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에 충실한, 멋진 컨트리 포크 앨범. 마고 프라이스는 이런 작품을 만들기에 충분한 아티스트다. 전통에 가까이 닿아있는 이 싱어송라이터는 최근까지도 컨트리 밴드인 버팔로 클로버에서 활동하고 있었으며 그 전에는 해당 장르의 고향인 내쉬빌로 건너와 오랫동안 질곡 있는 삶의 궤적을 그리고 있었고 로레타 린과 돌리 파튼, 에밀루 해리스의 사운드로부터 긴 시간 영감을 받아왔다.
옛 스타일이 음반에 짙게 드리워져 있다. 멜로디와 악기 편성, 연주, 사운드 톤에 이르는 대부분의 음악 구성 성분은 앨범의 이미지를 반세기 전의 시점으로 가져다 놓는다. 심지어 작품의 이름
표면상에서만 원전의 답습에 치중했다면 음반은 흥미 본위의 작품으로만 남았을 테다. 마고 프라이스의 송라이팅 능력은 그 자신을 ‘흥미로운 컨트리 복원가’ 정도에만 그치지 않게끔 한다. 작품은 뛰어난 음악가의 준수한 장르 음반임과 동시에 한 개인의 진실한 일기장이다. 인생을 조망하는 「Hands of time」서부터 자기 고백을 시작한 아티스트는 앨범 전체에 삶의 여러 장면들을 늘여놓는다. 유년기에 잃은 집안 농장과 이혼, 죽은 첫 아이, 알코올중독, 음악 업계에 느낀 실망, 수감 생활 등이 각각의 곡을 채운다. 그 단면들에서 보이는 마고 프라이스의 표현에 음반의 두 번째 매력이 있다. 「Hands of time」, 「This town gets around」와 같은 트랙들에는 구체적인 묘사들을 끌어와 한 싱어송라이터를 만든 여러 경험을 진솔하게 기술해놓기도 하고 「Hurtin’ (on the bottle)」, 「Desperate and depressed」와 같은 트랙들에는 재치 있는 비유를 더해 순간의 감정을 깊이 있게 새겨놓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비극과 좌절로 가득한 토막들은 따스하고도 풍성한 아티스트의 목소리, 푸근한 컨트리 선율, 흥겨운 로커빌리 사운드와 만나 슬픔 섞인 즐거움이라는 묘한 배리(背理)의 인상을 낳는다. 음반의 마지막 매력은 이 순간에서 모습을 비춘다.
이 멋진 앨범에는 아티스트의 온갖 모습이 뒤섞여있다. 시계바늘을 한참 거꾸로 돌리는 사운드에서는 컨트리 음악에 관한 깊은 애정과 영향, 결코 짧지 않은 음악 이력이 묻어나고 부드러운 선율에서는 괜찮은 멜로디 메이킹이 보이며, 생과 밀접히 닿은 가사에서는 순탄치만은 않았던 30여 년의 시간과, 미를 더해 이를 다시 그려내는 재능이 드러난다. 마고 프라이스뿐 아니라 고풍스러운 사운드와 선율을 완성시킨 아티스트의 밴드, 더 프라이스 태그스의 멤버들과 작곡에 도움을 보탠 케이틀린 로즈, 더 론리 에이치의 마크 프레드슨에게도 물론 박수가 따라야겠다. 이들이 있었기에 결과물이 좀 더 아름다워질 수 있었다. 탁월한 재기가 뒷받침하는 레트로 컨트리 음반이 탄생했다. 게다가 이 앨범은 아티스트의 솔로 행보 그 첫머리에 위치해있기도 하다. 근사한 데다 여러모로 큰 의미가 따르기까지 한다. 우수한 앨범이 아닐 수 없다.
2016/04 이수호 (howard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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