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읻다프로젝트 “더 고루한 책을 낼 것”

책과 나를 잇는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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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작품, 나를 넘어설 수 있는 어마어마한 작품에는 소설이나 시 상관없이 의미화하지 않고 해석하지 않아도 읽는 것만으로 이미 압도하는 문체가 있어요.

읻다프로젝트는 ‘노동 공유형 독립 출판 프로젝트’이자, 20~30대 번역가와 편집자, 마케터, 디자이너 등이 모인 출판 집단이다. 노동 공유형인 이유는 서로가 생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퇴근 이후 여가 시간을 노동으로 바꾸어 책을 만들기 때문이고, 독립 출판인 이유는 텀블벅에서 후원받은 돈과 자비를 털어 마련한 재원으로 책을 내기 때문이다. 처음 내는 책은 괄호 시리즈로, 현재 10권 중 세 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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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전쟁일기』, 『헨젤과 그레텔의 섬』, 『Y교수와의 대담』

 

은이들이 모여서 뭔가 기존의 방법이 아닌 새로운 걸 시도한다는 소식에 여러 신문이 관심을 가지고 인터뷰했다. <채널예스>도 책에 관한 소식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법, 득달같이 달려가 무슨 새로운 게 있나 물어보았지만 이들은 역설적으로 특색을 이야기하기보다 자신들이 보수적이고 고리타분한 출판사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좋은 책, 좋은 텍스트를 위해서 더욱 안 팔리는 책을 내고 존재와 존재를 ‘잇는’ 움직임이 되고 싶다는 읻다프로젝트 일원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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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다다(디자이너), 가운데 최성웅(대표/번역가), 오른쪽 김희윤(마케터). 은지(편집자)씨는 사진에 나오지 않았다.

 

노동공유형 프로젝트

 

최성웅 처음부터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책을 내자는 생각은 없었어요. 번역하는 김출곤 선생,박술 선생이랑 같이 니체의 『비극의 탄생』을 읽다가 죽이 잘 맞아서 번역을 해 보기로 했죠. 일 년 정도 끌어오다가 보니 주변 친구들이 공교롭게도 출판 쪽으로 일하는 분들이 많은 거예요. 심심한데 딴 것도 하나 해볼까 하고 단순한 마음으로 쉽게 생각을 했어요. 난 번역가니까 번역하고, 편집하는 사람 붙잡아서 편집하고, 불어 수업하다 우연히 출판 디자인을 하는 다다를 만나서 디자인까지 맡기고.

 

다다 자기들이 어떻게 니체를 번역할 건지, 어떻게 니체를 사랑하는지에 대해 얘기를 하는 데 재미있었어요. 니체 덕후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거죠. 한 권정도는 할 수 있겠지 하고 시작을 했어요.

 

그렇게 쉽게 생각하고 쉽게 저지른 일이 사람들을 만나면서 점차 구체화됐다. 처음에는 니체로 시작했지만 하나씩 사람들이 늘어나고 다른 좋은 책에 관한 이야기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모두 현직이 있는 사람들이 조금씩 짬을 내서 번역과 편집 작업을 했다.

 

최성웅 기본적으로 다들 어느 정도는 보수적인 측면에서 책을 좋아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클래식하게 좋은 번역과 디자인, 편집, 모든 것이 하나로 이어질 수 있는 책을 내고 싶어 하는 공통점이 있었던 거죠.

 

책을 내기까지의 과정은 지난했다. 보통의 출판사라면 네 번쯤 보는 교열을 아홉 번씩 보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일하는 형식이 아니어서, 수평적인 관계에서 일을 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각자가 모두 좋은 책을 내고 싶다는 욕심이 있기 때문에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은 합의가 될 때까지 회의를 해야 했다.

 

최성웅 한 명이 번역을 하면 역자 중에 해당 언어가 가능한 사람들이 단어를 하나하나 다 체크를 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쭉 봐요. 이 번역은 나와 어디가 어떤 면에서 맞지 않는다고 일일이 코멘트를 써서 주는 거예요. 일반 작업이면 자기 이름이 실리는 것도 아니고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정말 고전을 내기 위해서는 자기가 가진 편견이나 세계관을 어느 정도 깨야지만 책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것들을 위해서 합의가 안 되면 넘어가기 힘들어요.

 

김희윤 합리적인 방식으로 일하고 있는 건 아니에요. 일반적인 회사라면 누가 지시를 내려서 각자의 역할을 배분해 인력을 효율적으로 쓸 텐데 다 같이 한꺼번에 달려들어서 노동 공유를 하는 거죠.

 

말이 좋아 노동 공유지, 자신이 자신을 열정페이로 착취하는 거라고 농담을 했다. 좋아서 하는 거라지만 시간과 자본은 한정되어 있다. 누군가 공을 받고 누군가 더 돈을 가져가면서 회사가 엎어지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읻다프로젝트는 업무량과 돈을 환산하지 않고 모두가 동등하게 가져가는 데 합의했다.

 

최성웅 누구는 노동을 열 시간하고 누구는 세 시간하지만 면밀히 보면 박봉 편집자에 빚이 있고 애도 있는 사람이 남은 시간을 투자하는 거랑 시간이 많이 남는 사람이 쓰는 시간은 다른 거잖아요. 보통 책을 만들면 번역자한테 몇 프로, 저자에게 몇 프로 주는데 편집자의 노동은 상대적으로 보이질 않는 거예요. 이렇게 따지다가 그냥 수익이 나면 번역자든 디자이너든 모두 똑같이 1%씩 나눠가지자고 했어요.

 

당장은 아니더라도 읻다프로젝트가 자생할 수 있을 만한 요건을 만들기 위해 처음 3년 동안은 무보수로 가기로 했다. 그만큼 힘들기도 했지만 책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한다. 서로를 신뢰하는 마음과 각자의 노동을 인정하는 마음으로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다.

 

 

낭독회, 언어로 독자와 만나다

 

읻다프로젝트는 한 달에 한 번 낭독회를 연다. 프랑스어나 독일어, 일본어로 된 시를 낭독하기도 하고, 참가자가 각자 읽고 싶은 글을 들고 와서 읽기도 한다.

 

최성웅 일곱 명이 같은 시를 읽으면 각자가 보이는 세계가 보이는 거예요. 호흡을 짧게 끊어서 읽거나 행을 나눠 읽거나, 혹은 모두 이어서 읽거나. 각자가 글을 보는 자세 자체가 다르다는 게 그냥 낭독하는 것만 듣고도 몸으로 알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우리가 독자들하고 이렇게 읽어가며 성장하면 단순히 똑똑하고 해당 텍스트로 석사나 박사를 하는 전공생만 글을 읽는 게 아니라 책이 가진 자체의 아름다움을 좋아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죠. 대단한 작품, 나를 넘어설 수 있는 어마어마한 작품에는 소설이나 시 상관없이 의미화하지 않고 해석하지 않아도 읽는 것만으로 이미 압도하는 문체가 있어요.

 

은지 같은 시라도 다르게 번역하니까 번역자가 각자 번역본을 낭독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시도를 했어요. 원어 시를 낭독해서 음악성 같은 걸 들려드리고 싶기도 했고요. 오시면 앉은 순서대로 차례차례 돌아가면서 읽고, 서로 지목하면서 자신이 가져온 다른 텍스트를 읽기도 해요.

 

처음에는 사람들이 많이 참여할까 걱정했다고 한다. 행사에 참여하지 않고 듣기만 해도 되냐고 문의하는 사람들도 막상 낭독하는 자리에 오면 스스로 읽고 싶은 글을 찾아서 낭독하거나, 즉석에서 책을 골라 낭독하기도 한다. 지금은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아도 꾸준히 15~20명 정도가 참여한다고 한다.

 

 

앞으로 이어갈 읻다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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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은, 그러니까, 아주 간단히 말해, 출판사가 매우 심각한 판매 부진을 겪고 있다는 겁니다. 출판 부수가 1,000,000권이네 40,000권이네 하는 얘기에서 단 하나의 ‘0’ 자도 믿지 마세요! 아니 400권 찍었다는 말조차 의심스럽습니다... 사기예요!’ (『Y교수와의 대담』, 7쪽)

 

괄호 시리즈는 언뜻 보기에 통일된 기준이 보이지 않는다. 장르도 소설, 에세이, 시 등 다양하고 같은 언어권으로 나온 것도 아니다. 그나마 공통점은 잘 팔리지 않을 것 같은 책이라는 것. 비트겐슈타인과 에드몽 자베스, 폴 발레리 등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대중적인 작가나 팔릴 만한 텍스트가 아닌 책으로 시리즈가 이루어져 있다. 그나마 유명한 릴케의 『두이노 비가』는 이미 한국에 여섯 번 번역이 되어 출간된 적이 있고, 폴 발레리는 주로 시인이라고 알고 있지 소설을 썼다는 것조차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읻다프로젝트 일원들은 좋은 책을 내기 위해서라면 긴 번역 기간을 거치더라도,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노동을 공유하더라도 할 가치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책이 많이 팔리고 유명해진다면 누구나 기쁘겠지만, 책이 가진 가치만으로도 이미 지분을 가진 느낌이었다.

 

다다 미래를 물어본다면 알 수 없어요. 다만 우리가 이 책들을 많이 좋아하고 이 책이 얼마나 감동을 주는지 이야기해 주는 게 지금 하고 있는 일이고 근미래인 것 같아요. 괄호 시리즈가 끝난 이후에도 다른 좋은 텍스트로 작업이 들어갈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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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정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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