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복잡해지는 경영환경. 업무 강도는 계속해서 높아지고 위에서는 끊임없이 수익을 올리라고 닦달하는 통에 숨 한번 제대로 쉬기가 어렵다. 점점 눈앞의 일만 처리하기에 급급해지고, 자연스레 일의 즐거움이 줄어들어 그 어느 때보다 일이 타율적으로 흘러간다. 회의 시간과 횟수는 갈수록 늘어만 가는데 회의에서 해야 할 진짜 이야기는 거의 하지 못한다. 해야 할 일은 자꾸 지체되는데 끝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회의에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다 보면 이게 뭐 하는 짓인지, 한심한 생각만 든다. 팀의 협력도 갈수록 악화되기만 한다. 어느덧 회의는 책임 소재를 따지는 공방의 장으로 변모되어 버렸다.”
‘아니 누가 내 얘기를 써놨지?’ 놀란 가슴으로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갔다면 일단 진정하기 바란다. 위의 내용은 『왜 우리는 집단에서 바보가 되었는가』 도입부에 소개 된 내용 중 일부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이 책의 내용을 처음 접했을 때 나도, 책 소개를 받은 주변 사람들도 모두 내 상황과 똑같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니 어쩌면 작은 위로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쯤 되면 ‘한국 직장 문화가 그렇지 뭐’ 하며 탄식을 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이 책은 선진 문화를 자랑하는 독일에서, 그것도 잘 조직화된 대기업 IBM의 전 최고기술경영자가 실제 경험한 사례를 바탕으로 쓰여졌다는 것이다. 또한 독일 아마존 베스트셀러, 골드만삭스 ?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서 올해의 경제경영서로 선정되었다고 하니 아마도 이 책이 출간된 독일에서도 우리처럼 독자들의 격한 공감이 있었던 듯 하다. 그런데 도대체 왜, 국가와 문화의 경계를 뛰어넘어 모두 똑같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일까?
독일 빌레펠트대학 수학과 교수와 IBM CTO를 역임한 저자는 그 이유를 ‘집단 어리석음’에서 찾았다. 달성 불가능한 목표와 만연한 성과주의, 그로 인한 스트레스 등으로 똑똑했던 개인이 도전의식과 주체성을 잃고 근시안적이고 기회주의적인 개인으로 변질되는 현상을 정의한 말이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이 집단 어리석음은 개인 지능과는 전혀 상관없는 문제이다.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공통 목표의 부재, 오로지 수치로만 제시되는 과도한 성과 압박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 눈앞의 일부터 해치우고 보자는 직원들의 근시안적인 태도, 무조건 인력 활용도를 높이고 봐야 한다는 경영자들의 강박, 통제와 감시, 평가 시스템, 엇갈리는 커뮤니케이션 등이 조직을 어리석음의 포로로 만들어 버린다고 주장한다.
그는 아무리 이상적인 문화를 갖고 있는 조직이라도 적어도 한 두 가지는 겪고 있을 조직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들을 철저히 해부하고, 냉철하게 분석했다. 하나씩 핀셋으로 헤집어 꺼낸 것 같은 사례들은 조직의 민낯을 보여주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해부를 마친 시체를 보는 듯 한 기분까지 들게 만들 정도다.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너무나 현실적으로 풍부하게 소개 한 사례들은 똑똑한 개인의 집합인 조직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어리석어질 수 있는지 실소를 금치 못하게 만든다.
여기 저기서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하지만 아직 포기하긴 이르다. 저자는 현 실태를 다양하게 분석한 뒤 어떻게 하면 잃어버린 지성을 회복시킬 수 있을지 그 해답도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이제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 남았을 뿐. 문제라는 것을 알면서도 낙오가 두려워 누구도 먼저 빠져 나오지 못하는 탓에 무한 반복되는 어리석은 쳇바퀴를 끊고 싶다면, 일단 이 책을 펼쳐보는 것부터 시작하길 바란다. 조금 더 용기를 낼 수 있다면 상사의 책상 위에도 몰래 한 권 올려 둬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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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집단에서 바보가 되었는가군터 뒤크 저/김희상 역 | 비즈페이퍼
집단 지성을 가로막는 ‘집단 어리석음’을 향해 경종을 울리며 건강한 대안을 모색한 책. 독일 빌레페트 대학의 수학과 교수와 IBM 최고기술경영자CFO를 역임한 저자 군터 뒤크가 집단의 지나친 최적화와 과도한 목표 설정으로 똑똑했던 개인이 도전 의식과 주체성을 잃고 근시안적이고 기회주의적인 개인으로 변질되는 현상을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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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도서MD)
노골적인 눈물주의보 혹은 달달한 로맨스보다, 명료하고 속시원한 책을 좋아하는 단호박 같은 사람. 하지만 사실 <시튼의 동물 이야기>를 보며 눈물을 쏟는 폭풍 감성을 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