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클루거의 『옆집의 나르시시스트』
뉴스를 보면 연일 총선 이야기다. 며칠 전, 수백 명의 후보들이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선거 후보에 등록했다. 예선에서 떨어진 예비 후보들, 막판에 후보 등록을 하지 못하게 되어 ‘경련이 일어날 만큼 좌절과 분노’에 빠진 몇 명까지 합치면 300인의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잠재적인 사람들은 못해도 수천 명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난리를 보며 평범한 사람들은 “정치가 저리 좋나”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대부분의 후보들이 대학교수, 법조인, 의료인, 고위공무원과 같이 이미 사회에서 성공하고 많은 성취를 한 사람들이니 말이다. 이미 가질 만큼 다 성취한 분들이 뭘 더 얻고 싶은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많은 문헌에서 말하는 심리적 근원은 자기애, 나르시시즘이다. 물론 국회의원이 된다는 것은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명목은 있지만 저렇게 욕을 먹고, 수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일인 걸 뻔히 알면서도 또 하겠다고, 공천을 받고,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 애를 쓰는 것은 오직 공명심과 이타주의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들지 않은가.
물론 자기애적 성향은 인간 본연의 심리다. 특히 정치에 나선 사람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일 뿐 우리 모두가 갖고 있다. 특히 현대사회는 ‘나를 너무 소중하게 여겨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미안해하고, 염치를 갖고 사는 것이 도리어 경쟁력이 떨어지는 요소가 되어가고 있다. 이런 자기애적 성향이 꼭 정신병리의 측면에서만 볼 수 없고 우리 사회 전 영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현대사회의 한 특성이라고 주장하는 책이 있다. 그 편차가 있을 뿐 우리 모두가 갖고 있고, 한편으로 우리가 잘 이해하기 힘든 사회현상의 키워드가 사실은 나르시시즘이라는 것이다.
제프리 클루거의 『옆집의 나르시시스트(The narcissist next door)』다. 타임지의 수석편집자이자 작가이기도 한 저자는 다양한 취재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르시시스트가 어떻게 자라나는지 설명하고, 또한 사무실, 부부관계, 성공한 사람들, 정치인, 집단심리, 사이코패스적 범죄인, 셀레브레티 등에서 볼 수 있는 자기애적 성향을 풍부한 사례를 제시하면서 설득력 있게 이야기한다. 이와 유사한 책들이 대부분 심리학자,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인데 반해서 저널리스트가 쓴 책이라 그런지 일단 가독성이 매우 좋아서 술술 읽힌다는 것이 큰 장점이었다.
서두는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선두인 ‘도널드 트럼프’다. 엄청난 부자인 그는 뉴욕의 한 빌딩을 개조해서 금빛으로 외장을 바꾸고 트럼프 타워라고 자기 이름을 붙였고, 이후에도 수많은 공간에 자기 이름을 붙여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알게 만들었다. 결국 거기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자기 돈을 들여 선거에 참여해서 연일 TV에 나오고 하다못해 미국밖에 사는 우리들까지도 그가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게 만들고 있다. 그가 진짜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을지 미지수지만, 일단 자기애적 측면에서는 충분한 만족을 얻을만한 행동이 아니었나 싶다. 저자는 익숙한 트럼프를 예로 들면서 안하무인적 태도, 자기 중심적 사고방식, 과장된 태도, 사회적 둔감함, 원하는 것이 있다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저돌성 등이 나르시시스트의 특징이라고 정리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을 분석해서 루즈벨트, 클린턴, 닉슨 대통령의 허세와 자기애적 측면도 트럼프와 일맥상통한 면이 있다고 말한다. 트럼프만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 상원의원이란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면서 ‘내가 미국 대통령이 된다면’이라는 상상을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오바마, 빌 클린턴을 포함한 수많은 대통령들이 상원의원 출신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처음 대통령이 되었을 때와 지금의 모습의 비교가 화제가 되었다. 젊고 싱싱하던 모습에서 희끗한 머리에 짜글짜글한 주름이 가득한 얼굴로 단 7년만에 변했으니 말이다. 저자는 “최고 통치자란 권력이란 달콤한 양식을 꾸준히 공급해주는 반면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내하고 싶어하지 않을 신체적, 감정적 대가를 요구하는 직업이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를 위해서는 ‘아무리 규모가 작더라도 한나라의 통치자가 되고자 마음먹으려면 거의 광기에 가까운 수준의 자만심이 있어야만 한다.’고 할 수 있다.
정치는 먼 나라의 이야기로 보일 수 있지만, 이를 정점으로 사회 전체에 자기중심성이 퍼져있는 세상으로 변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기애는 우리 인간에게 있는 유전적 소인으로 누구나 남들보다 앞서고 승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적응을 위한 세상의 환경이 변하면서 이런 특성이 강화되고 있다.
가까이에 있을 때 이기기란 쉽지 않은 일
미국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다면적인성검사(MMPI)를 1950년대부터 80년대 후반까지 추적해보았다. 그 결과 이 검사의 540개의 문항 중에서 '나는 특별한 사람이다'라는 문장에 동의를 한 사람이 50년대에는 12%에 불과했으나 80년대 후반에는 80%으로 증가했고, 90년대에는 '전문가라고 하지만 사실 나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이 없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는 문장에 동의하는 사람이 이와 비슷한 수준으로 많아졌다. 또, 47년간 900만명의 미국 대학신입생 자료를 분석해보니 2012년에는 자신이 평균 이상이라고 믿는 대학생이 전체에서 최대 75%까지 발견되었다. 90년부터 2007년까지 나온 빌보드 차트에 수록된 인기 10위곡의 가사를 분석해봐도, 1인칭 단수사용빈도가 30% 증가하고 '우리의' 집단1인칭은 40%가 감소했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보편적 기준도 올라가서 우리 본연의 자기애적 평균치도 올라가고, 심한 나르시시스트를 만날 확률도 확연히 높아진 것이 현재다. 그러다 보니 타인에게도 피해가 간다. 이들은 내가 너무나 뛰어나 나쁜 일이 들킬 리 없다는 신념을 갖고, 타인에게 미치는 피해에 대한 무관심하며, 모든 것이 무너져버렸을 때 강한 분노를 보이며 이것이 모두 환경 탓, 남의 탓, 혹은 충분한 지원이 없어서 그렇다고 자기 합리화를 한다. 더욱이 나르시시스트는 뭔가를 포기하면 철저한 공허감을 느끼기 때문에 포기하기보다 속임수를 써서 만족을 얻기를 택하고, 악순환이 생기면 멈추기 어렵기에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대형 금융사건을 일으킨 메이도프, 뉴욕타임즈에서 7개월간 쓴 기사 중 반 정도에서 인터뷰, 출처 등을 꾸며낸 제이슨 블레어와 같은 이들이 전형적인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나르시시스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매력적이고, 자기 장점을 잘 부각해서 포장할 줄 알고, 남을 잘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를 믿고 관계를 맺고 함께 일을 하고, 또 연애나 결혼을 했던 사람들이 겪는 고통은 대단하지만, 정작 이들은 전혀 미안해하거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피상적이고 둔감하다. 다만 자기가 원하는 관계까지 유지되지 않고, 만족하지 못할 때 분노할 뿐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지만 이들이 가까이에 있을 때 이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모르고 맞는 매보다 알고 맞으면 덜 아프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는 있지 않을까? 이들의 성격은 잘 바뀌거나 개선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둘 때 우리 주변에서 피할 수 없이 만나게 되는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위험한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전모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저자 본인도 책 말미에 자신도 나르시시스트적 면모에 충분했는데, 경험에서 교훈을 얻었고 행동을 다스리게 되었고 모든 일에서 중심이 되지는 않더라도 세상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게 되면서 달라질 수 있었다고 고백을 한다. 우리의 내면에 기본으로 장착된 나르시시스트적 면을 성숙시키기 위해 생각해볼 실천방향까지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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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의 나르시시스트제프리 클루거 저/구계원 역 | 문학동네
『타임』의 수석 편집자이자 작가인 저자가 나르시시즘에 대한 광범위한 정신병리학적ㆍ심리학적 조사를 바탕으로 쓴 책이다. 나르시시스트가 우리 일상생활에서, 일터에서, 엔터테인먼트 산업계에서 어떻게 주변에 악영향을 미치고 자신마저 파멸로 이끄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고, 인류가 어떻게 나르시시즘을 극복해야 할지 통찰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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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iuiu22
2016.04.07