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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 지난 뒤, 나는 용서라는 말을 찾아봤다

데이비드 밴의 『아쿠아리움』과 빙 앤 루쓰의 ‘Starwood Cho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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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가 인생에서 벌어진 일들을 용서한다고 한다면 어떨까? 그때의 용서에도 방향이 있다면, 과연 어느 쪽을 향하고 있을까? 나는 다시 ‘Starwood Choker’의 피아노 선율에 귀를 기울여본다.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소설을 처음 펼치는 기분은 낯선 도시로 들어가는 버스에 앉아 있는 것과 비슷하다. 그 도시에 대해 아는 바가 하나도 없는 나는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리라. 그때 나는 뭔가 보게 될 텐데, 그 뭔가는 늘 어떤 이야기의 실마리가 된다. 예컨대 내가 사는 일산의 초입에는 ‘바르게 살자’라는 글귀가 새겨진 돌덩이가 서 있다. 이것도 나쁘지 않다. 그런 경고가 필요할 만큼 끔찍한 악의 소굴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니까. 소설의 첫 문장은 그런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들어야만 한다. 익히 알다시피, ‘오늘 엄마가 죽었다’라는 말로 눈길을 잡아채는 이방인』의 첫 문장처럼.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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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묘한 그림은 미국 소설가 데이비드 밴이 2015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아쿠아리움』의, 말하자면 첫 문장이다. 골똘히 들여다보지만, 이게 무엇인지 제대로 읽어낼 독자는 많지 않다. 그렇다면 이어지는 이야기를 읽을 수밖에. 그런 점에서 나쁘지 않은 첫 문장, 아니 첫 그림이다. 데이비드 밴은 왜 이런 그림을 첫 문장 대신에 내세웠을까?

 

아쿠아리움에서 바라본 세상

 

그것은 너무나 못생겨서 도무지 물고기처럼 보이지 않았다. 초록색과 흰색으로 얼룩덜룩한 것이, 온통 웃자란 이끼로 뒤덮인 바위 같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엔 잘 알아볼 수가 없어서, 나는 수조 유리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더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바닥에 파묻혀 있어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데다, 두꺼운 입술은 아래로 늘어져 있고,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눈동자는 작고 검은 구슬 같았다. 검은 점이 박힌 꼬리지느러미도 넓게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도저히 물고기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9쪽)

 

앞의 물고기에 대한 설명이다. 누가 어디서 이런 설명을 하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그때 옆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녀석, 정말 못생겼구나.”라고도, “저 알들 좀 봐라. 알들을 안전하게 품고 있구나.”라고도 말하고, “세점박이씬벵이야. 왜 수컷이 알을 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아. 그쪽이 더 안전해서일 수도 있겠고, 주변의 다른 물고기들을 꾀려는 것일 수도 있겠지.” 같은 이야기도 들려준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적어도 일흔 살은 된 듯한 노인이다. 그리고 그를 쳐다보는 사람은 앞에서 물고기에 대해 설명하던 목소리의 주인공, 그러니까 시애틀에 사는 열두 살 소녀 케이틀린이다. 둘은 지금 아쿠아리움에 있다.

 

알을 품은 세점박이씬벵이가 등장하는 이 첫 장면은 당연히 가족, 그중에서도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한 은유를 담고 있다. 그 녀석이 수컷이라니 아마도 남자인 노인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리라. 이 노인이 일생 단 한 번도 그 물고기처럼 아이를 품은 적이 없다는 사실이 차차 밝혀지면서 알을 품은 세점박이씬벵이는 반복적으로 독자들의 무의식에 떠오르게 된다. 이 물고기는 현재 엄마의 보호를 받으며 자라는 소녀 케이틀린과도 연결된다.

 

물고기는 등장인물들의 상황을 대변하기 때문에 이후에도 계속 삽화로 등장한다. 그러면서 작가는 가족 간의 폭력과 비밀과 용서라는 주제를 말하기 위해 아쿠아리움이라는 상징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한다. 덕분에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로 묘사한 세상의 모습을 데이비드 밴은 다음과 같이 그릴 수 있는 셈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다시 어둠 속, 차 안에 있었다. 북쪽으로 이어지는 빛줄기, 우리 모두를 더 거대한 빛 쪽으로 몰고 가는 거대한 물살. 시애틀은 저 바다 밑바닥 어딘가에 살고 있는 거대한 불가사리 같았다. 환한 등마루 사이로 검은 손가락을 펼치고 있는. 모든 것들을 가까이 끌어당기는, 생체발광하는 불빛. 저 심해의 낚시꾼들처럼 깊은 어둠 속에서 제각각 빛나는 비행기 불빛들. 몸체는 보이지 않지만, 어둠과 추위를 뚫고 소리도 없이 떠오르는 형체들. 알려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81쪽)

 

모든 가족은 불행하다

 

‘알려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각 가정의 불행은 사소한 계기를 통해 수면 위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케이틀린은 컨테이너 항에서 일을 마친 엄마 셰리 톰슨이 데리러 올 때까지 매일 아쿠아리움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건 케이틀린이 어류학자를 꿈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 알 수 있다시피 아쿠아리움이 그녀를 보호하는 안식처를 상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손을 뻗어 엄마의 겨드랑이 아래로 집어넣고, 발을 더듬어 엄마의 허벅지 밑으로 파고들었다. 어떤 노란씬벵이도 그때의 나보다 더 바위에 찰싹 달라붙지는 못할 것이다. 그 아파트는 우리만의 아쿠아리움이었다. (20쪽)

 

케이틀린이 ‘그때의 나’라거나 ‘우리만의 아쿠아리움이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까닭은 지금 그녀가 서른두 살의 나이로 열두살 시절인 1994년의 일들을 회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왜 갑자기 서른두 살이 되어 그녀는 그때의 일을 회상하기 시작하는 것일까? 그건 그 당시 엄마가 서른세 살이었기 때문이다. 케이틀린은 지금 서른세 살의 엄마가 한 일을 그대로 흉내내려고 한다. 동기는 자세하지 않지만, 케이틀린은 지금 엄마를 용서하고 또 잊으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그 일을 할 수 있는지 가르쳐준 사람이 바로 서른세 살의 엄마이기 때문이다.


다시 20년 전으로 돌아가면, 매일 케이틀린 혼자서 세점박이씬벵이를 보던 아쿠아리움에 노인이 들어왔다는 건 둘만(케이틀린은 엄마와 둘이 살고 있었다)의 안식처를 침범당했다는 의미다. 이 침범으로 그간 감추어졌던 엄마의 불행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불행의 핵심은 열네 살 때, 엄마 셰릴은 암에 걸린 자신의 엄마를 혼자 돌봐야만 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 말하듯이 다른 사람의 행복은 전해듣기만 해도 배가 아프지만, 남의 불행은 눈앞에서 목격해도 강 건너 불구경일 때가 많고, 가족 역시 예외는 아니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고 여긴 엄마는 케이틀린과 같은 나이 때 자신이 엄마를 어떻게 돌봤는지 가르쳐주겠다며 직접 암에 걸린 자신의 엄마 행세를 한다. 케이틀린은 자신의 엄마 흉내를 내며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는 엄마를 씻기고 먹이고 재우며 어쩔 수 없이 열네 살 시절의 엄마가 되어보는 경험을 한다. 마치 사이코드라마를 하는 것처럼 두 사람은 각자의 역할에 몰두한다.

 

뭐라고?
널 가진 후에 모든 게 다 변했어. 몸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다 내가 자초한 일이지만. 평소엔 안 나던 냄새가 났고, 피부는 건조해졌어. 머리카락도 그렇고. 전에 잘 먹던 음식들을 먹을 수가 없었지. 처음으로 알레르기가 생기기도 했어. 너는 내 안의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어. 그건 일종의 침략이었어. 암이 시작됐을 때랑 똑같아. 내가 죽어가고 있는 건 다 너 때문이야.
말도 안 돼.
내 말이 바로 그거야. (204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이틀린은 엄마를, 엄마의 불행을 이해하지 못한다.

 

엄마 나이의 할머니는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었다. 주름진 얼굴에, 잔인한 모습이 아니라 단지 슬픈 표정이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죽어가고 있는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말하며, 떠나야 하는 것에 대해, 그래서 이후에 함께 있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 미안해하며, 그리고 무엇 하나 남기지 않고 그렇게 전부 다 가져가버린 것에 대해 미안해하며 미소지었을 것이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할머니는 그런 모습뿐이었다. (230쪽)

 

여기에 가족의 불행이 있다. 딸은 엄마를, 엄마는 할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열두 살은 서른세 살을, 서른세 살은 일흔 살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한 번도 동시대에 같은 나이대를 살아보지 못한다. 그들은 자기 나이만을 이해할 뿐이다. 만약 케이틀린이 서른두 살이 되어 서른세 살의 엄마를 이해하게 됐다고 말한다면, 그건 사실상 자신을 이해하게 됐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서른두 살의 케이틀린은 쉰세 살의 엄마를 여전히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결국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면 열두 살의 케이틀린은 엄마에게서 주름진 얼굴을, 잔인한 모습을 보게 되고, 결코 엄마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열네 살의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가족 간의 이해란, 대개 이런 식이다.

 

엄마의 얼굴이 믿기지 않을 뿐이었다. 사랑하는 눈빛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역겹다는 표정뿐이었다. 엄마는 마치 쓰레기를 보듯 나를 쳐다보았다. (331쪽)

 

용서의 방향은 어디일까?

 

뉴욕 브룩클린에서 활동하는 미니멀뮤직 앙상블인 빙 앤 루쓰(Bing & Ruth)의 새 앨범 ‘No Home of the Mind’에 수록된 첫 곡 ‘Starwood Choker’의 뮤직비디오(https://youtu.be/PjxRwSmVm5Y)를 보다가 문득 용서에도 방향이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용서의 방향은 어느 쪽일까는 의문이 들었다. 왼쪽, 혹은 오른쪽일까? 그렇지 않다면 앞쪽이나 뒤쪽일까? 머리 위나 발아래라면 또 어떨까? 흐르는 물처럼 부드럽게 이어지는 피아노 선율을 따라 뮤직비디오를 끝까지 보고 나니, 어쩐지 용서의 방향은 빛이 있는 쪽이 아닐까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빛은 모든 곳에 있다.

 

만약 우리가 인생에서 벌어진 일들을 용서한다고 한다면 어떨까? 그때의 용서에도 방향이 있다면, 과연 어느 쪽을 향하고 있을까? 나는 다시 ‘Starwood Choker’의 피아노 선율에 귀를 기울여본다. 말하자면, 이건 질문의 멜로디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과거의 누군가를 용서한다고 할 때, 그를 용서하고 나서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미래일까, 아니면 새로운 과거일까? 아무리 어두운 인생일지라도 빛은 있는 것일까? 빛이 있다면,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 아름다운 음악이 이음새도 없이 흘러가는 동안, 질문은 이어진다. 아쿠아리움』을 다 읽고 나서 며칠이 지난 뒤,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소설을 뒤적거렸다. 열두 살의 케이틀린이 열네 살 엄마의 마음을 이해했듯이 암에 걸린 엄마의 흉내를 내던 케이틀린의 엄마 역시 자신의 엄마를 이해하게 된 게 아닐까?

 

너는 나를 기억해야만 해. 엄마가 말했다. 내가 떠나고 나면 너는 나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유일한 사람이 되는 거야. 그러니까 네가 이해해야 해. 때때로 내가 이러니저러니 하는 건, 도저히 고통을 견딜 수 없어서야. 하지만 그때의 나는 내가 아니야.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야. 알겠니?
알았어.
좋아, 셰리. 좋아. 난 용서를 구할 필요가 없어. 잘못한 게 없거든. 네가 아파서 무슨 일인가 저지르게 된다면, 그건 죄가 될 수 없는 거야. (207쪽)

 

서른두 살이 된 케이틀린이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을 그 시절의 엄마와 노인, 그러니까 케이틀린의 할아버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건 바로 이해한다면, 애당초 용서할 이유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용서에는 방향이 없다. 용서에는 시간도 없다. 늦든 빠르든 모든 사람들은 용서받았다. 그건 단지 이해의 문제일 뿐이다.

 

할아버지는 무릎으로 바닥을 기어 엄마에게로 다가가 양팔로 엄마를 꼭 끌어안았다. 엄마가 할아버지를 감싸 안았고, 두 사람은 그렇게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그제야 비로소 두 사람은 다시 만난 것이었다. 어쩌면 이런 것이 우리가 용서라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과거를 모두 청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현재에 받아들이고 또 인식하면서 끌어안는 것, 천천히 내려놓는 것 말이다. (337쪽)


 

 

아쿠아리움데이비드 밴 저/조연주 역 | arte(아르테)
2008년 『자살의 전설』로 데뷔한 후 출간하는 작품마다 세계 각국의 문학상을 휩쓸며 미국 현대문학의 새로운 거장으로 부상한 데이비드 밴의 신작 『아쿠아리움』이 아르테에서 출간되었다. 어둡지만 안전한 아쿠아리움 속에서 바다를 꿈꾸던 열두 살 소녀 케이틀린이 아픔으로 얼룩진 가족의 비밀과 마주하고, 이를 극복하려 노력하는 가족 소설이자 성장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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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연수(소설가)

전통적 소설 문법의 자장 안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소설적 상상력을 실험하고 허구와 진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이다. 1993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고 이듬해 장편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나섰다. 대표작에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 『7번 국도』 『꾿빠이, 이상』 『사랑이라니, 선영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 소설집 『스무 살』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 『여행할 권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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