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이름이지만 엄연히 여자. 카피 한 줄 못 외우지만 엄연히 카피라이터. 몇 초만이라도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몇 달 고민하는 세계에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김민철 저자의 ‘여행의 기록’을 담은 책 『모든 요일의 여행』이 출간됐다. 카피라이터의 일상을 섬세하게 기록한 『모든 요일의 기록』 이후 약 일년 만이다.
자신만의 언어로 카피라이터의 크리에이티브한 일상을 그려낸 전작에 이어, 『모든 요일의 여행』에서는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진짜 ‘나’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미처 다 담지 못한, 여행 그 이후의 이야기를 김민철 저자에게 직접 들어보았다.
언어가 뒤바뀐 곳에서는 오직 ‘나’만 남는다
『모든 요일의 기록』에서는 “유독 ‘기억’과 관련된 머리는 평균 이하”이기 때문에 기록했다고 하셨습니다. 여행의 기록을 따로 추려서 낸 이유가 있나요?
너무 뻔한 답이지만, 여행을 좋아하니까 라고 답하고 싶네요. 좋아하니까 잘하고 싶고, 잘하고 싶으니까 고민이 많아졌고, 어느 순간, 이 고민들이 나의 여행을 더 풍성하게 만들고 있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글을 쓰면서 여행의 좋았던 순간보다 고민의 순간을 담으려고 노력했어요. 사는 것에 대한 고민으로도 머리가 터져나갈 것 같은데 무슨 여행에 대해 고민을 하느냐, 여행은 그냥 좋은 거 아니냐,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여행을 좋아하니까 그냥 무턱대고 ‘여행은 좋은거지’라고 무책임하게 말해버리고 싶지 않았어요. 여행의 결들을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싶었달까요. 그래서 어쩌다보니 여행의 기록을 따로 추리게 되었네요.
‘내게 나를 말해주는 게 여행’이라고 쓰셨습니다. 여행을 통해 알게 된 작가님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말하기 시작하면 밑도 끝도 없을텐데요. 우선, 철저한 준비주의자라는 것. 대략적으로 여행 6개월 전에 비행기표를 끊는데요, 그때부터 여행에 관한 모든 것들을 찾아보기 시작해요. 남편 말에 따르면 마치 다른 생을 준비하는 사람같이 꼼꼼하게 준비한다고 그러더라고요. 숙소 하나를 예약할 때에도 마치 그 숙소로 이사갈 사람처럼 꼼꼼하게 찾아보고, 한 도시에 며칠을 머무를 건지, 어느 도시로 이동할 건지도 계속 책을 들여다보고, 인터넷을 찾으면서 겨우겨우 정해요. 근데 이 과정을 지나치게 즐기는 거죠. 회사에서 야근하다가도 열받으면 여행에 관해 인터넷 서핑을 해요. 그럼 또 스트레스가 확 낮아지고, 그 힘으로 또 일하고. 마치 여행 준비 과정 자체가 저에겐 또 하나의 여행이랄까요?
근데 여기에서 또 하나 알게 된 저에 관한 특징은, 그렇게 준비한 걸 막상 여행지에 도착해서는 잘 써먹지 않는다는 거예요. 뭐랄까. 엄청 모범생처럼 여행을 준비하고, 막상 여행지에 도착해서는 불량학생이 된달까요. 반항심이 막 생겨나면서, 그래, 모든 정보를 무시하고, 느낌대로 여행을 해보는 거야! 라고 다짐하면서 별 계획 없이 숙소를 나설 때가 많아요. 그러다가 실패도 엄청 많이하고, 정작 가보려고 생각했던 곳에 못 가고 돌아오기도 하고. 나중에서야 ‘아 맞다! 거기 꼭 가고 싶었는데!’라면서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해요.
이 지점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저의 특징이 드러나는데요. 어떤 사건이 벌어지고 나면 순식간에 그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여버려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어쩔 수 없이 이상한 카페에 들어가서 몇 시간을 앉아있어야 된다면, 그 상황에 짜증을 내기보다는 여기에서 가만히 있을 수 있어서 너무 좋다, 라고 생각해버리는 거죠. 『모든 요일의 기록』에 신혼여행에서 비행기를 놓치는 에피소드가 나오거든요. 그 이후의 이야기를 책에는 기록하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그 여행 내내 저는 “비행기 놓친 에피소드 너무 재밌지 않아? 우린 엄청 비싼 돈을 지불하고 그 에피소드를 체험한 거야.”라고 남편에게 계속 말했거든요. 그러면서 즐거워하는 거죠.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화를 낸다거나, 책망을 한다거나, 그러지 않아요. 무턱대고 긍정해버리는 성격이 여행을 하니까 진짜 많이 드러나더라고요. 그냥 지금 내 선택이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해버리는 것. 그게 여행을 통해 제가 저 자신에 대해 알게 된 가장 좋은 점이에요.
남편과 여행 스타일이 달라서 삐걱대는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같이 다니기 힘들진 않으셨나요?
삐걱거리는 걸로 읽히셨나보네요. (웃음) 삐걱거린다기 보다는, 제가 그냥 제 멋대로 하는 거예요. 남편은 여행에 안 익숙한 사람이고, 저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저는 제 마음대로 일정도 짜고, 숙소도 정하고, 남편은 그냥 저를 잘 따라다니죠. 저보다 잘 즐기면서. 같이 다니기 힘들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 없어요. 제 여행의 가장 든든한 지지자가 옆에 있는 거니까 복받았다는 생각은 자주 하죠.
남편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 여행하기 위한 작가님의 방법을 말씀해주신다면?
실은,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여행하는 건 좀 힘들어하는 편이에요. 저는 다른 사람과 여행을 가면 철저히 그 사람에게 다 맞추는 스타일이거든요. 그 사람은 어떤 음식을 좋아할지, 어떤 숙소를 편안해할지, 무슨 가이드도 아니면서 세세한 것까지 다 고려하는 스타일이에요. 아무도 안 시키는데 스스로 그러고 있으니까 얼마나 피곤하겠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과의 여행은 왠만하면 가지 않는 편이에요. 말하고보니, 노하우가 아예 없네요.
출장을 간 스리랑카도, 현재 거주하는 망원동도 여행의 일부로 보는 시각이 이색적이었습니다. 모든 곳을 여행처럼 생각하시는 이유는 무엇이고, 낯설거나 낯익은 지역을 새롭게 여행하고자 하는 마음도 어떤 느낌인지 궁금합니다.
일상을 여행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여행이라 생각하면, 어떤 곳도 허투루 보이지 않으니까요. 쉽지는 않아요. 매일 다니는 동네를 매일 다르게 보는 건 사실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매일 하늘이 달라지는 것처럼, 순간순간 빛이 달라지는 것처럼 동네도 변하고 있으니까, 그 변화에 예민해지려고 노력해요. 그게 일상을 잘 살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하니까요.
여행의 기록과 경험이 카피라이터로 사는 데 도움이 되나요?
도움이 되는지는 사실 모르겠어요. 다만 확실한 건, 평범한 것을 평범하지 않게 보는 것이 여행자의 시선이잖아요. 서울이나 뉴욕이나 커피잔이 뭐 그리 다르겠어요. 하지만 여행자가 되는 순간 커피잔에 떨어지는 빛 하나에도 예민해지고, 기억하고 싶어지잖아요. 여행자의 시선, 여행자의 감각, 여행자의 근육 이런 것들이 카피라이터로 사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싶네요.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뭔가를 딱 낚아채는 것이 카피라이터니까요.
앞으로 어떤 글을 쓰실지도 궁금합니다.
어쩌다보니 작년 7월에 『모든 요일의 기록』을, 올해 7월에 『모든 요일의 여행』을 내게 되었네요. 실은 제가 이런 글을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했어요. 아주 오랫동안 이게 뭐가 될지도 모르고 그냥 써놓은 많은 글들을 추스려서 책으로 2권이나 엮고 나니까 이젠 밑천이 다 떨어진 기분이랄까요. 읽은 책들도 다 써먹은 것 같고, 다녀온 여행들도 다 써먹은 것 같고. 그래서 당분간?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하고, 여행도 다니면서 충전을 해야할 것 같아요. 뭔가를 제 속에 차곡차곡 쌓다보면 다시 뭔가 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겠어요? 그때 그 글은 또 어떤 글이 될지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네요. 다만, 제가 진심을 담아 쓴 글들에 진심을 담아 대답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앞으로 어떤 글을 쓰게 되더라도 많이 힘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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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요일의 여행김민철 저 | 북라이프
전작《모든 요일의 기록》을 통해 일상에서 아이디어의 씨앗을 키워가는 카피라이터만의 시각을 담백하고 진실된 문장으로 보여준 저자 김민철은《모든 요일의 여행》에서 ‘기록하는 여행자’가 되어 자기만의 여행을 직조해가는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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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uiu22
2016.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