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덧셈이다. 귀를 기울일수록 편곡의 풍부함이 체감돼 쉽게 넘길 트랙이 하나 없다. 흥미로운 건 「Destiny」 이전의 러블리즈였다면 충분히 타이틀곡으로 선정했을 법한 유형의 곡들이 이제는 2번 트랙 너머의 수록곡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아마 2년 전에는 스트링으로 꽉 채운 「숨바꼭질」을 타이틀로 정하지 않았을까. 신작에서는 그룹을 벗어나서는 특별히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멤버 개개인의 캐릭터를 진화시켜 달콤, 상큼, 성숙, 고독의 총천연색 이미지를 전부 소화한다. 곳곳에서 자신감이 넘친다.
시간 싸움에서 난항을 겪고 있었다. 너무 음악성에만 치중한 나머지 반복 청취를 위한 자극이 부족하다는 게 거듭된 패인(敗因)이었다. 그러던 중 「Ah-Choo」의 히트로 성공 반열에 오르는 듯하더니, 이후에 내놓은 「그대에게」와 「Destiny(나의 지구)」가 「Ah-Choo」를 받쳐주기에 다소 미미한 성과를 냈다. 엎친 데 덮친 격. 문화체육부 발(發) 차트 집계 변동의 첫 타자로 지목돼 소동을 겪었다. 발매 당일 러블리즈의 자리로 추정되는 순위 데이터가 아예 사라진 것. 19위와 21위 사이의 텅 빈 곳이 종일 분노의 화젯거리로 떠올랐다.
「WoW!」는 승부수다. 이전까지 러블리즈가 받았던 무난하다, 심심하다는 평은 이 곡을 통해 반전을 손에 넣는다. 도입부터 펑키(funky)한 베이스로 이목을 집중시키고, 포인트 단어인 “와우”의 연타로 아이돌 식 후크를 갖췄다. 잦은 분위기 전환으로 속도감을 높여 듣는 재미가 있고, 후반부에는 소위 (고음을) 지르는 구간까지. 리너스(러블리즈의 팬클럽인 ‘러블리너스’의 줄임)가 아닌 리스너들이 즐기기에도 좋을 만한 성분을 고루 주입했다.
가사를 해석하기에 조금 난해할 수 있을 타이틀곡의 특성(좋게 말하면 독특함, 나쁘게는 이질감)을 경계해 균형추도 구비했다. 언제나 환상적인 스토리텔링을 선보였던 러블리즈에게 주인공(사랑의 대상)의 뒤에서 그를 애타게 바라보는 「Cameo」는 안성맞춤의 캐릭터. 그룹에게 편안한 옷이며, 대중에게도 익숙한 이미지다.
일부 멤버에게 쏠려있던 비중도 조금씩 밸런스를 되찾아가고 있다. 8명을 3개의 집합으로 분할해 만든 유닛 곡은 단체 곡에 결코 뒤지지 않는 인상을 남긴다. 보컬 라인인 케이(Kei), 베이비소울, 진(JIN)을 발라드 트랙인 「새벽별」에, 발랄한 이미지의 류수정, 이미주, 정예인을 록킹한 기타 팝 「The」에, 깜찍한 음색의 유지애와 서지수를 동화적인 터치의 보사노바 곡 「나의 연인」에 각각 배치했다. 설령 기술적인 완성도에 흠을 남길지라도 보컬 그룹이 아닌, ‘아이돌 그룹’으로서의 기획 방향을 고수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절차였다. 호흡의 서투름은 애정이 식는 것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음반의 구성에 설득력이 있다.
1990년대의 그림자로만 남지 않기 위해 팀은 끊임없이 연구했다. 그 결과로 직전의 곡 「Destiny」에서 파생한 마이너 조성의 후렴구가 아련한 감성 코드를 여전히 지켜내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마냥 밝기만 한 곡으로 착각하게끔 전략을 세웠다. 멤버 유지애가 특징적인 목소리로 부르는 ‘킬링 파트’ 카드를 버리지 않으면서도, 한명 한명을 부각하는 기능을 하는 소절을 삽입했다. 물론 여전히 프로듀서의 기운이 강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러블리즈 대신 원피스(1Piece)의 이름이 먼저 떠오를 때의 아쉬움이다.) 그럼에도 지금의 멤버 구성에 대한 당위성을 찾아 그들 각자의 장점을 한껏 부각해 독창성을 발휘하고, 그와 더불어 대중 취향과 거리를 좁혔다는 점에서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만한 결과물이다. 필살기는 약할지언정, 주특기는 여덟 가지나 된다.
홍은솔(kyrie1750@naver.com)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