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은 재미 있는 퀴즈
미스터리 장르는 기본적으로 지적 유희에 충실한 경쾌한 대중 소설이다. 근대라는 토대 위에서 태어난 이 장르는, 초현실적인 주제를 다뤘던 고딕소설을 극복하면서 구체화됐다. 초기 미스터리의 구조를 극단적으로 단순화하면 문제와 해답으로 구성된 퀴즈 형태만 남게 되는데, 해답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을 자극하는 이러한 특성은 미스터리 장르가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유희를 즐기는 작가는 요즘 좀처럼 찾기 어렵다. 작가이자 미스터리 평론가인 줄리언 시먼스는 미스터리의 탄생부터 1990년대까지의 역사를 아우른 『블러디 머더』의 부제를 통해 그 이유를 간단히 설명한다. ‘추리 소설에서 범죄 소설로의 역사’ 즉, 미스터리 장르는 범인을 찾고 트릭을 파헤치는 즐거움에서 범죄를 낳은 사회 구조와 그 동기에 주목하는 방향으로 변모한 것이다.
창작이 미약하고 번역서 위주로 구성된 국내 시장이지만, 최근 출판 경향은 이 궤적을 비슷하게 따르고 있다. 2000년대 초 셜록 홈스 이후 급격하게 성장한 국내 미스터리 시장을 통과해 온 독자라면 최근 범죄 소설로의 기울어짐을 생생하게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몇 년 새 국내 미스터리 시장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용어 중 하나인 ‘사회파’만 해도 그렇다. 사회파는 일본 미스터리 역사에서 불거진 용어로, 시기적으로 1960년대 이후 일본 미스터리의 주된 경향을 가리킨다. ‘사회파’는 다른 세상의 기이한 이야기와도 같았던 일본의 본격 미스터리를 현실로 끌어내렸다. 놀라운 이성으로만 해결할 수 있었던 범죄는 사회 구조의 그늘을 드러내는 수단이 되었다. 이는 전쟁 이후 일본 사회의 고도 성장과 본격 미스터리에 대한 피로감이 자연스럽게 맞물린 결과였다.
그렇다면 미스터리 본연의 즐거움에 충실한 경쾌한 작품들은 현재 국내 시장 어디쯤 위치하고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최근 꾸준히 출간되는 라이트노벨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만화의 유통 구조를 통하고 전통적인 미스터리와는 다른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기에 시장에서 명확히 보이지 않지만, 기존의 일본 미스터리 시장을 대체하며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다.
‘경시청의 최종병기는 천재 수학 소녀’라는 솔깃한 문구를 들고 온 『하마무라 나기사의 계산 노트』는 매우 분명한 목적에서 시작된 작품이다. 와세다 대학교에서 교육학을 공부한 저자 아오야기 아이토는 ‘수학 따위 공부해서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요?’라는 중학생의 질문을 받고 고민에 빠졌다. 스스로도 쉽게 답변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나름의 답을 찾기 위해 작품을 쓰기 시작했고, 이렇게 탄생한 『하마무라 나기사의 계산 노트』는 고단샤 문예X출판부의 신예 등단 시스템 ‘고단샤 birth’를 통과했다. 이 시리즈는 전자책을 포함해 7권까지 발간됐고, 만화책으로 출간됐으며 시리즈 누계 40만 부를 돌파했다.
‘수학 미스터리’라는 독특한 콘셉트를 가져온 작품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문부과학성은 급증하는 소년 범죄에 대처하고자 초중교 교육 과정을 개편한다. 주요 내용은 ‘마음을 키우는 교과’의 비중을 높이겠다는 것. 이 결과 사물을 수치화하는 교과인 ‘수학’은 점점 비중이 낮아진다. 새로운 교과 과정이 도입된 지 1년 느닷없이 수학 테러 성명서가 발표된다. 닥터 피타고라스라는 별명을 지닌 타카키 겐이치로는 ‘검은 삼각자’라는 테러 집단을 이끌고 교육 과정의 전복을 꿈꾼다. 문제는 이 저명한 수학자가 20년 전부터 널리 도입한 수학 소프트웨어에 사악한 장치가 숨어 있었다는 것. 소프트웨어를 접했던 모든 사람은 간단한 통화만으로도 정신을 조종당한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 수학 소프트웨어를 접하지 않은 39세 이하의 경찰관들로 수사팀이 구성되고 여기에 중학생 수학 천재 하마무라 나기사가 참여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수학의 정석』 저자가 수학 교육 쇠퇴에 한을 품고 테러를 시도한다는 건데…, 작가는 이 황당한 설정을 꾸역꾸역 잘도 밀고 나간다. 세계관과 이야기의 크기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작가는 챕터 명을 로그나 루트 계산식으로 표현하는 등 다양한 장치로 독자를 이끈다. 네 편의 단편은 각각 4색 색칠하기 문제, 0의 개념, 피보나치 수열, 원주율 등 수학의 고유 개념을 소재로 하는데, 중학생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가볍고 경쾌하다.
비록 범죄자와 희생자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없지만, 이 작품은 미스터리로서 충분히 재미있다. 장르 소설의 가치는 그 주제 의식에서 발현되겠지만, 다양성 그리고 특정 독자층에 대한 정확한 겨냥에도 존재한다. 물론 다양성은 일정 크기의 시장이 전제돼야만 가능하다. 매번 국내 시장에 이런 유의 작품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건 결국 그 때문일 것이다.
퀸 수사국
엘러리 퀸 저 | 검은숲
『퀸 수사국』은 주간지 등에 발표했던 대중적인 단편을 모은 단편집으로, 엘러리 퀸의 3기에 해당하는 1955년에 발표됐다. 엘러리 퀸의 작품 하면 대개 길고도 촘촘한 논리적 구성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이 단편집의 느낌은 전혀 다르다. 18편의 이야기는 5, 6페이지 정도로 짧고, 명쾌하며 위트가 넘친다. 소소하지만, 엘러리 퀸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미니 미스터리
엘러리 퀸 엮음 | 청년사
50명의 대표선수급 작가가 참여한 51편의 미스터리 단편 모음집. 엘러리 퀸이 편집자로 참여해 1969년에 발표했다. 국내에는 1996년 청년사에서 출간됐는데, 안타깝게도 절판됐다. (굳이 절판된 작품을 소개하는 이유는 재 출간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단편이라기보다 엽편에 가까운 작품들이 많고 그만큼 허를 찌르는 기발함이 일품이다.
부호형사
쓰쓰이 야스타카 저 | 검은숲
문제적 SF작가 쓰쓰이 야스타카는 방대한 저작 중에서 단 세 권의 미스터리 작품을 남겼는데, <부호형사>는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엄청난 부자가 돈으로 사건을 해결한다는 다소 황당한 설정인데, 미스터리 장르의 구조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점과 특유의 블랙 유머가 인상적이다. 비중 있는 조연으로 직접 출연한 드라마 <부호형사>도 일본에서 크게 성공했다.
윤영천(예스24 e연재 팀장)
추리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에 추리소설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Howmystery.com 사이트를 만든 게 1999년이다. 2,000명이라고도 하고 2,500명이라고도 하는 한국 추리소설 팬 숫자가 크게 늘길 바란 건 아니다. 다만 그들에게 일용할 읽을거리가 있길 기원한다.
eskimna
2016.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