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영미 씨는 교사가 되기 위해 교직과목을 신청하고 이후 임용고시를 준비할 생각이다. 부모도 영미 씨가 교사가 되는 것에 찬성하며 적극적으로 후원을 하겠다고 했다. 사범대학이나 교대는 아니지만 안정적인 직업이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좋아한다는 점에서 교사는 괜찮은 꿈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영미 씨의 꿈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물론 지금도 교사가 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노력에 따라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영미 씨가 교사가 되려는 꿈이 본인의 노력과는 상관없는 더 큰 변수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면? 이 때에도 영미 씨의 꿈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영미 씨의 노력이 부족해서라도 말할 수 있을까?
이런 궁금증에 대해서 인구학적 통계자료를 기반으로 10년후의 미래를 예측하고 오늘을 준비해야 한다는 대답을 하는 책이 있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인 조영태의 『정해진 미래』다. 이 책에 따르면 2000년 기준, 우리나라의 초등학생 수는 400만 명, 중학생은 200만 명이었다. 그러나 2013년에 초등학생수는 300만 명 미만으로 25%가 줄어들었고, 중학생은 2017년에 145만 명으로 줄어든다. 아마도 영미 씨가 본격적으로 교사로 활동을 할 2035년에는 초등학생 230만 명, 중학생 115만 명, 고등학생은 118만 명이 될 것으로 추정한다.
우리나라는 적극적으로 공교육에도 투자를 많이 하고 있어서 교원수가 2000년 14만 명에서 2013년 18만 명으로 14년 동안 29%가 증가했다. 학생은 줄어들지만 교원은 늘어나서 학생 1인당 교사의 수가 2014년 14.7명까지 떨어져서 OECD평균에 거의 일치하는 수준이 되었다. 한 반에 60명은 기본인 과밀학급, 콩나물 교실, 2부제 수업을 떠올리던 1960-70년대 출생자들에게는 불과 몇 십 년 만에 엄청난 변화가 온 것이다.
교육환경은 개선되었지만 지속적으로 학생 수가 줄어든다면 경제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고, 교사는 공급과잉이 될 것이 분명하다. 저자는 OECD 평균을 기준으로 2016년 초등학교에서 필요한 교사의 수는 16만 5,232명인데, 현재 재직 중 교사가 18만 2,658명으로 1만 7천명이 많은 상태라 밝혔다. 이는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이어진다. 특히 저출산이 확실히 시작된 2002년생이 고등학교에 진입하여 고3까지 채우는 2020년에는 학생수가 140만 명으로 2015년보다 무려 40만 명이 줄어드는 상황이 예상된다. 고등학교 수를 그대로 유지한다고 할 때 2015년 재직중인 교사 중 약 4만 명이 10년후에는 OECD 평균을 기준으로 잉여 자원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근거로 그 4만명이 퇴직할 때까지 신규교사 채용은 필요 없는 상태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꽤 설득력이 있다.
이런 자료를 본다면 영미 씨가 교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는다는 것은 합리적일까? 또 만일 교사가 되는 게 어려워졌다면 그것이 오롯이 영미 씨의 노력이 부족해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난 15년간 교사수가 29%가 증가했다는 것은 퇴직하는 교사를 포함해서 보면 꽤 많은 수의 교사가 신규 채용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새로 늘릴 이유는 없어 보인다. 15년의 큰 흐름과 달리 신규채용은 줄고, 현직 교사수도 줄여야 할 필요까지 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교사준비를 한다는 것은 꽤 위험한 투자일 가능성이 있다.
이와 같이 인간은 환경과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한다. 이는 자살과 같은 개인적 선택에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미국의 인구학자들의 이름을 딴 ‘이스털린-프레스턴 이론(Easterlin-Preston theory)’를 소개하면서 연령대별 인구코호트의 크기가 자살률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베이비부머 시대처럼 같은 연령대의 사람수가 매우 많은 큰 코호트 집단에 속한 경우 아무래도 취업, 결혼 등에 치열한 경쟁을 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그런 경쟁을 해야 하는 시기, 예를 들어 20대나 30대에 자살률이 높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코호트 사람들이 이제는 나이가 들어 은퇴를 하고 나면 도리어 자살률이 다른 코호트보다 낮다. 왜냐하면 비슷한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덜 외롭게 느끼기 때문이고, 사람수가 많으니 자신들의 요구를 정치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사회적 힘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현재 우리나라 노인 자살률이 매우 높지만 한국의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하고 노령인구로 진입하는 수 년 후에는 자연히 노인 자살률이 감소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예측하기도 한다.
물살이 흐르는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수영을 하면 속도를 내기 쉽고, 힘도 들지 않는다. 그러나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거나 횡단을 하려면 속도를 내기도 어렵고 힘도 두세 배 많이 든다. 개인이 환경의 변화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특히 지금 한국사회는 출산의 저하, 노령화의 급격한 진행, AI의 등장과 같은 급격한 흐름의 변화를 맞닥뜨리고 있다. 이때 선배의 뒤를 따라 같은 방향으로 가면 되겠지라는 마음만 갖고 수영을 하다가는 물살의 방향이 바뀐 바람에 힘만 죽어라 팔과 다리를 휘젓다가 갈 곳은 가지 못하고, 지쳐서 빠져 죽을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물속으로 뛰어들기 전에 먼저 흐름을 주목해야 한다. 만일 물살이 내가 가려는 방향이 아닌 쪽으로 너무 거세다면 잠시 멈추고 흐름이 바뀌기를 기다리거나, 최소한 물살의 속도라도 줄어들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만일 물살이 오랫동안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게 분명하다면 목적지를 바꿔보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닐 것이다.
저자는 사회적 미래는 인구학적 통계를 통해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지만 개인의 미래는 매 순간의 판단, 선택, 노력에 의해 정해나갈 것이라 말한다. 다만 그 개인의 미래를 선택할 때 이런 사회의 거시적 현재와 미래를 함께 보는 것이 현명한 태도가 될 것이라 지적한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전적으로 동감을 한다. 이런 미래를 내다본 저자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아이들의 교육에는 투자하지 않는다고 발언했다. 출생자수가 대학입학정원보다 적은 나이대의 아이이기 때문에 공부를 하지 않아도 대학입학은 쉬울 것이라는 개인적 예측을 했다는 것이다.
큰 흐름으로는 맞지만 내 의견은 조금 다르다. 저자의 개인적 예측에서 ‘인간의 욕망’이라는 중요한 변수를 빠트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출생자수가 줄어든다고 해도 세칭 최상위권 일류대학의 입학정원 1만여 명에는 여전히 출생자수 전체보다는 매우 적고, 그 대학에 들어가 사회의 사다리 상층부로 올라가려는 욕망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세상의 흐름을 잘 살펴보면서, 동시에 내면의 욕망을 함께 들여다보는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한 것 같다.
-
정해진 미래조영태 저 | 북스톤
이 책은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인구학적 관점’이라는 기준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전략을 알려준다. 우리나라 최고의 인구학자로 손꼽히는 조영태 교수는 이 책에서 저출산 세대가 사회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게 될 미래까지의 전체적인 사회변화상을 보여준다.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