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1일, 아늑한 분위기의 홍대 레드빅스페이스에서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 출간 기념 낭독회가 열렸다. 김애란 작가의 다섯 번째 소설집 『바깥은 여름』에는 37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침묵의 미래」를 포함해 총 7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낭독회 사회를 맡은 이다혜 기자와 특별 게스트인 김연수 작가와 함께한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 낭독회는 80여 명의 독자로 가득 찼다. 『비행운』 이후 5년 만에 발표한 소설집인 만큼 뜨거운 반응 속에서 낭독회가 시작됐다.
책이 나오기까지
이다혜 : 책 나오기까지 어떻게 지내셨는지, 근황이 궁금합니다.
김애란 : 책 나온 지는 보름 정도 지났는데요. 책 내기 전에는 교정이나 디자인 문제로 편집부랑 이야기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고, 나온 후에는 ‘나왔어요’라고 알리는 시간을 가졌어요. 독자분들 반응도 접했는데 특히 기다리셨다는 말씀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어요. 그렇게 지내왔습니다.
이다혜 : 처음 단편을 읽고 바로 다음으로 넘어가질 못했어요. 줄어드는 느낌이기도 했고, 또 방금 읽은 이야기가 마음에 꽉 차 있어서 약간은 여유가 필요하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인데요. 쓰면서도 비슷했을 것 같아요. 사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여러 가지 일이 있었고 어떤 면에서는 쓰기 어려운 이야기였을 텐데, 쓰시면서 가장 애착이 가는 이야기가 있나요?
김애란 : 5년 만의 신작이라고 소개가 됐는데, 2년 동안은 장편을 많이 잡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3년 동안 단편을 꾸린 게 이번 소설들이에요. 두 개를 동시에 쓰거나 병행하시는 작가 분도 있는데 저는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하나를 쓸 때 집중하는 편이라 오래 걸렸고, 또 사회적 환경이랑 상관없이 다섯 번째 책이라서 더 어려워진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이다혜 : 책 제목이 ‘바깥은 여름’이잖아요. 제목은 작가님께서 지으셨나요?
김애란 : 네. 제가 원래 홀수로 된 제목을 좋아하는데요. 3, 5, 7, 9 이렇게 떨어지는 걸 좋아해서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비행운』, 『두근두근 내 인생』처럼 거의 다 홀수로 지었어요. 입에 붙을 때 리듬이 좋으니까요. (웃음) 좀 순하고 밋밋한 말들로 짓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풍경의 쓸모」라는 단편에서 발췌했어요. 처음에는 『구 바깥은 여름』으로 여쭤봤더니 ‘구’를 빼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어요. 그래서 ‘구’를 뺏더니 더 단순해진 대신에, 더 풍부해진 느낌도 들고 여름에 나왔다는 점에서 마음에 듭니다.
이다혜 : 책 표지도 제목하고 너무 잘 어울리는데요. 처음에 김애란 작가님을 모델로 한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또 저 여인은 어디를 들어가는 것일까, 아니면 나가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는데 작가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애란 : 책 디자인을 고를 때 처음에는 창문이었어요. 창문도 좋았는데 그러다 보니 너무 관조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창문 말고 문이면 행동이 들어가고, 또 제가 아직 젊은 작가인데 벌써 관조하면 안 될 것 같았어요. 문이면 큰 행동은 아니어도 망설임이든, 주저든 담을 수 있을 테니까 “편집자님, 문이면 더 좋겠네요.”라고 해서 나온 디자인이에요. 의견이 분분한 것 같은데 저는 중의적이어서 더 좋아요.
첫 번째 낭독, 「건너편」
“그때서야 도화는 어제 오후, 주인아주머니를 만난 뒤 자신이 느낀 게 배신감이 아니라 안도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수 쪽에서 먼저 큰 잘못을 저질러주길 바라왔던 것마냥. 이수는 이제…… 어디로 갈까? 도화가 목울대에 걸린 지난 시절을 간신히 누르며 마른침을 삼켰다.” (「건너편」, 118쪽)
이다혜 : 이 대목을 고르신 이유가 있을까요?
김애란 : 제가 데뷔한 지 15년쯤 되었고 『바깥은 여름』은 5번째 책이에요. 데뷔 초에 썼던 단편들을 떠올리면 가끔 그 인물들에 대해 궁금할 때가 있어요. 그러니까 한 10년 전쯤 썼던 인물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어떻게 살고 있을까, 같은 거요. 그래서 이 작품을 읽고 기시감을 느낀 분들은 두 개의 작품을 떠올릴 것 같아요. 크리스마스 모텔 순례기를 다룬 「성탄 특선」과 노량진과 관련된 「자오선을 지나갈 때」요. 두 작품에 나온 친구들이 10년쯤 흘러 지금 어디에 있을까, 를 많이 생각해봤어요. 노량진도 鷺(다리 양), 梁(나루터 진)이니까 ‘모두가 지나가는 곳’이라는 뜻으로 이전에 썼던 단편이 떠올라서 골라봤어요.
이다혜 : 단편 제일 마지막 부분을 읽어주셨는데요. 작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다 읽은 다음에, 이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지는 이야기가 있어요. 아마도 그런 게 소설을 포함한 예술작품들이 우리 삶에 미치는 큰 영향 중의 하나일 것 같아요. 이 안에 있는 인물 하나하나를 내가 알게 되었다는 감각과 그들에 대해서 그 이후의 이야기를 우리가 상상할 수 있다는 감각이요. 그래서 궁금한 건, 「건너편」의 이 두 남녀가 또다시 10년쯤 지나면 다른 단편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을까요?
김애란 : 따로 생각은 안 해봤는데요. 「자오선이 지나갈 때」의 인물이 10년쯤 지나면 어떻게 됐을까, 하고 나왔던 또 다른 단편이 「서른」이에요. 아마 또 안부가 궁금할 것 같긴 해요. 「건너편」에 등장하는 인물들 이름에는 사실 비밀이 하나 있어요. 이 단편에는 다섯 명 정도 이름이 나오는데요. 도화, 이수, 동오, 원덕, 명학. 다 지하철역 이름입니다. (웃음) 특히 한국 이름은 한자로 쓰는 경우가 많아서 자연스럽게 숨길 수 있어 좋았어요. 계속 어딘가 돌고, 정처하고, 이동 중인 젊은이들 이름으로 좋겠다 싶어 지하철역 이름으로 정했습니다. 제가 소중한 비밀로 갖고 있으려고 하다가 여러분 얼굴을 뵈니까 말하고 싶어서 말씀을 드렸어요. (웃음) 그러니까 나중에도 이 인물들의 삶을 궁금해할 것 같아요.
이다혜 : 혹시 이번 책 쓰시면서 특별하게 어려웠던 부분이 있나요? 이 이야기는 안 풀려서 고생했다거나 이 인물은 특히 생각이 많이 난다거나.
김애란 : 단편 하나를 완성하는데 필요한 물리적인 시간이 있잖아요. 그게 늘 예상이 됐었어요. 난 이 정도 걸렸지, 라고 생각해서 썼는데 이 단편들을 묶을 때쯤부터 마감이 많이 늦어졌어요. 제가 익숙한 방식에서 벗어나서 그럴 수도 있고, 소재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아무리 고쳐봐도 처음 쓸 때 생긴 리듬이 사라지지 않아서 호로록 읽히지 않고 서걱서걱하는 단편들이 몇 개 있어요. 마지막 단편인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도 그렇고요. 과속방지턱처럼 턱턱 걸려서 제가 읽기에는 자연스럽지 않은 부분도 있어요. 소설가 몸이 너무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아야 하는데 「입동」을 쓸 때 허둥지둥 마감했던 기억도 납니다.
두 번째 낭독, 「침묵의 미래」
“어느 민족에게 사랑은 접속사, 그 이웃에게는 조사다. 하지만 또다른 부족의 경우 그런 건 본디 이름을 붙이는 게 아니라 하여 아무런 명찰도 달아주지 않는다. 어떤 민족에게 ‘보고 싶다’는 한 음절로 족하다. 하지만 다른 부족에게 그 말은 열 문장 이상으로 표현된다. 뿐만 아니다. 어느 추운 지방에서는 몇몇 입김 모양도 단어 노릇을 한다.” (「침묵의 미래」, 139쪽)
이다혜 : 이 부분은 어떤 이유로 고르셨나요?
김애란 : 이야깃거리가 많다기보다는 입말로 낭독하기 좋을 것 같아서 가져와 봤어요. 또 곧 게스트로 나오시는 김연수 선배님과 작은 추억이 있어서 골라봤어요. 이 단편이 관념적이다 보니 어떻게 꾸려야 할까, 고민이 많았는데요. 그때 우연히 문학 행사로 중국에 출장을 갈 기회가 있었어요. 김연수 선배랑 소수민족의 삶을 전시해놓은 박물관을 같이 가서 ‘이 소설을 어떻게 꾸리지’ 고민을 하고 있는데 저희가 지나가니까 갑자기 소수민족이 나와서 밭을 가는 시늉도 하고 아가씨들이 춤을 추기도 했어요. 거기에 응답하는 것이 예의라 선배님은 맑은 얼굴로 같이 춤도 췄죠. (웃음) 그걸 보고 ‘아, 그럼 이것과 비슷한 테마파크를 상상해도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다혜 : 사실 저는 이 단편을 읽으면서 소수 민족의 언어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우리는 사람들과 각각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잖아요. 가족과 이야기하는 방식과 연인과 이야기하는 방식이 다른 것처럼. 그래서 어떤 관계가 끝나면 어떤 방식의 언어 사용도 끝나는 게 아닐까, 그래서 만나지 않게 된 사람들을 떠올리며 읽었던 단편이에요.
세 번째 낭독,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나는 당신이 누군가의 삶을 구하려 자기 삶을 버린 데 아직 화가 나 있었다. 잠시라도, 정말이지 아주 잠깐만이라도 우리 생각은 안 했을까. 내 생각은 안 났을까. 떠난 사람 마음을 자르고 저울질했다. 그런데 거기 내 앞에 놓인 말들과 마주하자니 그날 그곳에서 제자를 발견했을 당신 모습이 떠올랐다. 놀란 눈으로 하나의 삶이 다른 삶을 바라보는 얼굴이 그려졌다. 그 순간 남편이 무얼 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선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 게 아니었을까. 당신을 보낸 뒤 처음 드는 생각이었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265~266쪽)
이다혜 : 울 것 같아서 약간 긴장하면서 읽었는데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 보면 시리하고 대화하는 장면이 몇 개 나오잖아요. 저는 남을 쉽게 믿지 않기 때문에 단편에 실린 모든 대화를 시리와 나누어보았어요. (웃음) 똑같은 대답이 나오는 경우도 있고 그새 달라진 것도 있어요.
김애란 : 시리와 대화하는 내용 중 제가 지어낸 이야기는 단 하나도 없어요. 모두 시리가 한 이야기인데 업데이트를 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아요.
이다혜 : 이 단편에 나오는 것처럼 누군가 갑자기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이 그의 안부를 물을 때가 있잖아요. “걔는 잘 지내?” 이런 식으로요.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하면 끝날 이야기인데 갑자기 말이 안 나오는 순간이 있어요. 그래서 그 이후의 상황이 굉장히 어색하게 돌아간다든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생각하게 된다든가 하는 게 너무 슬퍼서 계속 멈칫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네 번째 낭독, 「풍경의 쓸모」
마지막 낭독은 게스트인 김연수 작가의 몫이었다. 『바깥은 여름』에서 가장 해학스럽고 유머러스한 부분을 준비했다는 김연수 작가는 「풍경의 쓸모」 중 일부를 낭독하기 위해 무대 위로 올랐다. 낭독에 앞서 그들은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이다혜 : 김연수 작가님은 『바깥은 여름』을 어떻게 읽으셨나요?
김연수 : 앉아서 읽었고요. (웃음) 가끔 누워서도 읽었습니다. 그전에 제가 읽었던 작품들이 있는데요. 항상 계간지에 실린 작품을 먼저 보고 소설집이 나오다 보니 음악처럼 싱글앨범과 정규앨범의 느낌으로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김애란 작가의 5년이 지나왔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이다혜 : 몇 년 전에 김연수 작가님이 김애란 작가님의 첫인상에 대해 “기억나는 건 눈동자, 어쩌면 그 시선뿐이었다. 단발머리였는데 그건 마치 작은 집 출입문에 드리운 발과 같았다. 눈동자는 그 발 안쪽에 있었다. 호기심에 가득한 눈동자였다. 이상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몸은 뒤로 물러서려는데 눈동자만은 앞으로 나오려는 듯한. 이율배반적인 형국이랄까. 두둥”라고 쓰셨어요. 혹시 김애란 작가님도 이 글을 읽으셨나요?
김애란 : 네. 『비행운』 나왔을 때 『문학과사회』에 써주신 「김애란 씨는 어떤 사람인가요?」라는 산문으로 기억해요. 어릴 때는 분석 당하는 재미가 있어서 호로록 읽었다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오, 굉장히 날카로운 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다혜 : 두 분의 첫 만남이 어땠을지 궁금한데, 소설집 나오고 혹은 등단하시고 이런 자리가 있었던 건가요?
김연수 : 저는 작가로 활동하고 있었어요. 『창작과비평』에 김애란 작가님이 소설을 실었고 뒤풀이에서 만났어요. 뒤풀이에 갔더니 웬 대학생이 앉아 있는 거예요. 그때 처음 봤는데 솔직히 말해서 처음에 좀 이상하게 생겼다고 생각했어요. (웃음) 눈을 계속 움직이는데 좀 비정상적인 거예요. 그래서 이 친구는 눈처럼 감수성이 뛰어나거나 좀 이상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후 노래방에 가서 제가 탬버린을 치면서 노래를 불렀는데 그걸 기억하고 계셨어요. 책 잡힐 일을 한 거죠. (웃음) 김애란 작가님이 저를 보고 처음에 문인에 대한 실망감이 컸다고 합니다. (웃음)
이다혜 : 김연수 작가님은 이번 단편집 중에서 어떤 작품을 가장 좋아하시나요?
김연수 : 저는 「노찬성과 에반」이 좋아요. 저희 집에서 개를 키우는데 점점 커가면서 병에 걸린 적이 있어요. 수술비가 100만 원이었는데 수술 후에 최근에 또 담석이 생겼어요. 또 수술비가 100만 원이었고 재발할 확률이 높다고 하더라고요. 순간적으로 수술해야 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어요. 물론 수술했죠. 「노찬성과 에반」을 보면서 그런 장면이 깊게 다가와서 슬펐습니다. 에반이 자연치유되었으면 하고 바랐는데 김애란 작가님이 소설을 너무 사실적으로 써서 좀 상처가 되었습니다. (웃음)
이다혜 : 저도 개를 키웠는데요. 「노찬성과 에반」에 나오는 것처럼 반려동물과 같이 나이를 먹다 보면 병원 갈 일이 정말 많아요. 의료보험이 되지 않기 때문에 돈도 많이 들고요. 경제적인 부분인 거죠. 그래서 작품 속 찬성이가 어렵게 돈을 모은 뒤에 야금야금 쓰게 만들었을 때 작가님이 잔인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기분이었나요?
김애란 : 오늘 제 캐릭터가 이상하게 생기고 잔인한 사람이 되었네요. (웃음) 사실 이 단편을 쓰기 전에 반려동물에 관한 관심이 없었어요. 무관심했다가 어떻게든 정보를 조사해서 썼죠. 그런데 그 마음으로 조금이라도 잘못 쓰면 반려동물을 키우시는 분들이 금방 알아차리실 것 같아서 긴장하면서 썼어요. 쓰고 나니까 그다음부터 동물들이 좀 다르게 보였어요. 그리고 이 단편을 마치고 생애 처음으로 흰 머리가 하나 났어요. 에반이 흰 개니까 털 한 가닥 남기고 간 것 같아서 이상하게 기분이 괜히 그랬어요. 워낙 경험이 없어서 부족한 부분이 좀 있을 거예요.
“따로 기다리는 전화가 있는 터라 휴대전화 진동이 울릴 때마다 나는 깜짝깜짝 놀랐다. 복잡한 마음에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는데 버스 앞쪽에서 ”정답은 삼계탕“이라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풍경의 쓸모」, 172쪽)
이다혜 : 이 부분은 교수 임용 때문에 핸드폰에 신경이 가 있는데 문자가 오는 건 아버지밖에 없고 관광버스 안에서 다들 흥겹게 퀴즈를 풀고 있는 모습을 그리는데요. 이 대목을 고르신 이유가 있나요?
김연수 : 이런 비슷한 장면이 플로베르의 소설 『마담 보바리』에 나와요. 이런 식으로 바깥의 대화와 자신의 대화가 섞여서 진행되는 거죠. 김애란 작가의 소설에는 이런 식의, 소설적이라기보다는 영상적인 기법이 많이 나와요. 작가가 개입하지 않고 직접 독자에게 던짐으로써 박진감이 넘치게 그리는. 김애란 작가가 그런 걸 굉장히 잘해요. 독자보고 해석하라고 하는데 그게 어렵지 않고 느낌이 뭔지 전달이 잘되거든요. 김애란 작가는 대화를 워낙 잘 쓰고 여백, 공백도 참 잘 써요. 말을 안 하는 거죠. 말하지 않음으로써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너무 잘 알 수 있게 만들어요.
이다혜 : 『바깥은 여름』에는 죽음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요. 죽음의 순간에 직면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고요. 근래 최근 한국소설에는 죽음이라는 소재가 특별히 많이 등장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나라 전체가 유가족으로 살아가게 되는 상황에 대해서 작가로서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싶어요. 특히 현재 한국 사회는 누군가가 “무슨 일 있었어? 어떻게 지내?”라고 물었을 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단계인 것 같아요. 작가로서는 그걸 소설로 어떻게 그려내야 할지 고민할 것 같아요. 세월호 사건 같은 게 담겨있다는 인상도 받았는데 혹시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김애란 : 넓게 이야기하면 죽음이든 상실이든 그 이후든 관련된 이야기는 계속 이어져 온 주제라고 생각해요. 저는 사실 시골에서 19살 때까지 자라다가 20살에 대학에 왔어요. 그때까지 큰 전쟁을 겪지도 않았고 사건 없는 세대 같은 느낌도 있었지만, 서울을 만난 것 자체가 사건이었어요. 그래서 그때는 제 피부와 살갗에 닿는 감각을 많이 썼어요. 근데 이제는 감각이 아니라 제 몸으로 이야기가 통과해가는 것 같아요. 초기 단편이 감각에 관한 이야기라면 지금은 이야기가 지나간 자리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은데 사실 아직 잘 모르겠어요.
김연수 :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또래인 부모님들에게 감정이입이 많이 됐어요. 제 나이가 되면 죽음이 가까워져요. 나이에 상관없이 주변에 돌아가시는 분들이 생기죠. 그런데 전부 다, 어떤 사람도 지금 죽을 때가 아니에요. 설령 100살을 살았더라도요. 너무나 억울한 죽음 앞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있다고 생각해요. 분노나 죄책감 같은. 그런데 제가 세월호 부모님들을 만났을 때 그분들에겐 책임감이 있었어요. 저는 예전에 완전한 타자라는 건 없고,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관계성이 중요하다고 느껴졌어요. 비록 타자일지라도 관계를 맺으면 책임감이 생기는 거죠. 나의 관계 속에서 생긴 일이라고 생각하면 분노에 그치지 않게 되는 거예요. 김애란 작가도 이제 30대 중반을 지나고 있는데, 그런 시기를 우리가 지금 같이 거쳐 간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이다혜 : 김애란 작가님께 가족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김애란 : 가족은 제가 태어나서 처음 만난 타자 혹은 타인이자 감정을 연습해봤던 장소의 이름처럼 느껴져요. 고마움, 연민, 미움, 짜증, 안타까움, 사랑과 같은 여러 가지 감정을 연습해본 장소요. 그래서 저는 가족이 다른 타인을 상상할 때 긍정적인 감정이든 부정적인 감정이든 도움 닫기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대 같아요.
이다혜 : 마지막으로 한 마디씩 해주신다면?
김연수 : 김애란 작가와 오랫동안 같이 지내면서 늙어가게 되어서 기쁩니다. (웃음) 홀수로 제목을 정한다고 하셨는데 반대로 저는 『밤은 노래한다』,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세계의 끝, 여자친구』처럼 짝수로 제목을 정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김애란 : 10년 전쯤에 전자책에 관한 질문을 받았는데요. 저는 작가 관점에서 책의 물성에 집중해 어색함, 거부감 위주로 이야기했어요. 그때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으로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10년쯤 지나서 몇 번의 이사를 경험하고 시대를 보니까 한국의 대부분이 거주 조건이 불안정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특히 젊은 분들은요. 그래서 누가 내 책을 사준다는 건 사실 책을 사는 게 아니라 불안정한 거주 조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공간 일부를 기꺼이 내어주는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기 공간의 일부를 양보해주는 거라는 느낌이 문득 든 거죠. 그래서 종이책을 사주시는 분들께 각별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결론이 그게 아닌데 책 사주셔서 감사하다는 말 같네요. (웃음) 여러분들 직접, 그리고 책으로 만나 뵙게 되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독자들의 질문
「입동」이라는 단편을 보면 큰집으로 이사를 하는 장면이 나와요. 김애란 작가님에게 큰 집으로 이사를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99년도에 처음 상경해서 이제 서울 산 지 15년쯤 되었는데요. 이사는 9번쯤 간 것 같아요. 한국의 평균 계약 기간이 2년이니까 사실 딱 맞아떨어져요. 그래서 제 또래의 이사 이력에 비해서 그렇게 엄살 부릴 만한, 자랑할 만한 횟수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정착에 대한 욕구는 있어요. 그래도 저는 지나치게 운이 좋아서 방에서 방으로 옮길 때라도 조금씩 나은 데로 갔어요. 또 방과 사랑에 빠져서 맨날 쓸고 닦고 방을 물고 빨기도 했고요. 결혼하고 나서는 방이 아니라 집에서 살게 되었는데 「입동」의 주인공처럼 새벽에 화장실을 가다가 우리 집을 남의 집 보듯이 구경하는 느낌도 있었어요. 「입동」의 감각과 DIY를 하는 풍경은 제가 공감할 수 있는 경험과 감정에서 뽑아낸 문장들이에요."
개인적으로 김애란 작가님의 단편을 읽을 때마다 부끄럽다는 감정이 많이 들었어요. 혹시 소설을 쓰고 나서 부끄럽다거나 내면을 다 보여주는 기분이 들어 거부감이 들지는 않으셨나요?
"언제나 소설이라는 핑계가 있는 것 같아요. “이건 지어낸 거예요, 소설이에요, 그냥 인물이에요”라고 그 뒤에 숨을 수 있어서 괜찮아요. (웃음) 숨을 데가 없다는 면에서 산문이 더 어려워요. 부끄러움을 드러내는 건 독자분에게 “너도 이렇지?”라고 비판하고 싶은 솔직함이라기보다는 친해지려는 방법일 때가 많았어요. 저도 검열 많이 하고, 많이 숨기고, 제 이미지 관리도 많이 하고 사포질해서 내놓는 편이에요. (웃음)"
유승희(예스24 대학생 리포터)
글이 가진 힘을 믿는 사람. 꾸준히 읽고 쓰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동글
2017.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