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대 목소리의 대위법
안토니우 로부 안투네스라는 이름은, 이 책을 읽는 거의 모든 독자들에게 생소할 것이다. 나 또한 2년 전만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 무렵 나는 포르투갈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를 독일어 중역하고 리스본 여행을 마친 다음이었다. 리스본 여행은 나에게, 문학이 하나의 언어뿐만 아니라 어떤 특정한 공간을 필요로 한다는 강한 인상을 주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떤 특정한 공간과 필연적인 관계를 맺는다고 말이다. 하나의 도시는 물과 햇빛과 색채와 냄새, 그리고 환한 거리로 향한 흰 창문을 가지며, 그 모두가 작가의 언어로 흘러 들어가 그 도시 특유의 문장이란 형체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 그 도시 특유의 내면과 독백과 목소리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 나에게 리스본은 그런 곳이었다.
나는 포르투갈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고자 원했고, 항상 나에게 최고의 작품들을 추천해주는 열광적인 독서가이자 까다로운 심미안을 가진 신뢰할 수 있는 친구로부터, ‘안토니우 로부 안투네스’라는 이름을 처음 듣게 되었다. 나는 그가 권해주는 작품을 읽었다. 그리고 반드시 번역하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였다. 그 결과물이 바로 지금 여러분들이 손에 들고 있는 이 책, 『대심문관의 비망록』이다.
글을 옮기면서 당혹스러웠던 것은 첫 문단부터 펼쳐지는 안투네스 특유의 문체였다. 불완전한 형태로 끊임없이 이어지며, 처음 한두 개이던 구두점은 어느새 영영 자취를 감추어버리고, 불완전한 형체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문장들, 전체를 이루는 하나의 단락 내부에서 뒤섞이는 목소리와 시점들, 마치 하나의 문장처럼 보이는 기나긴 모놀로그 안에 혼재하는 과거와 현재, 아니 더욱 정확히 말해서, 현실의 독백 중간중간에, 예고나 설명 없이 불쑥 끼어들어 떠돌다가 다시 사라져버리는 과거의 그림자들, 사실 이것은, 당혹스러움이라기보다는 일생에 걸친 독서 경험에도 불구하고 예전에는 거의 접해보지 못한 독특한 유형의 매혹이었지만, 그럼에도 한국어 독자를 위한 번역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읽고 있는 나로서는 예상치 못한 까마득한 절벽 앞에 난데없이 놓인 바로 그런 느낌이었음을 고백한다. 평자들이 말하는 대로, 그는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음표를 활용하여 시적 산문이라는 다성(多聲)의 멜로디를 작곡한다.”
안토니우 로부 안투네스는 1942년 리스본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래로 다섯 명의 형제가 있다. 대대로 부유한 계층에 속한 그의 집안 조상 중에는 군대의 고위 장성을 비롯하여 대규모 브라질 고무 무역상 등이 있으며, 그의 아버지는 리스본의 미구엘 봄바르다 정신병원의 의사였다. 장남인 안토니우도 아버지처럼 리스본 의과대학에서 공부한 정신과 의사이며, 그의 형제 중 주앙과 누누 역시 의사이다. 안토니우는 이미 열세 살이란 어린 나이에 작가가 되기로 마음을 굳혔으며, 그가 정신과를 전공으로 선택한 것도 그것이 문학과 유사하리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대학을 마친 그는 군의관으로 입대하여 1971년부터 1973년까지 27개월 동안, 당시 “포르투갈의 베트남”이라고 불리던 앙골라의 식민지 전쟁에 참전한다.
잔인한 식민지 전쟁의 체험은 그의 문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으며, 1979년에 발표한 그의 첫 소설 『코끼리의 기억』은 “리스본과 앙골라 사이에서 자신을 잃어버린” 한 젊은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이다. 그는 “전쟁이 자신의 정치적 눈을 열어주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고국으로 돌아온 안투네스는 전업 작가의 길을 걷게 되는 1985년까지는, 한때 아버지가 재직했던 미구엘 봄바르다 정신병원에 근무한다. 포르투갈의 독재자 살라자르가 집권하던 시기에 안투네스는 공산당에 입당했고, 그 이유로 감옥에 투옥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소설에서 작가의 정치의식을 직접적으로 읽어내는 일은 불가능해 보인다. 안투네스의 비판자들이 주로 지적하는 점도, 공산주의자로서의 경력이 그토록 오랜 작가의 작품치고는 놀랍게도, “소설의 근원이 정치적 분석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대한 멜랑콜리한 격앙”에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종종 안투네스는 같은 포르투갈 작가이며 같은 좌파이지만 출신 배경은 상이한 사라마구와 비교되곤 한다.
안토니우 로부 안투네스의 작품들은 거의 예외 없이 포르투갈의 과거와 현재를 다루고 있다. 물론 그의 소설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나라 포르투갈은 기괴하고, 비틀렸으며, 음울하고, 전근대적이고, 슬프고, 풍자 속에 갇혔으며, 파국과 재앙을 향해 치닫는 꿈의 장면을 연상시킨다. 그가 그리는 포르투갈은 불행의 모든 초현실적 얼굴이다.
오직 문학의 시선을 통해서 한 나라를 알게 되는 일은 신비하다. 성숙한 독자들은 그것이 사실과 얼마나 부합하는가, 얼마나 객관적인가 하는 문제에는 관심 두지 않는 법을 안다. 문학은 저널리즘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실제로 방문하여 내 눈으로 직접 본 오스트리아의 빈보다 페터 한트케, 엘프리데 옐리네크, 토마스 베른하르트를 통해서 알게 된 낯선 도시 빈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던 기억이 있다. 그 세 사람의 작가가 빈을 묘사하고 재현하고, 각자의 ‘문학’이 일어나도록 허용한 방식이 다들 다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마도 문학은 평행하는 실제일 것이다.
우리는 안토니우 로부 안투네스가 포르투갈을 묘사하는 방식에 매혹된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정교한 디테일에 기대며 독자를 괴롭히듯이 기나긴 문장의 파편을 펼쳐놓는 그의 스타일이지만, 그 너머에서 우리를 응시하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인간 운명의 보편성이라는 바탕을 결코 잃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의 소설을 읽는 독자들 중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한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 포르투갈에 매혹되어버리는 경우가 생길지도 모른다. 리스본에 사로잡혀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묘한 것은, 안투네스의 이 소설에는 근사한 영웅도, 낭만적인 사랑도, 존경하고 감탄할 만할 매혹적인 주인공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매혹시키는 것일까. 나는 리스본을 여행하면서, 그곳이 내가 가본 그 어떤 도시보다도 여성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색채, 공기, 풍경,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와 몸짓과 태도. 이 소설 『대심문관의 비망록』에서도 특히 나를 사로잡은 것은 여성 화자들의 모놀로그였다. 안투네스의 여주인공들의 목소리는 다른 남성 작가들의 그것보다 더욱 섬세하고 내밀하게 울린다. 종종 그 목소리들은, 오직 신만이 귀 기울이는 어두운 고해실 안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그의 소설에서 느껴지는 이러한 독특한 여성성은, 즉각 나에게 도시 리스본의 기억을 환기시켰다.
‘멜랑콜리’. 이것은 안투네스의 소설을 대할 때 아마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상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멜랑콜리는 동시에 통속적 염세주의와 밀접하여 작품을 위험에 노출시키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또한 안투네스의 소설은 스토리가 복잡하게 얽혀 있지 않으며, 길이에 비해서 줄거리는 단순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작가의 서술기법이 충분히 발휘되지 않으면 분위기가 모노톤으로 흘러가기 쉬운 구조이다. 안투네스는 이것을 독창적이고 고집스러운 스타일, 평자들에 의해 ‘목소리의 대위법’으로 칭해진 스타일과 연출로 피해갔다는 생각이다. 가능하다면 여기서 독자들에게 소설의 한 단락을 예로 들어 보이고 싶다.
하지만 딱히 어느 부분이라고 고를 필요도 없이, 이 소설은 전체가 오묘한 대위법의 복합 화음으로 넘쳐흐르는 실정인데다 거의 모든 문장이 불완전한 형태로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이 소설만큼 한두 문장을 떼어서 인용하기 불가능한 작품도 없으리라. 여러 층위의 현재와 과거들의 중첩, 감정과 감정, 목소리와 목소리들이 혼재된 이러한 문장들은 마치 합창단원들이 서로 다른 가사의 노래를 동시에 부르는 듯한 효과를 불러일으키며, 한편으로는 원근이 철저하게 배재된 평면적인 풍경화, 시간의 여러 층위를 이루는 사건들을 동시에, 시제를 전혀 구분하지 않고 병렬시키는 방식으로, 비현실적으로 고요하며 비극적인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
*위 글은 『대심문관의 비망록』의 옮긴이의 글 ‘목소리 대 목소리의 대위법’의 일부입니다. 전문은 책을 통해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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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심문관의 비망록안토니우 로부 안투네스 저/배수아 역 | 봄날의책
우리는 그가 포르투갈을 묘사하는 방식에 매혹된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정교한 디테일에 기대며 독자를 괴롭히듯이 기나긴 문장의 파편을 펼쳐놓는 그의 스타일이지만, 그 너머에서 우리를 응시하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인간 운명의 보편성이라는 바탕을 결코 잃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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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