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보다 더 많이, ‘어떻게’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이라는 것이 비유가 아니라 묘사라는 것을 온몸으로 실감하게 되는 어머니 ‘수’의 지옥은 긴급 상황을 알리는 남편의 전화로 시작되고, 그 지옥의 17년을 더 없이 진솔하고 치열하게 기록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역시 1999년 4월 20일 오후 12시 5분의 전화에서 시작된다.
글ㆍ사진 윤용인(<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저자, 노매드 대표이사)
2017.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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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 문장(안 이후 로소 보이는 문장)

 

'왜' 대신에 '어떻게' 라고 물으면 자기 파괴적인 행동에 빠져드는 과정을 그 자체로 규명할 수 있다. 어떻게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해치는 길에 접어들게 되는가? 어떻게 해서 뇌에서 자기통제, 자기보존, 양심 등의 도구를 사용할 수 없게 되는가? (중략) '왜'만 물으면 무기력한 상태로 남는다. '어떻게‘라고 물으면 나아갈 길이 보이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있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441쪽

 

 

1.


자식은 겉만 낳는 것이지, 속까지 낳는 것은 아니라지.
제 멋대로 자라고 엇나가는 자식들을 보며 탄식처럼 내 뱉고, 등 돌아 위로 되는 말.

 

그래 봐야 부모들 눈에 제 새끼는 다 천사다. 아이가 어디 나가 사고를 친들, 백 명의 부모 입에서 나오는 한 개의 말은 “ 우리 애는 그런 애가 아닙니다.” 일터.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엉덩이에 뿔나는 짓을 하나씩 하기 시작했을 때도, 나 역시 내 애는 그런 애가 아니라고 흔들림 없이 믿었다.

 

중학교 진학한 후, 이것이 일탈 정도가 아니라 집안을 뒤집어 놓을 사건으로 아이의 성장통이 깊어 질 때도, 나는 내 아이의 근본을 의심하지 않았다. 누구의 휴대폰을 훔쳤다거나, 누구를 때렸다거나, 결국은 가출을 하는 일이 발생해도, 나는 내 아이가 요즘 사귀는 친구들의 불온함과 그 불온함에 감염된 내 아이의 순진함을 먼저 생각했다. 눈도 뜨지 않은 채 간호사 품에 안겨 있던 그 첫 모습부터, 목욕을 시키고 우유를 먹이고 천사처럼 잠자는 모습을 지켜보고, 뒤집으면 환호하고 기어 다닌 날 파티하고 걸음마를 가르치고 남들보다 말이 늦을 때는 걱정했지만 한글을 빨리 익혔을 때는 혹 영재가 아닐까 설렜던 시간들. 어린이 집을 다닐 무렵에는 매주 주말이면 국내로, 해외로 가족 여행을 다니며 내 회사 사이트에 '뚜비뚜바 가족여행'을 연재하고 그렇게 부족하지 않은 애정과 관심을 주고, 비범하지는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게 키워 온 내 아들에게 어떤 유전적, 성격적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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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 결석이 잦아지면서 부부가 안 해본 것이 없었다. 게임 중독 캠프, 전국 도보 여행, 아이 상담, 부부 상담, 놀이 치료, 신경정신과 진단과 약 처방, 가족 세우기와 같은 치유 프로그램, 이 모든 것을 하면서도,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그저 아이에게 별로 흡수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에서도, 나는 도대체 왜 이 아이가 갑자기 괴물처럼 변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고, 중2병이니 사춘기니 하는 잠시의 홍역이기를 바랬고, 그 바램이 번번이 배신 당할 때 마다 역으로 아이의 행동의 원인을 부모와 가정 환경에서 찾으려고 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받았다.

 

그들은 아버지가 알콜 중독이고 엄마가 신경질적이며 아이를 학대하고 제 멋대로 자라게 방치했다는 증거를 찾아야만, 그렇지, 역시 모든 문제 아이의 배후에는 문제 부모가 있지, 내가 배운 것이 맞았어, 라는 확신을 갖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당시 아이의 가출로 피폐해진 몸마음의 예민함과 피해의식이라고 하더라도, 어쨌든 그때는 그런 마음이 많이 들어 누구와도 자식 고민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

 

올해 아들은 열아홉이 되었다. 일년 늦은 고등학교 1학년을 작년에 무사히(?) 잘 끝냈다. 그러면 된 거지 뭐, 라고 아들을 볼 때 마다 생각했다. 집을 나갔다 돌아온 후 24시간 제 방에서 몇 달 동안 한 발짝도 나오지 않으며, 밤과 낮을 완전히 바꾼 생활을 하고, 가족 누구와도 눈을 맞추지 않으며, 뭘 해달라거나, 무엇이 싫다거나 하는 욕망의 표현조차 하지 않은 아들이, 힘들게라도 아침에 침대를 벗어나 세수를 하고 가방을 들고 학교를 갔다가 집에 오는 그 평범함의 회복이 얼마나 대견하고 감사한 일이런가.

 

그러나 사람이란 참으로 간사하다.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더니, 아이가 학교를 가는 것을 보니 이왕이면 공부를 더 열심히 했으면 하는 바램, 방 청소도 잘 하고 가족과도 더 살갑게 굴었으면 하는 기대감이 스멀스멀 생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번번이, 그 바람과 기대감은 서운함과 상호간의 묘한 갈등 따위의 흔적만을 남긴다. 왜, 너는 여전히 이리 철이 안드는거야? 따위의 속말을 나 혼자 삼키며.


 

2.  

 

나는 내 가족은 자살 위험이 전혀 없다고 마음속 깊이 믿었다. 내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 사이가 친밀하기 때문에, 혹은 내가 빈틈없고 다정한 사람이라 안전하게 지킬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믿었다. 자살은 다른 집에서나 일어난다고 믿는 사람이 나 혼자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내 생각은 틀렸다. (257 쪽)

 

정말 틀렸다. 1999년 4월, ‘수 클리볼드’의 17 살 아들 ‘딜런 클리볼드’는 친구 ‘에릭’과 함께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총을 난사해 13명을 살해하고 24명을 부상 입힌 후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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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이라는 것이 비유가 아니라 묘사라는 것을 온몸으로 실감하게 되는 어머니 ‘수’의 지옥은 긴급 상황을 알리는 남편의 전화로 시작되고, 그 지옥의 17년을 더 없이 진솔하고 치열하게 기록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역시 1999년 4월 20일 오후 12시 5분 전화에서 시작된다. 

 

갑자기 죽어버린 아들의 시신을 확인하기 전에, 이미 이웃과 세상의 적이 돼버린 딜런의 부모들은 몰래 친척집에 숨어 들어가, 키우는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행동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엄마가 경험하는 것은 충격의 세계이며 부정의 자기 본능이다. 내 아이가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 세상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의심, 너무나 순하고 착해서 말썽 한번 피우지 않고 자란 아이에 대한 완전한 믿음, 행여 내 아이가 총을 쐈다고 해도 그것은 친구의 강요에 의한 단순 가담일 것이라는 희망 등이 현실 부정의 정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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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런이 아이였을 때, 수와 딜런

 

그런 부정의 시간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면서 사전 모의하는 장면이 비디오 증거물로 수집되고 총격 현장 CCTV 까지 부모에게 공개되면서 엄마는 자신이 알고 있던 아들과 화면 속 아들이 전혀 다른 사람임을 목격하게 된다. 인종차별과 비열함과 공격적으로 사람에게 총을 쏘는, 내 아들의 얼굴을 한 악마, 그리고 그 악마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자신의 아들이었음을 받아들일 때 그녀는 다시 한 번 죽은 아들에 대한 애도의 과정을 갖는다. 아들아, 미안하다, 엄마를 용서해다오, 네가 이렇게 될 때까지 엄마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구나.

 

그 이후 엄마는 ‘왜’에서 ‘어떻게’로 접근의 전환을 한다. 왜 내 아들이 그런 일을 벌였지? 라는 의문과 추리에서 내 아들이 어떻게 그런 일을 벌일 수 있었으며, 어떻게 했다면 그 일을 막을 수 있었을 지를 고민하고 연구하고 통찰한다. 수많은 책을 읽고 신경과학자와 심리학자와 자살연구가를 만나면서, 그녀가 내린 결론은 이런 것이다.

 

부모가 아무리 두 눈을 시퍼렇게 떠도 아이가 사고를 치거나 자살하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아이가 뇌 건강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리고 그러한 문제는 어떤 아이에게도 나타날 수 있는 질병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 징후를 좀 더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예후를 살피고 자살이나 사고로 이어지는 것을 줄일 수 있다.

 

혹자는 이 책을 손이 떨려서 읽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한다. 450쪽이 넘는 책을 보면서 나도 그랬다. 그러나 좌절과 고통과 분노와 회피와 수용과 통찰의 모든 과정을 다 담아냈기에 그 끝에서 만나는 ‘수 클리볼드’의 결론이 더없이 값지고 건강하며 감사하다.

 

수와는 비교도 되지 못하겠지만 세상의 모든 부모는 자식과 전쟁을 치른다. 나 역시 여전히 전쟁 중이다. 그리고, 그 전쟁에 짜증이 나거나, 더 좋지 않았을 때의 상황을 자꾸 잊으려고 할 때,  ‘수’가 말하는 저 위의 노비문장은 더 없이 귀한 전쟁수행의 지침이 된다.

 

“다른 집 애들은 학교도 잘 가고 공부도 알아서 잘하고 부모 말도 잘 듣는데 넌 도대체 왜?!“ 가 아니라, “어떻게 무엇이 너를 그렇게 무기력하게 만들었는지, 어떤 뇌의 작용이 너를 연민이나 동정과 같은 감정에도 둔한 반응을 만들어 내는 것인지, 어떻게 하면 너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인지, 어떻게 하면 네가 더 편하고 행복한 성장의 시간을 갖게 할 수 있는 것인지, 어떻게 하면, 어떻게 하면, 그리고 너는 또한 얼마나 힘이 들고 아픈 것인지…”

의 마음이라면, 그 전쟁은 훨씬 더 서로의 삶을 파괴적이지 않으며 성장시킬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독후낙서(讀後落書)-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 홍한별 씨의 번역이 참 좋다. “ 날마다 새로운 충격을 받으며 이런 나의 생각들이 얼마나 처절하게 숫되고 위험했는지 깨닫곤 했다.” 라니, 박완서 씨가 쓴 책을 읽는 줄 알았다.


일기가 주는 치유의 힘, 역시 놀랍다. 그녀는 콜럼바인 직후에 글을 쓰면서 일시적이긴 해도 실질적인 위안을 얻을 수 있었고 일기는 자기 자식에 대한 세상의 잘못된 '기록을 바로 잡는 공간' 이기도 했다고 말한다.

 

실없는 소리지만, 픽션과 논픽션은 이렇게 다르다. 일테면 정유정의 『종의 기원』 역시 이야기 구성의 중요한 장치로 엄마의 일기가 나온다. 그러나 그 일기를 보면서 든 생각은, 무슨 엄마가 이렇게 글을 잘 써? 라는 비현실감. 수의 일기는 그냥 보면 눈물 줄줄, 한숨 푹푹.

 

√  아내와 책 싸움을 했다. 스무 해가 넘는 결혼 생활 중 처음 있었던 일 같다. 내가 책을 사왔고 아내에게 먼저 양보했고 아내는 침대에서 한숨을 후후 쉬며 책을 보다 잠이 들었고 그러면 내가 책을 보고 그러다 어느 순간 서로 책을 먼저 잡으려고 하는, 그만큼 2016년에 읽은 최고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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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떻게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부모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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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uiu22

2017.01.13

번역가 샘, 이름 처음 들어보네요... 이 책 화제작이었죠. 책 싸움을 하셨을 정도라니.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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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인(<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저자, 노매드 대표이사)

<딴지일보> 편집장을 거쳐 현재 노매드 힐링트래블 대표를 맡고 있으며, 심리에세이 《어른의 발견》, 《심리학, 남자를 노크하다》, 《사장의 본심》, 《남편의 본심》, 여행서 <<시가 있는 여행> <발리> 등의 책을 썼다. 또한 주요 매체들에 ‘윤용인의 심리 사우나’, ‘아저씨 가라사대’, ‘남편들의 이구동성’ 등 주로 중년 남성들의 심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칼럼을 써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