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파우저 교수 “이번 총선에서 희망을 봤다”
광화문에서 시위를 하고, 그 시위가 뉴스화 되고, 일부 매체는 그런 소식을 보도하지 않고, 진보적인 신문은 크게 보도하고... 그런 건 일회성 이벤트잖아요. 국회의 정치 제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선거를 통해서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봤으니까요. 자신감을 주는 결과였다고 생각해요.
글ㆍ사진 임나리
2016.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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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시민의 조건』의 부제는 ‘한국인이 알아야 할 민주주의 사용법’이다. 책 속에는 한국 사회의 문제와 원인을 찬찬히 짚어가는 목소리가 담겨있다. 놀라운 사실은, 이토록 객관적인 분석을 들려주는 저자가 미국인이라는 사실이다. 로버트 파우저는 1980년대 초에 서울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공부했고, 1988년부터 1992년까지 고려대학교 영어 교육과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2008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외국인 국어교육학과 교수로 임용되어, 2014년까지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에서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1980년대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곁에서 지켜봐 온 저자의 시선은 민족이나 국가에 얽매여 있지 않다. 『미래 시민의 조건』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이유다. 현대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교육 수준을 자랑하고, 전체 부의 총량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질적인 문제들은 남아있다. 늘어난 자원은 분배되지 못했고, 사회 통합은 요원하다. 문제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로버트 파우저는 ‘민주주의’를 말한다. 지금 이곳에 필요한 ‘민주주의의 올바른 사용법’을 설파하기 위해, 한국의 지난 역사를 되짚고 나아가야 할 청사진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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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이요? ‘헬미국’도 있어요!

 

『미래 시민의 조건』을 쓰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미국으로 돌아가신 후에, 한국의 상황을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으셨나요?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한국의 상황도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고요. 오랜만에 돌아간 미국에서도 공통적인 문제를 보게 됐어요. 예전에 살았던 일본의 상황도 봤고요. 그 문제들 사이에는 한국과 공통적인 부분도 있고, 한국만의 특유한 문제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요즘 한국에서는 ‘헬조선’이라는 말이 널리 퍼져 있는데요. 미국에서도 ‘헬미국’의 분위기를 느끼셨다고요.

 

‘헬일본’도 있죠. 지금은 일본에 살지 않지만요. 미국에도 제도에 대한 불만, 변화에 대한 요구들이 있어요. 제도에 대한 불만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죠. 그중 하나는 양극화예요. 한국에도 있는 문제이지만, 미국에서는 더 많이 보이는 것 같아요. 중산층 출신의 사람들은 자신이 계속 중산층에 머무를 수 있을지, 걱정을 하고 있는 거죠. 또 다른 문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자리 잡은 체제가 변하고 있다는 거예요. 소련이 붕괴한 후에 미국은 유일한 강대국으로 남았고,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나라들이 있었잖아요. 유럽이나 일본, 한국, 대만 같은 나라들이죠. 그런데 지금 미국 자체도 변화하고 있고 유럽도 변하고 있어요. 특히 미국의 경우에는 윗세대는 미국이 강대국으로서 세계 무대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미국을 경찰국가로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젊은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죠. 미국 안의 문제부터 생각하자는 거예요. 그 밖에도 중국이 강대국으로 등장하고,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비롯되는 문제들도 있어요. 그런 부분도 한국, 일본, 미국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죠.

 

지난 4월 한국에서는 총선이 치러졌습니다. 작가님께서도 그 즈음에 한국으로 돌아오셨는데요. 이번 총선을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미래 시민의 조건』에서 젊은 사람들이 투표하고 정치에 참여하면서 변화를 요구하라는 이야기를 했잖아요. 그런 점에서 이번 선거는 20~30대의 젊은 층이 투표했기 때문에 기뻤어요. 그중에 한 명이라도 『미래 시민의 조건』을 보고 투표했다면, 이 책은 성공적으로 끝난 거라는 생각도 했고요. 일단 많이 청년들이 투표에 참여해서 변화를 요구했다는 사실이 정말 좋아요.

 

“변화를 요구하는 세력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낡은 1980년대 투쟁 방식의 틀에서 벗어나 어렵게 도입한 자유선거를 통해 승리한 뒤 시민의 대표 자격으로 변화를 실현하는 것이다”라고 쓰기도 하셨죠.

 

이번 선거에서는 그렇게 됐기 때문에 시원하죠(웃음). 광화문에서 시위를 하고, 그 시위가 뉴스화되고, 일부 매체는 그런 소식을 보도하지 않고, 진보적인 신문은 크게 보도하고.... 그런 건 일회성 이벤트잖아요. 국회의 정치 제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선거를 통해서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봤으니까요. 자신감을 주는 결과였다고 생각해요.

 

1980년대에 한국에서 공부하셨고, 카이스트와 고려대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기도 하셨어요. 2000년대에는 서울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셨고요. 시간이 갈수록 한국 청년들의 정치적 관심이 줄어들었다고 보시나요?

 

그렇죠. 시간이 갈수록 조금 관심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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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도 미국이나 일본, 유럽과 비슷한 것 같아요. 일단 이슈가 있는 부분이 있죠. 특히 미국과 유럽의 경우는 1960년대 말에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갈등이 있었고, 그것이 학생 운동의 불씨가 됐어요. 일본에서도 미국과의 안보 관계, 베트남 전쟁이 영향을 미쳤고요. 이슈가 뚜렷하면 젊은 사람들이 참여하게 되는 경향은 있어요. 한국에서도 1980년대에는 이슈가 뚜렷했잖아요. 독재가 있으니까 민주화를 하자는 거였죠. 당시에는 선거를 통해서 뽑은 사람도 없었고, 언론 통제도 있었고, 지하철을 탈 때도 가방 검사를 했으니까,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거죠. 학생들이 민주화를 외치면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거예요. 지금은 이슈가 여러 가지이거나, 이슈는 많은데 눈에 뚜렷하게 보이지 않아요. 그리고 1980년대 민주화 운동 이후에 90년대에는 한국의 생활 수준이 올라갔거든요. 지금 많은 한국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 90년대에 형성됐어요. 그로 인해서 조금 더 만족감을 느끼게 된 것도 영향이 있죠.

 

“한국 사람이 지배 계층에 진입하고 싶어 하는 이유”로 불안을 이야기하셨습니다. 무엇에 대한 불안일까요?

 

그건 미국과 조금 다른데요. 한국 사람들은 남이 잘되면 배가 아프다는 문화 풍토가 있어요, 좋든 나쁘든. 자신이 중산층이어도 더 올라가지 못하면 불안한 거예요. 주류가 못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위쪽에 자리해야 자신의 입지에 안정감을 느끼는 거예요. 일제 시대와 독재라는 역사적 경험이 ‘힘이 없으면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남겼다고 볼 수도 있죠. 교육과 관련해서도 가능하면 좋은 학교에 가라거나, 소위 SKY를 가야 한다는 부모의 압력이 있잖아요. 그런 문화적 풍토에서 불안을 느끼는 부분도 있어요.

 

경제적 양극화는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경우는 어떤가요?

 

아직까지 미국의 양극화 원인은 제조업 분야의 축소예요. 제조업은 굳이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도 비교적 보수가 괜찮은 일자리였어요. 그래서 미국의 중산층을 버티게 하는 원인 중 하나였죠. 그런데 지금은 대부분 중국에서 만든 물건을 수입하잖아요. 그렇게 제조업이 약해지면 중산층 자체가 약해지는 거죠. 아직 한국은 심각한 상황이 아니지만, 그렇게 될 수도 있죠. 한국에서도 고학력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제조업은 안전한 일자리였어요. 제조업이 줄어들면 그들이 일할 수 있는 곳은 서비스 분야가 될 텐데, 임금이 적다는 문제가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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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은 IMF 때보다 희망이 사라진 분위기

 

최근에도 ‘조선업 구조조정’이 커다란 문제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그렇죠. 그런 점에서는 IMF가 첫 경험이었죠. 갑자기 구조조정이 이루어졌고, 해고된 사람들이 새로운 일을 찾기 힘들었고, 그래서 사업을 시작하게 됐지만 어려움을 겪었고요. 그때 중산층이 위기에 빠진 거죠.

 

『미래 시민의 조건』에서 말씀하시길, IMF 때만 하더라도 한국 사람들이 낙관적이었다고 하셨습니다. 오히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에 한국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진 허망한 사회 분위기”가 심해졌다고요.

 

IMF 때도 힘들었죠. 지금보다 훨씬 더 힘들었어요.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고, 구조조정 대규모로 이루어졌잖아요. 사실 한국은 2008년의 세계 금융 위기를 비교적 잘 버텼어요. IMF 때와는 느낌이 반대인 거죠. IMF 당시에는 국민이 희망을 가지고 힘을 모아서 극복하자는 운동이 있었잖아요. 금 모으기 운동도 했고요. 그런데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에 한국은 그냥 버티는 거죠. 희망을 가지고 해내자는 목소리를 사라진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심각하게 느껴지는 거죠. 통계상으로 보면 IMF 때 피해가 훨씬 더 컸지만요.

 

IMF 때는 ‘빚을 갚으면 된다’는 해결 방안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죠. IMF 때는 열심히 극복하면 된다는 생각들을 했어요.

 

하지만 세계 금융 위기 이후에는 ‘이건 세계적인 흐름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그래서 버티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거죠.

 

네, 그런 부분은 있어요. 그런데 이번 선거를 통해서 조금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아요. 버티는 것보다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거죠.

 

성장보다 분배를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 희망일까요?

 

네,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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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여러 선진국이 사회주의적 정책을 도입하기 시작했을 때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원래 사회주의적 정책이 약한 상태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균형을 이루기 어려웠”기 때문에, 지금 분배에 대해 논의하는 것도 쉽지 않은 거겠죠.

 

쉽지 않아요. 분배하자고 이야기하면 빨갱이라고 말하는 코드가 있죠. 『미래 시민의 조건』에서 전달하고 싶었던 건, 그렇다고 해서 빨갱이가 아니라는 거예요. 공산주의와 사회민주주의는 달라요. 사회민주주의는 정부가 개입함으로써 불합리한 부분의 균형을 잡자는 건데, 이미 유럽의 많은 나라가 하고 있고 심지어 미국도 하고 있어요. 미국은 1936년에 국민연금이 생겼고, 실업수당은 그 이전에 생겼어요. 일본도 하고 있죠. 결국에는 자본주의 시장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정부의 개입으로 해결하자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건전한 논쟁이 될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사회주의 자체가 빨갱이나 북한과 연결되는 경향이 있죠. 그건 전혀 아니거든요. 그런 화두를 던지고 싶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한국 사회는 ‘레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비롯되는 세대 갈등도 있고요. 미국에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있나요?

 

미국도 마찬가지예요. 책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저는 버니 샌더스를 지지하는데요. 처음에 버니 샌더스가 관심을 끌기 시작했을 때 기성 언론은 버니를 사회주의자라고 했어요. 그런데 버니는 자신이 사회민주주의자라고 이야기하고, 계속 그걸 강조했거든요. 그러면서 버니 샌더스가 관심을 끌고 점차 지지자가 많아지니까 언론이 사회주의라는 말을 쓰지 않더라고요. 너무 그런 식으로 코드화하면 안 된다는 거죠. 저는 원래 언어학자니까, 그 모습이 굉장히 재밌었어요. 미국의 ‘레드 콤플렉스’를 엿볼 수 있는 거죠. 역사적으로 미국은 소련과 경쟁했었기 때문에, 미국의 기성 세대는 사회주의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강해요. 공산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요. 반면 젊은 사람들은 사회주의에 대한 느낌이 없어요. 지금의 30대가 1980년대에 태어났잖아요. 그들은 소련을 기억도 못 하고 이전 세대와는 다른 역사 교육을 받았어요. 그러니까 버니가 무슨 사회주의자냐, 그게 무슨 문제가 되냐, 이런 반응이죠. 그런데 한국은 아직 분단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레드 콤플렉스나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아쉽게도 한국의 진보 중에 아주 극단적인 사고방식 가지고 있는 사람도 활동을 하고 있고요.

 

버니 샌더스가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될 수 있을까요?

 

어려울 것 같아요. 그건 거의 결정된 것 같기도 한데,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버니 샌더스가 진보적인 개혁을 이야기하는 것도 놀랍지만, 도널드 트럼프가 내세우는 배타적 애국주의에 미국 시민들이 반응하는 모습도 놀랍습니다. 미국 사회의 문제점, 미국 사람들의 요구가 투영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한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버니 샌더스와 도널드 트럼프 사이에 비슷한 부분이 없지는 않아요. 공통점이 있다면 지금까지 해온 것에 대해서 변화를 요구한다는 거죠. 그리고 두 사람 다 미국의 소위 엘리트에 대한 저항을 대변하는 거예요. 힐러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보면 경제적으로 잘 살거나 나이가 많은 민주당 당원, 그다음이 흑인, 그리고 약간의 윗세대 여성들이거든요. 오히려 버니 샌더스는 중산층이거나 젊은 백인들이 지지해요. 약간 경제적으로 두려워하는 백인들이라고 할까요. 젊은 사람들은 수익이 적으니까, 그중에 젊은 사람도 많죠. 힐러리는 근원적으로 오바마의 제3기를 주장하기 때문에 흑인들한테 매력이 있는 거예요. 민주당 안에서 강력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 그건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부인이 될 수도 있는 거거든요. 오바마 대통령이 해온 대로 계속 유지하겠다고 하면 사실 보수적인 이야기인데, 힐러리가 말하는 게 그거거든요. 그러니까 흑인들의 표도 모이고, 너무 큰 변화가 오면 곤란하다고 생각하는 잘 사는 계층의 민주당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거죠.

 

도널드 트럼프가 내세우는 변화는 어떤 건가요?

 

마찬가지로 공화당에서 이전에 나온 후보들은 기업가들의 지지를 받았어요. 그런데 트럼프는 서민의 지지를 받았죠. 트럼프는 사업가이기 때문에 마케팅을 잘해요. 한 번은 연설에서 교육을 잘 받지 못한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죠. 돈 있는 공화당의 기업가들, 부자 세력에 대한 저항으로 볼 수 있는 거예요. 트럼프는 한국에서의 미군 철수 등 여러 가지로 변화를 이야기하죠. 버니 샌더스도 변화를 외치는 거고요. 오바마가 해온 대로 이어가자고 말하는 힐러리는 보수적인 거죠.

 

지금 미국의 시민들은 변화를 원하는군요.

 

변화를 원하는 사람이 많아요. 저는 오바마에 대한 불만은 없는데, 지금 세금이 너무 비싸고 물가가 높아요. 집 임대료도 비싸고요. 집을 사는 가격도 비싼 데다가, 집을 구입한 후에 내야 하는 재산세도 비싸요. 그런 부분들이 또 임대료에 반영이 되잖아요. 그러니까 경제적인 부담이 커졌다는 걱정들이 있죠. 그리고 젊은 사람들은 미국이 강대국으로서 해외에서 권력 행사해야 된다는 것에 대한 불신이 있어요. 이라크 전쟁은 역사적으로 보면 다른 나라를 침략한 건데, 무기가 있다는 걸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사실이 아니었잖아요. 대통령이 국민 앞에 거짓말을 한 거죠. 그렇기 때문에 정부에 대한 불신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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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유권자, 권력 집중에 대한 거부감 갖고 있어

 

『미래 시민의 조건』 서문에서 “‘국민’의 사고에서 ‘시민’으로서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국민은 개인이 국가에 속한다는 개념이 강해요. 그런데 시민은 개인이 국가와 계약을 맺는다는 개념이라서, 개인의 전제가 더 강한 거죠. 한국은 유신 시대 때 지도자가 국민을 생각하고 뭔가 주려고 하는 사람으로 인식됐고, 국민은 지도자 밑에서 따라와야 한다는 식이었잖아요. 그럴 때의 국민이 소극적인 대상이라면, 시민은 조금 더 개인의 전제가 있어서 국가와 계약하는 주체예요. 시민이 국가의 주인이지, 어떤 지도자나 군주가 주인인 건 아닌 거죠. 그런데 지금 현직 대통령은 국민 개념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민주화된 한국의 많은 사람은 시민의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요. 이들은 자신이 먼저 있고, 국가와 계약을 맺은 거라는 생각이 강해요. 그렇기 때문에 국가에게 불만이 있으면 떠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헬조선’이나 ‘탈조선’ 같은 이야기가 나오는 거죠. 그런 건 넌센스 같은 이야기이기는 하지만요. 그런데 현직 대통령은 약간 국민의 패러다임으로, 지도자가 국민한테 무언가를 주는 패러다임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그건 나쁘다기보다, 시대에 뒤떨어진 부분이 있는 거죠.

 

민주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시민에게 주권이 있다는 것인데, 한국에는 프랑스 혁명과 같은 경험이 없습니다. 민주주의를 학습할 시간도 부족했고요. 그런 점에서 선진국보다 한국의 민주주의 성숙도가 낮은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건 당연하다기보다 피할 수 없는 이야기이죠. 보통 우리가 배운 역사는 4.19 혁명 이후에 민주주의를 하려고 했다가, 나라가 흐트러지고 발전이 없어서 박정희가 5.16 군사정변을 일으켰고, 발전의 길을 터주면서 나라가 커졌다는 건데.... 잘 모르겠어요. 4.19 혁명 이후에 계속 민주주의를 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죠. 비교적 한국은 민주화 이후에 민주주의를 빠르게 도입했어요.

 

한국이 민주주의 선진국의 발전 속도를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다고 보세요?

 

그렇죠. 지금도 선거의 결과를 보면 민주주의가 정착한 거죠. 그런데 한국은 독특한 여건이 있죠. 미국과의 독특한 관계도 있고, 20세기에 일제 시대와 독재 시기를 경험했어요. 그 과정에서 미국의 민주주의를 벤치마킹했어요. 미국과의 관계가 있었으니까요. 프랑스의 경우는 세계적 환경이 바뀌어서 정권이 없어진 게 아니라 스스로 혁명을 일으킨 거잖아요. 사실 미국도 그래요. 그런 면에서 보면 한국은 빨리 민주주의를 도입한 건 맞아요. 미국을 만나고 나서 ‘좋은 나라는 민주주의국가이다’라는 사고가 생긴 거죠. 좋은 나라의 전례로 여겼던 미국이 독재와 손을 잡았기 때문에, 그 모순 때문에 비판하게 된 거고요. 중요한 건 ‘좋은 나라는 민주주의 국가’라는 사고가 있었다는 거죠. 그래서 1980년대까지는 계속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존재했던 거예요.

 

선거철마다 ‘투표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냐’는 이야기도 들려오는데요. 우리 스스로 민주주의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자주 바꿔야 돼요. 여당과 야당이 계속 바뀌어야 하죠. 지금까지 한국의 선거 결과를 보면 그렇게 해왔어요. 흥미롭게도 한국의 유권자는 권력 집중에 대한 거부감은 있어요. 한쪽 당에 권력을 많이 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서, 조금 분산시키려고 해요. 그게 재밌는 것 같아요. 하나의 희망일 수도 있고요.

 

“한국의 정치 구도에선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이해 못하는 세력이 강해서 더 깊은 민주주의를 기대하기가 어렵다”고 하셨는데요.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각각 어떻게 민주주의를 오해하고 있나요?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니라 절차이죠. 그리고 과반수의 의견을 따르기 때문에, 소수의 권리를 지키면서 다수의 방향으로 가야 돼요. 예를 들면, 일부 과격한 집단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구호로 외쳐요. 지금의 정권은 선거를 통해서 구성된 것이고, 그들은 선거가 문제가 있었다는 증거가 없어요. 그렇다면 대다수의 결정에 어긋나는 거죠. 선거를 통해서 뽑은 대통령을 하야시키려면 커다란 증거가 있어야 돼요. 매커니즘은 탄핵인데, 탄핵할 수 있는 길도 있지만, 그러려면 뚜렷한 증거 있어야 되는 거죠. 대통령으로서는 부적절하다는 걸 입증해야지, 단순히 정책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냥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정권 퇴진을 이야기한다면 넌센스죠. 근본적으로 그런 극단 좌파는 민주주의를 모르는 거예요. 그런데 아마 보수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민주주의는 대다수의 결정을 따라가야 하는데, 소수 의견을 낸 사람들도 자신의 의도를 전달할 수 있는 부분이 마련되어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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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사랑이 남다른 것으로 유명하시잖아요. ‘서촌주거공간연구회’ 회장을 맡기도 하셨고, ‘한옥 지킴이’로 불리기도 하셨습니다. 얼마 전에는 『서촌홀릭』이라는 책도 출간하셨는데요. 『미래 시민의 조건』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가 담겼을 것 같습니다. 어떤가요?

 

『서촌홀릭』은 에세이예요. 저의 개인적인 생활, 살아온 길을 이야기했고요. 한국에 살면서 느낀 것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요. 도시 문제와 관련해서 보존과 개발, 골목의 의미, 한옥에 대한 관심, 한옥에 살면서 느낀 점, 서촌이라는 지역, 그리고 다른 도시의 오래된 지역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요.

 

오래된 집이나 골목에 대해서 애정을 갖게 되신 건 한국에 오신 이후의 일인가요?

 

아마 한국에 살 때도 애정이 생겼을 테지만, 교토에 살 때 많이 생겼죠. 교토에서 그런 동네에 살았기 때문에 장점을 느낄 수 있었던 거죠.

 

일본에도 잘 보존된 전통 집들이 많을 텐데요. 한옥과 다른 매력이 있나요? 한옥의 매력에 빠지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일본의 오래된 집도 좋아하지만, 한옥 자체보다 한옥 동네가 좋아요. 골목이 있고, 마당이 있고, 조용하고, 나무도 심을 수 있고, 자연과 땅이 있잖아요. 지나친 간섭도 없고요. 그래서 차분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자동차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아파트에 살면서 주말에는 차를 타고 큰 마트에 가서 물건을 많이 사가지고 돌아오는 생활은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 건 저와는 맞지 않고요. 슬로우 라이프 좋아하는데, 아마 그게 가치관일 거예요. 한옥을 보고 예쁘다고 생각하거나 낭만을 느낀다기보다, 제 가치관에 맞는 환경인 것 같아요. 한옥이 아름답고 좋기는 하지만, 주위의 경관이나 환경이 저와 맞는 것 같아요.

 

『미래 시민의 조건』을 계기로 어떤 담론들이 활발해지면 좋을까요?

 

이 책이 총선 전에 나왔는데요. 일단 투표를 많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리고 미래에 조금 더 주도권을 갖고, 자신이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감각으로 미래에 대해서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런 간곡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시민으로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나라를 만드는 데에 참여하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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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시민의 조건로버트 파우저 저 | 세종서적
80년대의 민주화 운동과 코리안 드림부터 90년대 IMF 외환위기를 거쳐 지금 부의 집중 현상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영고성쇠한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오래되었지만 피할 수 없는 한국 사회의 결점들을 진지하게 응시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 문제의 원인을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인식한 그는 우리의 실상과 속내를 섬세하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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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파우저 #미래 시민의 조건 #총선 #국회 #정치 #선거 #민주주의
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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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uiu22

2016.05.26

인상깊은 이야기 잘 새겨듣겠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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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ouj

2016.05.20

IMF때보다 지금이 더 희망이 없다니... 암울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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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