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여름휴가 때면 정말이지 ‘큰 맘 먹고’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여행에서 돌아와 일상의 일을 반복하다보면 여행의 기억이나 감상은 금세 사라지고 만다. 나의 여행을 ‘그냥 좋았어’ 한 마디로 표현하고 싶지 않다면, 여행에서의 잊지 못할 순간을 영원히 추억하고 싶다면 반드시 기록하고 정리해야 한다.
의외로 나만의 여행을 하나의 결과물로 정리하기란 어렵지 않다. 특히 나의 이야기를 온전히 담고 싶다면 여행글을 기고해서 돈을 버는 전문 여행작가가 되어야 할 필요도 없다. 『나만의 여행책 만들기』 에서는 처음 여행을 꾸리는 방법부터 실제 제본과 출판, 책 유통에 이르기까지 여행책을 만드는 방법이 세세히 나와 있다. 여행작가이자 독립서점 ‘부비책방’의 주인, 그리고 ‘나만의 여행책 만들기 6주 과정’의 강사인 저자 홍유진을 만나 나만의 책 만들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여행의 묘미는 뭔가요?
제가 생각하는 여행의 가장 큰 묘미는 예측 불가능한 일들을 겪고, 거기에서 새로운 시선과 경험들을 얻는 것이에요. 여행 자체가 워낙 그렇기도 하지만요.
일상에서는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소한 진리나 고마움 같은 것들을 여행에서는 의외로 자주 깨닫곤 하죠. 때로는 이전에 내가 알던 나의 모습, 그러니까 꽤 괜찮다고 느꼈던 모습이나 유약하다고 느꼈던 모습과는 다른 진짜 나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기도 하거든요. 생각보다 더 유치하거나 치사한 면이나, 믿고 싶지 않은 나의 싫고 미운 면 혹은 꽤 용기 있거나 의연한 면 등 말이에요.
여행 중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던 일에 대해서는 돌아온 후 새롭게 탐구하기도 하죠. 그리고 보면 여행은 끝없는 자기 발견의 과정인 것 같아요.
나만의 미션과 작은 목표를 만들면 여행이 한결 더 흥미진진하다고 하셨는데요, 작가님이 하셨던 미션은 뭐가 있나요?
책에도 언급했지만 여행 때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어요. 대개는 책이 있는 공간을 찾아다녀요. 도서관도 좋고 서점이나 헌책방도 좋아하죠. 좋아하는 작가의 나라를 방문할 때는 꼭 그분의 고향이나 그분에게 영감을 준 장소들에 들러요. 그런 곳은 중심 관광지랑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지만, 다른 일정을 줄이더라도 반드시 갑니다.
음식도 빼놓을 수 없어요. 음식은 그 나라 혹은 그 지역의 문화적 결정체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음식을 통해서 새로운 시선이 생기기도 하죠. 그런 의미에서 음식은 놓칠 수 없는 중요한 미션이죠.
저는 지금 약 세 달 정도 인도로 여행을 떠나 왔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7일짜리 트래킹이 미션이에요. 저는 걷기나 등산은 잘하지 못해요. 실제로 코앞 슈퍼마켓에 나갈 때도 차 없이는 움직이지 않을 정도였어요. 그런데 여행작가가 되고 보니 걷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초창기에 강천산 여행기를 쓸 일이 있었는데요. 그 당시에는 아빠와 함께 겨우 겨우 산을 올라갔어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때 실었던, 산꼭대기에서 찍은 전경은 아빠가 찍어오신 거랍니다.
그렇게 조금씩 걷기 시작하니 지리산 둘레길, 동해 해파랑길도 걷게 되었죠. 결국엔 '케이블카 없이는 가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했던 한라산 백록담 정상도 당당히 걸어서 올라가게 되었어요. 이후 틈틈이 서울 둘레길이나 자전거 타기를 통해 체력을 쌓았어요. 인도 라다크에서 마르카밸리를 온전히 두 발로 걸어 성공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말이죠!
실전 글쓰기에서 퇴고를 가장 중요하게 꼽으셨습니다. 퇴고를 잘 하는 방법을 독자들에게 소개해 주신다면?
아이러닉하게도 퇴고를 잘 하는 방법은 일단 초고를 완성하는 거예요. 초고 없는 퇴고란 있을 수 없으니까요! 여행작가 수업을 진행하면서 의외로 많은 분들이 초고를 쓰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거나 결국 완성하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러나 어설프고 허술해도 어떤 방식으로든 초고를 완성하면 퇴고도 하고, 글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죠.
퇴고를 잘 하는 방법이 따로 있는 건 아니에요. 시간을 두고 꾸준히 반복해서 들여다봐야 하죠. 책에서는 퇴고 시작을 막막해하는 분들을 위해 기초적인 퇴고의 원칙을 언급했어요. ‘문장은 가능한 한 짧게 다듬는다’ ‘여러 번 반복되는 단어를 찾아 다른 단어로 고친다’ 등 몇 가지 사소하지만 중요한 원칙들만 꼼꼼하게 지켜줘도 훨씬 완성도 있는 자신의 글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퇴고 역시 끝없는 자기 검열의 과정이니까요.
『나만의 여행책 만들기』 표지를 펼치면 지도가 되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독립 출판으로 책을 내신 경험으로, 책의 디자인은 마음에 드셨나요?
편집자님이 많이 신경써주셨죠. 표지를 펼쳐서 뒤집으면 예쁜 지도가 나타나게 만든 편집자님의 아이디어가 무척 참신했어요. 분홍색 바다와 청록색 대륙으로 이뤄진 색깔 대비도 예쁘고요. 감성이 돋보이는 표지 디자인에, 여백과 쉼표가 느껴지는 내지 디자인이 개인적으로도 무척 마음에 들어서 무척 감사드리고 있어요.
여행 동안의 기록을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사진과 글을 정리하는 작가님만의 방법은 무엇인가요?
책에서 언급한 내용대로랍니다. 사진은 컴퓨터에 [장소별>날짜별]로 폴더를 만들어 저장해요. 그날 찍은 사진은 그날 폴더를 만들어 저장하는 편이에요. 여기에 저만의 방법이 있다면 그날의 ‘베스트 컷(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컷 등)’ 순위를 정해서 따로 이름을 붙인 사진들만 모은 폴더를 만들어둬요. 그렇게 하면 필요할 때 빨리 찾아서 사용할 수 있거든요.
여행 동안은 보통 스마트폰을 이용해 ‘에버노트’ 어플과 몰스킨 노트에 글이나 메모를 정리해요. 스마트폰용 키보드도 항상 함께 가지고 다니죠. 에버노트 어플에는 날짜와 장소를 타이틀로 적고, 그날 순간순간 떠올랐던 단상이나 기억, 비용, 사소한 정보까지 모두 잊지 않기 위해서 메모해둬요.
필기를 할 수 없을 만큼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라면 키워드만이라도 적어둬요. 아무리 유치하고 시시해도 혹은 글자가 틀려도 일단 그대로 다 저장해두죠. 메모를 했는지 안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 경우에도 일단 무조건 옮겨놔요. 중복되는 건 지울 수 있지만, 지나가버린 기억은 다시는 돌이킬 수 없으니까요.
몰스킨 노트에는 주로 이곳저곳에서 발생한 영수증을 붙여 메모해두거나 뭔가 특이한 걸 발견했을 때 스케치를 하는 용도로 사용해요. 혹은 여행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방명록(?)처럼 글을 남기게 하거나 스마트 폰으로 글을 쓸 수 없을 때, 순발력이 필요한 순간에 이용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스마트폰은 배터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불편할 때가 있어요. 특히 모래 사막과 같은 곳에서는 노트와 펜이 최고죠.
자신이 쓰고 싶어 하는 여행의 기록과 출판으로 낼 수 있는 책의 내용이 다를 텐데, 두 사이의 간극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두 가지로 생각해봤어요. 첫 번째는 반드시 간극을 줄일 필요가 있을까하는 경우예요. 분명 내가 쓰고 싶은 여행의 기록 그대로를 책이란 결과물로 만들고 싶은 분들이 계실 거예요. 본인이 가장 원하는 형태로 책을 만들 수 있다는 게 나만의 책 만들기의 장점이죠. 그 장점을 잘 살리면 될 것 같아요. 즉 본인의 니즈가 답이 되는 거지요.
두 번째로는 반드시 간극을 줄여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인데요. 상업 출판용 책 혹은 그에 준하는 수준의 책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경우로 볼 수 있어요. 이때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독자의 니즈도 건드려줘야 하죠. 독자가 내 책을 통해 얻고자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무엇인지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결국 내가 하려는 이야기와 독자들의 니즈를 얼마나 적당히 잘 버무리느냐가 답이 되지 않을까요.
‘나만의 여행책 만들기’ 강의 수강생 중 기억에 남는 수강생이 있나요?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60대 중반의 어르신이셨어요. 강좌명은 <나만의 여행책 만들기> 수업이었지만 일반 단행본도 만들 수 있냐며 문의하셨던 분이었죠. 여행이라는 특화된 주제가 있지만, 전체로 볼 때 ‘책 만들기’라는 프로세스는 같기 때문에 수업을 들으면서 방향을 잡아가면 되므로 문제는 없었어요.
어르신이 만들고 싶은 책은 어르신의 90세 노모의 일기였죠. 젊은 시절 틈틈이 써 둔 노모의 글을 모아, 하나의 책으로 엮어드리고 싶었다고 해요. 곧 다가 올 구순 생신 선물로 드리기 위해서요. 60대 중반의 나이였지만 다른 젊은 수강생 분들보다 훨씬 적극적이셨어요. 책을 만드려면 컴퓨터 작업으로 사진이나 원고를 편집해야 할 상황을 피할 수 없게 되요. 어느 정도 관련 프로그램을 다룰 수 있어야 하죠.
첫 시간에는 아무것도 모르셨던 분의 결과물이 한 주 한 주가 지날수록 달라지더라고요. 매주 나가는 과제물도 안 해온 적이 한 번도 없으셨지요. 심지어는 젋은 동기 분들에게 과제하는 방법을 알려주시기도 했어요. 과제할 때 참고했던 자료들도 나눠주시고요. 동기 분들과 함께 인쇄소를 다니며 직접 샘플 책도 완성하셨죠.
자신이 만든 책을 발표하는 수업의 마지막 시간에는 어르신께서 책 주제와 사양에 해당하는 물리적 정보까지 꼼꼼히 이야기해주셔서 깊은 감동을 받았어요. 나의 이야기가 책이 되는 순간의 감동을 함께 나눈 거죠. 매우 뿌듯해하시는 그분을 보면서. ‘열정이 있다면 방법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어요. 덕분에 책 만드는 일이 실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것도 방증한 기회가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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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여행책 만들기홍유진 저 | 생각정거장
소중한 여행을 즐기고 싶은 당신에게 필요한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나만의 시선’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여행의 주제나 미션으로 더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만의 여행책 만들기》는 ‘일상에서 여행을 계획하는 방법’부터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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