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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지현준 “삶을 껴안고 무대에 서다”

창작산실 배우전⑥ 배우 지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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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부터 2017년 3월까지 열 세 편의 신작이 무대에 오른다. 바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창작산실 우수신작’으로 선정된 아홉 편의 연극, 네 편의 뮤지컬이다. ‘창작산실 배우전(展)’은 창작산실의 배우들에 대한 인터뷰 시리즈로, 그들의 연기세계와 창작산실 작품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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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를 풀다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도스토옙스키를 쓰다』를 읽었다. ‘그를 만나기 전 읽으면 좋았을 걸’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인터뷰 전에 책을 읽었대도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다. 인터뷰 전에는 츠바이크의 해석을 새겨 읽지 않았을 것이다.


지현준의 손에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하권이 들려있었다. 그는 소설을 세 번 읽었다 말했다. 그의 말처럼 책 앞마구리에는 옅은 손때가 묻어있었다. 몇몇 페이지에서 밑줄 쳐진 문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필기도 있었다. 상중하, 세 권이 공히 그랬다.


본격적인 기사에 앞서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겠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죽기 한 달 전 자신의 예술적 세계관을 집약해 쓴 대작이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이 소설을 『오이디푸스』『햄릿』과 더불어 세계 3대걸작이라 극찬했다. ‘카라마조프’는 러시아어로 ‘악에 문드러진’이라는 뜻으로, 작품은 악에 문드러진 카라마조프 가문의 이야기다. 작품에는 아비 표도르와 그의 배 다른 자식 셋이 등장한다. 드미트리, 이반, 알렉세이. 사생아 스메르자코프까지 합하면 넷이다. 주요사건은 부친살해다. 피의자는 장남 드미트리. 실제 살해여부를 여기서 다루는 것은 옳지 않다. 작품을 끌고 가는 주동력은 각자의 상반된 욕망이 어떤 화학적 반응을 통해 비극으로 연결되는가에 있다. 세세한 줄거리 소개는 여기서 멈추겠다. 대략의 얼개는 후술할 인터뷰에서 파악할 수 있다.


소설과 공연의 차이는 액자식 구조에 있다. 공연은 이제 막 소설을 탈고한 도스트옙스키가 소설을 관객에게 들려주는 식으로 진행된다. 도스트옙스키는 작품 속으로 들어가 인물의 상태를 알려주기도 하고, 요약해 설명하기도 한다. 더러는 적극적으로 개입해 인물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세기의 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역할은 정동환이 맡았다. 지현준이 맡은 역은 소설 속 둘째 아들 이반이다. 자, 이제 지현준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준비를 마친 듯하다.

 

인터뷰이가 지현준 씨라는 이야기를 듣고 당연히 이 작품의 주인공인 줄 알았어요.


(연극에 출연하는 모든 배우가) 다 주인공이죠.

 

하지만 도스트옙스키는 서문에서 작품의 주인공이 알렉세이(알료사)라고 밝혔잖아요.


그렇다면 알료사가 주인공이죠. 하하. 원래 처음 제안 받은 역은 알료사였는데 바뀌었어요.

 

하긴 알료사를 하기에는 인상이……. 하하.


책에도 나오듯 알료사는 예쁘고 착한 수도사 이미지인데, 제가 알료사를 했다면 좀 다른 알료사를 했겠죠. 그런데 지금 알료사 하는 친구가 너무 잘해요. 이다일이라고 임형택 선생님의 서울공장에 있던 배우인데, 실제로도 알료사처럼 사는 배우예요.

 

지현준 씨 인상은 이반과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저는 진짜 (제가 출연하는) 작품이랑 제 삶이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거든요. 올해 불혹이 되면서 그전과 달리 주변상황도 바뀌고, 가치관도 바뀌었는데, 이반이라는 역할이 적합한 시기에 온 배역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흔들리고 고민하는 모습이 지금 제 모습과 닮았거든요.

 

지현준 씨가 생각하는 이반은 어떤 인물인가요?


경계에 있는 사람? 신과 인간의 경계.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 인간은 사랑을 할 수 있나 없나?’ 경계에서 고민하는 사람. 처음에는 이반의 고민이 지금 동시대인들의 고민과 맞는 게 있을까 고민했는데, 보면 볼수록 같이 고민할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렵긴 하지만, 도스트옙스키가 너무 잘 써서 들여다볼수록 기가 막힌 인물이라고 생각하게 돼요.

 

작품 해설을 봤더니 이반은 무신론, 과학적 합리론을 믿었던 젊은이라는 소개가 있더라고요.


대사에도 나오지만, 이반은 원래 푸른 하늘이나 이파리에도 감동받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세상이 그렇지 않은 거죠.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고 나머지 사람들은 버림을 받는 세상에서 구원받지 못한 99명을 선택하는 인물이 이반이에요. 그러면서 자아분열이 일어나죠.

 

대본을 읽으면서 정말 대작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소설로도 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진짜 대작이에요. 이렇게 좋은 작품은 (무언가를 가리키듯 오른손을 들며) 이렇게 연기할 수 없어요. (다른 방향으로 왼손을 들며) 이렇게 연기할 수도 없어요. 좋은 작품에서 연기를 하려면 (오른손과 왼손 사이) 이 안에서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어요. 슬프지만 기쁨 사이처럼. 그래서 연기하기가 힘든데, 그런 줄타기를 하는 게 우리 직업이고, 우리 삶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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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지현준 씨라면 가능하겠죠. 워낙 스펙트럼이 넓어서 어떤 인물이든 잘 소화하잖아요.


전 경험해보지 않은 상황에 저를 내놓는 데에서 재미를 느껴요. 익숙해지는 건 두렵죠. 나이 들수록 제 잘못에 대해 이야기해줄 수 있는 어른들이 사라지잖아요. 그러다 보면 제가 사는 방식이 맞는 줄 알고 그대로 살면서 10년, 20년 나이를 먹게 되는 것 같아요. 그 시작이 사십인 것 같은데, 그렇게 해서 60이 되었을 때, 내가 살아온 방식을 정답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변화를 추구하는 삶이라고 보면 될까요?


변화는 방법적인 거고, 어떻게 새롭게 깨어있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거죠.

 

배우로서 캐릭터의 변화 말고,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변화도 고민하시나요?


네, 그래서 피아노도 배우고, 외국어도 배우고, 다양한 것들을 배우고 있어요.

 

작품에 필요해서 배우는 게 아니라 그저 개인적인 관심사로 배운다고요?


네, 그런데 어떻게든 작품이랑 연결이 되더라고요. <빛의 제국> 때는 프랑스어를 배워서 프랑스에 다녀왔어요. 이번에 <이피게니아>라는 작품 때문에 독일에 갔다 왔어요. 도이치시어터에 동양 배우가 선 적이 없다는 데, 고무적인 사실이죠. 제가 유럽에서도 연극을 하고 싶었는데, 두 작품이 그런 발판이 됐어요.

 

직업만 아니라 국경까지 넘나드는 변화를 추구하시는군요. 독일에서의 경험은 어땠나요?


독일에서 가장 좋았던 건, ‘마음껏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그건 공연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실패에 관대하기 때문일 거예요.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잖아요. 실패하지 않으려 자신의 것을 숨기고 대중의 기호를 고려해 넣으려 하죠. 독일과 같은 토대가 한국에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한국에 돌아와 실패를 할 수 있는 작품을 찾게 됐어요. 웰메이드 작품도 좋지만 같이 이야기하고 듣고 뒹굴 수 있으면서 마음껏 실패할 수 있는 작품이요. 그런데 마침 창작산실 작품인 <레드북>에서 연락이 온 거예요.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기꺼이 참여한 거죠. 창작산실은 실패할 기회를 주는 고무적인 프로그램인 것 같아요.

 

<레드북> 아주 흥미롭게 봤어요. 편향되지 않게 중심을 잡고 성실하게 작업한 느낌이랄까.


뮤지컬에서 이런 새로운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고무적으로 여겨졌어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도 재미도 놓치지 않으려 했고요. 모두가 고민하면서 만들었는데 성과가 좋은 것 같아요.

 

창작산실 작품 2개 공연에 서는 배우는 아마도 지현준배우가 처음일 듯 합니다. 이번 공연도 성과가 좋아야 할 텐데, 그나저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7시간짜리 대작이더라고요. 어려운 작품인데, 길기까지.


정말 오랜만에 어렵고 고민할만한 작품을 만난 것 같아요. 하지만 어려운데도 너무 재미있어요. 우리나라에서 이런 실험을 할 수 있는 건 다 창작산실 덕분이죠.

 

이번 도전도 성공하기를 바라고요, 마지막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요?


연기를 처음 배웠을 때 이윤택 선생님이 대사 하나를 듣고 “너는 성격이 어떻고, 인성이 어떻고,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구나” 다 맞추셨어요. 그땐 너무 자존심이 상했는데, 이제는 제가 후배 연기를 보면서 그런 걸 알게 돼요. 연기는 자신의 삶이 다 보일 수밖에 없는 거거든요. 캐릭터를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하는데, 그 과정에서 살아온 배경이 드러나는 거죠. 결국 자기가 아는 만큼, 산만큼 나오는 게 연기라서 잘 살아야 하고, 그래서 항상 잘 살기 위해서 발버둥 쳤어요. 하지만 요즘은 조금 바뀌었어요, 최근에 어떤 책에서 “예술가가 삶을 해결하고 무대에 서는 게 아니다. 삶을 껴안고 무대에 서는 거다”라는 문장을 봤어요. ‘그래 나도 인간이라서 흔들리는 게 당연하고 항상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내가 너무 그런 질문을 해결하고 무대에 서려했구나’ 깨닫게 됐어요. 이제는 이런 고민들을 껴안고 무대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요.

 

녹음은 사진촬영을 이유로 거기까지만 했다. 촬영 후 식사를 하며 더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연극을 하다가 무용을 하게 된 이야기. 배우로서의 고민, 그리고 고민을 해결하려는 노력. 인간 지현준의 인생화두. 버리기 아까운 이야기였지만, 식사자리에서 녹음기를 꺼낼 수는 없었다. 대신 이야기는 기억에 담았다. 미처 동의를 구하지 못해, 지면으로는 옮기지 못하겠다. 뒤돌아와 녹취를 풀다 츠바이크의 『도스토옙스키를 쓰다』를 읽게 되었다. 거기 이런 구절이 있었다. 그 구절에서 지현준을 보았다.

 

“그의 인물들은 행복의 순간에도 결코 멈춰 서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그들 모두가 고통을 앓는 ‘더 뜨거운 심장’을 지니고 있다. (......) 도스토옙스키의 인물들은 새로운 시작의 인간들이다. 그들은 천재성과 확고한 오성능력을 지녔음에도 어린이의 가슴과 소박한 욕망을 갖고 있다. 그들은 이것 아니면 저것을 원하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을 원한다. 선과 악, 더위와 추위, 가까운 것과 먼 것 모든 것을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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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소개

 

2016 공연예술 창작산실 우수신작 페이스북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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