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뮤지션이 떠났다. 밥 딜런의 노벨상 수상으로, 그와 함께 문학적인 노랫말로 주목 받았던 캐나다 싱어송라이터 레너드 코헨이다. 올해도 음악 활동을 이어오며 건재함을 알렸기에 노장의 죽음은 아프게 다가왔다. 얼마 전 발매된
영화 <슈렉>에 삽입된 「할렐루야」(Hallelujah)처럼 그의 음악은 느릿하고 종교적인 성격을 가졌다. 때문에 대중적인 열광을 견인하지 못했지만, 오래도록 간직되며 엘튼 존, 돈 헨리 등의 후배 가수들에게 불러졌다. 국내에서는 라디오와 TV 전파를 타고 그의 목소리가 종종 소개되었다. 밥 딜런과 함께 가사의 품격을 높여준 그를 추억하며 대표곡 20곡을 꼽았다. (아래 레너드 코헨의 20곡은 멜론 플레이리스트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Suzanne (1967, Songs Of Leonard Cohen 수록)
시대의 위대한 음유시인은 그 출발부터 범상치 않았다. 1956년 첫 시집을 발간하고 시인으로서 궤적을 그리던 그는 1966년 시집 『천국의 기생충들(Parasites of Heaven)』을 발표했다. 그중 시집에 수록된 「수잔이 그대를 이끄네(Suzanne takes you down)」는 그의 데뷔 싱글 「Suzanne」의 밑바탕이 됐다. 가수 이력의 시작점 자체가 한 편의 시인 셈. 노래는 시집이 발간되던 해에 발표된 포크 가수 주디 콜린스(Judy Collins)의 버전으로 먼저 알려졌고, 코헨의 오리지널은 이듬해 세상의 빛을 봤다.
노래에 등장하는 「Suzanne」은 1960년대 초반 그와 깊은 정신적 교감을 나눴던 미모의 무용수 수잔 베르달(Suzanne Verdal)이다. 가사에는 수잔과의 추억, 그를 향한 은근한 연정과 함께 종교적 사유까지 차분하게 담겨있다. 노랫말의 섬세한 압운과 서정적 선율, 담백한 음성의 조화는 이후 펼쳐질 60년 음악 여정의 서막이었다. 아름다운 이야기를 그린 가사와 달리, 노래가 발표된 후 수잔은 그를 단 두 번밖에 보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부고가 들려온 날, 그와 한 시절을 공유한 그녀 또한 어디선가 눈물을 훔쳤으리라. (정민재)
So long Marianne (1967, Songs Of Leonard Cohen 수록)
레너드 코헨이 가장 사랑한 뮤즈는 수잔도, 레베카 드 모네이(Rebecca De Mornay)도 아닌 마리앤 일렌(Marianne Ihlen)이 아닐까. 데뷔작
마리앤을 만난 이드라섬에서 시집 『Flowers For Hitler』를 발간하고 그녀에게 바친 레너드 코헨. 지독하게 사랑했던 과거의 연인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그는 마지막 편지를 보낸다. “항상 당신의 아름다움과 현명함을 사모했다는 것은 잘 아실 테니 더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지요. 그저 당신의 편안한 여정을 바라는 바입니다.” 편지의 내용은 노래의 가사와 맞물려 진한 여운을 남긴다. “잘가요. 나의 오랜 벗.”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비로소 두 사람의 이야기가 마무리된 듯하다. So long, Marianne, So long, Leonard. (정연경)
Sisters of mercy (1967, Songs Of Leonard Cohen 수록)
유대교 사제 집안 출신인 코헨에게 종교는 빼놓을 수 없는 인생의 화두였다. 신성과 속세를 분리될 수 없는 합일된 세계로 본 그는 세속적인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종교적 모티프를 이용했다. 평생에 걸쳐 음악으로 그 경계를 넘나들었던 그가 눈보라로 고립된 어느 호텔에서 만난 두 여인에게 바치는, 1967년 말 데뷔음반
3박자의 담백한 어쿠스틱 기타 반주 위에 멜로디가 편안하게 깔린다. 이어 등장하는 아코디언은 보컬 라인을 따르기도, 반주로서 받쳐주기도 하며 부드러운 색깔을 칠한다. 귀를 자극하지 않는 차분한 사운드가 종교단체 ‘자비의 수녀회’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노랫말과 어우러져 자비로운 성녀의 품 안에서 편안한 잠에 빠져드는 느낌을 준다. 여인의 아름다움을 종교적으로 은유하는 이 발칙한 상상력이 신성모독으로 느껴지지 않는 건, 일상에서 엿본 경건함을 진지하게 풀어나가는 그의 독창적 표현력 덕분이다. (조해람)
Seems so long ago Nancy (1969, Songs From A Room 수록)
‘낸시는 노란 스타킹을 신었고 모든 이와 잠을 잤지/ 그녀는 외로웠지만 우리를 기다리지는 않았다고 말했어/..우린 그녀가 아름답다고 자유롭다고 말했지만/ 이 미스터리 집에서 누구도 그녀를 만나지 않은 거야…’
전달 메시지가 불명확한 이 곡에 대해 코헨은 “다음 세대가 가질 어떤 특정 유형의 인물 이야기”라며 주인공은 20년 후에는 ‘힙’할 수 있으나 그때는 말할 건덕지가 없는 불행한 운명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지저분한 인간욕망과 허식에 대한 힐난인가, 한 창녀에 대한 연민인가. 이를 놓고 동정도 분노도 하지 않는 은폐의 기술을 동원하지만 인간 본성과 그들이 축조한 형식의 탑이 얼마나 잔혹한가에 자동적으로 고개 떨구게 하는 전달력을 발휘한다. 흐릿하고 경계선에 위치한 이 모호함이 문학예술의 영토, 음유시인의 거처 아닌가. 코헨 음악의 크기가 여기서 나온다.
대표작 「Bird on the wire」가 있는 1969년의 2집
Bird on the wire (1969, Songs From A Room 수록)
그리스의 히드라(Hydra) 섬에서 동거 중이었던 애인이자 음악적 영감이 되었던 뮤즈, 마리앤은 레너드 코헨의 우울증 치료를 위해 계속하여 그에게 기타 연주를 권유했다. 그러던 와중, 창문을 통해 전선 위에 앉아있는 새를 본 코헨은 그 자리에서 이 곡을 썼다고 한다. 곡의 이름은 멜 깁슨과 골디 혼이 주연한 1990년의 영화가 빌려 쓰기도 했을 만큼 대중에게 깊이 저장되었다. 「Hallelujah」와 「Suzanne」과 함께 그의 시그니처 송 가운데 하나!
자유에 대한 노래이지만 1960년대의 포크 뮤지션들이 노래했던 자유에 대한 맹목적 찬가와는 결이 다르다. 하늘을 날고 있는 새는 자유의 상징이나, 그러나 날아가지 못하고 전선 위에 앉은 새는 더 이상 자유의 상징성을 가지지 못한다. 그는 자유를 쫓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한, 혹은 불가피하게 자유를 포기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 노래한다. 그래서 따스한 중저음이 냉소와 비관이 섞인 탄식의 신음으로 들리기도 한다. 자유는 숭고한 것이며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이라는 탄원의 메시지는 더욱 자유를 ‘꿀 발라놓은 떡’처럼 쉽게 여기는 딴 곡들보다 더욱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이택용)
Famous blue raincoat (1971, Songs Of Love And Hate 수록)
묵직하고도 간결한 레너드 코헨의 노래는 영역의 어떤 뿌리에 가장 가까이 맞닿아 있는 듯하다. 그의 가사는 노래의 시작이라 할 시(詩)와 동체이고, 그 시는 누군가에게 전해지기 위해 존재한다. 그의 세 번째 앨범
최소한의 높낮이로 음과 어절을 전달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습기도 없다. 이 건조한 보컬에 미묘하게 애상을 부여하는 것은, 엘튼 존 노래의 편곡을 맡기도 했던 폴 벅마스터(Paul John Buckmaster)가 세심하게 빚어낸 현악 연주다. 「My brother, my killer」에게 보내는 이 음울한 송가(頌歌)는 그와 함께한 연주자들을 일찍이 매혹시켰고, 당연히 손꼽히는 명작으로 남았다. 그의 작품과 공연에 한동안 동료로 호흡을 맞춘 제니퍼 원스(Jennifer Warnes)의 음반 타이틀이 되기도 했다.
한 여자를 둔 삼각관계 속에서 다른 남성에게 보내는 노래라고는 하지만, 간결하되 모호한 코헨의 시적 언어는 이 편지의 수신자에 대한 열린 상상을 가능케 한다. 중년 시절에 나온 곡임에도 가사에서는 어떤 쇠(衰)함의 냄새가 나고, 40년도 더 지났지만 최근작과 비교해도 세월의 경과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 저음의 보컬은 시간을 뛰어넘는 체험을 선사한다. 짙은 상실의 정서 속에 마지막의 「Sincerely, L. Cohen」이라는 읊조림이 유독 긴 자국을 남긴다. 오래 살아온 노인이 내뱉는 숨인 듯, 모든 스러져가는 것들을 향한 장송곡인 듯. (조진영)
Joan of arc (1971, Songs Of Love And Hate 수록)
초기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인 1971년 작
Chelsea Hotel #2 (1974, New Skin For The Old Ceremony 수록)
뉴욕 맨해튼에 있는 첼시 호텔은 딜런 토마스(Dylan Thomas), 밥 딜런, 지미 헨드릭스 외에도 수많은 예술가의 족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411호에 있었던 재니스 조플린(Janis Joplin)과 424호에 머무른 코헨도 그들 중 한 사람이다. 둘이 나눈 하룻밤의 단상은 (코헨은 초창기 라이브를 하면서 이 노래의 주인공이 조플린임을 밝히고 다녔다.) 「Chelsea hotel #2」로 떠오르게 된다. 클래식 기타와 묵직한 저음만 있는 단조로움의 미학은 그들의 회고록 안으로 스며들게 한다.
시간이 흘러 1994년 BBC 방송에 나가게 된 그는 자신의 경솔함에 대해 반성하며 “그녀의 영혼에 사과할 방법이 있다면 당장 사과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조플린과의 관계를 연상하는 일이 그의 의도일 리 없다. 비록 영원을 읊조리는 사랑 노래는 아니지만, 그들이 나눈 대화가 담긴 이 곡은 ‘상관없어, 우린 못생겼지만, 우리에겐 음악이 있잖아.’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정효범)
Who by fire (1974, New Skin For The Old Ceremony 수록)
캐나다의 유대인 가정 아래 태어난 코헨은 어린 시절부터 유대인 회당에서 공부했다. 혈통을 반영한 그의 글에는 당연히 성경적 모티브가 담겨있는 경우가 많다. 그 내면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바이블에 대한 지식을 요구하기도 한다. 「Who by fire」는 그러한 음악적 결과물 중 하나로, 이스라엘의 종교 축제일인 속죄일(Day of Atonement)의 기도문이 영감이었다고 한다.
‘누가 햇빛 속에 있게 될까? 누가 어둠 속에 있게 될까?’ 유대인에게 새해 첫날에서 속죄일까지는 무척 중요하다. 신의 심판으로 의인은 생명의 책에 기록되고, 악인은 기록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완벽히 의롭지도, 악하지도 않은 사람들은 회개와 선행의 시간을 가지며 그 기간을 보낸다. 이로 미루어 볼 때 햇빛, 어둠과 같은 단어의 나열은 신의 심판에 따른 두 결과로 볼 수 있다. 그의 작품 세계관을 파악하는 데 필요한 곡 중 하나. 짧지만 여운은 길다. (정효범)
Hallelujah (1984, Various Positions 수록)
1979년
귀를 감싸는 스트링과 감정의 흐름을 이끄는 코드 진행은 경건한 세계로 인도한다. 벌스(verse)의 낮게 가라앉는 목소리는 성가대의 합창을 연상시키는 후렴구와 대비되며 신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성서적 은유는 가사의 호소력을 높여 준다. 80개가 넘는 초안을 썼을 정도로 고심한 끝에 완성한 가사는 ‘절망한 다윗 왕’의 입을 빌려 좌절과 구원을 노래한다. 반복되는 후렴 「할렐루야」는 다윗의 절망을 극명하게 보여주기도, 해방된 감정의 환희를 대변하기도 하며 곡의 정서를 이끌어간다.
처절하게 구원을 열망하는 다윗의 이야기는 종교적 의미를 뛰어넘는다. 신성한 은유로 그려낸 상실과 환희의 감정에 공명한 수많은 뮤지션들은 나름의 재해석으로 화답하기 시작했다. 상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발매를 반대했던 레코드사의 우려와는 달리 곡 자체가 가진 강력한 흡입력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밥 딜런, 존 케일(John Cale), 루퍼스 웨인라이트(Rufus Wainwright)부터 본 조비, 펜타토닉스에 이르기까지 끝없는 재해석의 유행을 거치며 「Hallelujah」는 클래식적 생명력을 얻었다.
그가 1988년 라이브에서 새로 추가한 가사는 이 곡이 에로틱한 코드의 사랑 노래가 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이를 정확하게 읽어낸 제프 버클리(Jeff Buckley)는 할렐루야를 경이가 아닌 ‘오르가즘’으로 해석함으로써 음악에 새로운 색채를 불어넣었다. 그에게 이 곡은 상실의 정서가 가득 담긴 이별 노래였다. 1994년
Dance me to the end of the love (1984, Various Positions 수록)
같은 앨범의 B면에 위치한 「Hallelujah」와 비교해보자. 우선 「Hallelujah」의 백킹 코러스가 느릿하고 강렬한 가스펠 방식이라면, 이 곡에서는 메인 보컬인 레너드 코헨과 제니퍼 원스 두 사람과는 멀찍이 떨어져 커튼처럼 살랑이기만 한다. 또한 전자가 3박자를 내재한 4박 리듬으로 고전적이고 성스러운 미를 살렸다면, 후자는 경쾌하고 명료한 8비트라는 차이도 존재한다.
둘 다 다른 가수들에 의해 자주 다시 불리기도 했는데, 「Dance me to the end of love」의 경우 재즈 보컬리스트 마들렌 페이루(Madeleine Peyroux)의 버전이 대표적이고, 한국에서는 「벙어리 바이올린」이라는 이름으로 윤설하가 번안해 부르기도 했다. 길고 긴 그의 음악 여정 안에서도 여러모로 얘기할 거리가 많은 두 곡이 레코드판 앞뒷면의 1번 트랙에 각각 자리하고 있다.
코헨은 2차 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인 1934년 유대계 집안에서 태어났다. 「Dance me to the end of love」는 낭만적으로 보이는 제목과는 달리, 나치가 자행한 홀로코스트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곡이다. 무덤이 될 곳을 향해 밟는 마지막 스텝은 진중하고 무겁다.
그러나 마냥 어둡지는 않다. 음울한 민요풍의 선율을 노래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묘하게 밝은 기운이 서려 있다. 라스 폰 트리에의 <안티크라이스트>를 비롯해 서양의 수많은 예술 작품에서 그랬듯 이 곡 또한 ‘춤’과 ‘끝’이라는 단어를 병치해 성과 죽음을 동시에 다룬다. 여성 가수 제니퍼 원스와의 듀엣이 곡에 달콤한 향을 가미하는 동시에 위태로움을 자아내는 이유다. (홍은솔)
I’m your man (1988, I’m Your Man 수록)
코헨은 1980년대를 들어서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포크음악으로 일관하던 그는 자신을 포함한 4명의 프로듀서와 함께 신시사이저, 드럼 머신, 부주키(그리스에서 생겨난 기타와 비슷한 현악기) 등 다양한 악기들을 적극 사용하며, 1988년 에서 신스팝을 선보인다. 그리고 이 앨범은 비평과 상업성을 모두 잡으며, 1991년 헌정앨범이 발표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 음반은 수많은 명곡들을 낳았다. 「Everybody knows」, 「Tower of song」, 「First we take Manhattan」 등을 포함하며, 그 중 앨범과 동명인 「I’m your man」은 간드러지는 신시사이저와 중저음 보컬의 멋진 어울림을 보여준다. 가사는 한마디로 ‘당신을 향한 헌신’을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단순한 멜로디와 문장 끝에 비슷한 운을 맞춘 표현은 곡의 부담을 덜어주고, 그의 비애감 짙은 목소리에 집중하게 만든다. 간주에서 흐르는 신시사이저의 솔로는 ‘헌신’을 ‘처절’로 빠지지 않게 정화한다.
은 해외에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수록곡 「I’m your man」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국내에선 레너드 코헨 애청곡 영순위! 다들 1988-89년을 이 곡을 들으며 보냈다. (임동엽)
Everybody knows (1988, I’m Your Man 수록)
사랑하는 여자에게 헌신하는 남자의 모습을 그린 「I’m your man」과 상반된 가사의 곡은, 첫 번째 앨범에 나란히 수록되었지만 극명한 온도차를 가진다. 코헨은 사랑하는 여자에게 당신의 남자로서 열정을 다하겠다는 달콤한 감정을 써내려갔던 음유시인임과 동시에 뼈아픈 사회 부조리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줄 아는 유대인이었다.
사회와 종교적 문제,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의 병든 현실에 일침을 가한 「Everybody knows」는 ‘모두 알아 주사위가 던져 졌어’, ‘모두 알아 배는 물이 새고 있어’와 같은 비유적인 가사로 그의 곡 중 가장 비관적인 시선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 꼽힌다. 설마가 진실이 되고 있는 요즘 냉혹한 현실을 노래하는 그의 묵직한 목소리가 더 슬프게 다가온다. (박지현)
First we take Manhattan (1988, I’m Your Man 수록)
코헨은 도입부에서 “사람들은 나에게 따분한 20년(twenty years of boredom)을 선고했어.”라고 말한다. 데뷔 앨범 이후로 정확히 20년이 지난 뒤 발매된 앨범 에서 이 곡이 첫 곡을 장식하고 있다는 건 지나친 우연일까. 가사 곳곳에 장치된 다중적 암시들은 감상하는 데 더 많은 흥미를 돋운다. 가까운 음악적 동료이자 이 곡을 먼저 부른 제니퍼 원스에 따르면, 코헨은 9?11 테러가 일어나기 전부터 이 곡을 가리켜 ‘테러리스트의 노래’라 칭했다고 한다.
그 말대로 가사를 살펴보면 ‘먼저 우린 맨해튼부터 접수하고, 다음엔 베를린을 접수할거야’(First we take Manhattan, then we take Berlin)라는 노래의 메시지 역시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해석된다. 그의 예언자적 스탠스는 가사에 그치지 않고 사운드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신시사이저의 강렬한 소리는 다분히 미래지향적이며 잘게 나눠진 드럼 비트는 곡에 긴장감을, 여성 백업 보컬들은 감칠맛을 더한다. 그러나 사족이 되겠지만 이것들보다 결정적 ‘신의 한 수’는 뒤에 도사린 채 곡을 완전히 지배하는 코헨의 중저음 목소리다. (강민정)
Tower of song (1988, I’m Your Man 수록)
빌보드 차트에 단 한 곡도 오르지 않았음에도 서구 후배 뮤지션들은 그에게 헌정 앨범을 두 번이나 바쳤다. 이게 레너드 코헨의 무한 위용이며 진정한 아티스트, 살아있는 레전드라는 사실의 증빙자료다. 이 곡은 그의 무수한 골든 레퍼토리에 속하지도 않고 낮은 인지도에 애청도 되지 않은 노래지만 그 두 장의 트리뷰트와 관련해 각별한 가치를 행사한다.
먼저 존 케일(John Cale), R.E.M 등이 참여한 1991년 발표작 에 실린 18곡의 수록곡 가운데 「Tower of song」은 각각 닉 케이브(Nick Cave) 그리고 로버트 포스터(Robert Forster)의 버전으로 두 번이나 음반의 자리를 채운다. 뒤이어 이글스의 돈 헨리, 유투의 보노, 엘튼 존, 빌리 조엘, 스팅 등 팝의 쟁쟁한 거물들이 너도나도 자진해 참여한 1995년 트리뷰트 앨범은 제목이 아예
이 곡은 신시사이저의 적극적 활용으로 그 시점 평단과 대중에게 잊혀 가고 있던 코헨의 건재와 건승을 알린 1988년 앨범 의 끝 곡이다. 건조하게 떨어지는 베이스음과 안개 같이 자욱한 서스테인(sustain) 사운드를 배경 삼아 낮게 읊조리는 보컬은 매력적이다. 여기에 동료 제니퍼 원스의 부드러운 코러스는 곡의 맛을 진하게 우려낸다. 한 작품의 엔딩으로 이만한 곡은 없다. (박수진)
Ain’t no cure for love (1988, I’m Your Man 수록)
방송에서 남성의 마초성을 다룰 때 「I’m your man」과 「Everybody knows」가 자주 흘러나오는 데는, 그만큼 코헨의 바리톤이 중후한 멋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테다. 특유의 묵직한 저음은 그를 대표하는 상징이다. 이 곡에서는 자신의 목소리와 대비되는 여성의 백보컬과 신디사이저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앞선 노래들보다 포근하고 밝은 소리를 들려준다.
의 잔잔한 성공에는 ‘사랑’이라는 공감하기 쉬운 주제가 자리한다. 코헨은 보편적인 일상의 소재 또한 특별하게 사유(思惟)했다. 의사들이 밤낮으로 일하지만 아직 사랑의 치료제는 없다는 곡의 가사처럼, 문인 출신의 음악가가 뿜어내는 낭만적 표현은 본 앨범에서 최고조를 이룬다. 그는 섬세한 노랫말과 굵은 가창으로 중년 남성들이 동경하는 고백송을 만들어냈다. (정유나)
The future (1992, The Future 수록)
코헨의 정치사회적 측면에 대한 관여를 엿볼 수 있는 곡이다. 동명의 앨범 타이틀곡이기도 「The futrue」는 음반 전체의 중심소재인 민주주의에 대한 화두를 제시한다. 노래는 1992년 발매 당시의 사상적 경향을 보여줌과 동시에 시대적 양상을 꼬집고 있다.
독일의 베를린 장벽, 구 소비에트 연방을 대표하던 스탈린 등 당시 민주주의를 전격적으로 배격한 상징들의 언급을 통해 과거의 잔혹을 강조하지만, 그러한 체제의 붕괴가 곧 민주주의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역설적으로 표현한다. 사회주의의 여실한 실패와는 별개로, 우리에겐 여전히 인종 혹은 성 범주에 걸친 차별문제가 존재함에 그러한 과도기적 방심을 나긋이 경고한다. (현민형)
Waiting for the miracle (1992, The Future 수록)
가장 어두운 때는 해가 뜨기 직전이다. 기적이 절실할 때도 가장 견디기 힘든 극한의 시간일 것이다. 화자는 "2차 세계 대전 이후로 행복한 적이 없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처지를 고백한다. 그럼에도 ‘낮과 밤을 다해, 삶의 반을 기적을 기다려왔다’고 중얼거린다. 그리고 나아가 ‘너도 기적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라’(You just say you’re out there waiting for the miracle)며 이야기를 마친다.
건반, 바이올린, 플루트 등 여러 악기가 모여 신비로운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만들었다. 낮게 읊조리는 저음은 여성 코러스와 묘하게 대비되어 이 세상의 목소리가 아닌 듯 천천히 부유한다. 안개처럼 사방에 존재하지만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노래. 기다림은 세월과 고독을 먼지처럼 쌓아 올려, 외롭고 슬픈 독야(獨夜)를 만들었다. (김반야)
In my secret life (2001, Ten New Songs 수록)
종말론과 허무주의로 점철된 세기말이 지나고 세상의 기대와 환희를 안고 새천년이 도래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언제 그랬냐는 듯 아랑곳없이 너도나도 앞 다투어 새로움을 말하고 미래의 비전에 대해 역설했다. 레너드 코헨은 이 무렵 선불교 사상에 심취해 있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그의 작품세계의 근간이 되는 유대교 신비주의 「카발라(Kabbalah)」에 더해 실존주의적 해석을 더욱 강화했다. 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자서전의 서문과도 같은 곡.
「In my secret life」는
You Want It Darker (2016, You Want It Darker 수록)
14집이자 그의 마지막이 된
2013년 월드 투어를 마치고 찾아온 척추 다중 골절은 도리어 LA에 위치한 자택 방에 틀어박혀 작업에 열중하는 계기로 남았다. 아픔으로 인한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아들 아담 코헨(Adam Cohen)의 프로듀싱 도움을 받아 뜻 깊은 명곡이 탄생한 것. 80대가 만든 작품으로 믿을 수 없는 완성도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제사장’이 남긴 마지막 선물일 테다. 곡명처럼 세상 이들은 그에게 더욱 더 어두워지길 원했지만, 이미 그는 빛이나 색상으로 재단할 수 없는, 폭발을 앞둔 ‘초신성’ 그 자체였기에. (이기찬)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