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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그대를 위하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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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스는 독서와 좋은 책을 다시 읽는 일이 나 자신과 타인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았다며 이렇게 선언한다. “결국 책은 우리를 만들고, 우리는 다시 책을 만든다.”

“2002년 7월 24일, 반란군들이 우간다의 파종 마을에 침입했다. 당시 어린 엄마였던 에스더 레천은 그 후 벌어진 일들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제 두 살배기 아기가 베란다에 앉아 있었어요. 반란군들은 그 애를 차기 시작했죠. 애가 죽을 때까지 발길질은 계속됐어요. …… 저는 5살짜리 아이와 같이 있었어요. 그때 여성 반군 사령관이 아이와 함께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애들을 들어 올려 베란다 기둥에 내려치라고 명령했어요. 우리는 애들이 죽을 때까지 때려야만 했어요. 애가 있던 사람들은 모두 자기 자식을 죽여야만 했어요. 만약 애를 더디게 때리면 그들은 우리를 때리며 기둥을 향해 더 세게 내려치라고 강요했어요. 모두 합쳐 7명의 아이들이 자기 엄마에 의해 그렇게 살해당했어요. 내 자식은 겨우 5살이었어요.”


엄마에게 자기 자식을 죽을 때까지 때리라고 명령했던 이 반란군들의 마음속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일까?”

                                                        - 사이먼 배런코언, 『공감제로』

 

 

한 뇌과학자가 쓴, 인간이 공감능력을 잃을 때 얼마나 끔찍한 괴물로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글이다. 재작년 세월호 사건을 접하며 다시 한 번 내가 이상한 세상에 살고 있음을 자각했다.

 

서른 즈음, 다니던 대학원에서 참담한 사태를 겪으며 세상이나 인간에 대한 희망을 잃은 적이 있다. 지식인이라 떠들던 자들이 꼴도 보기 싫은 속물이거나, 용기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겁쟁이임을 알게 되고, 인간은 근본적으로 저열하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참 우울하고 비관적인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갖고서는 자기 인생에서 성장과 회복, 전진을 기약하기 어렵다.

 

다시 인간에 대한 희망을 회복하는 데 10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인간이 원래 비이성적이고 탐욕적인 존재로 태어나나 노력 여하에 따라 존엄을 얻을 수 있음을 안다. 미국의 도덕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가 『행복의 가설』에서 말한 것처럼. 

 

“이전에 내 마음은 이기적인 욕망, 탐욕, 또는 쾌락이 이끄는 대로 방황했다. 그러나 이 마음은 이제 더 이상의 방황을 접고 조련사의 손에 길들여진 코끼리처럼 조화로운 통제의 손길 밑에서 평화롭다.”
 
부처가 했던 말을 하이트가 인용한 대로 우리는 짐승으로 태어나나 인간이 된다. 어떻게 탐욕과 욕망에 찌든 저열한 본성을 존엄한 인간성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까?

 

그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도 아니고, 결코 쉬운 일도 아니다.

 

새 지식이나 뉴스를 집어삼키려고만 하는 정보 기계처럼 변한 우리에게 교훈이 될 만한 책 한 권이 있다. 퍼트리샤 마이어 스팩스의 『리리딩』은 좋은 책을 다시 읽는 일이 주는 유익을 잘 알려준다. 다시 읽기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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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팩스는 예일대에서 20년 이상 문학을 강의한 학자이다. 그녀는 은퇴하며 프로젝트 하나를 세운다. 지난날 읽었던 책을 1년 동안 ‘다시 읽어보는(Rereading)’ 일이었다. 소박하면서도 야심만만한 이 작업을 통해 그녀는 다시 읽기, 혹은 깊이 읽기의 진가를 알았다. 다시 읽기에 도전하며 그 가치를 실감한 작품 중에는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있다. 과거나 현재나 변함없이 즐거움을 주는 작품을 찾기가 힘들었는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만은 읽을 때마다 기쁨을 준다는 것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앨리스는 주체의 혼돈을 겪는다. 수학자 마틴 가드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수학적으로 해석하는 비평으로 유명한데, 그는 주체의 혼돈이 곧 인생이며, 환각이나 환상이 없는 인생이란 참 재미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그들 주변에 있는 나무며 다른 것들의 위치가 전혀 바뀌지 않았다. …… “모두 다 우리를 따라서 움직이고 있는 걸까?” 앨리스는 어리둥절해져서 생각했다. 여왕은 앨리스의 생각을 눈치 챈 것 같았다. 여왕은 다시 소리쳤다. …… “어서! 어서!” 여왕이 다시 외쳤다. “더 빨리! 더 빨리!” 이제 그들은 너무나 빨리 달려서 마침내 땅에 발을 대지 않고 공중에 살짝 떠서 날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 앨리스는 깜짝 놀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머나, 우리가 계속 이 나무 아래에 있었던 건가요? 모든 것이 아까와 똑같은 자리예요!” …… “느림보 나라 같으니! 자, 여기에서는 보다시피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으려면 계속 달릴 수밖에 없단다. 어딘가 다른 곳에 가고 싶다면, 최소한 두 배는 빨리 뛰어야만 해!” 여왕이 말했다. 

 

이 장면을 읽을 때 우리의 현실이 자꾸 떠오르는 건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 같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의 일부분이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속편이긴 하나, 앨리스가 등장할 뿐, 상관이 거의 없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 역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혼돈스럽고 서로 뒤엉킨 사건들이 이어진다. 거울 나라는 모든 게 ‘거꾸로’다. 원인보다 결과가 먼저고, 앞과 뒤가 바뀌고 거울에 반사해야만 읽을 수 있는 책이 있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일 것 같은 세계지만, 한편으로는 체스 게임처럼 정교하게 배열되어 있다. 붉은 여왕, 하얀 여왕, 험티 덤티 등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만나고 난 후 앨리스는 꿈에서 깬다. 두 편 동화에서 앨리스는 난처한 상황을 겪으며 끊임없이 혼란스러워한다. 심지어 자기 몸이 늘어났다, 줄었다 하는 일까지 겪는다.

 

철학자 질 들뢰즈는 의미의 논리에서 앨리스가 겪는 몸이 늘었다 줄었다 하는, 자기였다가 자기가 아니었다가 하는, 상황들이 인간 주체를 잘 대변한다고 말한다. 다양한 잠재성을 끊임없이 펼쳐내는 것이, 또 자신의 정체성을 거듭 전복하는 것이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의미 있는 태도이자 삶이라는 것이다. 들뢰즈는 앨리스에게서 자신의 잠재성대로 변할 수 있는 긍정의 존재로서의 인간을 발견했다.

 

스펙스 역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미덕이 한 소녀가 혼돈스러운 현실 가운데서 자신을 조금씩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최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다시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두 가지 측면은 데카르트의 명제 속에서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앨리스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성찰하는 과정에서 정체성에 대한 앨리스의 고민은 사라졌다. 오랜 시간 동안 앨리스는 판단을 유보했다. 가짜 거북과 그리폰이 하자는 대로 따랐다. 3월 토끼의 재판 절차가 현명한지에는 꺼림칙한 구석이 있었지만, 어쨌든 모든 재판 과정을 지켜보고 숙고한 뒤에 앨리스가 최종 판단을 내릴 때 그 판단은 확고했다. 그 결과 앨리스의 존재 역시 확고해졌다.” 

 

이 소설이 인간적 성장이나 성숙과 관련이 깊다는 것이다. 앨리스는 소설 속에서 끊임없이 부당한 재판과 상황을 맞이하는데, 이에 굴하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자신을 되찾고, 또 소설의 결말 역시 “그녀가 정체성을 확고하게 주장하면서 꿈은 끝이” 나는데, 인간은 이처럼 조금씩 성장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스펙스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한 소녀가 정체성을 찾아가는 모험담이라고 정의한다. 우리 모두는 앨리스처럼 사는 내내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그 고민은 응원받아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안타깝게도 그와는 반대로 자신을 잃어가는 사람이 더 많다.

 

상담실이나 여러 장소에서 나는 이 사회의 비참에 대해 성토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은 돈이 지배하고, 정의가 통하지 않고, 탐욕의 노예들이 이끄는 이 세계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 슬프다고 한다. 언젠가 만났던, 자살까지 생각했다는 20대 청년은 다른 나라에, 다른 세상에 살고 싶다고 토로했다. 여러 번 월급을 떼이고, 매일 갑질에 당하며 세상에 희망을 잃었다고 했다. 예전의 나처럼 인간에게 더 기대할 것이 없다고 단정하고 있었다. 이상한 나라에 살다 보니 자신 역시 이상해지고 있다는 그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아철학자 에픽테토스의 금언을 들려주며, 내일의 사과나무를 심어야만 한다고 설득했다. 

 

“자신의 마음을 바꾸는 것은 할 수 있는 일이며, 타인의 마음을 바꾸는 것은 할 수 없는 일이다. 할 수 있는 일에 힘을 쓰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며, 할 수 없는 일에 신경 쓰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상한 세상에서 이상한 사람들과 동거할 수밖에 없는 그에서, 그럼에도 자신마저 괴물이 되어서는 안 될 일이기에, 힘들겠지만 조금씩 성장하는 의미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일이라고 다독거렸다. 이상한 자들이 가르치는 비관에 중독되면 우울과 불안한 자신의 인생을 파괴하는 괴물이 되고 만다.

 

스펙스가 전하려는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다. 스펙스는 책을 통해 우리가 성장할 것이라고 희망한다. 책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책을 읽지 않았다면 미처 깨닫지 못했을 풍부한 자기 이야기를 경험한다. 책 속 주인공에 빗대어 자기 삶을 새롭게 해석하고, 그 이해를 토대로 자기 삶의 틀을 단단하게 만들어나간다. 그래서 좋은 책을 한 번만 읽는 것은 위험하다. 우리의 얕은 마음이 언제든 오만과 편견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책을 만나면 읽고 또 읽어서 오류와 착각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불완전한 존재로 태어난 인간은 지혜를 배우고 진선미를 알아가며 조금씩 자신을 수선해야 한다. 

 

독서가 주는 위대한 유익은 타자성을 배우는 것이다. 타인이 존재하는 내밀한 방식을 깨닫고, 그 삶에 공감하며 인간적인 것이 무엇일지 고민하게 하는 것이다.

 

스펙스는 독서와 좋은 책을 다시 읽는 일이 나 자신과 타인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았다며 이렇게 선언한다. 

 

“결국 책은 우리를 만들고, 우리는 다시 책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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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독서박민근 저 | 와이즈베리
저자는 수십 년간 책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했던 경험과 15년간 심리치료사로서 내담자들을 치유한 임상 결과를 토대로 실제로 치유 효과가 입증된 50권의 책을 《치유의 독서》에서 소개한다. 철학상담의 전통과 최신 심리치료 연구성과, 15년간의 독서치료 경험으로 입증된 치유서를 통해 내면의 힘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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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민근(심리치료사)

대학원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문학, 철학, 심리학이 융합된 독서치료를 연구하고, 또 임상에 적용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치유의 독서』,『성장의 독서』,『당신이 이기지 못할 상처는 없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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