혹하지 않나요? 남북관계가 완화됐으면 좋겠고 독일과 프란츠처럼 됐으면 서로 존중했으면 좋겠습니다. 또 제가 한국과 일본의 중간지점에 있는 사람으로서, 조그마한 역할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어서 질문 드립니다. 이번 책에서 자연스러움에 대해 이야기를 하셨는데, 한국 사람들은 남을 지나치게 의식하잖아요. 그것 때문에 우울하고 힘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 종종 한국에 방문하셨을 때, 한국 사람들로 인해 불편함을 느끼신 적은 없는지요? 태도에 관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자연스럽게 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궁금합니다.
한국사회가 점점 더 살기 어려워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독립 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 됐을 때 상황이 참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 후로 4ㆍ19도 있었고 박정희 독재도 있었죠. 한인 회담이 있었을 때 저는 15살이었습니다. 1965년쯤 정상화가 되고, 52년이 흘렀군요. 그때와 비교하면 국내 경제 규모는 500배 정도 커졌습니다. 일본도 경제대국이지만 한국의 성장 속도와 규모에 비하면 한국이 훨씬 더 큽니다. OECD에 가입된 데다, 현재는 러시아보다도 경제 규모가 커지고 있습니다. 규모만 보면 세계 11위, 무역액만 보면 세계 7, 8위 정도 됩니다. 5천 만 명 이상의 국민을 유지하고 있으면서 1인당 GDP가 2만 5천 달러 이상인 국가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우리나라 정도만 있습니다. 한국은 52년 동안 생각할 수 없었던 경제 대국을 이뤄 버렸습니다. 굉장한 무리를 했겠죠. 그것들이 계속 쌓여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쁘게 얘기하면 이런 현상은 ‘빨리빨리 중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이런 발언을 하면 그건 이상론에 불과하다, 성장이 없으면 사회는 붕괴한다고 지적하는 분이 계실 겁니다.
굉장히 무리를 해서 성장했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의 태도가 지나치게 의식적일 수도 있겠네요.
그럴 수 있죠. 지난번 방문했던 오스트리아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오스트리아 국민수는 7~8백만 명 정도 됩니다. 게다가 메이드 인 오스트리아 제품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죠. 그렇지만 오스트리아 1인당 GDP는 한국과 비교했을 때 2배 이상이고, 일본과 비교했을 때도 2배 정도 차이가 납니다. 왜 그들은 풍요로울까요? 그들의 주요 산업은 제 1차 산업, 농업, 목축업이고 대규모 제조업이나 금융업은 활성화되지 않았습니다.
왜 한국은 오스트리아처럼 되지 못했을까요? 1인당 한국인의 노동시간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습니다. 놀라실 수도 있겠지만 가장 노동시간이 긴 나라는 그리스입니다. 두 번째는 멕시코고요. 사람이 길게 일하지 않으면 지금의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해있다는 거죠. 이러한 현상을 10년, 20년 지속시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따라서 조만간 바뀌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많은 분이 고민하고 있다고 봅니다.
민족성의 원인이 돼서 한국 나름의 여러 고민이 발생할 수 있겠지만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경제, 사회 시스템에 기반해서 일반적으로 국민 간의 소통이라든가 행동이 바뀌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나라가 이렇게 서울형 집중구조가 된 거죠. 추석 연휴가 시작됐을 때 서울 시내에 사람도 없고 걸어보면 여유가 생기지 않습니까? 도쿄대에 오는 학생들의 출신지를 보면 도쿄 근처 관동권, 수도권에서 오는 비율이 60% 정도 됩니다. 서울대 비율을 보면 강남 출신이 절반 정도를 차지합니다. 그 정도로 집중도가 높습니다. 이런 닭장 안에 갇혀서 달걀만 생산하며 늘 긴장하고 있는 상태와 비슷하다고 봅니다.
국가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이것이 먼저라는 말씀이신지요?
맞습니다. 국가의 시스템을 바꾸면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편안한 일생을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그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문제도 있고 정치적인 문제이기도 하겠죠. 또한, 서울을 탈피해야 합니다. 많이 분산될수록 긴장도가 완화되겠죠. 일본도 한국과 비슷하지만, 수치는 좀 낮습니다.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 아시아 사회 자체가 도시 발전에 실패했다고 봅니다. 거대한 도시가 아시아에 너무 많습니다. 독일을 보면 뮌헨만 하더라도 약 1백만 명입니다. 그래서 정말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가 있는 거죠. 국가형성 방법을 바꾸면 괜찮아질 거라고 봅니다. 서울에 집중되면 될수록 땅이 투기대상이 돼서 젊은 층은 땅도 집도 못 사는 생활을 강요 받게 되겠죠.
저는 회사를 5년 정도 다녔습니다. 잠도 안 자고 28시간 동안 일해본 적이 있어요. 그곳은 제 첫 직장이었고 주위에선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삼성이나 LG에 다니는 친구들도 그 정도의 노동강도가 있었기 때문에 잘못됐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일본에서 광고회사 신입사원이 자살하기도 했고, 서울시청의 공무원이 자살하기도 했잖아요. 다들 쉽게 말하죠. 회사를 그만 두는 것과 죽는 것 중에 뭐가 더 쉽냐고. 당연히 회사를 그만두는 게 쉽지만 그걸 되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아요. 저희는 IMF를 겪었잖아요. 사는 게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지는 세대, 생활을 위해서는 어떤 걸 감수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세대에선 용기를 내는 게 두려운 면도 많은 것 같아요. 일본도 자살 사건 이후로 바꾸려고 노력한다고 들었는데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궁금해요.
굉장히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하고요. 바꿔 나가기도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 광고회사는 세계에서 인정받는 곳인데, 일본 전체가 장시간 노동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껴야 한다며 정부가 의도적으로 뉴스를 띄웠습니다. 이러한 일은 학교에서도 일어나고 있고, 음식점 관련 서비스 업종에서도 많이 일어나고 있고 병원, 생명과 관련된 곳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건이 발생하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겠죠. 인건비 절감. 규제 완화나 경제의 자율화로 인해 만들어진 부정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직원의 경우 사용자들 입장에서 보면 얼마든지 당신들의 대체품은 있다는 의식이 강해지면서 직원 분들이 요구할 수 있는 용기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너무나도 강력한 수단일 수 있겠지만 법률로 규정해야 합니다. 최근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면서 접대에 관한 강력한 규제가 생겼습니다. 한국의 접대문화에서 일어날 일들이 조금씩 줄어들겠죠. 음식점이나 그 외 서비스업의 사람들이 상당한 불만을 품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이걸 수용하고 있습니다. 노동시간과 관련된 법률을 만들어야 기반이 만들어지리라고 봅니다. 노동 생산성을 높이는 노력도 해야겠죠. 그러기 위해서는 좋고 나쁨은 제쳐두고 자기 자신의 실력, 기술력을 높여야 될 겁니다.
본이 되는 나라가 있나요?
독일을 생각해봅시다. 독일은 토요일과 일요일에 백화점 문을 열지 않습니다. 토요일 오전까지만 엽니다. 또 독일의 경우 연간 한 번 이상 휴가가 있습니다. 잔업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고 잔업이 필요한 직무가 있긴 한데요. 소방이나 야간 비상사태와 관련된 직업들을 말씀 드리는 겁니다. 이곳은 노동 생산성이 높습니다. 독일은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법률을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도 명확한 법률이 있으면 그런 문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회구성원들의 실행력, 태도도 중요할 것 같아요.
물론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회사 외에 시간을 충분히 가짐으로써 개인적인 시간과 공적인 시간 사이에 있는 회색 시간 GRAY ZONE에서 여러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삼성 사원들이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에 쉬는 동안 불우한 어린 집단이나 푸드뱅크 같은 데서 봉사활동을 하면 사회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게 되니 전체가 바뀌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가만 보면 기업, 정부, 국가 외 명확한 것이 있어야만 사회가 유지됩니다. 지금 일본은 1조 엔 이상의 재정 적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1조 엔은 어마어마한 돈이라서 재정적으로 일본은 붕괴될 수도 있는 위험한 지경에 직면하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사회보상이라든지 국가가 국민에게 지원할 수 있는 부분이 적어지게 됩니다. 그걸 누가 감당해야 할까요? 국가도 기업도 아닌 봉사활동을 포함한 여러가지 사회가 담당해야 합니다. 사회적으로 서로서로 지원하면서 격려를 해 나가지 않으면 암담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일본에서 대지진을 여러 차례 직면했습니다. 돈이 있어도 물을 살 수 없었습니다. 그때 도와줄 수 있는 건 저 멀리 있는 친구였습니다. 기업, 국가와 관계없이 자기 나름대로 만든 사회에 있는 지인들이 물이나 식량을 보내줘서 연명했습니다.
이 말씀을 끝으로 드리고 싶습니다. 매달 200만 원 월급제와 500만 원 월급제가 있다 치고 500만 원을 받으려면 15시간 이상 근무, 200만 원을 받으려면 7~8시간 일해야 한다고 하면, 어느 쪽이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요? 판단해보면 200만 원입니다. 사회 관계를 풍요롭게 가질 수 있게 되고 내 삶 자체가 풍요로워지는 것이 먼저입니다.
-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강상중 저/노수경 역 | 사계절
재일 한국인 2세로서 도쿄대학 교수가 된 강상중이 처음으로 말하는 직업론으로 취업 때문에 고민하는 청년들, 자아실현은커녕 격무에 시달리며 ‘나’를 잃어가는 직장인들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들려줄 것이다.
엄지혜
eumji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