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스 웨던 감독의 <어벤져스>는 많은 슈퍼 히어로에게 동일한 비중과 관심을 보이며, 거대한 액션 사이 유머를 잃지 않는 완성도 높은 영화였다. 원작의 팬은 물론, 마블 코믹스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 관객에게도 모두 만족감을 주는 영화였고, 만화처럼 보일 수 있는 장면을 최대한 실사에 가깝게 조율해내는 뛰어난 솜씨를 보였다. <캡틴 아메리카>를 이야기하면서 <어벤져스>를 되짚는 이유는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 <어벤져스>가 필수 코스이기 때문이다. <어벤져스>에 등장한 아이언맨은 <아이언맨> 시리즈를 가능하게 했고, 지금의 <캡틴 아메리카>의 연장선이 된다.
또한 ‘캡틴 아메리카’라는 캐릭터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벤져스>를 봐야하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어벤져스>에 등장한 캡틴 아메리카는 살짝 그 존재감이 미미해 보였다. 캐릭터에 대한 인지도 때문은 아니다. 자유분방하고 개성 충만한 히어로들 사이에서 캡틴 아메리카가 보이는 절제된 모습이 재미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 & 앤소니 루소 감독의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를 통해 ‘캡틴 아메리카’라는 고지식한 캐릭터가 가진 매력은 정점을 찍었다. 그가 지닌 최고의 매력은 영웅으로서의 개성과 힘, 초능력이 아니라 많은 영웅들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 이끄는 ‘강인한 신념’이고 <윈터 솔져>는 그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2016년 봄 극장가를 초토화시킨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서 그 캐릭터의 단단함은 갈등의 중심이 된다.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이하 <시빌 워>)는 ‘내전’이라는 소제목처럼 영웅들 집단의 내적 분열을 다룬다. 그리고 그 분열은 심리적으로나 권력의 측면에서나 모두 파괴적이다. 거대한 다툼과 전쟁이야 말로 액션 히어로 물의 주요 갈등과 공식이라는 점에서 보자면 뭐가 새로울까 싶지만, 이번 다툼이 영웅 vs 악당이라는 공식에서 벗어나 영웅 vs 영웅, 그것도 한때 팀워크로 똘똘 뭉쳤던 영웅 집단과 영웅 집단 사이의 내분과 갈등이라는 점에서 <시빌 워>는 전작들과 분명 다른 노선을 걷는다.
세계 정의와 평화를 위해 모두 힘을 합쳐 세계를 구했던 어벤져스 멤버들에게 정부는 불편한 제안을 한다. 어벤져스를 정부에서 관리 감독하기 위해 ‘슈퍼 히어로 등록제’를 실시한다는 것이다. UN의 동의를 얻어 진행된 정부의 명분도 확실하다. 영웅들이 세계를 구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도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그 힘이 통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뜻에 찬성하며 그 힘의 통제에 동의하는 아이언맨과 자유의 가치를 주장하며 정부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그 힘을 나누며 인류를 구원해야한다는 캡틴 아메리카는 팽팽하게 대립하고, 그 갈등은 영웅들 사이의 내전으로 이어진다. 어벤져스 내부는 캡틴 아메리카(윈터 솔져, 팔콘, 호크아이, 스칼렛 위치, 앤트맨)와 아이언맨(블랙위도우, 워머신, 블랙 팬서, 비전, 스파이더맨)으로 편 가르기를 한다. 사실 영웅들 사이의 내분에 팬들도 골치가 아프다. 각자 좋아하던 영웅들이 두 패로 갈라섰을 때, 누구 편을 들어야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시빌 워>는 단단하게 대립각으로 맞선 두 집단 사이에서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철학적 사유를 함께 나누며, 어떤 결정을 할지 관객들에게 되레 질문을 던진다. 서로를 의지하며 단단하게 형성된 그들의 연결고리가 쉽게 무너질 수 있는가? 우정과 대의명분 사이에서 진정한 영웅이라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나의 힘이 인류를 구할 수도 있지만, 인류에게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딜레마는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들이 가장 가깝다고 믿었던 동료가 등을 돌렸을 때, 그리고 각자의 명분이 더해져 그 세력이 팽팽하게 맞설 때, 날선 긴장감이 얼마나 서로에게 잔혹해질 수 있는지 <시빌 워>는 극명하게 보여준다. 각자의 신념과 철학은 서로에게 깊고 길게 팬 생채기가 된다.
그럼에도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의 팽팽한 갈등 속에서 <시빌 워>는 화려한 볼거리를 쉴 새 없이 토해낸다.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고민인 도덕과 책임이라는 무거운 이야기 속에 마블 영화상 가장 많은 영웅들을 등장시킨다. 너무 많은 등장인물 때문에 어수선할 수도 있는데, 영화는 줄곧 흐트러짐이 없다. 각 영웅들의 개성과 각자의 무기, 그리고 그 액션은 스펙터클과 함께 개연성까지 갖췄다. 처음 등장한 스파이더맨은 사춘기 소년의 귀여움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이상을 더 보여줄 수 있을까 싶으면 더 강한 액션이 등장한다. 각 영웅들의 개성과 캐릭터의 매력, 그리고 탄탄한 이야기까지 아우르는 조 & 앤소니 루소 감독의 연출력은 나무랄 곳이 없다. 147분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속에 <시빌 워>가 이야기 하고 싶고 나누고 싶어 하는 사유는 인간의 존엄과 자유라는 철학적 주제이다. 루소 감독은 각 인물 사이의 명분과 갈등, 그리고 그 사이에 오가는 복잡 미묘한 감정까지 아우르며 그 사유를 확장시킨다. 더불어 대의명분을 위해 싸우지만 끊임없이 타협의 목소리와 다시 싸워야 하는 내면의 딜레마도 놓치지 않는다. 예매점유율 95퍼센트라는 어마어마한 상황에 호평과 입소문까지 더해 <시빌 워>의 독주는 한동안 이어질 것 같다.
“우리는 재앙의 원인과 결과가 될 수 있는 거야.”
자유에는 책임감이 따른다는 캡틴 아메리카의 명대사는 <시빌 워>의 근간을 이루는 명제이기도 하다. 억울하게 누명을 쓴 친구를 구하기 위해 아이언맨과 등을 지고, 끝까지 자신들의 조직원을 보호하려는 캡틴 아메리카의 통솔력과 책임감은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 캡틴 아메리카가 끝내 맞서 싸우는 ‘영웅등록제’는 ‘테러방지법’이나 ‘국가보안법’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다. 겉으로는 확실한 대의명분이 있지만, 조금만 잘못 쓰이면 통제와 제제, 그리고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심각한 악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정부라는 거대조직에 맞서 끝내 ‘자유’의 가치를 주장하는 캡틴 아메리카의 뚝심과 의지에 더 큰 힘을 실어주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세계와 인류를 지킬 힘 뒤에 그들이 감당해야 할 엄청난 책임감이라는 피로함과 함께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끊임없이 되새김질해야 하는 영웅의 근원적 고뇌를 가장 정직한 방법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빌 워>는 어마어마한 스펙터클을 자랑하는 가장 기초적인 도덕교과서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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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세쯔
2016.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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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