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릴 미> 10주년 ‘그’로 다시 만난 배우 김무열
배우는 누구보다 인간적이고 대중과 가까워야 하지만, 반면에 낯섦이 주는 매력이 있잖아요. 그게 배우에게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글ㆍ사진 윤하정
2017.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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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뮤지컬 팬들이 가장 기다렸던 작품 중 하나는 <쓰릴 미>가 아닐까 합니다. 남성 2인극, 그들과 함께 하는 단 한 대의 피아노. 이제는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구성이지만, 10년 전 <쓰릴 미>는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저렇게도 한 편의 공연이 완성되다니! 물론 팽팽한 긴장과 숨 막히는 반전이 짜임새 있게 들어찬 스토리와 스릴 넘치는 음악, 그 멋과 맛을 제대로 살린 배우들의 호연이 <쓰릴 미>의 명성을 이끌어온 가장 큰 원동력일 겁니다. 또 하나, 초연부터 <쓰릴 미>의 진가를 알아보고 시즌마다 모든 ‘그’와 ‘나’를 섭렵하며 장면 하나하나 무섭게 파고든 관객들의 공로도 무시할 수 없을 텐데요. 그래서 관객들은 <쓰릴 미> 10주년인 올해를 ‘뚜렷한 기대’와 함께 기다려왔습니다. 그 ‘타당한 기대’는 결국 최재웅, 김무열, 강필석, 이율 등 류정한 씨를 제외한 초연 멤버 모두를 무대로 소환하는 쾌거를 이뤘는데요. 초연 당시 <쓰릴 미>와 함께 가장 빛났던 그 이름, 김무열 씨를 이렇게 다시 만나는군요. 

 

“옵션이었어요. 다들 ‘초연 멤버가 모두 나오면 참여하겠다’고. 정한이 형까지 함께 하고 싶었는데...”

 

공연이 개막하기 전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김무열 씨를 만났습니다. 기자 역시 <쓰릴 미> 10주년 캐스팅이 발표됐을 때, 김무열 씨 아니면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고 조건을 달았거든요(웃음). 2007년, 바로 ‘최재웅-김무열’ 페어로 <쓰릴 미>를 관람했기에 개인적으로는 뚜렷하고 타당한 요구였습니다. 특히나 10주년 공연은 ‘최재웅-김무열’ 고정 페어로 진행되니까요.


“저희끼리 농담 삼아 말해요. 첫공이 끝난 뒤 우리에게 쏟아질 수많은 비난과 악평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하자고. 기본적으로 ‘쟤네 늙었네, 예전만 못하네’ 이런 얘기가 나오지 않을까요(웃음). 사실 <쓰릴 미>가 스무 살 친구들의 얘기라서 저희도 불편한 면이 있거든요. 예를 들어 재웅이 형 넘버 중에 ‘계약서’가 있는데 ‘어떡하지 아빠가 알면’이라는 가사가 있어요. ‘아빠’ 얘기가 나올 때마다 좀...(웃음) 그런데 의미 있는 무대니까. 10년간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었다는 건 대단하잖아요. 그래서 이렇게나마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잔치를 벌여서 다 함께 즐기고 싶은 기분이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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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초연은 물론이고, 2008년, 2010년 공연에도 참여하셨는데, 오랜만에 다시 대본을 보니까 어떤가요?


“몸이 다 기억을 하고 있더라고요. 대본 몇 번 보고 재웅이 형이랑 바로 일어서서 해봤는데 되더라고요. <쓰릴 미>는 일본 공연 뒤에 전환을 맞긴 했지만 초연 때부터 확고하게 다져진 작품이라 크게 달라진 건 없어요. 그런데 대본을 보면 볼수록 조심스럽기도 해요. 너무 많이 알고 있는 것도 있고, 거기에 묶여서 몰랐던 것들이 새로 나오기도 하고요. 그래서 지금은 익숙한 것을 최대한 배제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래저래 부담이 되실 것 같습니다. 특히 <쓰릴 미>는 정말 세세한 것까지 알고 있는 ‘무서운’ 관객들이 많잖아요(웃음).


“그럼요, 관객 분들이 대본을 쓰실 정도예요(웃음). 예전에 어떤 분은 <쓰릴 미>를 토대로 저를 주인공으로 새로운 소설을 써서 선물로 주시기도 했어요. 그런 분들이 객석에 앉아 계시니까 많이 부담되죠. 하지만 함께 즐겼으면 좋겠어요.”

 

지금이야 동성애를 다룬 작품이 많아졌지만, 그래서 <쓰릴 미>로 만나는 배우들도 작품의 특정 장면 등에 대해 큰 거부감이 없지만, 초연 때만 해도 소재며 형식 등이 굉장히 파격적이었잖아요. 입맞춤 장면도 초연 앙코르 때 처음 등장한 건데, 에피소드가 많았을 것 같습니다.  


“맞아요, 그때는 얼굴 하나 쓰다듬는 것도 저희끼리 힘들어 했어요(웃음). 처음 입맞춤 할 때 객석에서 놀라는 기운이 느껴졌고요. 두 소년의 특별한 관계가 입맞춤 하나로 임팩트를 갖는 효과가 있었는데, 지금은 문화가 많이 달라졌잖아요. 특히 공연계는 동성애에 대해 거부감이나 논란도 없고요. 참, 초연 때 율이가 생각만큼 잘 안 풀렸는지 갑자기 삭발을 하고 나타나서 모두 깜짝 놀라기도 했어요(웃음).”

 

2인극이라서 상대배우와의 호흡이 중요할 텐데, 최재웅 씨가 표현하는 ‘나’는 어떤가요?


“재웅이 형만의 해석이 매력 있어요. 똑똑하고, 안 그렇게 생겼는데 음흉하고. 그래서 재웅이 형이랑 공연하면 스포츠 경기를 하는 기분이에요. ‘누가 누구를 조종하는가?’라는 문구에 가장 충실하지 않을까. 물론 나와 그의 사랑이야기지만, 사랑은 베이스이고 하나의 두뇌싸움이잖아요. 저는 똑똑한 친구들의 두뇌게임에 좀 더 비중을 두고 있어서 재웅이 형의 ‘나’가 캐릭터의 힘도 있고 매력적이라서 재밌어요.”

 

굳이 비교하자면 두 사람의 사랑 방식 중 일상의 김무열 씨는 어느 쪽에 가깝나요?


“저는 ‘나’인 것 같아요. 성별을 나누자면 ‘그’가 여자라는 느낌이 많이 들거든요. 작품을 준비할 때 <브로크백 마운틴>을 보면서 정서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그 영화에서 히스 레저의 느낌이랄까. 재웅이 형이 표현하는 ‘나’는 사랑에 있어서 무뚝뚝하고 우직한 면도 있고요.”

 

무대 위 김무열 씨를 생각하면 당연히 ‘그’가 생각나지만, 참여한 영화 캐릭터까지 생각하면 ‘나’도 잘 하실 것 같더라고요.


“기회가 되면 ‘나’도 하고 싶었어요. 이번엔 10주년이라 제가 ‘나’를 하겠다고 고집할 수는 없었고. 글쎄요, 나이가 있으니 아쉽지만 ‘나’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없지 않을까요(웃음).”

 

영화도 그렇지만, 연극 <얼음>이나 뮤지컬 <곤 투모로우>에서도 예전 무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 주셔서 캐릭터가 많이 확장됐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쩌면 과거 <쓰릴 미>가 김무열 씨의 이미지를 오히려 제한했던 게 아닐까. <얼음>에서는 욕도 잘 하시던데요(웃음).


“하하하, <얼음>은 대본이 좋았어요, 대본 그대로 한 거예요(웃음). 개인적으로 <쓰릴 미>의 ‘그’라는 캐릭터가 배우로서 무척 큰 전환점이고 도약이었는데, 어렸을 때는 그게 싫었어요. 그 안에 갇히고 국한되는 것 같아서. 물론 이제는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하나의 캐릭터를 저만의 방식으로 소화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다는 게 배우로서 큰 선물이고 축복이라는 걸 알게 됐죠. 그렇다고 거기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더 조심스럽게 다가서면 그 안에서 또 새로운 것들을 찾게 되고요. 그래서 지금은 저를 바라보는 고정관념에 대해 거부감이 별로 없어요. 그건 그것대로, 그러면서도 또 다른 캐릭터를 찾아가면 되니까요.”

 

배우들은 캐릭터를 연기하지만 무대를 통해 본연의 모습이 비치잖아요. 요즘은 배우와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서 성격을 대략 짐작하게 되는데, 김무열 씨는 잘 모르겠습니다(웃음).


“잘 됐다, 제가 원하는 바예요(웃음). 배우는 누구보다 인간적이고 대중과 가까워야 하지만, 반면에 낯섦이 주는 매력이 있잖아요. 그게 배우에게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고등학교 때 그렇게 배웠는데 지금도 공감하거든요. 실제로는 낯을 가리는 편이지만 친해지면 장난도 많이 하고 그래요. 예전보다는 얼굴도 많이 두꺼워진 것 같고요.”

 

이른바 ‘몸을 잘 쓰는’ 배우잖아요. <곤 투모로우>의 홍종우를 보면서 새삼 <아가씨와 건달들>의 스카이가 공중 회전하던 모습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때 객석에서 여럿 쓰러졌는데요(웃음).


“부끄럽습니다(웃음).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많이 했어요. 태권도, 쿵푸를 했고, 농구, 육상 선수로도 활동했고, 20대에는 ‘카포에라’라는 브라질 무술도 오래 했고요. 신체를 사용하는 것에 관심이 많아서 무용도 배우고 아크로배틱도 배웠어요. 배우는 인간을 표현하는 거니까 그 방법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어요.”

 

초창기에 영화 쪽으로 진출하시면서 다양한 장르에서 만날 수 있는 건 좋은데, 무대 위에서 다채로운 모습을 만나기 힘든 점은 아쉽습니다.


“그렇죠, 영화도 하고 공연도 하고 가끔 드라마도 하는데, 저한테는 장점이면서 딜레마예요. 어떻게 보면 발만 담그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제가 극복해야 할 숙제죠. 그리고 군대에서 2년 쉬니까 안달이 나고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20대에는 그런 생각 없이 달려왔거든요. 그래서 기능적으로 봤을 때는 어리 섞은 판단도 많았지만 배우라는 길로 보면 ‘잘 해왔구나’ 생각할 때도 있어요. 이제 다시 욕심을 버리고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올해도 연극을 찾아봤는데, 캐릭터 면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을 것 같아서요. 소극장 공연이 더 재밌거든요. 관객들과 더 가까우니까 눈동자 굴러가는 것까지 캐치하시잖아요. 손끝 신경까지 다 함께하는 기분이죠. 저는 오래오래 연기할 거니까 혹 저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면 기다려주세요(웃음).”

 

<쓰릴 미> 10주년 공연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레 배우로서 지난 10년도 돌아볼 것 같습니다. 지금은 어떤 배우를 꿈꾸시나요?


“맞아요, 잊고 있었던 게 너무 많더라고요. 일단 계속 작품하면서 꾸준히 발전하고 싶어요. 배우니까 액션, 멜로, 스릴러 등 모든 장르를 다 해보고 싶고, 사람을 좀 더 세밀하게 관찰하고, 그 디테일한 면을 표현하고 싶어요. 배우의 큰 힘 중의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잖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저라는 작은 인간부터 확장해서 꾸준히 발전해야 하지 않을까. 사회적으로도 생각을 많이 하고, 이곳저곳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되고 싶고요.”

 

10년 전 <쓰릴 미>로 각인된 배우를 10년 만에 다시 <쓰릴 미>로 만나 인터뷰를 하려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10년간 묵혀둔 얘기를 다 쏟아낸 것도 같고, 초연 멤버들을 이후 수많은 작품에서, 또 인터뷰로 만났던 기억도 떠오르고요. 기자뿐만 아니라 <쓰릴 미>와 함께 공연장을 드나들었던 수많은 관객들도 새삼 지난 10년을 되돌아보며 회상에 젖지 않을까요. 이 벅찬 감흥은 다시 객석에서 해소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최재웅 씨와 김무열 씨가 ‘나’와 ‘그’로 무대에 서는 공연은 아니나 다를까 모두 매진입니다. 두 배우의 예상과 달리 수많은 비난과 악평이 아니라 ‘역시’라는 평이 쏟아지고 있고요. Thrill me, 다시없을 이 무대를 놓치지 않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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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릴 미 #10주년 #김무열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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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