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색하지 않은 사람을 좋아해요. 그리고 인색한 사람을 싫어해요. 비단 금전적인 문제를 떠나서요, 인간사의 도리가 필요한 순간에 그 타이밍에 상대가 어떻게 구는가를 봐요. 그리고 내 사람이다, 내 사람 아니다 빠른 판단을 하는 것 같아요.”
-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김민정 인터뷰에서
인간적으로 궁금한 사람에게 종종 묻는 질문이 있다. 그러니까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사이가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서. 시인 김민정을 만났을 때, 유독 그런 질문이 쏟아졌다. 궁금했던 시인이기 전에 궁금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을 좋아하나요?” 이 식상한 질문에 시인은 어떤 답을 내놓을까 기다리던 찰나, 시인은 답했다. “인색하지 않은 사람을 좋아해요. 그리고 인색한 사람을 싫어해요.”
‘인색하다’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재물을 아끼는 태도가 몹시 지나치다’, ‘어떤 일을 하는 데 대하여 지나치게 박하다’이다. 아마 짠돌이, 짠순이로 표현될 수 있겠다. 시인의 대답이 지금까지 생각나는 건, 나 역시 ‘인색한’ 사람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주머니를 너무 안 여는 인색함, 더하기 지나치게 감정 표현을 안 하는 인색함. 입과 주머니를 꾹 닫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기란 영 마뜩잖다.
아직도 기억이 남는 후배가 한 명 있다. 7년 전쯤인가. 후배는 임용고시를 준비 중에 있었다. 특별히 가까운 관계는 아니었는데, 갑자기 내게 상담을 요청해서 퇴근 후 만났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헤어지려던 순간, 나에게 불쑥 문화상품권을 하나 건넸다. “엥? 이게 뭐야?” “선배가 밥도 사주고 차도 사줄 것 같아서요. 제가 드릴 건 없고 그냥 받으세요.” 아, 이런 센스는 어디에서 배웠을까? 나이 차이도 꽤 나고 사는 곳이 멀어져서 지금은 연락을 안 하지만, 아직도 문화상품권을 받았던 광화문 사거리가 기억난다. 2주 전에는 싹수 후배가 메모를 하나 건넸다. “차 한 잔, 하실 수 있어요? 고민 좀 들어주세요.” 지갑을 들고 나갔는데 자기가 차를 사겠단다. 한 두 살 차이도 아닌데 어찌 내가 얻어 마셔? 끄응! 그러나 나는 어느새 후배가 사준 차를 마시고 있었다. 차 한 잔 얻어 마셔서 좋았던 건 아니다. 당연히 자신이 받아야 하는 위치라고 생각하지 않는 그 마음이 예뻤다.
누군가 내게 인색하게 굴면 ‘아, 내가 그에겐 이 정도구나’ 생각한다. 내가 먼저 마음을 열기 전에는, 지갑을 열기 전에는 결코 ‘먼저’가 없는 사람. 또 보고 싶진 않다. 가끔 생각한다. 돈이 너무 중요하면 말이다. 그 중요한 걸, 중요한 사람에게는 조금 나눌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지갑도 마음도 가끔은 먼저 열자고 다짐하는 봄이다.
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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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글
2017.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