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 봄이 왔어요 지혜 님! 잘 지내셨나요?
지혜 : 잘 지냈어요. 그런데, 저 지금 통화 중이었는데. 바로 말을 거시는 이 과감한 센스!
의정 : 한동안 제가 처음 인사를 놓친 것 같아서요. 오늘은 먼저 인사하고 싶었어요.
지혜 : 인사를 먼저 걸어주면 좋죠. ^^ 오늘 날씨 참 좋네요. 간만에 미세먼지도 좀 적은 것 같고요. 봄 좋아하나요?
의정 : 좋죠. 예전에는 더 좋아했는데, 요새는 먼지와 종잡을 수 없는 날씨 때문에 조금씩 좋음 포인트가 깎이고 있어요. 지혜 님은요?
지혜 :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에요. 다만 갈수록 짧아져서 좀 속상하죠. 의정 님이 이번 달에 선택한 책은 봄과 어울리는 책인가요?
의정 : 봄에도 어울리고 여름에도 어울리고 사시사철 어디서나 읽어도 좋을 책입니다. ㅋㅋ 『양과 강철의 숲』이라는 소설입죠.
지혜 : 제목이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한 책인데요. 직역이겠죠?
의정 : 한자를 읽어보면 직역이 맞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내용일까 싶었는데, 읽고 나니 과연 적절한 제목이다 싶었어요. 지혜 님의 선택은 무엇인가요?
지혜 : 빨간 표지가 무척 인상적인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라는 책입니다. 올해 1월에 나왔는데요. 독자 리뷰가 좋더라고요. 제목 그대로 일본의 1인 출판사 대표들의 인터뷰를 묶은 책입니다. 1인 출판사로 유명한 '유유'에서 나온 책이죠. 아참, 1인 출판사란 대표 외에 노동자 3인까지로 구성된 출판사를 말합니다.
의정 : 1인 출판이라고 해서 정말 한 사람이 다 하는 건 아니었군요.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네요. 책이든 어떤 것이든 혼자서만 만들어낼 수는 없으니까요. 제 책도 그런 점에서 보면 비슷한 내용일까요? 『양과 강철의 숲』은 피아노 조율사의 이야기입니다. 조율하는 사람은 반드시 연주하는 사람이 있어야만 존재하죠. 듣는 사람도 필요하고요. 저 또 심각해졌나요? ㅋㅋ
지혜 : ㅋㅋ 아니요. 맞장구를 치려던 찰나였습니다. 그런데 '듣는 사람'은 꼭 필요하지 않지 않나요?
의정 : 물론 치는 사람만 있어도 좋지만, 누군가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음악도 기뻐하지 않을까요? 책이 읽히기 바라는 것처럼요.
지혜 : 최근에 모 저자의 피아노 사건을 듣고 나니, 꼭 들어야만 하는가? 싶은 생각이 훌쩍 들었네요. 그런데 소설이 무척 궁금합니다. 세 줄 정도로 줄거리 요약, 가능한가요?
의정 : 자자, 줄거리 나갑니다 'ㅁ'/ 주인공은 열일곱 살 어느 날, 학교 체육관의 피아노를 조율하는 소리를 듣고 숲 냄새를 맡습니다. 그 순간 매료되어 조율사가 되기로 결심하죠. 조율 학교를 나와 '좋은 소리'란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하나하나씩 피아노를 알아가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딱딱한 줄거리 소개라니, 정말 아쉽네요. 책을 읽으면 숲 향기와 숲 소리와 온갖 좋은 소리가 나는데 말이죠.
지혜 : 좋은 소리란 무엇인가.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에 적용하면, 좋은 책은 무엇인가로 볼 수 있겠네요. 숲 소리가 나는 듯한 소설이라면 정말 관심이 갑니다. 의정 님은 피아노 치는 거 좋아하시죠? 몇 주 전, 피아노에 관련된 글을 쓰셨잖아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피아노를 좋아하는 것이 이 책의 선택과 관련이 있었나요? ㅎㅎㅎ (이게 웬 뚱딴지... 산으로 간다. ㅠ.ㅜ)
의정 : 아무래도 피아노를 쳤던/치는 사람이 읽으면 들려오는 소리가 남다를 것 같아요. 읽으면서 푸핫, 했던 장면이 있는데 먼저 한 부분 소개해도 될까요?
지혜 : 끄응. 양보하겠습니다. ㅋㅋ
의정 : 후후 이것까지만요.
속도가 너무 느려서 몰랐는데 쇼팽의 <강아지 왈츠>였다. 노래는 한동안 형상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차츰 강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조율 도구를 정리하던 나는 놀라서 청년의 뒷모습을 보았다. 커다란 개다. 쇼팽의 강아지는 몰티즈 정도의 작은 개였을 텐데 이 청년의 강아지는 이를테면 아키타나 래브라도 레트리버처럼 몸집이 크고 조금 어수룩한 강아지였다. - 『양과 강철의 숲』, 165쪽
의정 : 레트리버만한 큰 <강아지 왈츠>라니, 정말 신나게 쳤던 게 분명해요. 이제 진짜 마이크 넘겨드릴게요. ㅎㅎ
지혜 : 맨날 말로만.. ㅋㅋㅋ 이 소설이 '2016년 일본 서점대상' 1위 수상작이잖아요. 서점대상은 믿고 보는 편이라. 앗 그런데 생각해보니, 오늘 둘 다 일본 책을 소개하고 있군요. 그나저나 제가 즐겁게 읽은 부분은 대체로 전부 다예요. 저는 팩트도 좋아하지만, 소소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좋아합니다. 이 책에는 여러 출판사의 사연이 나오지만, 읽다 보면 출판사를 넘어 사람의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해요. 다양한 사연이 들어 있지만 풍기는 맛이 비슷해요.
의정 : 이쯤에서 하나 소개해 주시겠죠? (기대기대)
지혜 : 특히 인상 깊었던 내용은 '1인 출판사는 유쾌하게 살아갈 수 있는 수단이 될까?' - 도요샤의 도요타 쓰요시 씨의 이야기입니다. “한숨 돌리는 것도 업무에 들어간다”, "어느 정도 적당히 하는 부분이 없으면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이 전에 했던 일들을 통해 깨달은 점"이라는 이야기가 인상 깊어요. 오늘은 뭔가 팩트보단, 말 중심으로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요. 이래도 될까 몰라요~ 여하튼 1인 출판사의 면모가 궁금한 독자들이 읽으면 분명 재밌을 거예요. 이게 꼭 일본 이야기만은 아니거든요. 한국도 굉장히 비슷하죠. 소규모 출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아… 너무 독자층을 빨리 정한 걸까요? 끄응. 봄 타나 봐요. 꿀렁~
의정 : 꿀렁~ 한숨 돌리기, 중요하죠. 저는 오후 때마다 차를 한 잔 마시면서 한숨 돌리려고 애쓰고 있는데 쉽지 않네요. 이렇게 말이 나오니까 하나 더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근질근질 드는데.... 지혜 님 턴을 뺏는 것도 욕심이겠죠 ㅠ? 권유 지수는 몇 점 주셨나요?
지혜 : 권유는 80, 재미는 90, 지력은 60 드렸습니다..
의정 : 저는 오랜만에 권유 95점 드렸어요. 그만큼 다들 읽어보시면 좋을 책이에요. 앗차, 말하고 보니 또 제 책 이야기군요--;
지혜 : 95점! 오늘은 제가 졌군요. ㅋㅋ 그럼 냉큼 제가 좀 마이크를 좀 가져가도 되나요? 아아아! 마이크 테스트! 저는 명랑한 사람을 참 좋아하는데요. 53쪽에 이런 문장이 나와요. "결코 인생을 사는 내내 이를 꽉 물고 산 건 아니에요. 어딘지 밝고 느긋한 면이 보여서 제 안에서 오스기 사카에는 유쾌한 사람입니다." (참고로 오스기 사카에는 일본 작가이고요) 뭐랄까. 1인 출판사를 여는 사람들의 모습을 표현한 문장이 아닐까 싶었어요. 저는 정말 매일매일 이를 악 물고 일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거든요.
의정 : 싫지만 점점 더 악물게 돼요. 피아노를 조율하는 데 기준이 되는 '라'음이 점점 높아진다고 하더라고요. 예전에는 440헤르츠였던 게 지금은 442헤르츠 위로도 올라간다고요. 다들 초조해하는 것과 연관된 게 아닐까요? 점점 더 높은 음, 점점 더 빠르게 치는 걸 원하는 거죠. 그런 점에서 1인 출판은 속도를 늦춰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이 정도면 완전히 마이크 뺏은 건 아니죠?
지혜 : ㅎㅎ 글쎄요. 저는 근데, '이를 악무는 모습을 보기 싫다'는 거였어요. ㅎㅎ ‘라’ 음이 점점 높아진다니! 몰랐던 사실입니다. 어릴 적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 엄청나게 연습을 시키고, 가끔 손등을 때리기도 하셨거든요? 그래서 피아노에 관한 안 좋은 추억이 많아요. 혹 저 같은 사람이 읽어도 재밌을까요?
의정 : 두 손 엄지 척척 들고 추천합니다. 피아노가 싫었던 분이라면 조금 더 피아노를 좋게 보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요?
지혜 : 표지가 아름다우니, 카트로 슬쩍 넣어 볼게요. 제 서재는 소중하니까! 그런데 우리나라 전체 출판사 중에 1인 출판사가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인 줄 아세요?
의정 : 은근 많을 것 같은데요. 한 30% 될까요?
지혜 : 2015년 출판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76.1%’라고 합니다.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하고요. 책 1권을 만드는데 평균 1천 만원이 든다고 해요. 1쇄를 다 팔지 못하면 손해를 보고요. 그러니까 2쇄부터 조금이나마 수익이 생기는 건데. 사실 참 어려운 책이 많죠.
의정 : 헉, 어느 책이든 반드시 그 책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 텐데요. 그런 점에서 저희 같은 사람들이 열심히 책을 소개해 줘야 맞는 독자들에게 가지 않을까요? 흠흠... 독자님들, 그냥 그렇다고요.
지혜 : 58쪽에 이런 문장이 나와요. "출판사까지 '살아남기 위해' 책을 낸다는 인상을 독자에겐 안 주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가끔 정말 별로인 저자의 책을 좋아하는 출판사에서 내면 충격을 받아요. 속으로 생각하죠. "이 책 판 돈으로 진짜 만들고 싶은 책 만들려고 하나?" 이해도 가지만 슬프죠. 많이. 그러나 제게 100만 부 이상 팔릴 것 같은 원고가 찾아 왔을 때, 안 낼 순 없겠다 싶어요. ㅠ.ㅠ
의정 : 저는 많이 팔리는 책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일단 먹고 살아야 뭔가 즐거운 일도 하고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현실과 타협하는 것일지는 몰라도요. 그리고 많은 사람이 찾는다는 건 그만큼 많은 사람에게 필요한 책일지도 모르고요.
지혜 : 물론이죠. 베스트셀러도 이유가 있어요. 다만 만들어진 베스트셀러도 종종 존재하니까요. 이 정도는 아닌데, 이 정도는 아닌데 싶은. 베스트셀러만 주목하는 우리도 문제겠지만 말입니다. 그나저나 '양'과 '강철'은 어떤 의미인가요?
의정 : 오! 본질을 꿰뚫는 질문 감사합니다. 피아노가 소리가 나기 위해서는 강철로 된 피아노줄과 줄을 때리는 해머가 필요한데요. 해머는 양모로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좋은 곳에서 건강하게 자란 양의 털일수록 더 좋은 소리가 난대요. 이걸 읽고 나서 피아노를 칠 때마다 대관령 양떼 목장이 생각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지혜 : 사실 저 질문을 처음부터 하고 싶었는데 말이죠. 너무 뻔한 질문일까 봐 참고 있었습니다만, 독자 분들도 궁금하셨을 거라고 믿습니다!
의정 : 궁금증을 참고 기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 슬슬 안녕해야 할 시간인데요, 마지막으로 한 문장씩 소개하고 끝나면 어떨까요?
지혜 : 제가 먼저 할게요!
"첫 책의 띠지 문구 '뭐가 중요한지는 내가 결정한다'는 회사를 그만두고 혼자 창업한 제 경험에서 나온 말이기도 합니다." -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 31쪽
지혜 : 저도 속으로 외쳐보았어요. "뭐가 중요한지는 내가 결정한다(짜샤~)"
의정 : 후후, 괄호 안 (짜샤~) 가 제일 마음에 와 닿는데요?
희미하게 밝아지는 나뭇가지나 그 후에 일제히 움트는 어린잎이 아름답다는 사실, 동시에 그것들이 당연히 거기 있다는 사실에 새삼스럽게 놀랐다. 분명 내가 깨닫지 못했을 뿐이지 세상 모든 곳에 아름다움이 숨어 있었다. (중략) 피아노가 어딘가에 녹아든 아름다움을 꺼내어 귀에 들리게 해주는 기적이라면 나는 기쁘게 피아노의 종이 되리라. - 『양과 강철의 숲』, 27쪽
지혜 : 알고 보니, 의정 님 낭만파였음. ㅋㅋ
의정 : 더 낭만적인 문장이 많아요(소곤소곤) 영업은 쭉 계속된다, 중쇄 찍을 때까지!
지혜 : ㅋㅋ '왜 너는 이 책을?'로 중쇄를 찍었다는 소식이 들릴 때까지요?
의정 : 다음 번에는 대박 소식을 들고 찾아오길 바라며! 엄청 짧은 봄이지만 알차게 즐겨보아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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