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채널예스>에서 매월 책을 만드는 사람들을 만난다. 여덟 번째는 POD(Print on Demand: 주문형 인쇄) 업체의 세계다.
주문형 인쇄란 책이나 출판물을 주문받은 후 인쇄하는 인쇄 기술 및 사업이다. 기존에 판을 짜 만드는 인쇄 방식으로는 소량으로 찍어낼 경우 사본당 인쇄 비용이 비싸서 감당할 수 없었지만, 디지털 인쇄 기술이 발전하면서 소량의 인쇄물도 제작 가능해졌다. 인쇄물의 양과 상관없이 사본당 고정 비용으로 책을 인쇄할 수 있고, 책 재고를 보관하지 않아도 되므로 보관 비용과 취급 비용이 줄어든다.
부크크(http://www.bookk.co.kr)는 한국에서 비교적 빠르게 주문형 인쇄를 시작한 업체로, 현재 약 2천 종의 책을 출간했다. 자기 글을 책으로 내고 싶다고 찾아오는 작가부터 물류비용을 줄이고자 하는 1인 출판사, 기존 출판업계에서 찾을 수 없었던 책을 보고 싶은 독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부크크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한다. 한건희 대표는 1년에 몇 권 팔리지 않는 ‘흥행성 없는 책’들의 판매량을 모두 합하면 ‘잘 팔리는 책’과 수익 모델에서 경쟁할 수 있으리라고 보았다.
부크크는 어떤 업체인가요?
출판 플랫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책을 먼저 파일로 만들어놓고 주문이 들어오면 실제로 인쇄할 수 있는 플랫폼입니다. 기존 출판시장에서 책을 낼 수 없었던 사람들도 소량으로 책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장점입니다.
사업을 시작한 계기가 있나요?
원래 출판 쪽으로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스물두 살 때부터 물담배 수입 사업을 했는데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나니 나중에 아이가 생기고 물담배로 돈을 번다고 하면 주변 시선이 안 좋을 것 같더라고요. 조금 더 착한 사업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비즈니스 모델의 탄생』이라는 책에서 롱테일 전략의 예시로 룰루(https://www.lulu.com)라는 업체를 보고 비슷한 모델을 시도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인쇄 형식의 차이가 클 것 같아요.
인쇄 방법으로는 오프셋, 마스터, 디지털 방식 등이 있는데, 저희가 사용하는 디지털 인쇄는 레이저 프린터를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오프셋 방식보다 조금 더 빠르고 판을 짜는 기본적인 비용이 줄어들죠
사업 준비하면서 인쇄 관련해서 공부를 많이 하셨겠어요.
인쇄 기기를 결정하기까지 3개월 정도 걸렸어요. 인쇄 기계랑 후가공 기계별로 특징과 효율을 파악하느라 시간이 들었습니다. 이제 주문이 들어오면 저희 사이트 내에서 인쇄부터 책 제본까지 한 번에 할 수 있어요.
책을 받아봤는데 망점이 기존 출판보다 조금 흐릿하기도 했어요.
지금 두 가지 프린터를 사용하는데, 첫 번째 들여온 장비는 망점이 조금 더 심해요. 기존 장비가 얇은 선을 점으로 표현했다면 두 번째 들여온 장비는 그대로 선으로 표현할 수 있어요. 지금 나오는 책을 보면 조금 더 나아졌을 거예요.
편집이나 디자인도 진행하시더라고요.
개인 저자들이 책을 출판하기 위해 디자인을 처음부터 한다면 너무 비싸지잖아요. 표지를 서식화해서 쭉 만들어 놓고 특정 표지를 구매하면 그 디자인은 다른 사람에게 판매하지 않는 방식으로 만들고 있어요. 내지도 마찬가지로 서식을 몇 개 만들어놓고 그 안에서 선택해 가격을 줄이는 거죠. 책 기획 자체를 해주진 않아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거든요. 자가 출판의 핵심은 비용 부담을 줄여주는 거라고 봤어요.
책을 출판하고 싶다고 해서 다 받아주지는 않는다고 들었는데요, 기준은 뭔가요?
커플끼리 쓴 일기장이라거나, 개인만을 위한 기록용 목적이라면 인쇄소나 제본소에서도 책을 만들 수 있잖아요. 굳이 출판을 목적으로 만든 게 아니라고 판단하면 만들지 않아요. 대신 일기라고 해도 출판물이라고 볼 수 있는 형태나 내용이라면 제작합니다.
주로 어떤 분들이 찾아오나요?
작년에는 SNS에 올린 글을 출판하고 싶다고 찾아오시는 분들이 압도적으로 많았어요. 시와 에세이 분야에서 많이 늘었고요. 지금은 온라인 강의의 문제집이나 교재 등 소량으로 출판물이 필요한 분들이 제작해서 파는 경우도 많아요.
판매는 어느 정도 되나요?
예스24나 교보문고에 유통하는 물량까지 포함하면 한 달에 6, 7천 부 정도 판매하고 있어요.
많이 팔리는 책이 있다면, 안 팔리는 책도 있겠죠?
흔글이라는 SNS 작가 책이 들어왔을 때 한 달에 기본만 4천 부 이상 팔렸었어요. 하지만 안 팔리는 분은 하나도 안 나가요. 다작하는 분은 열 종씩 책을 내기도 하는데, 그런 분들의 책은 반드시 안 팔려요. (웃음) 저희는 주문이 들어오면 생산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저자도 자신의 책을 주문해야 하거든요. 저자조차 주문을 안 하는 경우라면, 그 책은 파일로만 존재하고 다운도 못 받는 죽은 책이 되는 거죠.
이제까지 나온 책 중에 인상 깊었던 책이 있나요?
『순례자의 연료』라는 책이 기억에 남아요. 기존의 편집 프로그램이 아니라 한글 프로그램으로 편집했는데, 깜짝 놀랄 정도로 편집을 잘해오셨어요. 앞서 말씀드린 흔글 작가도 판매량을 떠나서 기존 출판사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폰트를 사용해서 책을 만들었는데, 책이 가진 감성이 폰트로 많이 묻어 나왔어요. 그 이후로 SNS 작가는 싹 다 그 글씨체를 사용할 정도로 인기였죠.
해외에서도 즉석에서 디지털 프린터로 인쇄해 책을 파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미국 업체 온디맨드북스에서 ‘에스프레소 북 머신’이라는 인쇄기를 만들었어요. 컴퓨터에 연결해서 과금을 하고 인쇄를 누르면 바로 책이 인쇄되는 형식이죠. 기술력으로만 본다면 재단과 제본을 한꺼번에 하기 때문에 저희보다 월등한 플랫폼이에요. 하지만 국내 시장에는 맞지 않을 수 있어요. 외국에서는 갱지에 인쇄해도 가볍고 내용만 좋으면 구매까지 이어지는데, 우리나라는 디자인이라든지 내용 외적인 측면도 구입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바로 적용은 힘들 것 같아요.
제작, 유통, 기획 등 여러 가지 요소를 한 번에 하고 있는데, 부크크는 제작 쪽에 더 방점을 둔 업체인가요?
출판사라고 하기에는 기획이 없고, IT회사라고 하기에는 기술이 부족하죠. 제작사나 유통사라고 하기에도 모호하고요. 플랫폼이라고 보시는 게 맞아요. 아직 넘어가야 할 산이 많지만요.
앞으로 더 발전시키고 싶은 방향은 어느 쪽인가요?
작년까지는 작가와 독자를 이어주는 데 주력했다면, 올해는 유통사를 늘리는 걸 목표로 하고 있어요. 앞으로 웹 소설 업체나 카카오 브런치 등과도 계약을 맺어서 글쓰기 플랫폼과 유통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려고 해요. 제일 궁극적인 목적은 재고를 줄이는 거죠. 최근 이슈가 되었던 유통사 부도 같은 경우에도 작가랑 출판사는 내 책이 어디에 얼마나 있고 얼마나 팔렸는지 모르는 문제가 있었잖아요. 그런 것까지도 해결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일원화시키는 게 목표입니다.
최근 예스24에도 입점하셨어요.
예스24에서 저희 책을 주문하면 물류 창고에서 나가는 게 아니라 바로 인쇄해서 직접 배송하는 방식으로 책이 나가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배송 기일이 하루나 이틀 늘어나는 단점은 있어요.
책을 주문하는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POD 방식으로 하면 책은 덜 예쁘게 나오거나, 책 배송이 하루 이틀 늦어질 수는 있어요. 하지만 서점 매대에 진열된 책, 예쁜 책만이 좋은 책이라고 반응하기보다 내용을 봐주신다면 좋은 책을 만날 기회가 더 늘어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작가분들은 사용하기 더 쉽고, 더 많은 방식으로 독자를 만날 수 있게 될 것 같고요.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
kenziner
2017.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