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가면』이 또 49권 이후 나오지 않는다. 무려 1976년 시작해 아직도 끝날 생각을 안 하는 이 시리즈에서 내가 가장 먼저 주목한 부분은 ‘천재란 무엇인가’였다. 주변에서는 다들 천재라고 야단인 주인공 마야는 스스로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재능? 저한테 재능이 있어요?”
“재능이란 건 자신을……자기 자신을 믿는 거란다. 곧 알게 될 거야.”
- 『유리가면』 1권 중에서
어린 시절, 나는 마야를 보며 생각했었다. 마야도, 이런 만화를 그리는 스즈에 미우치도 나랑 별세계 사람이다, 이런 건 천재나 할 수 있는 일일 거다, 라고.
천재는 유치원 시절 초등학생 대상 그림대회에 별 생각 없이 나갔다가 뛰어난 실력으로 심사위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어 특별상을 제정하게 하고, 처음 본 피아노 교본을 하루 만에 해치운다. 남들은 설명해줘도 뭔 말인지 이해하지 못할 미적분을 초등학교 2학년 때 본능적으로 풀어내며, 아이큐 검사 결과 140이 넘게 나와도 멘사에 가입하는 건 돈 들고 유치한 짓이라며 정중히 거절한다.
살다 보니 이런 천재들을 거듭 만났다. 그 사이에서 살아날 방법을 강구하자니, 적어도 내가 글을 빨리 쓸 줄은 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어린 시절 내 장래희망은 작가가 되었으나, 어른이 된 나는 아무리 좋게 봐도 『유리가면』의 대작가 스즈에 미우치와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이제라도 장래희망을 국가공무원으로 바꿔야 하는 게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할 무렵, 책 한 권이 운명처럼 다가왔다.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 2007년 전 이 맘 때 이 책을 읽은 후 『유리가면』 ‘기적의 사람’ 에피소드 편에서 "WATER!"를 외치던 마야처럼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미스터리를 써야 한다는 걸. 이후 나는 미스터리 덕후로 거듭났다.
작년에 출간한 『붉은 소파』는 이런 덕질의 결정체였다. 나는 이 책을 출간한 후 정유정, 김탁환, 백민석, 장강명 등 그간 만나고 싶었던 유명 작가들을 차례차례 만났다. 놀랍게도 그 작가들이 날 알아봤고, 나는 자신이 덕질하는 장르에서 인정을 받았다는 칭호인 ‘성덕(성공한 덕후의 줄임말)’을 얻을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상을 탔을 때보다 성덕이란 말을 들었을 때가 더 기뻤다)
요즘 나는 세상이 지나치게 눈부시다(어두운 곳에 숨고 싶어). 악평도 황송하다. 『중쇄를 찍자』의 명대사처럼 악평이 달린다는 건 내 팬이 아닌 사람도 내 소설을 읽는다는 뜻이니까. 모든 평에 달린 이야기는 심사숙고해서 차기작에 꼭 반영할 셈이다. 그 때도 또 악평이 달린다면 다시 도전하면 그만이다. 나는 덕후니까. 10년간 해온 일, 앞으로 10년쯤 더 못할 까닭이 없다. 『유리가면』도 아직 안 끝났는데, 이쯤이야.
마지막 회를 기념하여 내가 지금껏 해왔고, 앞으로도 해갈 덕질 방법을 『유리가면』을 예시로 밝혀 본다.
1. 우선 즐기라
ex) 『유리가면』 마야 : “나, 연극이 좋아! 배우가 될래!”
2. 자신의 재능을 믿고 누구보다 깊이 파고들라
ex) 나는 중학생 때 『유리가면』이 『흑나비』로 대본소용 불법제작 되었던 판본도 찾아서 봤다. (후후)
3. 안 된다고 포기하지 말라. 인생 길게 보라
ex) 『유리가면』 마야의 트레이드 대사 : “잡을 수 있어! (하악하악) 나는 베스(헬렌/제인/알디스 등등)가 될 거야! (허억허억)”
4. 목표는 높게 잡아라
ex) 『유리가면』 같은 발암(다음편 기다리다 암 걸린다) 만화(소설)가 될 테야!
『붉은 소파』 사인본 이벤트
순전히 사은품이 갖고 싶은 마음에(ㅠㅠ) 어쩔 수 없이 탁쌤 신작 에세이를 2권 산 바보같은 덕질로 인하여(ㅠㅠ이호구야이덕후야ㅠㅠ) 이벤트를 하고 있습니다. 마침 성공한 덕후 칼럼 마지막 회고 하여 ;;; 탁쌤 신작 에세이 『그래서 그는 바다로 갔다』 『붉은 소파』 사인본 조영주 작가 사인 머그를 주는 추첨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조영주의 성공한 덕후>의 독자 분들께도 기회를 드리고 싶습니다!
조영주(소설가)
별명은 성덕(성공한 덕후). 소설가보다 만화가 딸내미로 산 세월이 더 길다.
zepen
2017.06.23
조영주
2017.06.23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자세한 경과보고는 아래 링크 클릭해주십셔.
채널예스에 적지 못했던
정유정 작가님 이야기를 "성덕의 증거"로 날렵하게 덧붙였습니다.
http://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ameraian_2&logNo=221035852489&navType=tl
aseu
2017.06.22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