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규칙 속 규칙, 케이티 데이(Katie Day)
아름답게 반짝이고 휘청이는 사이키델리아. 훌륭한 설계에서 출발해 근사한 복잡계 사운드에 도착하는 수작이다.
글ㆍ사진 이즘
2016.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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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는 어지럽게 퍼져나간다. 구겨지고 일그러지고 잡아 늘여진 각양의 소리들이 넓게 잡은 공간과 뿌연 톤 속에서 거듭 중첩되어 곡들을 복잡하게 만든다. 노래의 의미를 직접 전달하는 보컬도 다양한 음향 효과로 인해 뒤틀려 있어 난해함을 더욱 배가시킨다. 불분명성. 그리고 모호성. 만남의 첫 단계에서 이 음반이 직관적으로 던지는 주요한 인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불규칙의 혼합만이 작품에 놓여있는 것은 아니다. 의 재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난수 데이터가 떠돌아다니는 듯한 사운드들 내부에는 규칙이 존재해있다. 프로그래밍된 사운드의 산개 속에도 진행 구조가 자리해있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음들을 끌고 가는 루프가 위치해 있으며, 잘 들리는 멜로디와 분절된 비트들이 만드는 리듬이 움직이고 있다. 크게 드러나지 않게끔 만든 트랙 기저의 골격은 사이키델릭 컬러에 최소의 형식미를 제공한다. 케이티 데이가 늘여 놓은 무질서는 질서를 품고 있다.

 

대비되는 이 두 요소의 어울림이 결국 의 아름다움을 이끌어낸다. 왜곡된 상태로 부유하는 보컬이 흘려보낸 서정적인 멜로디, 거친 어쿠스틱 기타가 내보내는 포크의 선율, 전자음들끼리의 수많은 충돌이 만들어낸 애니멀 콜렉티브 식의 사이키델리아, 이 모두의 뒤엉킴은 분명 통상적인 기준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다. 케이티 데이의 음악은 다분히 실험적이다. 아티스트의 작법은 정형의 고리에서 멀찍이 벗어나 있다. 청취에는 높은 난도가 따른다. 그러나 그러한 제한 요인이 아티스트의 찬란한 난반사를 완전히 가리지는 못 한다. 미니멀한 비트 위에 목소리와 전자음을 겹겹이 쌓아 몽환을 만들어낸 「Fleas」와 「Frailty」, 보컬 파트에 여러 효과를 입혀 악기처럼 활용한 「Fake health」, 포크 풍 스타일과의 결합을 이끌어낸 「All」, 복잡하게 전개되는 리드미컬한 비트와 차분한 사운드가 묘한 조화를 이루는 「Only to trip and fall down again」 등의 트랙을 거쳐 케이티 데이의 사운드가 여러 갈래로 빛을 낸다.

 

종잡을 수 없이 움직이는 탓에 시작 단계서부터 단번에 즐기기에는 다소 힘든 면이 있다만 가 멋진 음반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혼란스러운 결과물을 조각내어 세세하게 매력을 살펴보았을 때, 그리고 조각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다시 한 번 그 어수선한 그림을 크게 바라보았을 때 이 작품과 케이티 데이의 진가가 다가온다. 사운드를 창출하고 이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어지러운 장면을 여러 차례 만들어내는 아티스트의 역량이 실로 상당하다. 트랙 사이사이에 「(F1)」, 「(F2)」 식의 곡들을 끼워넣어 앨범에 흐름을 부여해내는 모습은 또 어떠한가. 아름답게 반짝이고 휘청이는 사이키델리아. 훌륭한 설계에서 출발해 근사한 복잡계 사운드에 도착하는 수작이다.


이수호 (howard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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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티 데이 #Flood network #규칙 #사이키델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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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