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개념] '이미지(심상)' 정의 이해하기 (feat. 뇌과학)
이미지를 '언어에 의해 재현된 감각적 체험의 표상'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과연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일까. 시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 이렇게 어렵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글ㆍ사진 이해황
2016.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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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출판사의 문학 교과서를 살펴보니, 이미지(심상)에 대해 '언어에 의해 제한된 감각적 표상'이라고 정의해 놓았습니다. 아마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잘못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과서민원바로처리센터에 오탈자 제보를 했습니다. 이미지에 대한 표준적 정의는 "언어에 의해 재현된 감각적 체험의 표상"인데 잘못 표시된 것 같다고. 해당 출판사에서 이미 올해분 책이 인쇄 중이라 당장 고치기는 어렵고 내년 쇄부터는 이렇게 고치겠다는 답변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문득 의구심이 생겼습니다. 이미지를 '언어에 의해 재현된 감각적 체험의 표상'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과연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일까. 시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 이렇게 어렵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제가 이미지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방식을 그대로 설명해보면 어떨까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다소 어렵고 둘러가는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이 길이 결국 더 쉽게 이해하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최대한 쉽게 설명할 테니 찬찬히 읽어주기 바랍니다.

 

먼저 다음 이미지를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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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문제가 없다면, 여러분들 눈에는 파란 동그라미가 보일 것입니다. 자, 이제 눈을 감고 파란 동그라미를 떠올려보기 바랍니다. 눈을 떴다면 답해주기 바랍니다. 파란 동그라미를 볼 수 있었나요? 네. 분명히 눈을 감고도 파란 동그라미를 봤을 것입니다. 이것이 심상입니다. 눈을 뜨고 본 건 그냥 상(image)이지만, 눈을 감고 본 것은 심상(mental image)입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요? 눈을 감고 있었는데 어떻게 볼 수 있었을까요? 사실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생각해 보면 잘 때도 눈을 감고 있지만 꿈에서 뭔가를 보기 때문입니다. 조용한 방에서 자더라도 꿈에서는 뭔가 들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요?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뇌과학 지식이 필요합니다. 뇌과학이라고 하니 뭔가 어렵게 느껴지지만, 쉽게(혹은 대충) 설명해드릴 테니 찬찬히 읽어주기 바랍니다.

 

먼저 아래 그림에서 색칠된 부분이 뇌에서 시각정보를 처리하는 부분입니다. 뒤통수쪽에 있어서 후두엽이라고 하는 부위인데, 여기 겉부분을 시각 피질(겉껍질)이라고 합니다. 다들 뒤통수를 맞아서 눈에서 별이 번쩍한 경험이 있죠? 후두엽에 자극이 가서 그렇습니다. (일부러 때릴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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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후두엽

 

파란 동그라미를 눈으로 봤을 때 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대략' 다섯 단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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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 파란 동그라미를 눈을 통해 봄

 

   ① 파란 동그라미에서 나온 빛이 눈에 들어옴
   ② 눈에 있는 세포가 이 빛을 흡수하여 활성화됨
   ③ 이로 인한 자극이 시신경을 따라 후두엽으로 흘러감
   ④ 도착한 정보를 처리하여 파란 동그라미를 봄
   ⑤ 파란 동그라미를 기억하는 곳으로 보내어 기억함

 

이처럼 눈으로 본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④단계까지 가야 본 것이 됩니다. 즉, 어떤 대상을 보는 것은 눈의 작용이 아니라 뇌의 작용입니다. 눈이 보는 것이 아니라 뇌가 보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눈이 멀쩡해도 시각 피질이 손상되면 색깔이나 모양이 왜곡되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눈을 감고 파란 동그라미를 볼 때는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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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3. 파란 동그라미를 기억을 통해 봄

 

   ① '눈을 감고 파란 동그라미를 떠올려보기 바랍니다.'를 봄
   ② 뇌가 문장의 의미를 해석함
   ③ 기억을 담당하는 부위가 활성화 됨
   ④ 이로 인한 자극이 후두엽으로 흘러감
   ⑤ 도착한 정보를 처리하여 파란 동그라미를 봄

 

이처럼 눈을 통해서 뇌가 볼 수도 있지만, 기억을 통해서도 뇌가 볼 수 있습니다. 후자를 심상(mental image)이라고 하는 것이고요.

 

(그림3의 경우에도, 그림2처럼 '눈을 감고 파란 동그라미를 떠올려보기 바랍니다'가 먼저 후두엽에 가는 과정이 있어야 하지만 그림이 복잡해지면 학생들이 이해하기 어려워질까봐 때문에 생략했습니다. 넓은 마음으로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제 '언어에 의해 재현된 감각적 체험의 표상'이라는 심상의 정의를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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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4. 감각적 체험

 

이전에 파란 동그라미를 눈을 통해 뇌로 봤고(=감각적 체험), 이것이 기억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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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5. 언어에 의해 표상 재현

 

이후 언어로 '파란 동그라미'를 읽거나 듣게 되자(=언어에 의해), 기억하는 부위가 활성화되었고, 이로 인한 자극이 후두엽으로 가서 파란 동그라미(=표상)를 보게 됩니다(=재현).

 

이때 표상은 마음 속에 떠오른 상을 뜻하고, 재현은 말 그대로 다시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이전에 눈으로 봤던 것이 마음 속에 다시 나타나니 재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언어에 의해 재현된 감각적 체험의 표상" 이 한 줄을 이해하기 위해서 꽤 많은 글을 읽었습니다. 어떤가요? 좀 돌아온 것 같긴 하지만, 훨씬 선명하고 쉽게 이해되지 않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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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의 기술 1 (2016년)이해황 저 | 좋은책신사고
철저한 기출문제 분석을 바탕으로 정리한 18개의 패턴(1권과 2권에서 각각 9개의 패턴을 다룸.)을 통해 사고력과 독해력을 키워 주어 국어영역 만점에 도달할 수 있게 해 주는 수능 필독서이다. 문제를 만든 출제자의 의도, 문제 해결 발상법을 통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다룸으로써 시험의 본질을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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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의 기술 #문학개념 #이미지 #심상 #언어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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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lie0803

2016.04.29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질문이 생기네요. 독서행위는 위 글에서 말한 <언어에 의해 재현된 감각적 체험의 표상>이 가장 극대화된 행위가 아닐까 하는데요. 만약 후두엽의 시각피질에 문제가 생기면 책읽기도 불가능하지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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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황

대학교 3학년 때, 기출문제를 분석해서 얻은 깨달음을 『국어의 기술』시리즈로 출간했다. 전공도 국어교육이 아닌, 일개 대학생이 낸 책은 이후 7년 간 150만부 이상 판매되었다. 공군 학사장교로 군복무를 마쳤으며, 매년 1,000만원 이상을 장학금으로 기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